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10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10화
차량은 코펜하겐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지역에 접어들었다.
제대로 포장되지도 않은 산길을 오르더니, 숲 속에 숨겨진 중세 서양풍의 성채(城砦)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동화나 만화로나 보았던 성을 보고 나는 감탄했다.
오래된 성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처럼 보였는데, 고풍스러움과 세련됨이 교차된 멋들어진 건축물이었다.
성문은 자동으로 여닫는 철문으로 되어 있었다.
직원이 차에서 내려 지문과 홍채인식을 하자 드르륵 하고 철문이 열렸다.
몇몇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오딘과 닐슨도 보였다.
“어서 오시오.”
오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직 살아 있었군.”
내 쌍권총, 닐슨 H2를 만들어준 총기제작자 닐슨 오슬란도 퉁명하게 인사했다.
소개가 오간 후에 마지막으로 오딘, 닐슨과 함께 있던 반백의 중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말하는 걸 보니 시험자가 아니었다.
오딘이 통역해 주었다.
“우리 시험단의 연구총책 빌헬름 하인쯔 씨요. 당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는구려.”
“반갑다고 전해주세요.”
통역을 통해 인사를 나누고서 우리는 함께 본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돌로 쌓아 지은 성채의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말끔한 현대식이었다.
3층의 테라스로 나오니 성 밖의 정경이 한눈에 들여다보였다. 맑고 푸른 하늘, 산, 숲, 현대식 건물이 하나도 안 보이는 중세적인 풍경이었다.
물론 테라스는 유리창으로 덮여 있어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고 난방이 잘되어 있었다.
우리 5인은 원형 테이블에 빙 둘러 앉았다. 사람들이 커피와 쿠키를 가져다주었다.
오딘이 말했다.
“일단은 시험의 동향에 대해 알려주어야겠구려.”
“경청하겠습니다.”
“국제 아레나 연맹에 각국이 공유하는 정보를 종합해 보면, 전 세계 시험자들의 시간대가 점점 일치해져 간다더군.”
“시간대라면……?”
“김현호 씨도 알다시피, 시험자마다 휴식기간과 시험이 시작되는 날짜, 아레나에서 보내는 기간 등은 판이하게 달랐소.”
“그렇죠. 여기 차지혜 씨도 얼마 전에 시험자가 됐는데 벌써 저와 같은 6회차에 아레나에서 15년이나 보냈으니까요.”
차지혜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오딘이 계속 말했다.
“그런데 그 시간대가 점점 동일해져 가고 있소.”
시험자마다 아레나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르다. 하지만 아레나에서 얼마나 보냈든 간에 현실에서는 하루밖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시간의 괴리는 율법과 천사들이 무마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 묻겠소. 난 휴식기간이 42일 남았는데 김현호 씨는 어떻소?”
나는 석판을 소환해 확인해 보고 깜짝 놀랐다.
“저도 42일 남았네요.”
“그럴 수밖에. 지난번 갈색산맥의 엘프들 문제로 당신과 나는 서로 연관이 되어 있으니까. 반면에, 차지혜 씨는 짧은 시일에 아레나에서 15년을 보냈다고 하셨는데 분명 외딴 오지에 계셨겠지?”
“그렇습니다.”
차지혜가 대답했다.
오딘은 닐슨을 가리켰다.
“여기 닐슨 씨도 다른 시험자들보다 긴 시간을 아레나에서 보내고 있소.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오지에서 동떨어져 살기 때문에 그러한 시간의 괴리가 쉽게 해결되지.”
시험자들이 보통 인적 없는 오지에서 첫 시험을 시작하는 이유도 이러한 시간의 괴리 때문일 것이다.
“그럼 전 세계 시험자들의 시간대가 점점 일치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시험자가 점점 상호 연관되고 있다는 뜻이지. 더 구체적으로는, 시험자들이 아레나의 현지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시험의 최종 목적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오.”
“그럼 조만간 누군가가 시험의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군요?”
시험의 최종 목적은 하나.
수많은 시험자 중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달성하면, 시험은 종료된다. 모든 시험자가 아레나로부터 해방된다.
물론 아직은 추측일 뿐이지만 지금껏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신빙성은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휴식기간이 52일 남았습니다.”
차지혜가 말했다.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당신도 다음 시험에서는 그 오지에서 나오겠구려. 이처럼 수많은 시험자가 시험의 최종 목적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소. 하지만 그 최종 시험은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거요.”
“어째서죠?”
“타락한 시험자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중국이나 인도가 대표적이지만, 그들 양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등 수많은 국가가 시험이 종료되기를 원치 않는 실정이오.”
“마정 때문이겠죠.”
“그렇소. 그대가 얼마 전에 만난 맥런 가문처럼, 마정의 확보 및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한 자본가들이 있소. 애석하게도 그러한 자본가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
“노르딕 시험단은 어떤가요? 노르딕 국가들도 시험이 계속되기를 원하나요?”
내가 물었다.
오딘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김현호 씨, 우리는 믿어도 좋소. 우리는 다른 국가 소속의 기관들과 다르오. 노르딕 시험단은 국가가 아닌 나를 비롯한 시험자들이 모여서 탄생했으니까.”
오딘이 계속 말했다.
“그 이후에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공적인 단체가 되었지만, 시험자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 까닭에 시험의 클리어를 목표로 나아가고 있소.”
난 차지혜를 쳐다보았다.
차지혜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국가, 즉 정치가와 자본가들이 만든 국가기관들은 우리처럼 순수하지 않소. 중국처럼 노골적으로 행동하진 않지만, 점차 시험 클리어를 방해하기 위해 움직일 거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얼마 전에 치료해 준 스미스 맥런도 아레나 관련 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한 자본가였다.
그 사업이 성공하려면 시험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아레나에서 마정을 가져와야 한다.
맥런 회장 같은 거물이 내 앞길을 막는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난 과연 시험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당신을 영입하고 싶어서요. 물론 차지혜 씨도 마찬가지요.”
오딘이 말했다.
“한국 정부는 물론 박진성 회장도 당신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오. 위협은 현실뿐만이 아니라 아레나에서도 가해질 거요. 그걸 타파하려면 우리처럼 몇 안 되는 순수한 시험자들끼리 뜻을 함께해야 하오.”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노르딕 시험단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고요.”
“잘 생각하셨소. 김현호 씨의 그 능력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오.”
일단 노르딕 시험단에 합류하는 것은 미루기로 했다. 일단은 그냥 협력 관계 정도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럼 슬슬 본론에 들어가야겠군. 일단 위성 문제는 잘 진행되고 있소. 스위스의 한 연구소가 개발 중이던 관측위성을 인수해서 정찰위성으로 개조하기로 했소.”
“그래요?”
“궤도로 올려놓는 추진체도 마정을 동력으로 만들면 어렵지 않은데, 가만 궤도를 계산하고 위성을 원격조종하는 문제 때문에 좀 더 연구가 필요하오.”
오딘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통신 문제는 둘째 치고, 아주 유용한 전자기기는 따로 있소.”
“그게 뭐죠?”
“곧 보여주겠소.”
그러면서 오딘은 연구총책 빌헬름 하인쯔와 뭐라고 대화를 나누었다.
빌헬름이 일어나 우리에게 손짓했다.
우리는 빌헬름의 뒤를 따라 어디론가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5층으로 내려갔다.
지하 5층은 연구소였다.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컴퓨터와 씨름을 하거나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빌헬름은 우리는 더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마침내 가장 안쪽의 연구실에 이르렀다.
직사각형의 큰 유리관 안에 웬 잠수복처럼 생긴 검정색 슈트 몇 벌이 보관되어 있었다.
한국 아레나 연구소에서 보았던 배틀슈트와 생김새가 흡사했다.
“배틀슈트 같은 건가요?”
내가 물었다.
오딘이 말했다.
“배틀슈트는 배틀슈트지. 하지만 북유럽의 첨단과학이 담겨 있는 물건이오.”
아마도 어떤 전자장치가 탐재된 배틀슈트인 모양이었다.
빌헬름이 웃으며 나에게 뭐라고 말하며 배틀슈트를 가리켰다.
말은 못 알아듣겠지만, 아마도 나더러 입어보겠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빌헬름은 유리관의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눌렀다.
위이잉.
유리관이 열렸다. 빌헬름은 배틀슈트 한 벌을 꺼내 내게 건네주며, 한쪽에 커튼으로 쳐진 간이 탈의실을 가리켰다.
나는 탈의실의 커튼을 치고서 옷을 벗고 배틀슈트로 갈아입었다.
‘등에 뭔가가 달려 있는데.’
지름 10㎝ 정도 크기의 작은 장치가 등 부분에 달려 있었다.
아마 이게 어떤 기능이 탑재된 전자장치인 듯했다.
특이하게도 이 배틀슈트는 손가락 발가락까지 전부 감싸고 있어서 입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간신히 배틀슈트를 다 입고 탈의실에서 나왔다.
‘응?’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이다.
의아해하는 내게 오딘이 말했다.
“느낌이 어떻소?”
“몸이 가벼워졌어요.”
“그뿐만이 아닐 거요.”
오딘은 문득 나에게 손바닥을 뻗었다. 그리고 말했다.
“쳐보시오.”
“네?”
“있는 힘껏 주먹질을 해보란 말이오.”
“그러죠.”
오딘은 오러 마스터에 이른 엄청난 강자.
내가 세게 펀치를 날린다고 손목이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겠지.
나는 전에 배웠던 복싱의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오딘의 태도였다.
오딘은 자세를 낮추고는 온몸에 푸른 오러를 일으킨 것이다. 강력한 공격에 대비하는 방어태세였다.
‘내 펀치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저러지?’
물론 체력보정 중급 5레벨이라 남성 엘프의 한계 수준의 육체를 지닌 나였다.
하지만 오러 컨트롤이 상급 레벨에 이르러서 오러 마스터가 된 오딘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별일 없겠거니 싶어서 나는 힘껏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그런데,
슈우욱-
주먹이 마치 로켓처럼 힘차게 뻗어 나갔다. 내 팔을 누가 조종하는 것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힘이었다.
뻐어어억!
펀치가 오딘이 내민 손바닥을 강타했다.
오러를 끌어올려서 버텼음에도, 오딘은 뒤로 주르륵 밀려나버렸다.
“이, 이게 뭐죠?”
난 갑자기 증폭된 파워에 깜짝 놀라 물었다.
“인공근육입니다.”
차지혜가 답을 주었다.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에 개발했던 제품이오. 입고 있는 의복은 아레나로 반입된다는 빈틈을 노려서 개발했었소. 결국은 아레나에서 작동되지 않는 바람에 실패했지만.”
“이게 인공근육슈트라고요?”
나는 놀라서 입고 있던 인공근육슈트를 바라보았다.
잠수복처럼 적당히 얇고 날렵한 슈트였다. 이게 인공근육이라는 첨단기술이 담긴 슈트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볍고 얇아서 활동이 편한 대신 근력 증폭은 20배가 최대요. 대신 근육의 전기적 신호를 감지하여 인체의 힘을 측정하는 센서나 자세 제어 기술이 굉장히 우수하지. 입고 있으면 자기 몸처럼 힘 조절이 자연스러울 거요.”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구총책 빌헬름이 내게 물이 담긴 종이컵을 내밀었다.
받아보라는 뜻이었다.
‘증폭된 근력을 제어하지 못하면 종이컵을 구겨 버리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어?”
난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종이컵을 받아 들었기 때문이다.
“괴, 굉장하네요.”
탑재된 인공지능이 힘을 조절한 것.
마치 내 몸 같았다.
“그걸 아레나에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