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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91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91화

 

싸움은 끝났다.
우리의 대승이었다.
갈색산맥의 모든 방면에서 엘프들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철통같이 방비하고 있던 우리에게 언데드들의 정면공세는 무모한 꼬라박기일 뿐이었다.
“이겼다!”
“봤느냐!”
“다시는 침범하지 마라!”
전사들의 환호성이 전장을 가득 메웠다.
느티나무 마을로 개선하자 여자와 아이들이 열렬히 환영하였다.
여기저기서 엘븐하프의 유쾌한 선율이 울러 퍼졌다.
“여보!”
“여보, 고생 많았어요!”
여자들은 돌아온 남편들을 끌어안고 기뻐하였다.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젊은 남성들도 다들 맞이해 주는 애인이 있었다.
‘나만 혼자구나.’
하고 쓸쓸해하는데, 문득 나에게 달려오는 어린 소녀…….
“엘리스?”
“헤헤헤.”
엘리스는 꽃으로 만든 화관을 나에게 씌워주었다.
“고마워.”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니 무척 기뻐하는 엘리스.
그래도 엘리스, 나에게 반하지는 말렴. 이 오빠는 그런 취향 없어요.
그날은 축제였다.
승리.
엘프의 적을 물리치고 삶의 보금자리를 지킨 기쁨.
축제는 밤새도록 정신없이 이어졌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밤이 늦자 지쳐서 쉬고 싶었는데, 엘프들이 자꾸만 나를 붙잡았다. 이번 전쟁의 영웅이라며 추켜 세워주는 게 좋기는 했다.
‘이제 이걸로 시험은 클리어나 마찬가지지.’
남은 제한 시간은 불과 4개월 남짓.
그사이에 흑마법사들이 또 이만한 규모로 습격해 올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어.’
지금껏 하던 대로 계속 엘프를 갈색산맥에 불러들여서 마을을 만들고 부흥시켜 나갈 것이다.
다시는 엘프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

오딘의 전쟁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소식이 전해졌다.
바스티앙 자작가는 울펜부르크 백작가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연신 패퇴했다고 한다.
콥을 비롯한 베테랑 엘프 5인의 활약도 굉장했던 모양이다. 오딘은 서신에서 그들을 일등공신으로 추켜세웠다.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콥 팀의 진짜 임무도 빠르게 진전을 이루었다.
생명의 나무를 잃고 인간을 피해 깊숙이 숨어 살던 엘프들을 찾아내, 갈색산맥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꾸준히 유입되는 엘프들은 인구가 부족한 단풍나무 마을과 소나무 마을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두 마을도 점점 인구가 늘기 시작하니 새로운 생명의 나무를 키워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나는 생명의 불꽃 2개를 다른 나무에 투여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북쪽에 있다는 측백나무였다.
‘이번에는 측백나무 마을이군.’
하지만 지금처럼 대여섯 명씩 유입되는 엘프들로는 새로운 마을을 유치할 수 없었다.
적어도 30여 명쯤 되는 마을 유민들이 나타나야 마을의 기초가 잡히고, 그 뒤로 계속 인구가 추가되면서 마을의 규모가 커질 수 있다.
‘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일단 측백나무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
중급 2레벨짜리 위력을 가진 생명의 불꽃을 하루에 2개씩 먹으며 쑥쑥 커나가는 측백나무.
그런데 아직 측백나무가 생명의 나무로서 각성하지 않았을 때, 콥 팀이 대규모의 엘프 유민 집단을 데려왔다.
“이곳에 우리가 안전히 살아갈 보금자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민을 이끄는 대표로 보이는 나이 든 여성 엘프가 찾아와 물었다.
무려 42명이나 되는 큰 규모의 유민이었다.
연장자 어머니가 그들을 맞이했다.
“잘 오셨어요. 여러분이 살 곳을 알려드릴게요.”
우리는 그들을 측백나무가 있는 북쪽 지역으로 안내했다.
측백나무를 본 엘프들은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망한 기색도 보였다.
“생명의 나무의 자질이 있는 나무로군요.”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각성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는 듯한데…….”
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마을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생명의 나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갈색산맥으로 이주를 해온 터였다.
그런데 아직 생명의 나무가 되지 못한 측백나무밖에 없으니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어딘가요.”
“맞아요. 이 산맥은 생명의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자연의 기운이 풍부해요.”
“이곳에서 살면서 이 측백나무를 키워나가도록 해요.”
유민들의 어머니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결정을 내렸다.
그때, 연장자 어머니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이 측백나무는 앞으로 1개월쯤 후에 생명의 나무로 각성할 수 있어요.”
“예?”
“그게 정말인가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유민 측의 어머니들이 다들 의아해졌다.
연장자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았다.
“킴, 보여드리렴.”
“예.”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생명의 불꽃 2개를 만들었다.
생명의 불꽃을 본 유민들은 더없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생명의 기운을 저렇게 가득 담고 있다니!”
“저 기운을 품는다면 확실히 측백나무가 더 빨리 자랄 거예요.”
“생명의 나무로 성장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이제 그들은 어서 이 불꽃들을 측백나무에게 써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얼굴이 되었다.
나는 불꽃 2개를 측백나무에 불어넣었다.
“아아아!”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어!”
“생명의 힘이 가득해!”
“성장하려고 용솟음치는 게 느껴져요.”
“대단한 자연의 힘이야!”
유민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엘프들의 눈에는 생명의 불꽃을 불어넣은 효과가 확연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엘프라 그런 모양이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매일 2개씩 부여하면 빠른 시일 내에 생명의 나무로 각성합니다. 이미 단풍나무 마을과 소나무 마을도 그런 과정을 거쳤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야 저희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알겠네요.”
“다시 생명의 나무를 얻을 수 있다니!”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콥 팀이 데려온 엘프 유민 42명은 측백나무를 중심에 두고 자리 잡았다.
측백나무 마을의 탄생이었다.
1개월이 지나자 예상대로 측백나무는 생명의 나무로 각성됐다.
측백나무 마을의 엘프들은 크게 기뻐했고, 다른 마을 엘프들까지 방문해서 한바탕 축제를 열었다.
생명의 나무의 탄생은 그게 어느 마을의 것이든 상관없이 엘프 모두의 기쁨이었던 것이다.
총 4개의 마을이 갈색산맥에 자리 잡았다. 이제 갈색산맥은 명실상부한 엘프들의 굳건한 터전이 되었다.
이제 그 누구도 이곳을 침범하지 못할 터였다.
6회차 시험의 제한 시간은 이제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로 2개월을 놀면서 보내도 상관은 없지만…….’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아직 매듭짓지 못한 일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2개월이면 넉넉하게 해결하고도 남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나는 연장자 어머니를 찾아가 말했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어딜 가겠다는 거니?”
연장자 어머니가 놀라서 물었다.
“불귀의 숲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서쪽의…… 그 라이칸스로프들이 있는 곳 말이구나.”
“예.”
그랬다.
실버 씨족.
레온 실버!
그놈들에게 복수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바스티앙 자작가도 이미 오딘에 의해 멸망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였다.
흑마법사들도 패퇴했으니, 마지막 남은 엘프의 적은 실버 씨족뿐이었다.
“그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저는 강해졌습니다. 이제 그놈들과의 악연을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혼자서는 너무 위험하지 않니?”
“밤에 야영할 때를 대비해서 전사 한 분을 붙여주시면 충분합니다.”
“전사 한 명만 붙여달라는 말이지?”
“네.”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연장자 어머니는 싱글거렸다.
“잠시만 기다려 보렴.”
“예.”
“여보~!”
“……예?”
잠시 후,
“넉넉잡고 이틀이면 충분하겠군. 어서 다녀오자.”
데릭이 내 동행이 되었다.
왠지 스테이지 1탄의 보스몬스터를 깨는 데 치트키를 쓴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복수의 긴장감이 대폭 감소하였다.

***

바람의 가호를 써서 데릭과 함께 달렸다. 금세 갈색산맥을 빠져나와 불귀의 숲에 진입했다.
숲에 발을 들이자 익숙했던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래, 이 길이다. 정신없이 도망쳤던 길이다. 이대로 쭉 가면…….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혜수야!’
혜수가 죽고 강천성이 남아서 레온 실버와 싸운 그곳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더 가면 준호가 죽은 곳이 나온다.
그들의 시체는 아직 그곳에 있을까?
내 동료들은 썩고 부패한 참혹한 모습으로 날 맞이할까?
아니면 라이칸스로프들이 잡아먹었을까?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가슴을 숨 막히게 옥죄었다.
나는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뭐냐?”
“잠시만요.”
“그러지.”
데릭은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두렵다.
무서워서 미칠 것 같다.
‘이제라도 돌아갈까?’
포기가 나를 유혹한다.
‘그래.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라이칸스로프 따위…….
실버 씨족 따위 이제 아무런 위협도 안 되는,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이런다고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래, 그냥 돌아가는…….’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그 시체를 보지 못하고 이대로 넘어가는 게 더 안 좋을 것 같아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는 기억들.

‘그 사람은 정말 죽은 걸까, 시체는 어떻게 된 걸까, 혹시 살아서 우리를 노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아요. 현호 씨도 그렇죠?’

‘그랬구나.’
비로소 나는 내가 하나도 성장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때 그 김현호는 지금도 여전히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같이 가 봐요.’

그래, 가자, 혜수야.

‘죽은 것을 확인하고 제대로 매장도 해줘요. 혼자서는 무서운데, 현호 씨랑 같이 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같이 가자.
힘낼게.
무서워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게. 그래야 내가 비로소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걸음을 옮겼다. 쉬고 있던 데릭이 다시 따라왔다.
마침내 그 장소에 이르렀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혜수도 강천성도 없었다.
더 걸어가 봤지만 준호의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길잡이 스킬은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강천성도 이혜수도, 이준호도 어디에 있는지 내게 알려주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아니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서?
용기를 낸 것치고는 허망한 결과라 나는 허탈감을 느꼈다.
“뭔가 찾는 게 있나?”
데릭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길잡이 스킬이 내게 가르쳐 주는 것은 딱 하나였다.
“가죠. 레온 실버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러지.”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움직였다. 쿨타임이 끝난 바람의 가호를 다시 펼쳐서 데릭과 함께 달리니 순식간이었다.
폭풍 같은 속도로 이동한 끝에, 어두워졌을 무렵에는 달빛이 잘 드는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느껴지는군.”
언덕 위를 바라보며 데릭은 쌍검을 뽑았다.
나 역시 닐슨 H2 2정을 소환하며 말했다.
“부탁이 있는데요.”
“뭐지?”
“레온 실버는 제게 맡겨주세요.”
“그러지.”
데릭은 몸을 날렸다.
“가장 강해보이는 놈만 빼고 전부 죽이면 되겠군.”
지당하신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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