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7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79화
“가자 귀요미.”
“네, 천재 씨.”
포르쉐 카이엔을 주차장에 세워놓고 우리는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갔다.
입국 혹은 귀국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입국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재회하여 서로 끌어안거나 하는 풍경이 심심찮게 연출됐다.
“오빠, 근데 피켓이라도 들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글쎄.”
“어떻게 알아봐요?”
“가장 예쁜 금발의 여자애가 자기 딸이라던데.”
“…그거 믿을 만한 정보예요?”
“아무튼 시간 됐으니까 한번 보자.”
오딘이 잘생긴 금발의 미남자인 건 사실이다. 그를 닮았다면 정말로 예쁠 수 있다.
9시쯤 되었을까.
게이트에서 다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일행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자그마한 금발의 소녀와 검은 정장의 중년의 외국인 여인이었다.
“어머! 정말 예쁘다!”
민정이 감탄을 했다.
나 역시 감탄하긴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귀여웠다!
금발에 곱고 하얀 피부, 땡글땡글한 푸른 눈.
오딘의 말마따나 눈에 확 띠게 예쁜 아이였다. 장래가 두려울 정도다.
넉살도 좋은 민정이 마구 손을 흔들어 보였다.
중년 여인도 우릴 발견했는지 이쪽으로 다가왔다.
“킴?”
“예스.”
외국어로 뭐라고 ㅤㅆㅘㄹ라ㅤㅆㅘㄹ라 할까 봐 무서웠는데 다행이다.
그녀는 커다란 트렁크 백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작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벨라?”
벨라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머.”
치명적인 웃음에 민정이 다시 한 번 심장을 직격 당했다.
나는 벨라에게 나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현호 킴.”
“히노.”
“현호.”
“히노.”
“현, 호!”
“히, 노!”
“그만 좀 하세요!”
민정이 내 등을 찰싹 후려쳤다. 외국인 중년 여성이 그걸 보며 웃는다.
“안녕? 난 유민정이야. 민정.”
“민정.”
“왜 또 그렇게 정확해!”
내가 울컥하자 민정은 또다시 내 등짝을 때렸다.
벨라는 우리에게 치마를 살짝 들며 인사를 했다.
“어머, 어머!”
민정의 눈이 하트처럼 변한 것 같았다.
벨라는 어느새 민정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난 벨라의 짐이 담긴 트렁크 백이나 끄는 신세였다.
중년 여성은 벨라와 키스를 하며 작별하더니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우리는 벨라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민정은 벨라와 함께 뒷자리에 탔고 나는 외롭게 운전을 했다.
한순간에 신혼부부에서 아이에게 밀려 뒷전이 된 남편이 되고 말았다.
듣기로 벨라는 올해로 만 아홉 살이라고 들었다.
굉장히 밝고 낯을 가리지 않는 아이라서 민정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뭐, 민정도 워낙 낯짝이 두꺼우니까. 벌써부터 엄마와 딸 같다.
부천의 오피스텔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오르는데, 문득 벨라가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한 걸 민정이 붙잡아주었다.
“어머, 괜찮니?”
말은 몰라도 대충 뜻은 알아들었는지 벨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안색이 굳었다.
걷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가만히 서 있는데 갑자기 넘어질 뻔한 건 이상했다. 어쩌면 저게 오딘이 말한 벨라의 병일 듯했다.
손님방으로 꾸민 방으로 벨라를 안내했다.
“우리 같이 짐 정리하자.”
민정은 트렁크 백에서 벨라의 짐을 풀어서 옷장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을 옷걸이에 걸어 놓고 속옷과 양말은 서랍에 넣는다.
덴마크어로 된 그림책 몇 개는 화장대 위에 놓았다.
그런데 의외의 물건이 트렁크 백에서 등장했다.
“바이올린?”
민정이 놀라 묻자 벨라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린이용으로 된 작은 것이었다.
“한번 켜봐, 켜봐. 응?”
민정이 바이올린은 내밀며 졸랐지만 벨라는 어정쩡하게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가 민정을 말렸다.
“아까 넘어질 뻔한 것도 그렇고 오늘은 좀 피곤한가 봐.”
“아, 그렇구나. 언니가 미안.”
민정은 벨라의 뺨에 쪽 하고 키스를 했다.
둘이 사이좋게 짐 정리를 끝내고 놀고 있을 때, 오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테라스로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벨라는 도착했소?
“예, 말씀대로 예쁜 아이네요.”
-난 거짓말을 하지 않소.
“…….”
-아무튼 벨라의 상태는 어떻소?
“넘어질 뻔했던 걸 잡아주었습니다.”
-…그랬소?
“벨라는 무슨 병을 앓고 있죠?”
-루게릭병이오.
“네?”
무서운 병명이 나오자 나는 깜짝 놀랐다.
잘은 모르지만 근육이 점점 말을 안 듣게 되다가 끝내 숨도 쉴 수 없게 되면서 죽는 무서운 병으로 알고 있다.
이 병에 걸린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있고 말이다.
“그게 유전되는 병이던가요?”
-이 병 환자 중 5%에서 10%는 가족성 근육위축 가쪽경화증이고, 그중 20%의 가족이 21번 염색체에서 원인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확인되고 있다더군.
“…….”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의학지식.
오딘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한지 잘 알려주는 모습이었다.
-이전까지는 증상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는 벨라가 울었소. 왜 우냐고 묻더니, 손가락이 잘 안 움직여서 바이올린을 못 켜겠다고…….
그의 목소리가 너무 괴롭게 들려서 내가 재빨리 말을 끊었다.
“제가 고쳐보죠. 염려 마세요.”
-고맙소.
통화를 끊고 나는 벨라와 민정이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민정아 밥 먹을 때 되지 않았어?”
“아직 10시밖에 안 됐어요.”
“그래? 근데 왜 이렇게 출출하지.”
“우리 벨라도 배고프니?”
민정은 배를 만지작거리는 시늉을 하더니 다시 뭔가를 먹는 시늉을 했다.
벨라는 특유의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잠깐만 기다리렴.”
민정은 휘파람을 불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이 틈이다.
나는 생명의 불꽃을 만들어보였다.
내 손바닥에 나타난 불덩어리에 벨라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놀란 모습도 어쩜 저렇게 귀여울까.
나는 불덩어리는 벨라의 몸에 밀어 넣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란 벨라였지만, 불덩어리가 몸 안에 스며들자 이윽고 놀란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기분 좋지?”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벨라도 굉장히 신기해하며 따라 웃었다.
나는 바이올린을 다시 벨라에게 내밀었다.
망설이는 벨라에게 손짓으로 권유했다.
벨라는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다.
잠시 긴장한 표정이 스쳤다.
이윽고 시작되는 연주.
단조롭지만 아름다운, 어디선가 들어온 적이 있는 선율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벨라는 배시시 웃어 보인다.
나 역시 따라 웃었다.
오딘의 보물과도 같은 딸, 이사벨라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후다닥 달려온 민정이 벨라의 연주를 함께 들었다.
“너무 잘한다, 우리 벨라.”
연주를 끝마친 벨라를 민정이 끌어안고 부비부비 뺨을 맞댄다. 벨라는 꺄르르 웃었다.
생명의 불꽃이 투여된 벨라는 아까와 달리 아주 팔팔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피로까지 전부 날아가 버린 것이다.
민정은 한참을 부엌에서 뭔가를 열심히 했다.
“도와줄까?”
“다 됐어요.”
그녀가 만든 것은 매작과라는 한과였다.
밀가루에 계피, 생강, 설탕, 꿀 등을 넣고 반죽한 뒤에 예쁜 모양으로 꼬아서 기름에 튀기는 과자였다.
“이, 이런 것도 만들 줄 알아?”
“얼마 전에 배웠어요. 손 되게 많이 가요. 오늘 호강한 줄 알아요.”
“우와, 우리 귀요미 아내 덕에 호강한다.”
“히히히.”
뒤에서 살며시 안아주니 민정은 무척 좋아했다.
때마침 그때 벨라의 바이올린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손이 원래대로 돌아와서 신 난 건지 열심히 연주하는 벨라였다.
이게 웬 절묘한 BGM이냐. 아름다운 선율 덕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민정의 심장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뭔가 로맨틱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 이게 뭐지?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야?
뜬금없이 부담에 빠진 나는 끙끙 앓으며 궁리했다.
마지못해 난 말했다.
“오늘 밤에 보답해야겠다.”
퍽!
“큭!”
민정이 힘껏 내 발등을 밟았다.
“뭐예요, 그게! 그리고 내가 허리 저리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해, 했지. 그건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고…….”
“진짜 요즘은 밤이 무섭다고요! 이상하게 능숙해지고 체력도 괴물이고!”
로맨틱은 물 건너갔군.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민정이 슥 허리를 내게 내밀며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해봐요. 아직 연주 안 끝났네.”
“그, 그래.”
역시 보통 여자가 아니다. 누가 현지 친구 아니랄까 봐.
다시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고서 나는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
“…다시요.”
“사랑해.”
“제 이름도 붙여서요.”
“민정아, 사랑해.”
“다시요.”
“사랑해, 유민정.”
“다시…….”
그녀의 얼굴을 흘깃 보았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보였다.
나는 그녀의 고개를 살짝 당기고 키스를 했다.
“사랑해.”
“사랑해요, 오빠.”
벨라는 매작과를 굉장히 맛있게 먹었다. 바삭바삭하게 씹히고 달콤하게 남는 맛이 일품이었다.
먹는 내내 우리는 가금씩 서로를 바라보았다.
계속 보는 바람에 수시로 눈이 마주쳤다. 그때마다 우린 그저 웃었다.
벨라 효과라고 해야 할까.
그날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냐고 말로 다 설명하기는 힘들다.
대범하고 뻔뻔하고 발랄했던 민정은 그날 이후로 왠지 처녀처럼 부끄러움이 많아졌다.
나를 의식하고 수줍어했고, 내가 보는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도 부끄러움 탓에 주저했다.
내 팔을 베고 누워 있다가도, 잠시 후에는 내 팔이 아플까 봐 슬며시 떨어져서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눈 마주치는 걸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보지 않을 때 날 바라보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뭔가가 크게 달라졌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
매일 2개씩 생명의 불꽃을 벨라에게 불어넣었다.
하늘까지 닿는 그 거대한 생명의 나무도 치유해 낸 생명의 불꽃이었다.
벨라는 아주 팔팔했다.
루게릭병 초기 증상이 나타난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장난꾸러기였다. 또래 중에서 가장 활발할 것 같았다.
‘저게 원래 성격이지.’
잘 웃는 밝은 성격에 낯도 안 가리고 남과 쉽게 친해진다.
벨라는 원래 누구보다도 활발한 아이였던 게 분명하다.
하루는 벨라가 나에게 바이올린을 내밀었다.
“한번 켜보라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내 물음에 벨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이올린 켜는 시늉을 했다.
“좋아, 한번 배워볼까?”
나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대고 활로 선을 그으며 소리를 냈다. 이렇게 하는 건가?
끼이익.
벨라가 푸히히 웃었다.
좋아, 이번엔 실패 안 한다.
다시 소리를 내보았다.
끼익!
벨라는 두 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나는 몇 차례나 시도한 끝에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지이이잉―
벨라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나 역시 놀랐다.
‘난 운동신경이 중급 1레벨이나 되는데.’
목인장 수련법도 쉽게 보고 따라했던 나였다.
그런데 바이올린은 올바른 소리를 내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정말 더럽게 다루기 어려운 악기다.
쉽지 않다는 것은…….
‘수련이 된다는 뜻이잖아?’
나는 멍하니 벨라의 어린이용 바이올린을 바라보았다.
운동신경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수련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