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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111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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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11화


“이걸 아레나에서 쓰면 정말 대단하겠네요!”
지금의 내 육체도 체력보정 중급 5레벨이라 대단한 능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지금 내 근력의 최대 20배까지 발휘할 수 있다?
점프력도 공격력도 달리는 속도도 덩달아 20배가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센서가 너무 좋아. 전혀 부자연스럽지가 않아!’
엄지발가락에만 힘을 주어 살짝 점프를 해보았다.
훌쩍, 하고 나는 1미터 가량이나 뛰어올랐다. 단지 까치발을 들 듯 가볍게 뛰었는데 이 정도였다.
게다가 약한 종이컵을 여유롭게 쥘 정도로 조절도 잘된다. 방아쇠 당기려다 총을 부숴먹을 일은 없다는 뜻!
오딘이 말했다.
“우린 김현호 씨가 이 인공근육슈트를 아레나로 가져가주기를 원하오. 그럼 두 분께도 한 벌씩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별도의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소.”
연구총책 빌헬름도 뭐라고 이야기했고, 오딘이 통역해 주었다.
“한 벌당 300만 프랑의 배송료를 지불하겠다는군. 그 밖에도 우리 노르딕 시험단이 지속적으로 당신의 일가족을 보호해 주겠다는 조건도 걸겠소.”
스위스 프랑으로 300만이면, 원화로 33억 원가량이었다.
배송료치고는 굉장한 액수!
하지만 근력을 20배까지 증폭시켜 주는 인공근육슈트의 기능을 생각하면 비싼 값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초인적인 체력을 가진 시험자들이 인공근육슈트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
그 이점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이리라.
‘하지만 돈은 중요한 게 아니지.’
노르딕 시험단이라는 강한 단체를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어차피 돈은 생명의 불꽃으로 얼마든지 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10벌을 배달해 드리죠. 오딘 씨의 영지로 가져다주면 되겠죠?”
“그렇소. 내가 보관하고 있으면 우리 쪽 시험자들이 내 영지로 방문해서 한 벌씩 가져가면 되니까.”
“배달해 드리는 김에 차지혜 씨의 것도 보관해 주세요.”
“물론이오.”
나는 10벌을 오딘의 울펜부르크 백작가로 가져다주는 대가로 3천만 프랑을 받기로 했다.
차지혜도 늪지대에서 나오면 기회가 될 때 울펜부르크 영지에 들려서 인공근육슈트를 받으면 된다.
우리는 그 밖에도 아레나로 가져갈 전자기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노르딕 시험단은 내 가공간 스킬의 효능을 듣자마자 많은 아이디어를 구상한 듯이 보였다.
마정으로 출력을 극대화하여 전파를 광범위한 지역에 보내는 전파송수신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그 전파에 미치는 범위 내에서 간단한 전화기로 통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노르딕 시험단도 그동안 마정 응용 기술을 적잖이 개발했고, 잘만 하면 최대 2천 ㎞까지 커버할 수 있는 송수신기를 다음 시험이 다가오기 전에 개발할 수 있을 거요.”
“2천 ㎞나요? 정말 대단하네요.”
“그 정도면 연락수단 때문에 통신위성 같은 거창한 걸 만들 필요도 없지 않겠소?”
“확실히 그렇네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대략 400㎞다. 2천 ㎞면 갈색 산맥과 울펜부르크 영지 일대를 전부 커버하고도 남는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연구총책 빌헬름 하인쯔는 먼저 퇴근하겠다며 떠났고, 우리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했다.
“당신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소.”
누군지 대충 짐작된다.
“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겠죠?”
“맞소.”
“병인가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요. 23세밖에 안 된 건강한 여성이오.”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면 제가 도움이 될까요?”
“목숨이 위태롭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현호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오.”
“시험자군요.”
차지혜가 지적했다.
오딘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차지혜는 내게 말했다.
“저주 계열의 문제일 겁니다.”
“저주요?”
순간 나는 지난 시험에서 싸운 흑마법사 존 오멘토가 떠올랐다.
그 역시 어떤 저주로 생명의 나무를 병들게 했었다.
“그런 저주에 걸렸어도 시험의 문을 통과하면 완쾌되지 않나요?”
“몸은 완쾌되오.”
하지만 저주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나는 의아해졌다.
시험의 문을 통과해도 사라지지 않는 저주라니?
율법과 천사들이 만든 시험의 문이 치유할 수 없는 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심인성 저주.”
차지혜가 다시 말했다.
오딘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잘 알고 있구려. 맞소, 심인성 저주요. 저주 자체는 사라졌어도, 그 저주가 남긴 정신적 고통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경우요.”
“그럼 사실상 치료해야 하는 건 심리적인 문제지 저주가 아니라는 거죠?”
“그렇소.”
“그건 차라리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도를 안 해봤겠소?”
오딘의 반문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당연히 시도해 봤겠지.
“저주가 주는 정신적 고통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정신과 의학으로 감당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오.”
내내 말이 없던 닐슨도 입을 열었다.
“자살 시도만 세 번째라 24시간 감시하고 있지. 젊은 여자인데 안 됐어.”
정신적인 후유증 문제가 생명의 불꽃으로 치유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은 시도해 봐야겠지.
1층의 식당에 이르렀을 때였다.
“내게 손대지 말란 말이야-! 죽여 버릴 거야!!”
아레나어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여성의 목소리.
밀랍인형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 여성이었다. 긴 금발과 큰 눈, 오똑한 콧날을 가진 전형적인 미인이었다.
식당의 한 구석진 자리에 앉은 그녀를 시험단 소속의 직원들 몇몇이 둘러싸고 있는 형국.
그들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그녀의 난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기색이었다.
“마리!”
오딘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마리라 불린 금발 미녀는 오딘을 발견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얌전히 있으랬지!”
오딘이 다가가 호통 치자, 마리는 몹시도 불편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그렇게 고래고래 난리를 피우더니 오딘 앞에서는 얌전해지는군.
새삼 노르딕 시험단에서 오딘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또 자해하거나 그러지는 않았겠지?”
오딘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확인해 보며 이리저리 살폈다.
마리는 오딘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마치 아빠와 사춘기 딸 같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나와 차지혜를 보고는 날카롭게 변했다.
“또 누구야?”
“내가 말했던 사람들이다.”
“필요 없다고 했잖아!”
“필요한지 없는지는 내가 판단한다.”
그렇게 쏘아붙인 오딘은 나에게 말했다.
“이 여자는 마리 요한나로 올해 23세요. 자살로 죽었다가 시험자가 된 케이스인데, 본래 얌전했는데 저주 때문에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변했소.”
마리 요한나는 자신에 대한 신상정보를 오딘이 줄줄이 읊자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건넸다.
마리는 휙 고개를 돌려 날 외면했다.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도움이 될까요?”
“일단 시도라도 해주시구려. 사례는 하겠소.”
“알겠습니다.”
나는 생명의 불꽃을 하나 만들었다.
그러자 딴청을 부리던 마리의 눈길이 슬그머니 생명의 불꽃으로 향했다.
나는 불꽃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그걸 먹으라고?”
마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맛있어요.”
난 농담 삼아 말했다.
마리는 내가 내민 불꽃을 유심히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옆에서 오딘이 채근했다.
“어서 먹어.”
마리는 새침한 표정을 짓더니, 불꽃을 받아 들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이윽고 불꽃을 삼켰다.
스르륵.
불꽃이 그녀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잔뜩 신경질로 독이 올랐던 표정이 점차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아무래도 생명력을 돋우니 기분도 나아진 거겠지 싶었다.
“맛있다고 했죠?”
내가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자 마리 요한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헉!’
심장을 꿰뚫는 듯한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몹시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마리는 손을 내밀었다.
“……?”
의아한 표정이 된 나를 마리는 빤히 바라본다.
마치 먹을 것 달라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 저건 설마…….
“더 달라는 것 같군.”
오딘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말했다.
“못 줄 건 없지만, 일단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거 비싼 거라고요.”
고개 숙인 남자였던 미국의 어느 부자 양반은 이걸 먹으려고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고.
마리는 정말 안 줄 거냐는 애처로운 얼굴로 바라본다.
‘끄응!’
미인계에 또 당할 까보냐!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마리는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내밀었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일단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해봅시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오딘과 닐슨은 마리 옆에 앉았고, 나는 차지혜와 나란히 자리했다.
그런데 마리는 나를 다시 빤히 보더니, 옆에 앉은 차지혜와 날 번갈아보았다.
쌍꺼풀이 예쁜 푸른 눈이 흔들린다.
뭔가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모종의 결심을 한 마리는 벌떡 일어나 쪼르르 건너편인 내 옆자리로 옮겼다.
슥슥 의자를 당겨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뭐, 뭐야 이건?’
내가 이상한 눈길로 보자 그녀는 또다시 배시시 웃어 보이는 게 아닌가.
이렇게 노골적인 미인계는 처음 받아보는 터라 나는 당황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꼈다.
오딘이 한숨을 쉬었다.
“원채 정신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었소만, 저주를 계기로 더욱 상태가 나빠졌소.”
‘요약해서 살짝 맛이 갔다는 뜻이군.’
척 보기에도 그래 보인다.
그런데 오딘의 말에 마리는 다시 신경질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식탁에 놓인 포크를 집어던졌다.
쉬익!
나는 화들짝 놀랐다.
포크가 거의 쏜살처럼 날아들었기 때문. 물론 오딘은 날렵하게 왼손으로 낚아채 버렸다.
“이 짓 하지 말랬지!”
“흥!”
마리는 나와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뀌었다. 마치 나를 보호자쯤으로 여기는 태도였다.
만난 지 5분 만에 그녀는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대했다.
“정신 퇴행입니까.”
차지혜가 그런 우리를 보며 가볍게 한마디 했다.
뭐라고 부르던 간에 이 여자는 확실하게 미친 것 같다.
식당의 직원들이 스테이크와 샐러드, 수프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스테이크를 썰기 위해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 때였다.
먼저 나이프를 집어든 마리가 잽싸게 내 접시의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쉬쉬쉬쉬익-
1초?
순식간이었다. 스테이크는 균일한 조각으로 썰려 버렸다.
그 번개 같은 스피드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닐슨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보기엔 맛이 간 계집이어도 24회차 베테랑이야. 내가 알기로는 오러 컨트롤은 중급 10레벨, 보조스킬로는 무슨 암살 스킬을 마스터했다고 들었지.”
마리는 나를 보며 순진한 얼굴로 해맑게 웃었다. 한 손엔 나이프를 든 채.
나는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갑자기 그녀와 가까이 앉는 게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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