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0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04화
“위험에 빠뜨리기 싫으시다면 애인분과의 동거를 관두고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차지혜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았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민정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지금처럼 계속 민정을 곁에 두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동거를 그만두자고 하는 건 이별이나 다름없는데!’
아무런 명분도 없이 집에서 내보내는 것은 민정에게는 큰 충격일 터였다.
“애인분에게 아레나와 시험에 대해 모두 설명해 주는 길도 있습니다.”
“그건 안 돼요.”
“아무튼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차지혜는 그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갈등에 잠겼다.
역시 휘말리게 하지 않으려면 민정을 집에서 내보내야 했다.
‘어쩔 수 없어.’
어떻게든 민정을 내보내면서 잘 다독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위협받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차지혜가 말했다.
“일단은 김현호 씨의 존재를 각국에 널리 알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왜 그렇죠?”
“이미 박진성 회장의 완쾌에 각국의 국가기관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질병을 낫게 하는 능력을 가진 시험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고 있겠지요.”
“예, 아마도요.”
“세계가 주목하고 있으면 중국 시험자들이 한국에서 멋대로 활동하지 못합니다. 타락한 시험자는 좋은 사냥감이니까요.”
“그렇겠네요. 하지만 다른 곳이라고 중국처럼 저를 납치하려 드는 작자들이 없을까요?”
“노리는 곳도 있을 테고 김현호 씨를 포섭하려는 곳도 있을 겁니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면 오히려 그런 짓을 하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게다가 김현호 씨에게는 강력한 우군도 있잖습니까.”
“오딘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노르딕 시험단의 오딘은 누구도 얕보지 못하는 정상급의 강자입니다. 그의 지지를 받으면 함부로 습격하지 못하겠죠.”
“으음…….”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아플 것 같았다. 민정을 집에서 내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큰 문제였다.
나는 고민하다가 차지혜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나라는 저를 보호해 주지 못하나요? 제가 치유 능력을 가진 시험자라는 걸 알면 보호하려 하지 않나요?”
“한국은 현재 친중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아레나와 관련해서는 장차 마정 부국이 될 것이 확실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정보를 중국에 판 건가요?”
“그건 김중태 소장의 독단적인 비리입니다만, 친중 정책의 기조가 유지되는 한 중국 통인 그를 소장 자리에서 실각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빌어먹을…….”
정작 우리나라가 나를 보호해 주기는커녕 중국에 팔아먹다니. 뭐 이런 좆같은 일이 다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을 죽여 버리면 중국과의 커넥션이 약해지지 않을까요?”
“시험자가 중범죄자가 되었을 경우를 상정한 대응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김중태 소장의 비리보다, 그만한 공직자가 시험자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겠죠.”
“…….”
“그러니 차라리 전 세계에 김현호 씨의 능력을 어필하는 겁니다. 국가를 움직이는 주요 인물 중에 김현호 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그들을 우군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차지혜가 계속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김현호 씨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강력한 파워를 지니게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 수밖에 없겠어요.”
차라리 나를 알려서 박진성 회장 같은 강력한 우군을 늘리는 게 내가 살아날 유일한 방법으로 보였다.
“그나저나 차지혜 씨는 누구한테 죽은 거예요?”
“리창위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중국인 시험자 중 가장 강력한 인물입니다. 역량도 권력도 리창위를 능가할 자가 중국에 없습니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죠?”
“제가 확인했던 건 순간이동과 검뿐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시험자이기 전에도 뛰어난 무술가였다고 합니다.”
“뛰어난 무술가라고요?”
“강천성 씨를 기억하시겠지요?”
“당연하죠.”
“2회차 시험자였을 때도 그렇게 강력했던 강천성 씨가 베테랑으로 성장했다면 어땠을까요? 그게 리창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강천성처럼 원래 강한 무술가였다면, 스타트 라인부터가 남들과 달랐을 것이다.
권력까지 얻었다면 그만큼 더 많은 이득을 거뒀을 테니, 세계를 통틀어도 톱클래스이리라.
“만약 리창위가 직접 나섰다면 김현호 씨는 오늘 무사할 수 없었을 테지요. 다행히 그는 직접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정말 암울하군요. 그자가 나서지 전에 얼른 조치를 취해야겠어요.”
“그러셔야 합니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우선은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들렀다.
인근에 오늘 당장 구할 수 있는 원룸이 있냐고 물으니 매물이 있었다.
현지의 원룸과 가까운 곳에 매물이 있어서 전세로 계약하겠다고 했다. 매물 사진을 보니 시설이 깔끔해 보였다. 그만큼 비쌌지만 말이다.
연락을 받은 집주인이 한달음에 달려와 냉큼 계약을 했다.
‘갑자기 쫓아내는 건 미안하니까.’
상처받을 걸 생각하면 최소한 갈 곳은 마련해 줘야지 싶었다. 현지와 가까운 곳이니 지내기도 좋으리라.
민정에게 집에서 나가달라고 말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푹푹 나온다.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나온 나는 기다리고 있던 차지혜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은 인근 모텔에서 지내요. 내일 민정이를 내보낼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차지혜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땐 늦은 저녁이었다.
“오빠, 왔어요?”
민정이 돌아와서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응.”
난 씁쓸히 대답했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민정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데요?”
“미안. 말할 수 없는 일이야.”
“……오빠가 하는 일과 관련된 거예요?”
“응.”
“알았어요. 안 물어볼게요.”
고분고분히 대답해 주는 민정의 태도가 좋았다.
“민정아.”
“네, 오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민정의 태도가 조심스러워졌다.
“정말 오해하지 말고 내 얘기 들어줄래?”
“왜, 왜 그러세요?”
“우리 당분간은 따로 지내자.”
“네?”
민정의 얼굴에 당혹이 어렸다.
내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일과 관련된 문제야. 조금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저, 저 이 집에서 나가라고요?”
“떨어져 살더라도 우리 사이는 변함없을 거야. 그러니까 부탁할게.”
“오빠, 제가 뭐 잘못했어요? 그때 일 때문에 그러세요?”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말할 수 없는 문제야. 우리 사이는 아무 문제도 없어.”
“하,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요.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를 내보내려 하시는 거예요?”
“말해줄 수 없어.”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저, 전 어디로 가라고요…….”
민정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난 민정을 끌어안고 달래주었다.
“현지랑 가까운 곳에 원룸을 구해뒀어. 정말로 우리 사이 문제가 아니야. 아무 말 없이 당분간은 거기서 지내줘. 부탁할게.”
“제가 지겨워져서 핑계 대는 거 아니죠?”
“난 그렇게 비겁한 인간이 아니야.”
갑자기 집에서 나가달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에 민정은 많이 슬퍼해서 한참을 달래야 했다.
대체 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을 몇 번이고 들었다. 당연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몇 개월 안 걸릴 거야. 약속할게. 나 믿고 기다려 줘.”
“……알았어요. 따로 살더라도 우리 자주 만나기에요.”
“그래.”
사실 자주 만나기는 힘들었다. 자주 만날수록 민정이 타깃이 되니까.
대신 하루빨리 우군을 늘려서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 민정을 새로 전세 계약한 원룸에 데려다주었다.
사진으로만 보고 덜컥 계약했는데 다행히 사진으로 봤던 대로 괜찮은 곳이었다.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네, 오빠.”
대답하면서도 민정은 우울함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너무 미안하다.
민정을 내보내고 난 후, 모텔에서 지내던 차지혜를 불러들였다. 이걸 민정이 보면 크게 오해하겠지.
“저쪽 손님방에서 지내세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나를 도우려다가 죽음까지 맞이한 여자였다.
난 나 때문에 시험자가 된 그녀를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카르마를 얼마나 받았는지 확인해 봐야지?’
키 작은 사내를 죽이고서 얻은 카르마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석판 소환.”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21
-카르마(Karma): +4,152
-시험(Mission): 다음 시험까지 휴식을 취하라.
-제한 시간(Time limit): 74일 2시간 21분.
대략 4,000카르마 가까이가 올라 있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 보상 받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차지혜에게 물었다.
“6회차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대체 어떻게 저와 똑같은 6회차가 되실 수 있었던 겁니까?”
“휴식 시간을 거의 갖지 않았습니다. 단시일 내로 강해져야 했으니까요.”
“그게 가능해요?”
“다행히 들어주었습니다.”
아레나에서 15년을 보낸 차지혜.
그렇게 장기간의 시험을 치렀음에도 휴식 시간을 그토록 짧게 갖다니! 정말 지독한 정신력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분위기가 많이 변해 있었다. 어쩐지 잘 벼려진 칼처럼 날카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당연했다.
그녀는 내가 알던 차지혜가 아니었다. 15년간 사투를 보낸 시험자였다.
“스킬이 어떤지 여쭤 봐도 될까요?”
“서로 공유하고 상의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 그게 좋겠어요. 이제 한배를 탄 사이니까요.”
차지혜만큼은 믿어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그녀에게 내 모든 스킬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도 자기 스킬을 가르쳐 주었는데, 상당히 강력했다.
오러 컨트롤 중급 1레벨.
체력보정 중급 1레벨.
그녀는 오딘과 비슷하게 단 두 가지 스킬을 집중적으로 키웠다고 한다.
“저는 외지에서 은거하던 무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련을 받는 시험을 주로 받아왔습니다.”
차지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대륙 남서부의 늪지대에서 시작한 그녀는 그곳에서 은거하던 늙은 무인의 제자로 인정받는 시험을 2회차에서 치렀다.
“너 같은 계집은 내 진전을 이어받을 수 없다. 내 도법은 인체를 극한까지 단련하여야 비로소 소화할 수 있으니까.”
당시 차지혜의 육체는 체력보정 초급 4레벨.
그녀는 무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피를 깎는 훈련으로 자기 몸을 인체의 한계까지 단련해 냈다.
즉, 체력보정 초급 5레벨을 단순 훈련으로 이뤄낸 것이다!
그렇게 제자가 되고서는 3회차로 오러 컨트롤을 터득하라는 시험을 받았다.
그녀는 메인스킬 오러 컨트롤을 카르마 보상 없이 5년간의 수련으로 이뤄냈다.
그렇게 15년간 스승의 밑에서 훈련받으며 카르마를 아끼고 아껴서 지금의 경지를 이뤄낸 것이었다.
“매 시험마다 신기록을 세웠다는 김현호 씨를 따라잡기 위해 혹독하게 단련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제 따라잡았다 싶어서 김현호 씨를 도우러 왔습니다만, 김현호 씨는 못 본 사이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해지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