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20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20화
[그때 갈색산맥에서 일만 성공했어도 영혼의 파편을 대량으로 모았을 텐데.]
그 말은 갈색산맥을 습격한 목적이 영혼의 파편이라는 뜻이었다.
‘아니, 대륙 각지에서 엘프들을 습격한 주요 목적이 영혼의 파편이겠지.’
정리해 보자.
1. 정체불명의 흑마법사 조직은 영혼의 파편을 모으고 있다.
2. 아마도 영혼의 파편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3. 시신을 빼돌려 만드는 언데드 군단은 영혼의 파편을 모으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나는 나름대로 정리해 본 생각을 모두에게 말했다.
“영혼의 파편이라……. 그게 놈들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이군.”
“영혼의 파편을 모아서 무언가를 하려는 모양이죠.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때, 차지혜가 입을 열었다.
“그 영혼의 파편이라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네요. 사람들이 해적들에게 죽은 이 시점에 나타나 영혼의 파편을 모으고 있으니까요.”
때마침 실프가 돌아왔다. 실프는 무음 카메라 어플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젊은 두 남자는 병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병사로 위장한 채 돌아다니며 영혼의 파편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잡아 족치는 게 좋지 않겠소?”
“그게 좋겠네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프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우리는 사진으로 본 두 남자를 발견했다.
겉보기에는 시신을 살피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양손을 모아 무언가 주문을 외고 있었다.
그러자 시신에서 반딧불처럼 하얀 빛의 부스러기가 그들의 손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빛 부스러기를 조심스럽게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주머니에 담았다.
“내가 끌고 오겠소.”
오딘이 나섰다.
땅을 박차고 뛰어든 오딘은 마치 순간이동처럼 두 남자의 지척에 도달했다.
두 남자가 놀랄 틈도 없이, 오딘은 손날로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그리곤 양손에 번쩍 들고 돌아왔다.
“조용한 곳으로 갑시다!”
“네.”
우리는 기절한 두 남자를 끌고 으슥한 골목으로 달려갔다.
조용한 장소에 도착하자 일단 두 남자를 깨웠다.
“헉!”
“뭐, 뭐냐!”
두 남자는 우리를 보고 겁에 질렸다.
오딘은 그들에게 말했다.
“영혼의 파편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그, 그걸 어떻게? 너, 너희는 뭐냐?!”
우리가 영혼의 파편을 언급하자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너희가 흑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다. 지금부터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하나씩 밟아 짓이길 거다.”
오딘의 협박은 나조차도 오싹하게 만들었다.
“너, 넌 누구야!”
“울펜부르크 백작 오딘이다.”
“우, 울펜부르크?”
“아렌드의 오러 마스터…….”
두 남자는 넋을 잃었다.
그만큼 아레나에서 오딘의 명성은 드높았다.
오딘은 씨익 웃었다.
“설령 너희의 스승이 온데도 내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다, 당신이 정말로 울펜부르크 백작이라고?”
“마, 맞아. 울펜부르크 백작이 나타나 해적들을 격퇴했다고 듣긴 했는데…….”
그들은 오딘의 정체를 믿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럼 첫 번째 질문이다. 영혼의 파편으로 하려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 그건……!”
당혹이 어린 두 남자.
“대답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경고했다.”
“히익!”
“하지만 그건…….”
두 남자는 겁에 질려 손을 오므렸다.
오딘은 그중 한 남자의 손목을 움켜쥐고 땅을 짚게 했다.
금방이라도 손가락 하나를 밟아 짓이기려는 듯했다.
“으악! 자, 잠깐만! 말한다! 말한다고!”
손목을 붙잡힌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겁이 많은 작자들이었다.
“여, 영혼의 파편은 고위급 네크로맨시(Necromancy) 마법에 꼭 필요한 중요한 재료다.”
그들은 술술 불기 시작했다.
“언데드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그냥 죽은 시체에 흑마력을 불어넣어서 단순한 행동 요령만 이행하게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네크로맨시다.”
“좀비로군.”
내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다. 하지만 영혼의 파편을 뭉친 가짜 영혼을 불어넣으면 살아생전의 모습과 유사해진다.”
“누군가를 부활시키려 하는 듯합니다.”
차지혜가 말했다.
오딘은 재차 그들을 추궁했다.
“너희가 부활시키려는 게 누구야?”
“그건 모른다.”
“정신을 못 차렸군.”
오딘은 다시 남자의 손을 땅에 붙어놓았다. 남자가 기절초풍할 것처럼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쳤다.
“아악! 정말이야! 상부에서 누굴 살려내려는 건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란 말이야!”
“아는 게 그것뿐이면 너희의 운명에 조의를 표하는 수밖에 없다.”
“기, 기다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해.”
“말해.”
“부활시키려는 게 누군지는 몰라도 대단한 거물이야. 엄청난 양의 영혼의 파편이 필요할 정도로 커다란 영혼의 그릇을 가진 전설의 인물일 거야!”
그때,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영혼의 파편은 어떤 방식으로 모으는 거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영혼의 잔흔이 남는다. 그 잔흔을 조금씩 모으는 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엘프들을 공격했군? 진짜 목적은 생명의 나무를 죽이고 남은 영혼의 파편을 모으기 위해서. 맞지?”
“그, 그렇다. 생명의 나무는 어떤 생명체보다도 풍부한 영혼의 파편이 남아 있으니까.”
진짜 타깃은 엘프들이 아니라, 엘프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생명의 나무였던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너희의 스승 존 오멘토는 지금 어디에 있지?”
“어, 어째서 우리의 스승님을 아는 거냐?!”
“대체 정체가 뭐야! 어째서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는 건데?”
두 남자는 혼란에 빠졌다.
그럴 수밖에.
놈들은 지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 갈색산맥을 언급했다.
그래서 난 놈들의 스승이 갈색산맥을 공격한 장본인 존 오멘토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너희의 스승 존 오멘토는 지금 남쪽에 있을 거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이고, 언제 어디에서 너희와 합류하기로 했지?”
길잡이 스킬로 존 오멘토가 있는 방향까지 언급하자 그들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우리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사람이 많은 곳에 발을 들이지 않으신다. 남쪽의 가까운 산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우리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신다. 하지만 우리가 오지 않으면 스승님께서 직접 움직이실 거다.”
“존 오멘토의 마법 수준은 어느 정도지?”
“스승님께서는 경지가 6서클에 달하신 위대한 네크로맨서이시다!”
“잠깐! 이만하면 됐잖아! 우리를 풀어줘!”
“살려준다. 하지만 질문은 끝나지 않았어.”
오딘이 으름장을 놓았다.
“이젠 아는 게 없단 말이야!”
“그럴 리가. 너희가 속한 조직은 정체가 무엇이냐?”
“모, 모른다.”
“거짓말 말고 아는 대로 불어.”
“네크로맨서의 숙원을 이루기 위한 비밀결사라는 것 외엔 모른다. 우린 스승님께서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었어!”
“그 조직의 구성은?”
“그것 역시 모른다. 조직은 모든 게 베일에 싸여 있어.”
그때였다.
“거짓말했어.”
마리가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오딘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그렇다는데?”
“거, 거짓말이라니?”
“우린 정말 몰라……!”
두 남자가 공포에 질려 악을 쓰며 소리쳤다.
하지만 마리가 또 말했다.
“또 거짓말했다. 거짓말 나쁜데.”
“거짓말을 두 번 했으니 손가락 두 개씩이군?”
오딘이 말했다.
두 남자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정말로 아는 게 없단 말이야!”
“우리는 모든 걸 말했다고!!”
“저것도 거짓말이다.”
계속되는 마리의 단호한 지적.
오딘은 피식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안됐군. 그녀는 모든 거짓말을 간파한다. 이제 손가락 세 개군.”
모든 거짓말을 간파해?
아마도 마리 요한나는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오딘이 한 남자의 손목을 붙잡아 땅에 갖다 붙일 때였다.
손목을 붙잡힌 남자가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 질렀다.
“6인의 대사제!”
“인마! 그건……!”
다른 남자의 안색도 창백해졌다. 무언가 중요한 비밀을 언급한 모양이었다.
“6인의 대사제라고?”
“그래, 조직을 관장하는 사람들이야! 그들이 모든 걸 알고 있어. 나머지는 아무것도 몰라!”
오딘은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더는 얻을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소.”
“오딘 씨, 한번 시험을 클리어하셨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차지혜가 오딘에게 말했다.
오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석판 소환’을 외쳤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석판을 들여다본 오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험을 클리어했소.”
그럼 이제 차지혜와 마리만 남았군.
차지혜야 당장이라도 오딘이 작위를 주면 해결되는 문제고, 존 오멘토만 처치하면 마리도 해결된다.
슈칵! 스컥!
마리가 전광석화처럼 두 남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두 남자는 목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쓰러졌다. 두 눈은 원망과 분노를 담아 부릅뜬 채로…….
‘살벌하네.’
망설임 없이 손을 쓰는 마리를 보며 나는 놀랐다.
하지만 그걸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나 스스로에게도 놀랐다.
살고 싶어서 줄줄이 비밀을 실토하던 두 사람을 일행이 죽였는데도 나는 조금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뭐, 상관없어. 어차피 죽일 놈들이었으니까.’
이제는 나도 이놈의 시험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갑시다.”
우리는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즉시 존 오멘토가 있다는 남쪽 인근의 산으로 향했다.
길잡이 스킬도 있었기에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
“이 산이 틀림없네요.”
내가 말했다.
존 오멘토가 산 위에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길잡이 스킬의 효과였다.
우리는 함께 산을 올랐다.
6서클 네크로맨서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존 오멘토가 날 습격했을 때도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직전 전투에는 취약한 부류로 보인다.
하물며 우리는 넷이나 되니 싸움에서 질 걱정은 들지 않는다.
‘달아나지만 못하게 해야지.’
나는 실프를 소환해 인근을 정찰하며 앞장섰다.
그런데 정찰 중이던 실프가 나에게 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전달해 주었다.
실프가 보고 있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것은 좀비 떼였다. 백여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다.
“좀비 무리가 있네요.”
“그동안 시체를 이리로 빼돌려 언데드로 만들었던 모양이오. 정말 기생충 같은 놈들이군.”
오딘이 치를 떨었다.
차지혜가 말했다.
“우리는 좀비 떼와 싸우며 주의를 끌고, 마리 씨가 우회해서 잠입해 타깃을 암살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소. 마리, 알아들었지?”
“응. 다녀올게.”
마리는 쌩하게 오른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나머지 셋은 좀비 무리가 진을 치고 있는 정면으로 나아갔다.
나는 쌍권총을 소환해 양손에 쥐었다. 오딘도 장검을 뽑아 들며 앞장섰다.
“내가 선두에 서서 돌파하겠소.”
“제가 후미에 서는 게 좋겠습니다.”
쌍곡도를 뽑아 든 차지혜가 말했다.
권총이 주 무기인 나를 중앙에 놓는 포메이션이었다.
“갑시다!”
오딘이 빠르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