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1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19화
실프는 연속으로 총을 마구 쏘았다.
재장전하고 다시 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저격이 아니라 무차별 난사로 보일 지경이었다.
날아간 총알은 건물 벽을 뚫어버렸다. 예상대로의 위력이었다.
철컥철컥!
총알이 다 소모되자 리로드 스킬 발동. 빈 탄창에 총알이 저절로 채워졌다.
그러고도 세 발을 더 쏜 뒤에야 실프는 사격을 중지했다.
적의 시체는 건물 뒤에 있어 볼 수 없었지만, 스코프에 차지혜가 나를 향해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게 보였다.
적이 전부 사살되었다는 뜻이었다.
‘가만, 근데 왜 시험의 문이 나타나지 않지?’
타락한 시험자를 4명이나 처치했으니 시험이 클리어되고 시험의 문이 나타나야 정상이었다.
“석판 소환.”
나는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21
-카르마(Karma): +14,400
-시험(Mission): 타락한 시험자를 1명 이상 사살하라.(달성)
-제한 시간(Time limit): 무제한
-시험을 클리어했습니다. 시험을 마치려면 ‘시험의 문’을 부르십시오.
-시험 중에는 카르마 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달성했다!’
역시 그 4인은 타락한 시험자였다.
시험 클리어 조건은 타락한 시험자를 1명 이상 처치하는 것. 기간은 무제한.
즉, 원하면 타락한 시험자를 더 처치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시험의 문을 부르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군. 이것도 좋은데?’
위험해지면 시험의 문을 불러서 도망치면 될 듯했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카르마!
타락한 시험자 4인을 죽이고서 획득한 카르마가 1만이 훌쩍 넘는다. 시험 서너 번은 클리어해야 얻을 수 있는 양이었다.
‘좀 더 사냥하자.’
로또 대박을 맞은 것 같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잘 만하면 타락한 시험자를 대량학살하고 엄청나게 강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오딘과 마리를 도와줘야 하니까.’
나는 한동안 아레나에서 더 머물기로 했다.
아쉽게도 해적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오딘에게 살육당한 숫자가 백 명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좀 더 사냥하고 싶은데.’
나는 어서 타락한 시험자가 더 걸려들기를 바랐다.
그때였다.
-냐아앙!
실프가 꼬리로 총구를 감아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찾았어?”
-냥.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코프를 통해 실프가 겨눈 곳을 확인해 보니, 정말로 시험자로 보이는 자가 보였다.
머리와 눈썹은 갈색으로 염색했지만 피부색은 동양인이었다. 그 옆에도 다른 동양인이 있었다.
‘확실하군.’
둘이나 되다니, 좋은 기회였다.
나는 즉각 방아쇠를 당겼다.
슈욱―!
총알이 세차게 바람을 갈랐다.
그런데 총알은 타락한 시험자의 머리에 다다르기 전에 무언가에 부딪쳤다. 투명한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형상이 보였다.
‘마법인가?’
아마도 방어 마법 같았다. 상대는 마법을 메인스킬로 익힌 모양이었다.
타깃이 된 타락한 시험자는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디서 무슨 공격이 시도됐는지는 아직 눈치 못 챈 모양이었다. 총성이 없으니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한 발 더!’
나는 재장전하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락한 시험자가 뭐라고 주문을 외우는가 싶더니 또다시 총알이 방어 마법에 막혀 버렸다.
나는 아까보다 더 신속하게 재장전하고 재차 쏘았다.
진땀을 흘리며 다시 주문을 외는 타락한 시험자.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더 빨랐다.
건물도 관통해 버리는 엄청난 위력의 50BMG 탄환은 타락한 시험자의 머리통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목 없는 시체가 풀썩 고꾸라졌다.
곁에 있던 동료는 그제야 저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근처의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겨우 나무?’
나는 실프를 시켜 나무를 조준, 방아쇠를 당겼다.
슈욱!
총알이 나무를 뚫고 들어가 뒤에 숨은 타락한 시험자의 목을 맞췄다.
하지만 나무를 관통하면서 위력이 반감된 탓인지 목이 통째로 날아가지는 않았다.
타락한 시험자는 목에서 꾸역꾸역 쏟아지는 피를 막으며,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힐링포션을 꺼낸다.
‘안 되지.’
나는 한 발 더 쏘았다.
힐링포션을 목에 부으려 할 때, 50BMG탄이 머리를 통째로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머리가 사라진 목에 힐링포션이 부질없이 쏟아진다.
‘6명째!’
나는 희열을 느꼈다.
석판을 다시 소환해 카르마를 확인했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21
-카르마(Karma): +17,900
-시험(Mission): 타락한 시험자를 1명 이상 사살하라.(달성)
-제한 시간(Time limit): 무제한
-시험을 클리어했습니다. 시험을 마치려면 ‘시험의 문’을 부르십시오.
-시험 중에는 카르마 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하하!”
절로 웃음이 나왔다. 카르마를 갈퀴로 긁어모으는군.
해적들이 배를 타고 달아나기 시작하면서 싸움은 끝이 났다.
‘아쉬운데.’
1명 이상 사살하면 되는 시험에서 6명이나 처치했으니 초과 달성! 2만에 달하는 카르마를 하루 만에 대량 획득한 대성공이었다.
그럼에도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지 아쉬움이 밀려왔다.
교신기를 통해 오딘에게서 연락이 왔다.
-싸움은 정리된 모양인데 김현호 씨는 어떻게 됐소?
“6명이나 처치했어요.”
-6명이나?
오딘이 깜짝 놀랐다.
“네, 오딘 씨 덕분입니다.”
-뭘, 차지혜 씨 작전이 좋았던 거지. 아무튼 축하드리오. 카르마도 많이 얻었겠군?
“네, 시험도 클리어했어요.”
난 모두가 시험을 클리어할 때까지 귀환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해적들과 타락한 시험자들이 결탁한 건 알겠는데, 이제는 어찌할 생각이시오? 존 오멘토라는 흑마법사를 추적해야 하지 않겠소?
난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아뇨. 잠시 이곳에 머물죠.”
-왜 그렇소?
“만약에 타락한 시험자와 해적들이 흑마법사들과 결탁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흑마법사들이 원하는 건 뭘까요?”
-……시체?
“예, 그리고 해적들이 패하긴 했어도 이번 싸움에서 시체가 많이 생겼죠.”
-시체를 빼돌리기 위해 흑마법사들이 나타날 거라는 뜻이로군.
“그렇죠. 아레나에서는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게 보편적인 장례 방식이라고 하셨죠?”
-그렇소.
“그럼 화장했다고 말하고 시체를 빼돌리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겠군. 그런데 이런 재난으로 인한 희생자의 장례는 해당 지역의 통치자들이 주관하는 것이 보통이오.
아만 제국은 영주가 없고 술탄이 임명한 집정관들이 일정 임기 동안 지방을 통치한다고 했다.
“귀족들이 해적들의 뒤를 봐준다면서요?”
-아! 그렇군. 그러고 보니 이번 습격도 이상하게 정규군의 저항 흔적이 적군.
“아마 이 지역에서 파고들면 꼭 존 오멘토가 아니더라도 흑마법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좋소. 그러면 이곳에서 머물면서 희생자들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살펴봅시다.
“예.”
통화를 끊고서 나는 일행들이 있는 항구로 향했다.
***
“오오! 그 유명한 울펜부르크 백작 각하시군요!”
깡마른 민머리 노인이 잔뜩 호들갑을 떨며 오딘에게 알랑방귀를 떨었다.
작고 삐쩍 마른 체격에 온갖 화려한 색상의 옷과 번쩍거리는 장신구를 덕지덕지 걸어서 마치 사이비 교주처럼 수상해 보이는 작자였다.
“경황이 없어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이곳 데포르트 항구의 집정관으로 5년째 지내고 있는 실 앗셀입니다.”
“방어 태세가 왜 이렇게 허술한 것이오? 게다가 정규군은 어딜 갔기에 항구가 속수무책으로 해적에게 침공당했소?”
오딘이 추궁하듯 물었다.
앗셀 집정관은 짐짓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에고고, 그 간악한 것들이 우리가 인근에 출몰한 몬스터를 토벌하러 떠난 틈을 타서 공격해 왔지 뭡니까?”
“……그렇소? 참 운이 없었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낙심한 표정을 하는 앗셀 집정관.
하지만 우리는 그가 해적들과 한통속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연기를 너무 못하거든.
“자자, 이러지 마시고 제가 모실 테니 함께 관저로 가시지요?”
오딘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잠깐 머물다 떠날 뿐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아이고, 잠깐이라도 저희 항구를 구해주신 은인이신데 대접이 소홀해서야 되겠습니까?”
“됐소, 양국이 그리 좋은 관계도 아니고. 고생이 많으실 텐데 수고하시오.”
“에고고,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이거야 원 죄송스러워서…….”
그렇게 앗셀 집정관과 작별하고 우리는 잡아놓은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 난리가 난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 영업을 시작한 여관 주인의 의지가 대단했다.
다행히 식료품은 약탈당하지 않아서 식사도 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오딘이 말했다.
“해적과 한통속이군.”
“네, 척 봐도 그렇던데요. 공교롭게 몬스터 토벌을 떠나느라 항구를 못 지켰다는 것도 수상하고요.”
내가 맞장구쳤다.
바깥에서는 뒤늦게 나타난 앗셀 집정관의 명령으로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해적과 싸워야 했던 병사들이 뒤늦게 시신이나 수습하는 꼴을 보니 한심스러웠다.
현재 나는 실프를 시켜서 시신을 수습해서 어디로 싣고 가는지 감시케 했다.
그런데 차지혜가 아이디어를 냈다.
“타락한 시험자들을 색별해 처치했던 것과 같은 방법을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요?”
“‘언데드’와 ‘좀비’를 언급하는 자를 찾는 겁니다. 이 와중에 그런 단어를 언급할 자는 흑마법사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멍하니 차지혜를 쳐다봤다.
“뭔가 잘못됐습니까?”
“아뇨, 너무 똑똑하셔서요.”
“감사합니다.”
겸손도 없이 그냥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도 차지혜다웠다.
저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척척 나오다니, 정말 쓸 만한 동료다 싶었다.
나는 그녀의 의견대로 실프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실프가 돌아와서 서쪽을 가리켰다.
“벌써 찾았니?”
-냐앙.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들의 대화를 내게 들려줄래?”
-냥.
실프가 힘을 발휘하자 한줄기의 미풍이 내 귓가를 스쳤다.
이윽고 웬 젊은 남자들의 대화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어서 영혼의 파편을 모아. 많이 모아 가지 않으면 스승님께서 우리까지 언데드로 만들어버릴 거야.
-빌어먹을, 그때 갈색산맥에서 일만 성공했어도 영혼의 파편을 대량으로 모았을 텐데.
‘그놈들이다!’
나는 스마트폰과 터치펜을 실프에게 건네주었다.
“그 자식들 사진을 찍어올래?”
-냥.
실프는 스마트폰과 터치펜을 들고 휙 하니 떠났다.
“갈색산맥이라면 흑마법사 놈들이 확실하구려.”
함께 대화를 들은 오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서 죽일까?”
마리가 크고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이 예쁜 얼굴로 그런 살벌한 소리를 하다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투를 보면 저놈들은 거물급이 아니에요.”
마리의 시험은 ‘5서클 이상의 고위급 네크로맨서를 처치하는 것’이다.
대화를 들어보면 그들이 잔챙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스승이라는 작자가 거물이겠지.’
게다가 ‘영혼의 파편’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들어보면 그들의 목적은 언데드로 만들 시체가 아니라 영혼의 파편이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