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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1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17화

 

왕립국도를 따라 이동하니 국경검문소가 보였다.
병사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국경검문소는 작은 문과 큰 문이 있었다.
작은 문 앞에는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고, 큰 문은 한산했다.
우리 마차는 큰 문으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오딘은 마차 문을 열고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병사들은 신분증을 보고는 놀란 얼굴을 했다.
신분증을 돌려주며 정중하게 예를 갖춘다.
“아렌드의 위대한 무인, 울펜부르크 백작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참고로 이 나라의 이름은 아렌드 왕국.
그리고 오딘은 아렌드 왕국 내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다.
마차는 다시 출발했다.
국경검문소를 통과하여 양국의 중립지대에 이르자, 도로 정비 상태가 엉망이라 마차가 덜컹거렸다.
“이러다 마차 고장 안 날까요?”
“마법이 걸려 있어 웬만해서는 부서질 일이 없소.”
“아, 마법 참 편리하네요.”
“이 세계의 문명을 우습게 보지 마시오. 바퀴 네 개가 높낮이를 조절해 비포장도로를 달려도 수평이 유지되는 마차도 개발되었다고 들었소.”
나는 새삼 마법의 신비함에 감탄했다.
인류의 암흑기였던 서양 중세를 연상케 해서 아레나 인류의 문명을 우습게 본 것이 사실이었다.
인류 평등과 인권이 없는 사회체제는 확실히 열등했다.
하지만 마법을 응용한 기술 수준은 무시할 수 없을 듯했다.
지구에서 과학으로 구현할 수 없는 것도 마법으로는 가능한 경우가 있다.
아레나 사업에 뛰어든 지구 각국의 기관들도 이 점을 노리는 것이리라.
중립지대를 통과하여 다시 국경검문소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아렌드 왕국의 국경검문소가 아니었다.
출발한 지도 어느덧 30여 일.
우리는 마침내 아만 제국에 도착한 것이었다.

***

아만 제국은 습한 열대 기후를 가진 나라였다.
그 탓인지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들 시원시원했다.
상업도시 갈렌 시에 도착한 우리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로를 간신히 헤쳐 나갔다.
‘우와, 완전 해수욕장 같네.’
거의 헐벗는 사람들의 행색을 보고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물론 내 감탄을 산 것은 젊은 여자들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갈색 피부를 가진 여자들이 짧은 치마와 젖가슴을 간신히 가린 셔츠를 입고 당당히 다니는 모습에 절로 눈길이 갔다.
“현호!”
“응?”
마리가 날 부르자 그제야 난 퍼뜩 거리의 여자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마리는 뾰로통한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왜, 왜요?”
“나빠.”
“뭐가요?”
“나빠.”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 나쁜 남자 아니에요.”
오히려 살짝 호구 타입이지.
마리는 뭔가 심통이 난 듯하더니, 대뜸 마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어? 어디를?!”
“놔두시오. 알아서 잘 찾아올 거요.”
오딘이 나를 만류했다.
‘정말 종잡을 수가 없군.’
역시 맛이 간 여자는 대하기가 힘들다. 내 여동생 현지가 대표적이고.
갈렌 시는 국경검문소를 통과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도시였다.
양국을 오가는 중개상들과 여행자, 용병 등으로 1년 내내 북적거린다고 한다.
그 때문에 여관도 가격대 별로 다양했다.
용병들과 여행자들이 머무는 싸구려 합숙소도 있었고, 잘 나가는 상인들을 위한 고급 여관, 그리고 귀족 전용의 최고급 여관도 존재했다.
우리는 당연히 귀족 전용 여관으로 갔다.
귀족들만 이용할 수 있는 최고급 여관답게 크고 화려했다.
마차를 세워놓는 곳과 수행 하인들을 위한 별도의 숙소도 딸려 있었다.
“돈은 많으니 아낄 필요 없소. 각자 방 하나씩 씁시다.”
오딘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오딘은 돈을 지불하고 이 자리에 없는 마리의 것까지 방 4개를 잡았다.
여관의 지배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중년 사내는 우리에게 목패를 하나씩 주었다.
목패마다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내 목패는 401이었다.
“방 열쇠요. 잠금·열림 마법이 내장되어 있소.”
“대단하네요.”
이쯤이면 겉보기엔 아날로그적이어도 현대의 키 카드에 버금가는 기술력 아닌가.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난 내 방인 401호실에서 짐을 풀고 방 안을 살폈다.
“휴우, 좀 살 것 같다.”
제대로 팔다리 뻗고 침대에 누우니 몸이 노곤해졌다.
그동안 마차 안에서 웅크리고 자느라 불편했던 것이다. 물론 길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런데 그때였다.
“현호!”
“으악!”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놀란 나는 기겁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창밖에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품속에서 핀셋 같은 걸 꺼내더니, 닫힌 창문의 잠금장치를 순식간에 따버렸다.
철컥!
몇 초 만에 열려 버리는 창문.
“어때?”
안에 들어온 마리는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감탄사였다.
그녀는 아만 제국 여자들과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짧은 치마와 브래지어처럼 생긴 아슬아슬한 셔츠.
빙글빙글 돌 때마다 치마가 오르락내리락하며 하얀 팬티가 살짝살짝 보였다. 눈부시게 하얀 피부에 나는 아찔함마저 느꼈다.
“이, 인공근육슈트는요?”
“넣어뒀어.”
“그러면 안 되죠!”
“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자기기를 아레나에서 고장 내지 않고 꺼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요.”
그제야 마리는 화들짝 놀라 아이템 백팩을 소환하고, 안에서 인공근육슈트를 꺼냈다.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져 속옷차림이 된 그녀는 허겁지겁 인공근육슈트를 입었다.
나 보는 데서 옷 갈아입지 마!
……고맙긴 하다만.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본 마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장 안 났다.”
“다행이네요.”
다행히도 인공근육슈트는 고장 나지 않고 제대로 작동되는 모양이었다.
‘시험의 문만 통과하지 않으면 고장 나지 않는 모양이네.’
대신 나를 제외하면 다들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를 아레나 어딘가에 보관해야 할 듯했다.
나는 교신기를 꺼내 오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는 길에 전파송수신기를 으슥한 지역에 설치해 뒀기 때문에 이곳에도 전파가 미쳤다.
-무슨 일이오?
“다른 분들께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를 현실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걸 주지시켜야 할 것 같아서요.”
-이미 시험 전에 충분히 주지시켰소.
“에? 그래요?”
-당연하잖소.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아레나에 반입한 물건인데 고장 내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오.
그래, 그렇겠지.
노르딕 시험단이 그렇게 허술한 집단일 리가 없었다.
-마리만 조심한다면 실수하는 시험자는 없을 거요.
“……확실히 그렇네요.”
마리는 쑥스러운지 헤헤 웃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아만 제국 옷을 포기하고 원래 복장으로 돌아왔다.

***

우리는 한동안 여관에서 머물며 정보를 모았다.
사실상 마리가 바쁘게 이리저리 다니며 소문을 수집했다.
우리는 그저 술집 등을 다니며 취객들의 잡담에 귀를 기울이는 정도였다.
여기서 나는 실프를 아주 유용하게 활용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학살, 살육, 몰살, 떼죽음, 전멸, 이런 단어를 언급하는 대화를 내게 들려줘.”
중급 2레벨이 되면서 실프의 정찰반경은 3킬로미터까지 넓어져 있었다.
실프는 3킬로미터 이내에서 내가 언급한 단어가 들어간 대화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술집이나 식당 등에서 떠들썩하게 나누는 이야기들이 내 귀에 생생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중 쓸 만한 정보를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이미 길잡이 스킬에 의해 존 오멘토나 리창위를 쫓을 수 있지만, 굳이 이렇게 정보 수집을 하는 이유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난데없이 최종 보스의 스테이지에 들어가 버리면 안 되니까.’
그렇게 보름이 흐르자 우리는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데포르트 지방이 유력하네요. 그쪽 방면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이 하나같이 흉흉해요.”
“맞아.”
내 등에 매달려 있던 마리도 맞장구쳤다.
데포르트 지방은 아만 제국의 서쪽,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이었다.
존 오멘토가 있는 방향도 서쪽이었다.
나는 서쪽 지역들 중에서 소문이 안 좋은 지방을 꼽았고, 그것이 데포르트 지방이었다.
“리창위도 그 방향에 있습니다.”
차지혜가 덧붙였다.
오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곳이 확실하구려. 그럼 내일 출발합시다. 리창위도 있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신중해야겠소.”
우리는 눈에 띠지 않게 사두마차는 이곳에 두고 말만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세 필의 말을 구입해서 출발했다.
오딘과 차지혜가 각각 한 필씩 탔고, 나는 껌처럼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마리와 함께 탔다.

***

데포르트 지방은 아만 제국의 서부 해안지역, 데포르트 항구의 인근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었다.
데포르트 항구는 어업이 활발한 지역인데, 술탄에게 진상할 정도로 진귀한 해산물이 풍부했다.
다만 해적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아만 제국의 치안력이 열악해진 틈을 타 강성해진 해적 세력은 이제 대륙 서부를 주름잡고 있다고 했다.
해안가의 항구들을 공격하는 건 기본이고, 이제는 내륙으로 더 깊숙이 침범하여 기습적인 약탈을 자행할 정도로 과감해졌다고 한다.
몇 차례 해적을 대대적으로 토벌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
아만 제국은 대륙 최강을 자랑하는 육군 전력에 비해 해군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륙 정복의 야망에 정신 팔려 있으니 말이오. 그래서 육군 양성에만 몰두하는 거요.”
오딘이 말했다.
“한때 대륙을 정복했던 영광을 다시 되찾고 싶은 것이지. 나라면 이웃 국가들과 화친을 하고 국내 치안과 해적 토벌에 힘을 기울여 안정을 꾀했을 텐데 말이오.”
“그렇다고 해도 그 해적 세력은 너무 강성하네요. 아만 제국뿐만 아니라 서부 해안에 인접한 모든 국가가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던데요.”
“흥, 해적 따위를 뿌리 뽑지 못하는 이유야 보나마나요.”
“귀족들이 해적들을 통해 돈벌이를 하고 있겠죠.”
차지혜가 말했다.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요. 해적들이 내통하는 귀족들에게 막대한 금은보화를 안겨주고 있지. 귀족들은 해적 토벌을 은연중에 방해하거나 정보를 유출해 위험을 피하게 만들고.”
‘썩었구나.’
민주국가인 한국도 비리가 판치는데, 이렇게 야만스러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아레나는 어떻겠는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해적 세력의 주축이 타락한 시험자들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추측하오. 아니더라도 최소한 해적 세력과 결탁을 하고 있겠지.”
어디 종합해 보자.
1. 타락한 시험자들.
2. 흑마법사 조직.
3. 해적세력.
4. 그들의 뒤를 봐주는 썩어빠진 귀족들.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범죄 카르텔의 조합이었다.
이쯤 되면 아만 제국을 넘어 이 아레나 세계가 걱정될 정도였다.
가뜩이나 괴물들이 많이 서식해서 살기 힘든 세상인데, 인간끼리도 이렇게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이런 지옥에서 살고 있는 아레나 사람들이 불쌍해졌다.
‘어쩌면 시험은 이 썩은 세상을 정화하는 게 최종 목표인지도 모르겠어.’
갈렌 시에서 출발한 지 긴 시일이 흘렀을 무렵.
우리는 마침내
데포르트 항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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