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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81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81화

 

휴식기간 60일은 평탄하게 흘렀다.
민정과 함께 한 동거 생활은 큰 문제없이 흘렀다.
민정은 직장 생활로 바쁜 와중에도 꼭꼭 맛있는 요리를 해주었고, 피곤한 날은 외식을 했다.
나 역시 집에 있으면서 실프를 시켜서 깔끔하게 청소를 해두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불만 같은 게 생기지 않았다.
아예 실프에게 집안의 모든 물건의 원위치를 기억해 두게 해놓았다. 그러자 정리정돈도 무진장 편했다. 잔뜩 어질러 놓아도 실프가 한번 힘 발휘하면 말끔히 정리된다.
우리 가족들 역시 여전히 잘 지냈다.
대형 로펌에 다니는 누나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엄마 역시 여전히 닭강정을 잘 판다.
요즘은 엄마가 은퇴도 고려하고 있어서 현지 후계자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
돈이 많아져도 도통 가족을 위해 쓸 일이 없었다.
집이 가난하거나 했으면 팍팍 써서 집안을 구제한 효자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다만 딱 하나 우리 집안의 골칫거리는 바로 현지였다.
-아들, 아들이 현지 좀 말려봐.
“현지가 왜?”
-걔가 독립하고 싶다잖아.
“독립?”
-회사가 서울에 많으니까 서울로 올라간 대나 어쨌다나.
아주 일리 없는 핑계는 아니었다.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백수 생활이 시작되니까 눈치 보이는 거겠지.”
-그럼 지가 백수인데 여왕 대접해 줘?
“그래서 엄마는 뭐라고 했는데?”
-니 돈으로 독립하라고 했지. 현주도 안 도와주겠다고 못 박고.
보나마나 현지는 울면서 아등바등 뗑깡을 부렸겠지. 냉혹한 두 모녀는 눈 하나 깜짝 안 했겠고.
“현지한테 너무 냉정한 거 아냐? 그래도 취직은 할 생각이 있나 본데.”
-마음만 있지. 아들도 잘 알잖아. 원래 공부 못 하는 애들이 공부할 생각은 있어. 실천을 안 해서 그렇지.
잘 알죠.
밥을 안 굶어봐서 그렇다고 번데기 자식이 그러던데요.
-아무튼 현지가 아들한테 매달릴 수 있으니까 주의해.
“알았어.”
그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현지였다.

[현지: 오빠 집이야?]
[나: ㅇㅇ]
[현지: ㅇㅋ]

‘뭐가 오케이라는 거냐.’
나는 일말의 불길함을 느꼈다.
이윽고 현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영상통화였다.
“여보세요?”
-오빠~!
“뭐냐 그 부탁할 때나 쓰는 징그러운 말투는.”
-히잉, 오빠!
민정과 비슷한 말투.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용건을 말해.”
-오빠, 지금 폰으로 한 바퀴 빙 돌려봐.
“뭔 소리냐?”
-오빠 어떤 집에서 사나 보게.
이에 나는 흠칫했다.
영악한 년.
이래서 먼저 문자로 집이냐고 문자로 물어본 거였구나.
영상통화로 내가 어떤 집에서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호화 펜트하우스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민정밖에 모르는 비밀이었다.
-어서 보여줘. 히히, 오빠 돈 많으니까 비좁은 원룸에서 살지는 않을 거 아냐.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도 내내 지하 원룸에서 살아봐서 치를 떨 테고.
바보 주제에 왜 이런 쪽으로는 날카로울까. 정말 쓸데없는 통찰력이다.
-어서 보여줘.
“싫다.”
-왜 싫어?
“부끄럽잖아.”
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개소리 하지 말고.
내 애교에 현지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오빠 민정이랑 동거하는 것도 내가 다 알거든?
“뭣이?”
-민정이가 다 실토했어.
…유민정!
현지는 히죽 웃었다.
-뭐하냐고 물을 때마다 장보고 있다느니 하는 소릴 하잖아. 지 혼자 살면 그렇게 자주 장을 보겠어? 하는 행실이 아주 새색시던데, 내 눈은 못 속여.
“바보 주제에…….”
-이씨, 바보라고 하지 마! 아무튼 민정이랑 같이 사는데 좁은 원룸이라고 말할 건 아니겠지? 전에 같이 유럽 가면서 느낀 건데, 아무래도 오빠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돈이 많은 것 같거든?
현지의 엄청난 통찰력에 나는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내 집은 보여줄 수 없다.”
-흥, 그러셔? 그럼 민정이 족치지 뭐.
“민정이 괴롭히지 마라! 입단속 잘 시켜 놓을 거니까.”
-푸흐흐, 민정이한테 입단속?
현지는 재미있는 코미디를 감상했다는 듯이 웃었다.
-걔 안 그런 거 같아도 은근 잡혀 사는 체질인 거 알지? 살살 구슬리면 다 불게 돼 있어.
“크윽…….”
-내가 어디까지 다 불게 했냐면, 요즘은 허리가 저리다고…….
“그, 그만. 남매로서 대화에 선을 넘지 말자.”
-걔가 정신을 못 차리겠다고 할 정도면 오빠 진짜 천재인 가 봐?
“크아아악―!!”
-히히히!
현지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귀를 괴롭힌다.
대체 민정에게 어디까지 불게 만든 거냐! 내 여동생이지만 정말 위험한 년이었다.
“원하는 게 뭐야?”
그러자 의기양양했던 현지의 태도가 돌변했다.
-오빠! 진짜 나 좀 도와줘!
“독립?”
-응! 나 서울에 올라가서 혼자 살고 싶어!
“네가 아무도 통제하는 사람 없이 혼자 살면 대체 어떻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히잉, 나 진짜 열심히 살 거란 말이야. 지금도 취업하려고 이력서 수십 통씩 넣고 있다고.
“그럼 하면 되잖아.”
-돈 좀 줘.
“꺼지셈.”
-아앙, 오빠!
“앙탈 부리지 마.”
-좀 도와줘, 하나뿐인 여동생인데!
“하나도 이런데 둘이었으면 어쩔 뻔했냐.”
-진짜! 좀 도와줘.
영상통화라서 더 괴롭다. 앙탈 뗑깡 부리는 현지의 모습을 눈으로 봐야 하니까.
“엄마랑 누나도 반대했다며? 그런데 내가 도와줘 버리면 뭐가 되겠냐?”
-그 둘은 날 닭강정 볶게 만들려는 거 아냐!
“해, 닭강정. 네 주제에 억대 연봉자가 될 진로는 많지가 않아.”
-다른 길을 전부 끊어놓고 그거밖에 할 수 없게 만들려는 건 너무하잖아? 나한테도 기회를 줘야지!
“그동안 기회가 없어서 그런 대학에서조차 학점이 2점대냐?”
-이제부터는 달라질 거야. 제발 나 한 번만 기회를 줘, 응?
아, 참 궤변은 잘 늘어놓는 현지였다.
묘하게 이치에 맞는 얘기라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생각해 보고 결정할게.”
-…알았어.
통화를 끊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뭔가를 원하는 현지와 말을 섞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그날 밤, 첫 출근을 했던 민정은 환영회까지 치르고서 늦게 돌아왔다.
오자마자 쪼르르 다가와 자진납세를 했다.
“오빠, 잘못했어요.”
현지한테 들은 모양이다.
“잘못한 걸 알긴 아냐?”
“네.”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넌 왜 그렇게 현지한테 약한 거야.”
“약한 게 아니라요…….”
민정의 이야기는 이랬다.
원래 그녀와 현지와 지현, 이렇게 셋은 어딜 가나 함께 붙어 다니는 삼총사인데 그녀들의 취미가 바로 서로의 비밀을 캐는 거라나?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이 있다는 걸 알면 다른 두 친구가 반드시 실토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비밀이 없어요. 그래서 더 친하고요.”
“응, 그런 것 같더라. 현지가 나더러 천재래.”
“꺄악! 잘못했어요! 지현이가 밤에는 어떠냐고 슬며시 떠보기 시작하더니… 아앙!”
민정은 머리를 싸쥐고 괴로워했다.
그렇게 반성하는 시간이 끝나고, 민정이 문득 말했다.
“근데 오빠, 현지 독립 허락해 주는 게 어떨까요?”
“또 현지한테 언질을 받았구나.”
“헤헤, 네.”
하여간 현지 얘는 정말.
“서울 올라와서 아무도 통제하는 사람 없으면 미친 듯이 놀 텐데, 어떻게 지원을 해줘?”
“안 그래요, 오빠.”
“내가 걔를 잘 알지.”
“오빠도. 저도 일 다니고, 지현이도 열심히 취업활동 하고 있어요. 다른 둘이 직장 다니면서 일하는데 혼자 놀겠어요? 현지도 우리 때문에라도 열심히 할 거예요.”
그 말은 또 일리가 있다.
아마 이것도 현지한테 주입받은 말이리라 싶었다.
나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고 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야]
[현지: 네 오라버니!]
[나: ㅡ,.ㅡ;; 나 원룸 하나 갖고 있는데 거기 써]
[현지: 진짜? 아싸!!]
[현지: 근데 겨우 원룸?]
[나: 너 그냥 천안에서 뼈를 묻어라]
[현지: 아냐아냐, 원룸 땡큐! 아리가또!]
[나: 체크카드 하나 줄 테니까 그걸로 생활비 쓰고. 체크카드 사용 내역 다 확인할 거니까 그걸로 딴 짓 하거나 현금인출받은 순간 끝날 줄 알아]
[현지: 치 알았어]
[나: 일단 올해 상반기까지 지켜보자. 그때까지 아무런 성과도 못 내면 넌 천안 닭강정녀, ㅇㅋ?]
[현지: ㅇㅋㅇㅋ 사랑해♡]
[나: 닥쳐]

그러자 민정에게 문자가 왔다. 민정이 키득거리며 내용을 내게 보여주었다.

[현지: good job, my girl]

꼴값을 떤다, 아주.
나는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알 수 없어 한숨을 쉬었다. 내일이면 이 소식을 듣고 엄마와 누나가 뭐라고 할 텐데.
“말해두는데 현지 절대로 우리 집에 초대하면 안 된다.”
“네.”
“약속했어?”
“아이, 알았어요.”
또, 또. 애교 섞인 목소리로 얼버무리는 버릇. 현지에게 배운 게 분명하다. 아니면 현지가 민정의 영향을 받았거나.

***

그렇게 60일이 흘렀다.
시험 당일이 되자 나는 357매그넘탄과 7.62㎜탄을 가공간에 잔뜩 챙겨 넣었다.
초급 4레벨까지 올린 가공간은 상당히 넓어져서 총알을 넉넉하게 챙기고도 여유가 많았다.
심심할 때를 대비하여 바이올린과 교본도 챙겼다.
‘이제 나가자.’
나는 민정에게 문자를 보내 일 때문에 출국할 일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인근의 호텔에 투숙했다.
만약 시험에서 내가 죽는다면, 민정은 자다가 죽은 나를 바로 옆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충격을 주기는 싫다.
혹시 싶어서 내 스마트폰에 가족과 민정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겼다.
‘됐다.’
준비는 끝났다.
시험이 시작될 때까지 초조하게 시간 흐르는 걸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어서 오세요.”
이젠 보기도 지겨운 아기 천사가 날 반겼다.
“석판 소환.”
나는 익숙하게 석판부터 소환해 시험을 확인했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16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갈색산맥의 엘프를 지켜라.
-제한시간(Time limit): 12개월

내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또 1년이냐!”
“그런데요.”
“너무한 거 아냐?”
“더 긴 시험을 치르는 시험자도 있다는 걸 아실 텐데요.”
닐슨 아슬란이 떠오르자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확실히 그보단 내가 낫다.
“길면 길수록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이번엔 지난번처럼 안전할 것 같지는 않은데?”
“두 번이나 날로 먹었으니 대가를 치러야죠.”
엘프를 지켜라.
누구로부터?
‘적은 언데드들이겠구나.’
북쪽의 바스티앙 자작가는 오딘이 전쟁을 통해 멸망시킬 것이다.
동쪽의 실버 씨족은 엘프들의 위협거리가 별로 되지 못한다.
수장 레온 실버는 나름 똑똑하게 씨족의 힘을 강화했지만, 자기들이 여전히 역부족이란 건 인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럼 남은 적은 남서쪽에서 절벽을 기어오르는 좀비들밖에 없었다.
‘그럼 지금껏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핵심은 언데드를 움직이는 흑마법사란 얘긴데.’
시험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해 본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아기 천사에게 물었다.
“언데드를 막으려면 어떡해야 하지?”
“글쎄요?”
“생명의 나무지?”
“글쎄요.”
“생명의 나무가 이번 시험의 핵심 맞는 거지? 그래서 지난 4, 5회차에서 생명의 나무를 살리게 한 거잖아. 내 말 맞지?”
“글쎄요?”
나는 아기 천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기 천사는 늘 그렇듯 싱글거릴 뿐이었다.
역시 표정으로 천사의 심중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하긴, 인간이 아니라 천사니까.
하지만 난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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