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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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92화
실버 씨족은 침체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언덕 끝에 왕좌처럼 위치한 바위에 걸터앉은 씨족의 수장, 레온 실버가 싸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모든 라이칸스로프가 그의 눈치를 보며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레온 실버는 심사가 매우 복잡했다.
‘그렇게 강한 인간이 있을 수가 있다니?’
딱 한 인간.
아직도 그 인간을 떠올리면 지금껏 그가 느껴본 적이 없었던 감정이 일어난다.
바로 공포였다.
‘울펜부르크 백작이라고 했던가?’
울펜부르크 백작 오딘.
그 인간 같지 않은 괴물은 압도적인 강함으로 전장을 지배했다.
바스티앙 자작가와 손잡은 실버 씨족은 인간으로 변신하여 전장을 은밀히 활약했다.
연약한 인간 따위는 인간으로 변신한 상태에서도 문제없이 사살했다.
협력의 대가로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무장해제 후 숲으로 들어가 인간 목장을 다시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만 한다면, 다음 타깃은 갈색산맥의 엘프들이었다.
갈색산맥은 젊은 시절부터 그의 목표였다.
그것은 그의 부친 때문이었다.
20년도 더 된 옛날 일이었다.
장성한 젊은 아들 레온의 도전을 받아 씨족의 수장 자리를 빼앗긴 부친은 패배자답게 무리를 이끌고 영역을 떠났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개월 되지 않아 부친은 돌아왔다. 무리를 전부 잃은 채 혼자만 살아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살아갈 장소는 오직 이 숲뿐이구나.”
부친은 늘 그렇게 말하며 죽을 때까지 숲에서의 안전한 삶을 강조하였다. 오직 이곳만이 라이칸스로프에게 허락된 장소라고 말이다.
그것은 혈기왕성한 레온 실버를 자극하였다.
‘우리 실버 씨족이 안전을 위해 이 숲에서만 틀어박혀 살아야 한다고?’
갈색산맥의 엘프가 그렇게 두려운가?
우리들 용맹한 라이칸스로프가 감히 넘봐서는 안 될 정도로?
그때부터 레온 실버의 야망은 시작되었다.
때맞춰서 바스티앙 자작가의 영지에서 유민들이 숲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때 레온 실버는 씨족의 규모를 크게 신장시켜 세력을 일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것이 인간 목장이었다.
그 뒤로도 인간으로 변신한 후에 바스티앙 자작가 영지를 돌아다니며 인간을 숲으로 끌어들였다.
엘프와 싸울 때를 대비하여 쓸 만한 인간의 무기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실버 씨족이 풍부한 식량을 바탕으로 신장하자, 바스티앙 자작가에서 협력 제의를 해왔다.
엘프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에 레온 실버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레온 실버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
태생적으로 강자였고, 유례없이 강력한 수장이었던 레온 실버의 오만함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다가 전쟁터에서 오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오러 마스터.
휘두르는 장검에서 푸른 기운이 파도치듯이 뿜어져 나오더니, 대폭발을 일으켜 순식간에 씨족의 3분의 1을 몰살시켰다.
난생처음 공포를 느낀 레온 실버는 즉시 도망쳐 숲으로 돌아와야 했다.
‘2년 전에 보았던 인간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이상한 원거리 무기를 쓰는 정령사 인간과 기이한 무술을 펼치는 건장한 인간 사내.
특히 마지막까지 자신과 맞서 싸워 큰 부상까지 입게 만들었던 무술가는 그가 본 가장 강한 인간이었다.
인간이란 그 정도로 강해질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냥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오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이란, 오딘 울펜부르크 백작 같은 괴물도 될 수 있었다.
목장의 식량들처럼 연약한 인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스티앙 자작가는 이길 수 없을 테고, 그들이 몰락하면 다음은 우리 차례일 텐데……!’
레온 실버는 초조해졌다.
오딘이라는 괴물 같은 놈은 전쟁이 끝나면 곧장 군대를 끌고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다.
전에도 한 번 실버 씨족을 토벌하려고 군대를 보냈었으니, 이번에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터였다.
‘도망쳐야 하나?’
전쟁 포로들을 붙잡아와 다시 복구시킨 인간 목장이 아깝긴 했다.
하지만 오딘이라는 그 괴물 인간이 들이닥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그래, 숲 속 깊숙이 도망치자. 일단은 숲 중앙부로 가서 레드 에이프 놈들의 영역을 빼앗고 거기에 눌러 앉자.’
가장 만만한 건 레드 에이프였다.
그 뒤에 거기까지 오딘이 쫓아오면 더 깊숙이 도망치면 된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집요하게 쫓아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레온 실버였다.
그러나 정작 레온 실버는 오딘이 아니라 다른 적이 자신들을 찾아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콰콰콰쾅-!
“크아앙!”
“끄억!”
그것은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아니, 벼락이 아니라 엄청난 화염이었다.
화르르르-!
불길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 순식간에 실버 씨족의 라이칸스로프들을 뒤덮었다.
“뭐, 뭐냐!”
레온 실버는 뜬금없이 벌어진 충격적인 광경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화염이 해일처럼 뻗어 나가는 중심부에 한 인영(人影)이 보였다.
호리호리한 키에 쌍검을 휘두르고 있다. 그런데 그 쌍검에서 화염이 뿜어지는 괴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뾰족한 귀…….
“엘프?!”
“그렇다.”
어느새 화염이 그쳤다.
화염이 그치자 시뻘건 열기가 사그라지며 드러나는 목불인견의 참상!
살아 있는 실버 씨족의 라이칸스로프는 오직 레온 실버뿐이었다.
온통 잿더미뿐이었다.
20여 년에 걸쳐 번식해서 키워낸 씨족의 아이들이 전부 한순간에 몰살당했다.
그 장본인은 레온 실버가 노리고 있었던 목표, 엘프였다.
단 한 명의 엘프!
“어, 어어……!”
레온 실버는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을까?
너무나 현실감 없는 참상이었다.
단 한 명의 엘프로 인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괴멸 당하다니?
자신의 모든 것이 불과 몇 초 안에 잿더미가 되다니!
“네가 레온 실버냐?”
“그, 그, 그렇다!”
두려움에 질린 채 레온 실버는 간신히 대답했다.
그는 더 이상 이 숲의 지배자도, 먹이사실의 최종 승자도 아니었다.
눈앞의 절대적인 학살자 앞에 놓인 더없이 무력한 약자였다.
“너는 호시탐탐 우리 엘프를 노리고 있었다지. 어떠냐? 엘프의 힘을 직접 본 소감은.”
“그, 그것이…….”
“힘을 키우고 키우면 언젠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나?”
“아아……!”
레온 실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타고난 강자였던 자신이 이렇게 무력한 약자가 될 수 있다니.
전장에서 보았던 오딘 이후로 또다시 공포가 밀려왔다.
“인간도, 너희도 왜 만족할 줄을 모르나. 예전에 간신히 내 손에서 살아 도망친 네 아비가 가르쳐 주지 않았더냐?”
그제야 부친의 살아생전의 당부가 떠올랐다.
‘진즉에!’
레온 실버는 울컥 화가 났다.
‘진즉에 가르쳐 줬어야지! 이 정도로 강하다고, 가르쳐 줬어야 하지 않은가!’
젊은 혈기와 야망으로 당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자신의 태도는 생각지 않는 레온 실버였다.
“하지만 네가 싸워야 할 상대는 내가 아니다. 어디 분발해 보도록.”
그러면서 나이든 엘프는 휙 등을 돌렸다.
레온 실버는 어리둥절했다.
‘그럼 누가?’
그때였다.
시커먼 연기를 뚫고 한 인간이 나타났다.
“오랜만이네?”
인간은 자신을 똑바로 노려본다.
레온 실버는 곧바로 알아봤다.
그때 놓쳤던 그 인간이었다.
***
두려움이란 그저 기억일 뿐이구나.
나는 그것을 레온 실버와 재회하면서 깨달았다.
데릭의 믿기 어려운 활약에 압도된 채 두려움에 질려 있는 레온 실버를 보니,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기가 힘들었다.
“오랜만이네?”
내가 말을 건넸다.
“너는…….”
“역시 기억해? 다행이군.”
레온 실버의 얼굴에 비로소 적대감이 다시 떠올랐다.
“네놈이 엘프를 끌어들였구나.”
“뭐, 그렇다 치자.”
나는 닐슨 H2로 레온 실버를 겨누었다.
“자, 피해봐.”
“뭣?”
타앙!
불꽃이 뿜어지는 순간, 레온 실버는 좌측으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권총의 총알은 음속과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소리를 듣고 피하는 건 무리다.
불꽃이 뿜어지는 걸 보았을 때는 이미 피하기는 늦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레온 실버는 내가 방아쇠를 당기는 검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반응한 것이었다.
“잘하네?”
“이놈이!”
“이것도 피해봐.”
이번에는 쌍권총으로 사격을 했다.
타탕-
“크헉!”
레온 실버는 옆구리에 총을 맞고 신음을 흘렸다.
한 번은 잘 반응하고 피했지만 다른 권총은 피하는 동선을 예측하고 쏜 것이다.
10m 이내.
사격 스킬에 의해서 내 명중률은 100%였다.
피하는 동선까지 노리고 두 발을 동시에 쏘면 놈은 절대로 피하지 못한다.
“이놈!”
레온 실버가 내게 덤벼들었다.
“바람의 가호!”
바람의 가호를 펼치며 나는 훌쩍 뛰어올랐다.
레온의 머리 위로 사뿐히 공중제비를 돌며, 왼손의 권총으로 어깨를 쏴버렸다.
타앙-
“큭!”
오른쪽 어깨를 맞은 레온 실버가 비틀거렸다.
“크아아아!”
등 뒤로 착지한 나에게, 레온 실버가 온몸을 돌며 왼손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손톱이 나를 할퀴어온다.
“순간이동.”
파앗!
순식간에 나는 레온 실버의 등 뒤로 이동되었다.
탕!
“커억!”
적중당한 왼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레온 실버.
“크아아! 죽여 버린다-!”
광기에 차 포효하며 두 팔을 마구 휘젓는다.
나는 쌍권총을 쥐고 맞대응했다.
왼손을 쳐내고, 날아드는 오른손도 양팔을 교차시켜 가드하면서, 왼 손목을 비틀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큭!”
총탄에 오른쪽 손목을 피격당한 레온 실버.
발악하듯이 왼손을 다시 휘둘렀지만, 나는 또다시 가드해내며 같은 동작으로 왼쪽 어깨를 쐈다.
타앙-
“컥!”
목인장으로 수련한 효과가 중급 2레벨의 운동신경과 함께 나타났다.
체력도 중급 5레벨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레온 실버와 비교해도 완력이나 순발력이나 밀리지 않는다.
엘프의 한계 수준에 달하는 육체 능력이니 당연했다.
여기저기에 총에 맞고 만신창이가 된 레온 실버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털썩 쓰러졌다.
라이칸스로프여서 이 정도지, 인간이 이렇게 매그넘탄에 수차례 맞으면 벌써 몇 번은 죽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죽어가면서 레온 실버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인간은 원래 성장이 빠르거든.”
“크윽, 빌어먹을…….”
이마에 권총을 겨누자 레온 실버는 체념한 얼굴이 되었다.
죽이기 전에 내가 물었다.
“내 동료들은 어쨌지?”
“죽였다.”
“시신.”
“모른다.”
레온 실버는 그 와중에도 히죽 웃어 보인다.
“신선한 음식이 아니면 안 먹거든.”
“……그래, 이제 자라.”
타앙!
이마에 뚫린 붉은 구멍.
레온 실버는 그렇게 눈을 부릅뜬 채로 죽었다. 웃고 있는 입모양이 기분 나빴다.
‘시험자의 시체는 사라지는 모양이네. 다행이다.’
놈들의 뱃속에 들어간 게 아니어서 마음이 놓였다.
“끝났으면 돌아가자. 내일 낮까지는 돌아갈 수 있겠군.”
데릭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돌아가죠.”
나는 데릭과 함께 언덕을 떠났다.
그렇게 복수는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