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7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74화
42일째.
-운동신경(합성스킬): 몸을 움직이는 요령이 향상됩니다.
*초급 5레벨
술래 둘이 일제히 나를 몰이사냥 했지만 나는 절묘하게 빠져나갔다.
그러자 어린 엘프들이 들고 일어나 원성을 토로했다.
“뭐야, 인간 형 너무 잘해!”
“힝, 도저히 못 잡겠어!”
“치사하게 애들이랑 놀지 말고 위로 올라가!”
“어른 주제에 비겁하다!”
몸놀림이 둔한 나를 도발할 땐 언제고, 이것들이!
애들을 이겨먹는 치사한 어른이 된 나는 하는 수 없이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위쪽으로 올라갔다.
“응? 무슨 일이냐, 킴.”
제이크가 알은체를 했다. 워낙 친해져 이제 ‘인간’에서 ‘킴’으로 나를 부르는 호칭이 통일됐다.
생명의 나무의 위쪽.
추락하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높이!
이곳은 성인 엘프들의 술래잡기 훈련 장소였다.
놀이로서 보급한 술래잡기를 남성 엘프들은 훈련으로 승화시켰고, 그게 재미있어 보였는지 여성 엘프들까지 참여했다.
이제 생명의 나무에서의 술래잡기는 이 마을 전통 의식처럼 되어버렸다.
“애들이 올라가서 놀래. 쳇, 놀자고 달라붙을 땐 언제고.”
“처음엔 고생 좀 하더니 균형 잡는 데 익숙해졌더군. 인간치고는 제법이었다.”
“그래?”
“우리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과 여러 번 싸웠지만 너처럼 균형 감각이 훌륭한 인간은 본 적 없다.”
“기쁜 칭찬이네. 고마워.”
“그래 봤자 인간일 뿐이지만.”
“…….”
“종이 가진 타고난 한계는 어쩔 수 없으니 너무 낙심하지는 마라.”
“아직 낙심 안 했어. 시작도 안 했다고!”
“어디 분발해 봐라. 상대가 여자라면 그나마 해볼 만할 테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남성 엘프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술래인 모양이었다.
“그럼 힘내라.”
파앗!
제이크가 몸을 날려 피했다.
남성 엘프는 잠시 멈칫하며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너도 우리랑 노냐는 눈빛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 엘프는 씨익 웃더니,
팟―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어린 엘프들과는 순발력부터가 달랐다.
***
다 큰 엘프들과 하니 이건 정말 놀이가 아니라 훈련이었다.
난 거의 술래잡기를 하는 내내 술래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니 체력보정의 스킬까지 중급 2레벨로 올랐다. 엘프들을 따라잡으려고 안간 힘을 쓰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인간을 초월했던 내 체력이 더 올라버린 것이다.
보람찬 시간이었다.
시험을 시작한 지 4개월째에 접어들었을 때, 생명의 나무는 이제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생명의 나무가 더 생기를 띠었다.
간간히 보이고는 했던 마른 나뭇잎이 보이지 않고 하나하나 전부 생생하게 푸르렀다.
“이대로라면 2개월 이내로 생명의 나무가 완쾌될 것 같구나.”
연장자 어머니가 한 말에 나는 갈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4개월간 나는 굉장히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정령술(메인스킬): 정령을 소환하여 대자연의 힘을 발휘합니다.
*소환 가능한 정령: 실프, 카사
*초급 4레벨: 소환시간 2시간 45분
-운동신경(합성스킬): 몸을 움직이는 요령이 향상됩니다.
*초급 5레벨
-체력보정(보조스킬): 체력을 비약적으로 강화합니다.
*중급 2레벨: 성인 엘프 여성 수준의 체력을 얻습니다.
봐라. 이 엄청난 성장을.
물론 4개월간 무던히 노력한 결과였지만, 카르마를 쓰지 않고도 이런 스킬 성장을 이뤘다는 면에서 크나큰 이득이었다.
‘좀 더 오래 버텨보자.’
나도 시험을 빨리 클리어하고 집에 가고 싶다. 가족들도 보고 싶고 민정도 보고 싶다.
요즘은 밤마다 딴생각이 들어서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있단 말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
목숨을 위협 받을 걱정 없이 내 힘을 성장시킬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어찌 그냥 흘려보낼 수 있을까?
나는 고민 끝에 어머니들에게 내 생각을 밝혔다.
“이러는 건 어떨까요?”
“……?”
“아시다시피 전 생명의 불꽃을 하루에 2개씩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생명의 나무는 많이 회복됐으니 하루에 하나씩만 투여하고, 다른 하나는 다른 데 쓰는 겁니다.”
“다른 나무라면, 생명의 나무가 될 자질을 가진 어린 나무들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이 생명의 나무가 살아난 상태에서 생명의 나무가 또 하나 더 탄생한다면, 엘프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지!”
“갈색산맥에 생명의 나무가 두 그루가 되면 그땐 우리 엘프의 번영이 시작될 거예요.”
“다른 지역에서 고생하는 엘프들이 찾아오겠네요.”
“갈색산맥이 엘프들의 낙원이 될 거야!”
“그렇게 해요!”
“생명의 나무 두 그루를 만들어보는 거예요!”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져요.”
어머니들의 반응이 뜨겁다.
“생명의 나무가 두 그루가 되는 게 그렇게 큰 이득입니까?”
“그렇다. 생명의 나무는 우리 엘프의 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지. 대자연의 기운이 풍부한 곳일수록 우리는 강해진단다.”
“그렇다면 제 말대로 해보는 게 어떨까요?”
“그래준다면 우리야 고마울 따름이지.”
그렇게 생명의 불꽃 한 개는 다른 나무를 키우는 데 쓰기로 했다.
“네가 킴이냐.”
중년의 엘프 부부가 찾아왔다.
얼굴에 주름이 있는 엘프 남성은 미중년이라 불릴 만한 중후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지구였다면 뿅 갈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을 터였다.
“데릭이라 한다.”
미중년 엘프 데릭은 실제로는 이 마을 최고의 연장자였다.
“호호, 킴은 우리 그이를 처음 보지?”
그랬다.
바로 연장자 어머니의 남편이었다.
엘프 남자들 중에서 짱 먹는 분이라면 이해하기 쉽겠다.
“얼굴을 안 비춰서 미안하군. 인간과 마주하기가 껄끄러워서 그동안 피했던 게 사실이다.”
“인간과 안 좋은 기억이 있으셨나 봐요?”
“대대적인 침공이었지. 싸워 이기긴 했어도, 상처뿐인 승리였어. 뭐, 이젠 240년도 더 된 얘기지만.”
“아이 참, 이제 그만 잊어버리라니까요.”
연장자 어머니는 놀라우리만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역시 자기 남편을 대할 땐 카리스마 대신 애교가 생겨나는구나.
멋지게 나이든 부부의 정다운 모습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한 가득이었다. 나도 민정이랑…….
데릭은 손을 뻗었다.
“우리의 은인이고 가족이니 이제 그런 껄끄러운 감정은 잊어버려야지.”
“감사합니다.”
나는 데릭과 악수를 했다. 그의 손은 굳은살이 가득했다. 전사의 손이었다. 정말 포스가 대단한 사내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난 이 미중년 카리스마 엘프 데릭에게서 남자의 로망을 느꼈다.
“앞으로 생명의 불꽃은 내가 매일 아침 가지러 올 거다. 그걸로 갈색산맥 남서쪽에 있는 소나무의 성장을 촉진시킬 거다.”
“남서쪽이요?”
“5㎞쯤 떨어진 거리다.”
5㎞라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험한 산맥에서 5㎞는 대단히 먼 거리였다. 그 거리를 매일 왕복하겠다니?
“지금껏 늘 그렇게 해오신 건가요?”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소중한 나무니까.”
“당신이 고생해 줘서 우리가 너무 든든해요.”
연장자 어머니가 남편의 곁에서 애교를 부린다. 데릭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준다.
크윽, 멋지다.
남자 중의 남자다!
나는 데릭의 카리스마에 반해 버렸다.
“실례지만 저도 아침마다 함께 동행할 수 있을까요?”
“인간에게는 먼 거리일 텐데?”
“아침에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요. 운동도 되고요.”
“상관없다. 너무 발목 잡지 않게 노력해야 할 거다.”
“예!”
데릭은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볼일을 보러 떠났다.
‘크윽, 멋있어!’
데릭을 배웅한 연장자 어머니는 내게 돌아와 우쭐했다.
“우리 그이 멋지지?”
“네, 완전 반할 것 같습니다.”
내 말을 오해했는지, 연장자 어머니는 나를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오전은 데릭과 함께 5㎞ 거리를 왕복.
오후는 젊은 엘프들과 술래잡기 훈련.
내 일과는 그렇게 자리 잡았다.
“더 빨리.”
앞서 달리며 데릭이 말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스피드를 끌어올렸다. 간신히 그의 보조를 맞춰서 도착했을 때는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이 녀석이다.”
데릭은 자상한 눈길로 눈앞의 소나무를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생명의 나무라고 해서 작은 묘목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이건…….
‘우리나라였으면 어딜 가나 신목 대접을 받겠네.’
길이만 족히 30m는 넘길 듯했다.
생명의 나무가 거대한 탑이라면, 이건 거대한 기둥을 연상케 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세 번째로 소중한 것이지.”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뭐죠?”
“두 번째는 마을의 생명의 나무. 첫 번째는 우리 마을의 아이들.”
“아…….”
바, 반할 것 같다!
나는 중후한 데릭의 얼굴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이런 내 모습을 연장자 어머니가 봤으면 극히 경계했으리라.
“어서 볼일을 보고 가라. 이곳은 위험하니까.”
“위험해요?”
“이 방면으로 괴물들이 자주 침공해 온다.”
“…….”
“북쪽의 인간과 동쪽의 라이칸스로프들이 요즘 시끄럽다지? 하지만 거긴 젊은 아이들로 충분해. 정말로 위험한 곳은 여기니까.”
“어떤 괴물들이 이곳에 나타나죠?”
“언데드.”
“네?”
“죽은 자를 억지로 살려내어 죽지도 살지도 않은 괴물로 만든 것이다.”
“그, 그런 게 존재하나요?”
“인간인 네가 모른다니 이상한 일이군.”
데릭은 도리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날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짓을 하는 건 흑마법을 익힌 인간뿐이다. 240여 년 전의 침공도 그랬고, 내가 인간을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이유지.”
“…….”
“물론 넌 예외다.”
데릭이 내 등을 툭 쳤다. 난 감동을 느꼈다. 역시 반할 것 같아!
아무튼 좀비영화에서나 봤던 그런 괴물이 정말로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럼 언데드들은 죽여도 죽지 않나요?”
“설마.”
데릭이 말했다.
“흑마정을 노리면 된다.”
흑마정?
그러고 보니 이곳 아레나에서는 괴물이나 인간이나 마나가 응집된 마정이 몸속에 있다고 했다.
언데드들의 흑마정이 그 마정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흑마력으로 인위적으로 마정을 만들어 죽은 시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거다. 그것만 부수면 된다. 보통은 머리에 있지.”
데릭은 내 등을 쳤다.
“가라. 놈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내가 말했다.
“저도 싸우고 싶습니다.”
“안 된다.”
데릭은 곧바로 잘라 말했다.
“넌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위험한 일은 우리에게 맡기면 돼.”
“무모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
“여긴 확인하는 곳이 아니야.”
그동안 생명의 나무 위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올린 스킬 레벨.
그리고 총기제작자 닐슨 아슬란에게 받은 권총 두 자루.
난 지난 회차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 실전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한번 돌멩이를 던져보시겠어요?”
난 돌멩이를 주워 데릭에게 건네주었다.
“어디로?”
“아무데나요.”
그러면서 나는 닐슨 H2를 한 정만 소환해 오른손에 쥐었다.
내 권총을 의아하게 쳐다본 데릭은 시키는 대로 돌멩이를 앞을 향해 던졌다.
던져진 즉시, 나는 권총을 발사했다.
타앙― 빠각!
돌멩이가 채 멀리 날아가기도 전에 산산조각이 났다.
10m 이내에서 명중률 100%를 발휘하는 사격 스킬이 효과를 발한 순간이었다.
데릭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