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1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15화
오딘과 내가 함께 움직이면 서로에게 큰 이득이었다.
오딘의 이번 시험은 갈색산맥의 엘프들을 습격한 흑마법사들에 대해 조사하는 것.
그 습격을 조장한 주범은 바로 존 오멘토라는 중년의 흑마법사였다.
그렇다면 그 존 오멘토를 붙잡는 것만으로도 오딘의 시험 클리어 조건이 충족된다.
난 존 오멘토를 만난 적 있다.
그뿐이랴?
목숨 걸고 싸우기까지 했다. 이상한 안개처럼 변신해서 날 위협했지.
비록 존 오멘토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나, 어느 방향에 있는지는 안다.
바로 길잡이 스킬!
한 번이라도 직접 본 사람이나 물건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스킬.
초급 1레벨이라 방향만 어렴풋이 알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추적이 가능했다.
결국 내 덕분에 오딘은 시험을 클리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나한테는 어떤 이득이 있냐고?
그야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오딘 같은 강자가 함께하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타락한 시험자와 싸울 때도 오딘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함께 움직이기로 했지만,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냅시다. 노르딕 시험단의 동료들을 만나 봐야 하니 말이오.”
“예, 서두를 것 없죠.”
오딘이나 나나 제한 시간은 무제한.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 후로 울펜부르크 백작가에 손님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노르딕 시험단 소속의 시험자들이었다.
그들은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를 건네받고 시험을 수행하기 위해 다시 떠났다.
그렇게 여러 시험자가 다녀가면서 1개월이 흘렀을 때였다.
“영주님, 요한나 준남작님께서 오셨습니다.”
식사 중에 시녀가 들어와 조용히 일렀다. 오딘이 말했다.
“들라하고 식사를 1인분 더 준비해라.”
“네, 영주님.”
요한나 준남작?
‘설마…….’
바로 그 설마였다.
식당에 나타난 예쁜 금발의 여자는 나를 발견하고는 푸른 눈을 빛내며 달려왔다.
“현호!”
마리 요한나였다.
파앗!
‘헉!’
그녀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와 나를 끌어안았다.
순간적으로 나는 정말 기습에 당한 기분을 느꼈다. 암살 관련 스킬을 마스터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잘 지내셨어요?”
“응.”
“그사이에 아프지는 않았고요?”
“한 번. 근데 이제 현호 봐서 괜찮아.”
큼직한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나는 정령들을 대하던 버릇처럼 그녀를 슥슥 쓰다듬어 주며 생명의 불꽃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불꽃이 머리에 스며들자 마리는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나른해졌다.
“마리, 이번 시험은 뭐지?”
오딘이 물었다.
마리가 답했다.
“5서클 이상의 고위급 네크로맨서를 암살하라.”
“또?”
오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전에도 흑마법사를 암살하는 시험을 치르다가 저주에 걸렸던 것이다.
“잘됐네요!”
내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존 오멘토가 있잖아요.”
“그렇군!”
오딘이 반색을 했다.
“존 오멘토? 그거 누구?”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딘은 품속에서 복사해 놓은 존 오멘토의 현상수배지 한 장을 꺼냈다.
“이놈이다. 언데드 군단으로 갈색산맥을 습격했을 정도니 5서클 이상은 되겠지.”
마리는 현상수배지를 빤히 보더니 품속에 집어넣었다.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어차피 오딘도 흑마법사들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렇군. 마리, 이번 시험은 우리와 함께 다니자.”
“현호도?”
“그래.”
“헤헤, 현호 좋아.”
마리는 나를 보며 푼수처럼 배시시 웃는다.
……뭐, 정신 상태야 어쨌든 그녀 역시 강력한 우군이 될 것은 틀림없으니까.
마리가 합류한 후에도 노르딕 시험단 소속의 시험자들이 뜸하게 방문하여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를 챙겨갔다.
나는 매일 생명의 불꽃을 만들어 하나는 마리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정령들에게 먹였다.
그렇게 또 한 달 가까이를 보냈을 때였다.
“영주님!”
병사가 달려왔다. 저택 성문을 지키던 낯익은 병사였다.
‘또 누가 왔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무슨 일이냐?”
“이상한 여자가 영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상한 여자?”
“예, 행색이 남루해 평민으로 보였는데 영주님을 만나겠다고 생떼를 쓰고 있습니다. 쫓아내려 해도 버티고 서서 묵묵부답이라…….”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데려와라.”
“예? 하지만 무기까지 지닌 수상한 여자를…….”
“혹시 그 무기가 곡도(曲刀) 두 자루 아니었어요?”
내가 물었다.
병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킴 준남작님께서 그걸 어떻게…….”
“아는 사람이니 당장 데려오세요.”
병사는 오딘을 쳐다봤다.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중히 모셔 와라.”
“옛!”
병사가 헐레벌떡 달려갔다.
오딘은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차지혜 씨도 오셨구려. 기다린 보람이 있소.”
“그러게요.”
잠시 후, 차지혜가 병사의 안내를 받으며 나타났다.
과연, 병사들이 수상하게 여길 만했다.
차지혜는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노숙을 하도 많이 한 탓에 옷이 낡아 떨어졌고, 허리춤에 걸려 있어 언제든 뽑을 수 있는 쌍곡도가 눈에 띠었다.
“반갑습니다.”
차지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오딘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대륙 남서부 늪지대에 계셨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오셨구려.”
“중간에 말을 훔쳐 타고 달려왔습니다. 추격을 받는 바람에 강행군으로 왔습니다.”
차지혜의 과감한 행보에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무슨 무법자냐?
차지혜는 오딘에게 이어서 말했다.
“그보다 옷과 기사 작위가 필요합니다.”
“…….”
천하의 오딘도 흠칫했다.
옷은 그렇다 쳐도 기사 작위를 먹을 것 달라는 듯이 당연하게 요구해 오다니. 대체 얼마나 뻔뻔한 건가?
다행히 차지혜는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제 이번 시험은 영주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기사로 등용되는 것입니다.”
“아, 그런 거였소?”
“그래서 오딘 씨가 생각나 바로 이리로 왔습니다.”
“잘됐군. 내가 작위를 주면 바로 시험이 클리어되겠구려.”
“다른 분들은 어떤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나는 그녀에게 우리의 시험에 대해 들려주고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차지혜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차지혜 씨도? 그럴 필요가 있소? 내가 작위를 주면 바로 클리어될 텐데.”
“그렇게 간단히 클리어하면 획득할 수 있는 카르마도 적습니다.”
차지혜가 이어 말했다.
“시험은 실력을 인정받아 기사로 등용되라고 했습니다. 함께 움직이며 도움을 드리면 더 높은 성적으로 클리어가 가능합니다. 게다가…….”
차지혜는 나를 쳐다보았다.
“되도록 빨리 김현호 씨와 아레나에서 합류하고 싶었고요.”
그러자 뜬금없이 마리가 내 옆에 찰싹 붙으며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차지혜를 노려본다.
“지혜 씨도 도와주신다니 저야 좋죠.”
내가 답했다.
마리는 그런 내 결정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팔꿈치로 툭툭 내 옆구리를 찌른다. 이 여자는 대체 왜 이래?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함께 움직입시다. 일단 인공근육슈트와 교신기부터 주겠소. 며칠 쉬었다가 출발합시다.”
그렇게 4인의 팀이 임시로 만들어졌다.
***
우리는 말을 타고 달려서 갈색산맥에 도착했다.
느티나무 마을에 이르자 엘프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킴이 벌써 왔네!”
“아내를 찾으러 떠났다고 안 했던가?”
“어? 저것 봐. 여자가 둘이나 되는데.”
“벌써 여자를 둘이나 얻은 거야?”
“킴이 재주가 좋네.”
“하긴, 킴은 대단하잖아.”
엘프들은 멋대로 추측하며 쑥덕거렸다. 졸지에 난 2개월 만에 아내 둘을 만든 플레이보이로 소문이 나버렸다.
내 곁에 아교처럼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마리 탓에 오해는 더욱 증폭되었다.
결국 어머니들을 만났을 때에는…….
“결혼 축하한다, 킴.”
“네? 아, 아니, 전 아직…….”
내가 뭐라고 해명할 틈도 없었다.
연장자 어머니가 흐뭇해하며 목각반지를 내 손에 끼워주었다.
“네가 아내들을 데리고 왔다는 말을 듣고 급히 준비했단다. 생명의 나무로 깎아 만든 목각반지니 소중히 간직하렴.”
“하, 하지만…….”
“호호, 자, 아내들도 하나씩 받고.”
‘아내들’이란 말에 마리는 잽싸게 목각반지를 받아 손에 끼며 헤헤 웃었다. 뭐, 저 여자는 바보니까 그렇다 치자.
그런데 차지혜도 목각반지를 받아 순순히 손가락에 끼는 것이었다.
“댁은 또 그걸 왜 껴요?!”
이 여자는 또 뭐가 문제야!
“성의를 무시하기 어렵잖습니까. 그냥 결혼한 것으로 치죠.”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다고요?”
“현호 씨는 엘프들의 은인입니다. 현호 씨의 아내인 편이 제게 유리합니다.”
“그, 그럼 전 2개월 만에 두 여자와 결혼한 놈이 되잖아요!”
“능력 있어 보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해명하기 귀찮습니다.”
차지혜는 뻔뻔스럽게 고개를 돌려 날 외면했다.
“크으윽!”
그 와중에 마리는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애교를 떨었다.
“헤헤, 나 현호 아내야.”
“…….”
결국 난 포기하고 받아들였다. 될 대로 되라.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나는 연장자 어머니에게 이곳에 돌아온 목적을 설명했다.
“좀비들을 살펴보겠다고?”
“예, 그 흑마법사 놈들을 추적할 생각입니다.”
“남편 부를까?”
“아뇨, 그냥 살펴보는 건데요, 뭐.”
“아무튼 조심하렴.”
우리는 바로 출발했다.
예전에 좀비 떼가 기어오르던 남서쪽의 절벽으로 향했다.
이제 좀비가 사라진 탓에 그곳을 지키는 베테랑 전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가볼까요?”
나는 먼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같이 가!”
마리도 나를 쫓아 뛰어내렸다.
오딘과 차지혜도 잇따라 추락하기 시작했다.
“실프!”
-냐앙.
“떨어지기 직전에 우리를 받아줄래?”
-냥.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꺄하하!”
마리는 번지점프라도 하는 것처럼 깔깔 웃으며 좋아했다.
낭떠러지 아래의 협곡은 초토화된 모습 그대로였다.
불에 그슬린 폐허!
데릭이 카사와 융합하여 온통 불바다로 만든 탓이었다.
“성한 좀비를 찾는 게 힘들겠구려.”
오딘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예, 그래도 잘 찾아보면 흔적이 남아 있을 거예요. 실프!”
-냥?
“좀비들 시체를 있는 대로 가져와 줘.”
그러자 실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론가 휙하니 날아갔다.
실프는 협곡을 바쁘게 다니며 좀비들의 시신을 모아왔다.
팔다리가 성한 좀비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타다 남은 옷 조각이나 잘린 머리 등은 충분히 모였다.
마리는 악취에 눈살을 찌푸렸다.
“한번 살펴봅시다.”
우리는 좀비들을 살폈다.
좀비 잔해를 슥 보던 마리가 말했다.
“아만 제국.”
“아만 제국?”
내가 의아함을 표했다.
오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서부의 나라요. 옛날에는 대륙을 일통한 적도 있었던 전통적인 강대국이오. 마리, 아만 제국 사람들이 확실한 거냐?”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딘이 말했다.
“마리는 여러 지역을 많이 다녀봤소. 마리의 말이 틀림없을 거요.”
“그럼 아만 제국에 가봐야겠네요.”
대륙 서부의 국가라…….
굉장히 긴 여정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