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8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84화
어머니들은 우선 오딘이 데려온 10명의 엘프부터 조치했다.
젊은 여성 엘프들이 그들을 데려가 거처를 마련해 주고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오딘과 나는 어머니들과 함께 조용한 곳으로 가서 따로 대화를 나눴다.
“일단 사비를 들여 우리 동족을 구해준 호의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같은 인간으로서 그런 죄악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울펜부르크 백작 오딘이라 하셨지요? 인간들 사이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당신이 관련 없는 우리와 우호를 얻고 싶어 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이득이 되죠?”
“세상이 점점 혼란해져 점점 홀로 자기 한 몸 지키기가 힘들어져 갑니다. 그건 여러분 또한 마찬가지리라 생각됩니다.”
“맞아요.”
연장자 어머니도 순순히 동의했다.
오딘이 말했다.
“더군다나 우리는 공통의 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통의 적?”
“바스티앙 자작가입니다. 저는 현재 바스티앙 자작가와 전쟁을 치를 준비를 끝마친 상태지요.”
“바스티앙 자작가는 이곳에서 북쪽에 위치한 그 인간들이로군요.”
“그렇습니다.”
“그들을 치는 데 우리의 힘을 얻고 싶다는 뜻인가요?”
오딘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스티앙 자작가쯤이야 아무 어려움도 없지요.”
“확실히 그래 보이는군.”
묵묵히 있던 데릭이 입을 열었다.
데릭은 오딘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껏 내가 본 인간 중 가장 강해.”
“영광입니다.”
오딘은 싱긋 웃어보였다.
어머니들은 물론 나도 놀랐다.
갈색산맥에서 가장 오래 산 엘프 전사인 데릭이었다.
그런 그가 본 가장 강한 인간이라니.
오딘이 지금껏 20회차의 시험을 모조리 클리어한 엄청난 시험자였다. 대체 얼마나 강할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호를 원하지요?”
“아직 보이지 않는 앞으로의 위험에 함께 대처하고 싶지 때문입니다.”
오딘이 말했다.
“바스티앙 자작가 따위는 제 적수가 못되지만, 그걸 알고 있는 그들이 제게 싸움을 건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들을 조종하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 말에 어머니들은 서로 모여서 상의를 시작했다.
나 역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자.
정황상 라이칸스로프 실버 씨족과 바스티앙 자작가는 모종의 거래를 맺었다.
아마 엘프를 공통의 타깃으로 삼은 모양이다.
야심이 많은 레온 실버는 실버 씨족의 영역을 엘프들의 갈색산맥까지 확대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겠지.
그리고 바스티앙 자작가는 돈독이 오른 놈들인 엘프들을 대거 잡아서 노예로 팔아 거금을 만지고 싶은 생각이겠지.
그럼 여기다가 언데드 무리를 조종하는 흑마법사(들)를 집어넣어보자.
흑마법사가 노리는 것이 생명의 나무라면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실버 씨족, 바스티앙 자작가, 흑마법사 셋이 협력해 엘프를 침공하면 서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거야.’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에 입을 열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의견이 있습니다.”
“해보렴, 킴.”
“예, 오딘님께서 말씀하신 보이지 않는 위협이란 흑마법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흑마법사들?”
“예, 실버 씨족과 바스티앙 자작가가 엘프를 노려서 얻고자 하는 바는 확실합니다. 실버 씨족은 영역, 바스티앙 자작가는 엘프 노예죠.”
“못된 것들.”
“파렴치한 것들끼리 뭉쳤네요.”
어머니들이 화를 냈다.
내가 계속 말했다.
“문제는 흑마법사가 노리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게 생명의 나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생명의 나무를?”
“예, 언데드를 만드는 사악한 주술이 불노불사와 부활을 연구하다가 파생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풍부한 생명력을 가진 생명의 나무가 충분히 그들의 연구 대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구려.”
오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내가 말했다.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제가 오기 전까지 생명의 나무는 병들고 있었는데, 그게 언제부터였습니까?”
“무슨 뜻으로 묻는 것이니?”
연장자 어머니가 물었다.
“생명의 나무가 병든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아니면 흑마법사들의 어떤 저주 같은 것에 의함인지 알고 싶은 겁니다.”
“……!”
어머니들이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
“자연스러운 쇠퇴기의 현상은 아니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우리가 끝까지 생명의 나무가 죽어간다는 걸 믿지 못했던 거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니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도 당연해.”
“킴의 추측이 옳아.”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어머니들. 갑자기 부녀회의 수다 현장이 된 회의를 보며 오딘은 당황하였다.
“원래 이렇소?”
“예, 늘 이래요. 익숙해지셔야 할 거예요.”
“재미있는 통치체계구려.”
“익숙해지면 한숨이 나오죠.”
여자들 수다를 지켜봐야 하는 남자들의 고통이란…….
한참의 수다 끝에 결론이 나타났다.
“세 무리가 힘을 합쳤다면, 우리 역시 협력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울펜부르크 백작 오딘, 당신과 우호관계를 맺겠습니다.”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오딘은 연장자 어머니와 악수를 나눴다.
그렇게 서로 협력하기로 한 뒤에 오딘이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그 언데드들을 저도 볼 수 있겠습니까? 언데드들의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만.”
“오늘 하루만 싸움에 끼어보겠나?”
데릭이 물었다.
오딘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요즘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통 없었으니까.”
나도 함께 가기로 했다.
오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볼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우리는 함께 남서쪽 절벽으로 향했다.
***
“많기도 하군.”
절벽 아래에서 밀려오는 좀비 떼를 본 오딘의 감상이었다.
“늘 이런 숫자와 싸웠던 겁니까?”
“최근 들어 부쩍 늘었지.”
데릭이 답했다.
절벽을 지키는 엘프들의 관심은 새로 나타난 인간 오딘에게 집중되었다.
다들 그의 실력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오딘은 씨익 웃으며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 신고식을 치러야겠군요.”
“언제든지.”
“절벽이 조금 무너져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고, 데릭은 다른 엘프들에게 턱짓을 했다.
엘프들이 절벽에서 물러났다.
“해봐라.”
“그러지요.”
오딘은 눈을 감고 장검에 정신을 집중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파아아앗!
검에 푸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죠?”
“오러를 무기에 전달한 것이다.”
데릭이 답했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저 인간은 그보다 더 한 것도 할 수 있지. 봐라.”
장검에서 피어오르던 푸른 아지랑이가 이윽고 하나의 고체형태로 굳어졌다.
마치 장검의 검신에 검집을 씌운 것처럼, 푸른 오러가 검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오러 소드.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데릭의 말이었다.
“오러 소드가 대단한 건가요?”
“오러 컨트롤의 능력이 극의에 달하면 저게 가능하다더군. 아주 옛날에 저걸 딱 한 번 본 적 있었다. 우리를 침공한 인간들 중에 저걸 할 줄 아는 자가 있었어.”
데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딘이 절벽 아래로 뛰어들었다.
수직으로 낙하한 오딘은 좀비들을 향해 장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검신에 맺혀 있던 오러 소드가 좀비 떼를 향해 널게 퍼져나갔다.
그 여파는 충격적이었다.
콰콰콰콰콰콰쾅―!!
오러의 폭풍이 좀비 떼를 휩쓸었다.
충격의 여파로 절벽의 바위들이 우르르 무너져 버려 한바탕 낙석이 일어났다. 산사태는 더 많은 좀비를 쓸어갔다.
단 일격으로 오딘은 족히 수백 마리가 넘는 좀비를 없애버린 것이었다.
‘저게 인간이냐?!’
나는 기겁을 했다.
저 정도면 거의 걸어 다니는 전술병기였다. 허리춤에 검이 아니라 미사일을 꽂아 넣고 다니는 거나 다름없다!
“휴우, 상쾌하군.”
오딘은 개운한 얼굴로 절벽 위로 올라왔다.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당신의 능력을 볼 수 있겠습니까?”
“보여주지.”
데릭은 쌍검을 뽑았다.
나는 살짝 걱정이 되었다.
데릭의 테크닉은 확실히 놀랍지만 방금 오딘이 보여준 막대한 파괴력에 비하면 임팩트가 초라해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내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카사.”
데릭은 정령을 소환했다.
그의 카사는 거대한 불의 거인이었다.
크기가 5미터나 되는 거대한 불의 정령!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위용이 마치 묵시록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과도 같았다.
“상급 정령을 보게 되는구려.”
오딘은 흥분에 떨었다.
‘저게 상급 정령?’
순간 나는 나의 카사를 떠올렸다.
몸집이 거대해진 카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난리법석을 부리는…….
크윽, 아무리 생각해도 데릭 같은 멋이 안 난다!
데릭은 이윽고 더 놀라운 모습을 연출했다.
불의 거인과 데릭이 한 몸으로 융합한 것이었다.
카사의 불길이 데릭의 육체로 깃들 듯이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대신 데릭의 온몸에서 뜨거운 아지랑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입김에서 불꽃이 흘렀다.
데릭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크하아아압!”
박력 있는 기합과 함께 쌍검을 마구 휘둘렀다.
콰콰쾅― 콰르르릉! 화르르륵―!
그것은 불꽃놀이를 연상케 했다.
사방팔방으로 뜨거운 불길이 쏟아졌다. 불의 폭포가 저러할까?
절벽 아래에 화염이 강처럼 흘렀다.
“크아아!”
“크르르르!”
“크아악!”
“으아아아!”
좀비들은 그야말로 녹아버렸다. 일순간에 수백 구가 잿더미가 되어 소멸되었다.
불꽃 축제가 끝나고 나니 절벽에 매달려 있는 좀비는 단 한 구도 없었다.
“세상에…….”
저게 정령술의 위력이라고?
정령술과 무기는 별개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껏 데릭의 특기는 쌍검술이지 정령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쌍검술과 정령술이 융합된 엄청난 위력을 보니 나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도 총과 정령술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야만 했다.
소총 모신나강과 쌍권총은 보조도구라고 생각했고, 정령술은 여러 가지로 편리한 스킬이라고만 여겼다.
두 가지를 별개의 것으로 각기 따로 여겼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해서는 저렇게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둘 중 하나의 우물만 파거나, 두 가지를 하나로 융합하거나.
나는 후자를 앞으로의 내 길로 택했다.
‘그동안 정령술을 너무 소홀히 여겼던 것 같아. 지금부터 더 연구해 봐야겠어.’
나는 그것을 이번 6회차의 과제로 여기기로 했다.
데릭이 돌아오자 그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오랜만에 자네 실력을 보는군.”
“대단했어!”
“역시 데릭이야.”
데릭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 사람들, 여태까지는 그저 운동에 불과했구나.’
그러고 보면 다들 한 번도 싸움에 정령을 활용하지는 않았다. 진짜 실력을 한 번도 발휘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땠나?”
데릭이 오딘에게 물었다.
“그런 대단한 광경은 처음 봅니다. 엘프와 정령술에 대해서 얼마나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지 세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랬다.
실버 씨족 따위는 데릭 혼자 다녀와도 한 시간 안에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터였다.
그걸 모르니까 레온 실버 따위가 엘프를 노리는 것이겠지.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는데, 혹시 매일같이 이 정도 숫자의 언데드가 공격해 왔던 겁니까?”
“그렇네. 요즘은 더 많아지긴 했지만.”
“하지만 매일 그 정도 언데드를 낭비하려면 엄청난 양의 시체를 공급해야 하는데,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오딘의 말에 그제야 나도 의문이 들었다.
그 정도 시체 숫자를 매일 공급되는데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