아레나, 이계사냥기 12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22화
상급 정령술!
바로 엘프 최고의 전사 데릭의 경지였다.
‘상급 레벨이 되면 정령과 융합하는 기술을 쓸 수 있게 돼!’
데릭이 카사와 융합한 뒤 검을 휘둘러 겁화(劫火)를 일으켰던 어마어마한 이적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도 그것을 할 수 있다!
그 정도쯤 되면 리창위와 싸워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어쨌든 다음 시험에서 중국과 충돌하는 건 확실합니다.”
차지혜가 말했다.
“오딘 씨가 해적을 물리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6명이나 사살당한 중국 측은 이를 갈고 복수해 올 겁니다.”
“그렇겠지. 한두 명도 아니고 6명이면 아무리 숫자가 많은 중국이라 해도 발칵 뒤집혔을 테니 말이오. 어쩌면 노르딕 시험단에 공식 항의가 들어올지도 모르겠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해적 무리에 끼어서 노략질을 했다고 실토하지는 못할 겁니다.”
하긴 국가 체면이 있지…….
그럼 비공식적으로 보복을 해온다는 뜻이니 그게 더 무섭긴 하다.
“아무튼 두 분은 해적들과 부딪칠 확률이 높으니 해전에 대비하기도 해야겠구려. 일단은 카르마 보상부터 받아야겠구려.”
“그래야겠어요.”
식사를 마치고서 나는 차지혜와 함께 따로 조용한 곳에서 만났다.
카르마 보상을 어떤 식으로 받을지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전 정령술을 상급 1레벨로 만들 생각이에요.”
“그만큼의 카르마를 올리셨으니 그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일단 석판을 소환한 뒤에 정령술을 상급 1레벨로 올렸다.
-정령술(메인스킬): 상급 정령을 소환하여 대자연의 힘을 발휘하며, 스스로 자연의 기운을 받아 육체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됩니다.
*소환 가능한 정령: 실프, 카사
*상급 1레벨: 소환시간 10시간, 정령과 융합하여 정령의 힘을 스스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잔여 카르마: +5,600
스킬을 올린 순간, 몸속에서 알 수 없는 따스한 기운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자연의 기운이다!’
인공근육슈트를 입은 것처럼 힘이 넘쳐흘렀다.
오러 컨트롤을 입힌 사람들도 이런 기분이겠지 싶었다.
‘이래서 데릭이 평소에도 나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구나.’
게다가, 중급 2레벨에서 상급 1레벨까지 한번에 올렸음에도, 아직 5,600카르마나 남아 있다!
‘정말 이번 7회차는 대박이었어.’
타락한 시험자들이 왜 조심조심 활동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단 한 명을 죽여도 수천 카르마가 공짜로 들어오는 것이다!
시험자로서는 이렇게 좋은 먹잇감이 없었다.
‘나한테 6명이 죽었다는 걸 알면 중국 시험단 녀석들도 속이 많이 쓰리겠는걸.’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중국이 열 받은 나머지 내 가족을 노리는 것이다.
노르딕 시험단이 내 가족들을 보호해 주고는 있지만, 중국이 마음먹고 보복하려 들면 그 정도 안전장치로는 부족했다.
‘내가 강해져서 한국에 돌아가는 수밖에 없어.’
일단 정령술이 상급 1레벨이 됐으니 어느 정도는 강해진 셈이었다.
나는 차지혜에게 말했다.
“나머지 카르마는 일단 상급 정령술의 힘을 시험해 보고 어떻게 쓸지 판단할게요.”
“그러십시오.”
“그나저나 차지혜 씨는 카르마 보상을 어떻게 받으시려고요?”
“일단은 오러 컨트롤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차지혜가 현재 가진 카르마는 총 4,100.
그녀가 지금까지 익힌 스킬의 종류는 매우 심플했다.
오러 컨트롤 중급 1레벨. 간신히 무기를 통해 오러를 낼 수 있는 오러 엑스퍼트의 경지였다.
그리고 체력보정 중급 1레벨. 인체 한계인 초급 5레벨을 한 단계 넘어선 정도의 육체 수준이었다.
그리고 길잡이 초급 1레벨.
“시험을 한두 번 더 치른다 해도 김현호 씨를 따라잡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그야 그렇지.’
그녀가 거의 시험을 주도할 정도의 활약을 떨치지 않는 한 나를 따라잡을 정도의 카르마를 얻지는 못한다.
내가 생각해도 난 굉장히 빨리 강해졌다.
“그래서 조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메인스킬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김현호 씨의 짐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짐이라뇨. 언제나 도움 되는 걸요.”
차지혜는 오러 컨트롤에 3,600카르마를 투자해서 중급 3레벨로 올렸다. 남은 500카르마는 일단 가지고 있기로 했다.
인공근육슈트로 육체능력은 극복이 가능하기 때문에 체력보정은 나중에 여유가 되면 올리기로 했다.
메인스킬에 집중하는 것.
오딘이 빠르게 강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차지혜는 오딘처럼 단시간에 강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럼 나중에는 오러 마스터가 된 차지혜를 볼 수 있겠구나.’
두 자루의 곡도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는 차지혜를 상상해보았다.
‘머, 멋지다!’
저 쿨한 차지혜가 쌍곡도로 화려하고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라니!
그야말로 데릭의 인간 여성 버전 같은 위압감이었다.
“무슨 생각하십니까?”
“헉! 아, 아닙니다.”
차지혜의 물음에 나는 기겁을 하며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때마침 불청객이 난입했다.
“현호!”
마리였다.
불쑥 안으로 들어온 마리는 나와 차지혜를 번갈아 보더니,
와락!
내게 팔짱을 껴오며 차지혜를 경계 어린 눈빛으로 노려본다.
“무슨 일이에요? 우리 카르마 보상을 받는 중이었는데.”
시험자들끼리 카르마 보상을 받을 땐 자리를 피해주는 게 보통이었다. 카르마를 어떻게 썼느냐는 가장 큰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현호!”
“네, 네.”
“한국에 돌아가?”
“네, 그래야죠.”
“가지 마!”
“가야 해요. 가족들도 걱정되고요.”
“가지 마!”
마리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전처럼 발작을 일으킨 건 아니었다.
마리는 이미 정신적으로 많이 안정되어서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낮아진 정신연령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지만 저주의 후유증은 벗어났다고 봐도 좋았다.
나는 마리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래도 가야죠. 또 올 테니까 걱정 마세요.”
“싫은데. 현호 가면 싫은데.”
마리는 울상이 되어서 끊임없이 ‘싫은데’를 반복했다.
“한국에 같이 가면 되잖습니까.”
뜬금없이 차지혜가 말했다.
“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마리 요한나 씨도 한국에 함께 가면 되잖습니까.”
“응! 그럼 된다!”
마리가 활짝 웃으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딘 씨가 허락할까요?”
“응? 허락? 그게 왜 필요해?”
마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야. 허락 안 필요해.”
……어린애처럼 민폐는 잔뜩 끼치는 주제에, 자기가 보호자가 필요 없는 나이라는 건 자각하고 있군.
“한국 갈 거야! 말하고 올게!”
마리는 쌩하니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전광석화였다.
난 차지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이세요?”
“뭐가 말입니까?”
“마리 요한나요. 그 여자 때문에 불편하시지 않아요?”
“불편하십니까?”
“전 그렇다 쳐도 은근히 차지혜 씨를 싫어하잖아요.”
“전 요한나 씨가 좋습니다만.”
“네?”
“고양이 같아서 귀엽습니다.”
“…….”
그래.
이 여자 고양이 좋아했지. 특히 실프.
아, 생각해보니 상급 정령으로 진화한 실프와 카사가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 봐야지?
생각난 김에 나는 두 정령을 소환했다.
-냐앙.
-멍!
둘 다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실프는 몸집은 그대로지만 털이 더 길어져서 복슬복슬한 귀여움이 느껴졌다.
반면 카사는 강아지에서 성견으로 완전히 자란 모습. 대형견은 아니었고, 이를테면 다 큰 진돗개 정도의 크기였다.
두 녀석은 덩치도 커진 주제에 여전히 내 몸 위로 기어 올라왔다.
실프의 길어진 털과 카사의 큰 덩치 탓에 정신이 사나웠다.
“……!”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차지혜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차지혜의 시선은 명백하게 실프의 동선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실프 안아보실래요?”
“아, 아니 별로 상관없습니다만?”
“됐습니다, 하고 잘라 말하지는 않네요?”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난 실프를 번쩍 들어 차지혜에게 던졌다.
-냥!
실프는 무심코 양팔을 뻗은 차지혜의 품에 쏙 들어갔다.
눈빛이 미친 듯이 흔들거리며 동요하는 차지혜를 보며 그제야 나는 만족스러워졌다.
시험자가 된 후로 처음으로 차지혜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잠시 후, 오딘과 마리가 찾아왔다.
“마리가 한국에 따라간다고 하더구려.”
오딘은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마리가 계속 떼를 썼겠지.
“요한나 씨도 원하시고, 요한나 씨가 함께 계시면 중국 측의 위협이 있을 때도 더 든든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지혜가 말했다. 저게 진짜 이유였구나. 그저 귀엽다고 따라오라고 권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되겠소? 충분히 느끼셨겠지만 참 손이 많은 아이오만.”
“아이, 아냐. 어른이야!”
마리는 나이프를 휙 던지며 소리쳤다. 오딘은 날아드는 나이프를 오른손으로 낚아채며 한숨을 쉬었다.
“괜찮으시겠소?”
“예, 저희는 괜찮습니다. 노르딕 시험단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폐될 게 뭐 있겠소? 마리의 존재가 두 분의 안전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소. 두 분은 우리 소속은 아니지만 이미 한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잖소.”
“하하, 그렇죠.”
노르딕 시험단은 이미 아레나에 가져갈 소형 정찰위성까지 개발 중이었다.
나와 차지혜로서는 노르딕 시험단이 가장 믿을 만한 우군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카르마 보상은 받으셨소?”
“아직요. 일단은 정령술을 상급 1레벨까지 올렸습니다.”
“호오, 메인스킬이 상급이 되셨구려. 그건 느티나무 마을의 데릭과 같은 상급 정령술 아니오?”
“하하, 그렇죠.”
“흥미롭군. 사실 데릭과는 기회 되면 꼭 한번 대결해 보고 싶었는데 말이오.”
오딘은 그러면서 도발적인 시선으로 날 본다.
난 웃으며 말했다.
“저도 시험해 보고 싶네요. 그럼 한번 대련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좋소. 단, 무기는 없이 갑시다.”
“네.”
그의 오러 블레이드나 나의 총이나 위험한 건 매한가지니 무기 없이 싸워보기로 했다.
“따라오시오. 좋은 장소가 있소.”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노르딕 시험단 본부의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지하 6층에서 내리니 두꺼운 철판으로 폐쇄된 방문이 보였다.
두꺼운 철문이 마치 위험물질을 보관해 둔 장소를 연상케 했다.
“합금으로 벽을 만든 대련장이오. 이 안에서는 마음껏 날뛰어도 상관없소.”
거칠게 날뛰어볼 테니 각오하라는 말로 들린다.
오딘과 나는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프!”
-냥?
“음, 나와 융합할 수 있겠니?”
-냐앙.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팟!
실프는 훌쩍 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쑤욱 하고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휘이이잉!
돌연, 내 몸을 중심으로 돌풍이 불었다. 나는 작은 회오리에 휩싸였다.
몸속에 있던 자연의 기운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오, 그게 정령 융합이구려. 그럼 나도 가겠소!”
오딘이 오러를 일으켰다.
푸른 오러가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딘이 덤벼들자, 나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랬더니,
부우웅!
내 주먹에서 엄청난 권풍이 뿜어져 나갔다.
뒤로 날아가는 오딘을 보며 나는 벙 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