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8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85화
‘확실히 이상하다.’
매일같이 그 많은 시체를 공급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들키지 않고 비밀리 진행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오딘이 말했다.
“아마도 다량의 시체를 매일 공급하는 방식은 아닐 겁니다. 그랬으면 소식이 퍼졌을 테고, 대륙 공통으로 금지된 흑마법이 버젓이 사용되는 걸 각 국가가 가만 놔두지 않았겠지요.”
“그럼?”
“혹시 지금까지는 기어 올라오는 좀비들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싸워 오시지 않았습니까?”
“맞다. 힘 낭비는 필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입니다.”
오딘이 말했다.
“떨어진 좀비들을 매번 재활용해 왔다고 봐야 하지요.”
“재활용?”
데릭과 엘프들의 안색이 변했다.
“이 절벽은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데, 여기서 떨어지면 좀비들이 산산조각이 나지 않을까요? 그렇게 조각난 시체도 재활용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오딘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구려. 그건 확인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아무튼 그만한 시체를 매일 확보하기란 쉽지 않소. 국가 전체가 움직인다 해도 아무도 몰래 하지는 못하오.”
“그럼 확인을 해보아야 하나…….”
데릭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탐사를 하신다면 저도 거들 용의가 있습니다.”
오딘이 제안했지만 데릭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일이다. 그 이상 수고를 감수할 필요는 없어.”
“그렇습니까. 어찌 되었든 우리는 이제 우호관계이니 도움이 필요해지면 언제든 요청하십시오.”
“그리하지.”
마을로 돌아온 뒤, 오딘은 작별을 고했다.
“이제 돌아가 봐야겠소.”
“벌써 가시게요? 하루라도 머물다 가시지.”
“아쉽지만 영지를 이 이상 비워둘 수 없소. 그렇지 않아도 전쟁 중이라 최대한 빨리 돌아가 봐야 하오.”
오딘은 웃으며 내게 악수했다.
“아무튼 덕분에 흥미로운 경험을 했소. 김현호 씨가 아니었으면 엘프들과 우호를 다지는 것도, 상급 정령술을 견식해 보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요.”
“별말씀을요.”
그렇게 오딘은 함께 온 2명의 일행과 함께 떠나갔다.
나 역시 오딘 덕분에 견식을 크게 넓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오러 마스터의 오러 소드.
상급 정령술의 진정한 위력과 활용도.
언젠가는 내가 따라잡아야 할 엄청난 수준이었다.
“무장, 닐슨 H2.”
파앗!
두 정의 권총이 내 양손에 나타났다.
나는 권총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정령술과 융합할 수 있을까?’
현재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활용법이라고는 실프를 응용한 명중률 강화였다.
바람의 정령인 실프가 조준을 도와주면 어떤 거리에서든 무조건 100%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위력은 변함없다. 권총은 그냥 권총일 뿐이었다.
‘매그넘탄도 상당히 위력이 강한 탄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초라하게 보일 줄이야.’
오늘 오딘과 데릭의 활약을 보니 총기류가 초라해진다.
이걸 무기로 삼은 게 장기적으로는 잘못된 거였나 싶었다.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나는 실프와 카사를 사격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궁리했다.
‘실프를 시켜서 탄환이 더 강하게 날아가게 할까?’
하지만 그건 힘의 소모가 너무 커서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날아가는 탄의 궤도를 변경시키는 것만으로도 소환시간이 엄청나게 깎인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해 본 바가 있었다.
‘최대한 적은 힘으로 위력을 강화해야 해.’
나는 총의 원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방아쇠를 당겨서 뇌관이 폭발하면, 화약에 불이 붙어서 가스가 발생한다.
이 가스가 급격히 꽉 차면서 그 압력으로 탄환이 발사된다.
그 가스 압력은 노리쇠와 노리쇠뭉치를 후퇴시키는 데 쓰이기도 한다. 내 반자동권총인 내 닐슨 H2의 원리가 그러했다.
가만?
폭발과 가스 압력을 카사가 컨트롤할 수 있지 않을까?
“카사.”
-헥헥헥!
오랜만에 소환된 카사가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어댔다.
“잘 들어봐.”
나는 권총의 원리를 대략적으로 설명해 준 뒤에 지시를 내렸다.
“네 힘으로 화약의 폭발을 강화할 수 있겠어?”
-멍!
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약 폭발로 발생하는 가스 압력을 네가 컨트롤할 수는 있고?”
이번에도 카사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럼 탄에 든 화약을 더 빨리 연소시키고, 가스 압력은 노리쇠랑 노리쇠뭉치를 후퇴시킬 정도의 힘만 빼고 모두 탄환을 내보내는 데 집중시키는 거야. 내 말 이해했어?”
한마디로 가스 압력의 힘을 조금도 손실시키지 않고 탄환을 쏘아 보내는 데 집중시킨다는 개념이었다.
가끔 권총이 고장 나는 원인 중 하나로, 총이 가스 압력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가스 압력이 온전히 탄환에 집중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손실되었기 때문이다.
즉, 카사를 이용하면 탄환의 위력을 강화하고 동시에 권총의 내구력 손실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한 번 실험해 보자.’
“실프.”
-냥?
실프가 소환되었다. 카사와 실프는 또다시 내 머리 위를 놓고 자리싸움을 시작했다.
“소음을 전부 차단해줘.”
-냥!
실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하늘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카사, 알지?”
-멍멍!
기사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실프의 소음차단으로 총성은 울려 퍼지지 않았고, 대신 바람을 가르는 세찬 소리만 깔끔하게 울려 퍼졌다.
‘성공이야.’
팔에 전달되는 반동이 평소보다 훨씬 강했다.
이 정도 반동이면 위력이 2배는 더 강화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지.’
이번에는 실프를 활용할 궁리까지 해보았다.
고심 끝에, 평소 실프를 이용해 불을 피우던 방식에서 힌트를 찾았다.
“실프, 화약이 폭발하는 순간에 산소를 주입해서 폭발력을 강화시킬 수 있지?”
-냐앙.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두 정령을 모두 활용한 사격법.
그러면서도 힘의 소모는 적은 방식이었다.
“둘 다 그런 식으로 해보자. 준비 됐지?”
-멍!
-냥.
두 정령은 경쟁적으로 대답했다.
다시 한 번 허공을 향해 발사했다.
푸슉―!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한 반동.
보다 날카로운 바람 가르는 탄환의 소리!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한번 써먹어보고 싶다!’
나는 어서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다음 날, 데릭은 뜻밖의 말을 했다.
“절벽 아래를 탐사한다.”
다음 날 곧바로 결단을 내리다니, 엘프도 남자들은 여자들과 확실히 다르구나.
“어디까지나 목적은 탐사이니 인원은 5명만 뽑겠다.”
“그중 하나는 데릭 자네가 확실할 테고, 나도 가겠어.”
“나도.”
“저도 갑니다.”
나이든 엘프들이 너도나도 나섰다.
‘나도 가보고 싶긴 한데.’
다들 실력이 쟁쟁해서 내가 낄 자리는 없어 보였다.
이전까지는 내가 이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일 거라고 자신했지만, 완전한 착각이었음을 어제 깨달았다.
이 아저씨들은 정령술을 쓰지 않았다. 자기 원래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들 오래 살았으니 최고 중급 정령 이상을 보유했을 텐데, 내 정령술은 기껏해야 초급 6레벨.
난 얌전히 물러서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데릭이 내게 물었다.
“킴, 갈 테냐?”
“예? 제가 낄 수가 있을까요?”
“싸움이 아니라 탐사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내가 함께하니 괜찮다.”
“다른 분들이 계시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제가 끼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 엘프의 관점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킴 너는 지혜로우니 틀림없이 탐사에 도움이 될 거다.”
헐, 나더러 지혜롭단다. 엄마와 누나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렇다면 저도 참가하고 싶습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건 염려 놓아도 된다. 네 솜씨도 몰라보게 늘었으니까.”
아, 데릭 님의 칭찬을 받았다!
나는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어제 이후로 데릭을 더 우러러보게 되었거든.
데릭과 나를 포함해서 5인의 탐사대가 결성되었다.
“콥, 실프를 소환해 둬.”
“오케이.”
데릭과 거의 동년배인 베테랑 엘프 전사 콥이 실프를 소환했다.
그의 실프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동그란 생명체였다.
내 얼굴 정도 크기의 동그란 공인데 날개는 내 몸을 전부 덮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랬다.
특이한 실프군.
크기와 존재감으로 보아 중급 정령이 아닐까 싶었다.
확실히 내 실프보단 더 대단해 보이는데 어제 본 데릭의 불의 거인만큼은 아니거든. 그럼 중급이지.
“가자!”
데릭이 먼저 뛰어내렸다.
우리가 줄줄이 뒤따라 점프했다. 누가 보면 집단 투신인 줄 알겠다.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위해 양팔을 모으고 몸을 최대한 곧게 폈다.
가속도를 받으며 추락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짜릿하다!’
온몸에 쏟아지는 바람의 압력이 내 감각을 생생하게 깨우고 있었다. 어떤 롤러코스터도 이만한 희열감은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동반낙하를 하던 중에 데릭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일순간 콥의 실프가 크게 날갯짓을 했다.
바람의 장벽이 순식간에 펼쳐져 우리의 몸을 받아냈다.
우리는 공중에서 멈췄다.
“저걸.”
데릭이 뭔가를 가리켰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거미줄이었다. 규모도 거대할 뿐만 아니라, 굵기 또한 털실처럼 굵었다.
“거미줄?”
내가 중얼거렸다.
데릭이 말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이다.”
“아, 저게……!”
난 내 손에 낀 장갑을 바라보았다. 오딘에게 선물 받은 이 아라크네 장갑이 바로 저걸로 만든 거다.
“이곳에 아라크네도 있는 모양이군.”
“본래 아라크네의 서식지였는데 언데드들에게 휩쓸린 게 아닐까?”
“그렇겠지. 이 절벽 아래는 본래 아라크네의 서식지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서 출입하질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나도 아버님께 들은 적이 있군. 하도 오래전이라 잊고 있었어.”
네 엘프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내가 말했다.
“한번 가까이 가서 확인해도 될까요?”
“그래.”
콥이 실프를 시켜서 내 몸을 거미줄에 가까이 이동시켜주었다.
나는 절벽에 손을 뻗어 돌출된 바위 끝부분을 잡고 힘껏 당겼다.
으드득!
원래 균열이 나 있던 바위라 내 힘에 일부가 부서졌다.
난 부서뜨린 바위조각을 거미줄로 던졌다.
출렁!
놀랍게도 거미줄은 바위를 탄성으로 튕겨냈다.
“아니?”
“저게 뭐야?”
엘프들이 깜짝 놀랐다.
본래 정상적인 거미줄이라면 바위조각이 달라붙어야 했다.
그대로 바위조각이 거미줄에 걸리든, 무게를 못 이기고 거미줄이 찢겨지든 해야 한다.
그런데 저 거미줄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거미줄의 점성을 없앤 것이다.
“흑마법사의 짓 같네요.”
“저것이?”
“네, 누가 인위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거미줄의 점성이 사라졌을 리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데릭은 내 말에 수긍했다.
“그리고 이걸로 확신한 건데, 요 아래가 본래 아라크네의 서식지였다고 하셨죠?”
“그랬지.”
“직접 보진 못했지만.”
엘프들이 답했다.
내가 결론을 내렸다.
“거기 살던 아라크네들이 흑마법사의 수중에 넘어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