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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9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95화


커튼 틈새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잠에서 깼다. 등 뒤에서 익숙한 체온과 감촉이 느껴진다.
언제 돌아온 걸까.
민정이 등 뒤에서 나를 꼬옥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왔나 보네.’
현지의 원룸에서 정신이 들자마자 급히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 태도는 마음에 들어서 어젯밤의 울화는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민정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침실에서 나와 손님용 방 침대에 누워 좀 더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잠시 후,
끼익.
어느새 깨어난 민정이 들어와 내 옆에 가만히 눕는 것이었다.
말없이 내 품에 파고든다.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는 애교 섞인 표현이었다.
“…….”
“…….”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머릿속에 생각했던 조금은 모진 결정들이 차마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민정이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잘못했어요.”
“…….”
민정이 선수를 쳤다.
“근데 제 얘기도 좀 들어주세요. 변명 아니에요. 정말 잘못했어요. 제 얘기만 좀 들어주세요.”
“해봐.”
“어젯밤에 걔는 김민석이라는 스무 살짜리 애예요.”
“어리네. 그런 애가 너 좋다고 아주 목메던데 몰랐다고 하려고?”
몰랐다고 하기만 해봐라. 민정처럼 눈치 빠른 애가 몰랐을 리가 있나.
“알고 있었죠. 일부러 모른 척했어요.”
“근데?”
“모른 척했는데, 학원 친구들이 자꾸 장난으로 걔랑 나 연결시키려 하는 거예요. 걔가 너 좋아하는 것 같다, 한번 잘해봐라, 하면서요.”
“씨발년들.”
“제 말이요. 어제 술자리에도 걔들이 저 몰래 그 애를 데려온 거예요. 당황했는데 그렇다고 그냥 일어나기도 뭐하고 해서 억지로 어울렸어요.”
“그래서 너 좋다는 놈 있는 술자리에서 취하도록 마셨다?”
“잘못했어요, 오빠.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절제를 못했어요. 다시는 입에도 안 댈게요.”
잘못한 부분은 싹싹 용서를 비는 민정이었다.
“근데 그년들은 너랑 그 자식만 둘이 놔두고 먼저 가버렸어?”
“지들 딴엔 장난이라고 또 그랬겠죠. 어젯밤에 걔네들 번호 전부 차단시켰어요. 다시는 상종도 안 할 거예요.”
“걔네들은 대체 왜 그런데?”
“샘나는 거예요.”
“샘나?”
“전에 오빠가 저 데리러 왔을 때 걔들이 되게 부러워했어요. 거기다 김민석도 학원에서는 인기 많았는데 저 좋아하고, 그래서 샘나서 장난인 척하면서 그런 짓 한 거겠죠.”
“그렇게까지?”
질투 난다고 남의 커플 파탄 낼 짓을 장난이라고 하다니?
“원래 여자들이 그래요. 지현이랑 현지는 그런 애들 아니니까 절친이고요.”
듣고 보니 민정도 억울해할 만했다.
김민석과 평소에 거리를 두려고 했던 점에서 다소 화가 누그러진다.
민정은 어젯밤의 과음만 빼면 딱히 처신을 잘못한 건 없었다.
‘그래, 민정이 입장에서는 내가 사소한 일로 너무 과하게 화를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난 1년 만에 돌아온 거였다.
그 오랜 시간 싸우다가 돌아왔더니 어제 같은 꼴을 보게 되어서 확 열 받은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민정으로서는 그동안 잘 지내다가 하루 만에 관계가 흔들리게 된 셈이었다.
“민정아.”
“네, 오빠.”
“역시 우리는 안 맞는 걸까?”
그러자 민정은 불안해졌는지 더 강하게 나를 끌어안는다.
“나한테 맞춰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거 다 알아. 왜 모르겠어. 근데 나는 그만큼 네게 신경 써줄 수가 없어.”
“안 그래요, 오빠.”
“말은 할 수 없지만, 내가 가끔씩 일을 하러 떠나야 할 때가 있어. 너무 힘든 일이라 내 모든 걸 쏟아야 할 정도야. 그래서…….”
“…….”
“이렇게 돌아와 있을 때는, 내 여자랑 있을 때만큼은 편하고 싶어. 신경 쓰고 싶지 않고 스트레스 받고 싶지도 않아. 이게 어찌 보면 무성의하고 배려 없는 거지.”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런 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네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해.”
“저 고생 같은 거 안 해요. 한 번도 오빠한테 섭섭한 적 없었어요.”
“……정말?”
“네.”
민정은 부스럭거리며 반대편으로 건너와 나와 똑바로 마주보았다.
“더 욕심 안 낼 게요. 그냥 지금처럼 함께 지냈으면 좋겠어요. 제가 더 잘할게요. 오빠가 편하다고 느끼게요.”
그 순간, 민정의 눈동자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윗입술,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맞대고 당긴다. 보드라운 감촉.
“오빠.”
“응.”
“소원은요?”
“소원?”
“어제요, 뭐든지……. 나도 기대돼서 무지 설렜는데.”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를 바로 눕히고 위로 올랐다.
“내 소원이 뭔지 알아?”
“뭐예요?”
“멈추지 않는 거.”
민정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다시 한 번 입을 맞추고, 셔츠를 벗겼다.
“내가 직성이 풀릴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는 거.”
“오빠 마음대로 하세요.”
민정은 눈을 빛내며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커튼도 닫혀 있고 시계도 없어 해가 어디에 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로 원 없이 사랑을 나눴다.
띵동~
지쳤는지 내 팔을 베고 곤히 자던 민정은 메신저 알림음 때문에 깨어났다.
여자의 본능인가.
민정은 반사적으로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집었다.
“누구야?”
“현지요. 절 걱정하고 있어요.”
“괜찮다고 답장 보내줘.”
“네.”
민정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싱글벙글하며 답장을 작성했다.
옆에서 흘깃 훔쳐보니,

[나 오늘 두 번이나 정신줄 놨어 히잉♡]

“잠깐, 그 손 멈춰!”
“히히!”
“멈추지 못할까!”
그러나 여자의 터치 속도는 전광석화였다. 메시지가 전송되고 말았다.
“그, 그런 문자를 보내면……!”
잠시 후 나에게 현지의 문자가 왔다.

[현지: 올, 천잰데?]

“크아악! 유민정 너 이리 와!”
“꺅, 잘못했어요!”
“잘못했다는 소리가 아주 습관이지?! 상대는 내 여동생이라고! 니들은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라고!”
“아잉, 오빠~.”
우리는 투덕투덕 다퉜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6회차 휴식이 시작되었다.

***

바이올린 교습은 그만두었다.
재능이 있으니까 그만두지 말라고 선생이 설득했지만, 더 이상 이걸로 운동신경 스킬 레벨을 올리는 건 무리라서 깨끗이 접었다.
‘이젠 다른 종목을 찾아야겠다.’
피아노를 해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음악은 이제 됐다. 오선지의 콩나물만 봐도 이제 신물이 난다. 음악은 역시 내 적성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무술이 좋아 보였다.
‘가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가공간에 소총이나 수류탄 같은 총기류를 담아갈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가공간을 합성한 재료는 바로 순간이동과 아이템백이었다.
아이템백에 그런 무기를 넣을 수 있었다면, 진즉에 연구소에서 수류탄을 담아가게 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템백과 내 가공간 스킬은 다르잖아. 한번 시도해 볼까?’
일단은 오딘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 역시 지금쯤 아레나에서 돌아왔을 터였다.
-김현호 씨, 시험은 어땠소?
오딘이 반갑게 받았다.
“완벽하게 클리어했죠.”
-완벽하게라. 엘프를 승리로 이끈 당신의 활약상으로 보아 대단한 보상을 받았겠군.
“예, 덕분에요.”
-잘된 일이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소?
“혹시 아이템백에 수류탄 같은 무기를 넣을 수 있나 해서요.”
-불가능하오.
“……역시 그런가요?”
-그게 가능했으면 나도 진즉에 아이템백에 이것저것 챙기지 않았겠소? 화기와 전자기기는 아이템백에 보관할 수는 있어도, 아레나에서 꺼낼 수는 없더군.
“그건 반칙이니까 금지한 걸까요?”
-아레나 문명의 질서가 파괴되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소. 예전에 미국이 아레나에 태양열 발전기를 조립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전부 설계대로 조립했음에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더군.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그런 시도를 한 미국도 대단하다.
“카르마 보상으로 아이템화하면 가능하겠죠?”
-그렇겠소만, 태양열 발전기를 아이템화하려면 대체 어느 정도의 카르마가 필요할 것 같소?
“하하, 그렇겠네요.”
상상만 해도 아찔할 정도로 많은 카르마가 소모될 것 같다.
수납은 되는데 아레나에서는 꺼낼 수 없다니, 가공간 스킬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역시 꼼수는 안 된다는 거냐.’
하는 수 없구나. 역시 무기가 아니라 나 자신이 직접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가 보오.
“그렇죠. 어떻게든 더 강해져야 하니까요.”
-강해지고 싶다…….
오딘은 무언가 고민을 하는 기색이었다.
-정말 강해지고 싶소?
“물론이죠.”
-내가 일전에 당신을 돕는데 돈을 받았던 것 기억하시오?
“예.”
-하지만 난 그대를 돕지 못했고, 그 대가로 1,000카르마 이내에서 원하는 아이템을 말해보라고 했었지.
“기억합니다.”
-어째서 1,000카르마였을 것 같소?
“네?”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말뜻을 조금 곱씹어 보니, 무언가가 생각날 것 같았다.
“설마, 카르마를 현금으로 파는 시험자가 있는 건가요?”
-맞소.
오딘의 말뜻은 그거였다.
굳이 1,000카르마였던 이유!
그건 카르마가 거래되는 시세가 한화 100억 원에 1,000카르마 정도였던 것이다.
돈으로 카르마를 살 수 있다니!
그런 건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리 돈이 좋대도, 카르마를 돈 받고 파는 시험자가 있다고요?”
-있소. 하지만 난 이 사실을 당신에게 말해주지 않았지. 박진성 회장도 마찬가지고. 왜일 것 같소?
“왜죠?”
-카르마를 돈 받고 파는 시험자들은, 그만큼 돈에 미친 작자들뿐이오. 누구일 것 같소?
뇌리에 뭔가가 스쳤다.
오딘이 증오 가득한 목소리로 욕했던 이들이 생각났다.
“중국의 시험자들?”
-기억하시는군. 그렇소. 돈 되는 마정을 얻겠다고 아레나에서 사람까지 살육하는 미친놈들. 카르마 거래는 대부분 그놈들과 해야 하오. 그래서 말하지 않았소.
“…….”
-그런 질 나쁜 놈들과 얽히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오.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 그런 거래를 하고 싶다면, 내가 주선해 주겠소.
“오딘 씨가 직접요?”
-거래 상대가 나라면 그놈들이 감히 함부로 수작질을 부리지 못하거든. 게다가 당신의 신분을 중국 놈들에게 노출시키고 싶지도 않고.
“생명의 불꽃 말이죠?”
-맞소. 그게 가장 걱정되오. 사람 목숨을 살리는 그 능력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소. 중국 놈들이 당신을 노리지 않을 리가 없지.
오딘 말이 옳았다.
사람까지 살육하면서 마정을 획득하는 미친놈들이라면, 그 정도 범죄쯤은 얼마든지 저지를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오. 박진성 회장이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을 뛰어다닌 건 이 바닥에서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일이오. 그런데 이제 정정하게 복귀한 박진성 회장을 보고 이 바닥 관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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