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6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69화
스마트폰의 진동음에 민정은 잠결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옆에는 값비싼 선물을 준 남자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부스스 뜬 눈으로 폰 화면을 바라본 민정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박진성 회장: 매일 10억씩. 금액이 너무 크니까 스위스에 계좌를 따로 개설해 둬]
잠이 확 달아났다. 그제야 그게 자신의 스마트폰이 아님을 깨달았다.
민정은 후다닥 폰 화면을 끄고 내려놓았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가슴 떨려서 민정은 진정할 수가 없었다. 민정은 현호의 품에 파고들었다.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야 해. 저건 현호 오빠의 일이야.’
하지만 자꾸만 신경 쓰이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매일 10억씩이라니?
박진성 회장이라니?
스위스 계좌?
진성그룹에서 왔다는 남자들과 실랑이를 벌였던 그날 밤의 일이 다시 떠오른다. 그럼 정말 그 박진성 회장이란 말인가?
‘오빠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곤히 잠든 현호의 얼굴을 보며 민정은 불안함을 느꼈다.
민정은 더 깊이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으음…….”
현호는 잠결에 그녀를 안아주었다.
‘오빠, 안 돼요.’
민정은 현호의 따스한 체온을 느꼈다.
‘그때 했던 말 취소할래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김현호에게 호감이 든 이유는 그가 남들과 다른 대단한 남자라고 생각되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두려웠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남자일까 봐. 그의 곁에 있기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할까 봐.
이제는 그저 호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현호가 좋았다.
비싼 선물, 장밋빛 미래, 모두 필요 없었다. 그저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 있었으면 했다.
민정은 정말로 그것만을 원했다.
***
아침 햇살에 눈을 떴는데, 먼저 일어난 민정은 어쩐지 피곤해 보였다.
“잠 제대로 못 잤어?”
“잠을 잘못 잤나 봐요. 도중에 깨서요.”
“그래?”
씻고 옷을 입고 스마트폰을 확인해 봤는데, 박진성 회장에게 온 메시지가 보였다.
‘매일 10억? 그럼 주급은 70억이네.’
그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는 뜻이리라.
아무튼 일주일에 70억씩!
일개 개인이 받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박진성 회장의 말대로 스위스 은행의 계좌를 개설하는 게 좋아 보였다. 듣기로 스위스 은행은 고객의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한다고 하니 말이다.
‘스위스가 덴마크랑 가깝던가?’
스위스에 가는 김에 덴마크도 한번 들려서 오딘을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러고 보니 오딘에게도 한번 연락을 해봐야겠군.
“오빠, 식사하세요.”
“응, 땡큐.”
식탁에 앉아 민정이 차려준 식사를 했다. 오늘은 소고기와 계란 두부 등이 들어간 완자탕이었다.
“우와, 맛있겠다.”
“많이 드세요.”
“이거 만드는데 손이 되게 많이 갔겠다. 너무 고생하는 거 아냐?”
“연습 삼아 만드는 건데요 뭐.”
나는 민정을 빤히 바라보았다.
민정은 내 시선에 흠칫했다.
“왜요?”
“아니, 오늘따라 왜 저기압인가 해서.”
“제가요? 아니에요.”
“그래? 그럼 됐고.”
평소의 발랄하고 농담도 곧잘 하는 민정답지가 않아서 이상했다.
‘혹시?’
어떤 추측이 떠올랐다.
설마 아니겠지 싶었지만, 한번 의심을 해보니 오늘따라 민정이 피곤해 보이는 것도 설명이 되었다.
한번 확인해 볼까?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시 한 번 무언가를 확인하는 시늉을 했다. 눈동자는 화면을 향하지만, 민정의 반응을 주시했다.
역시나.
민정은 나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스마트폰의 내용이 신경 쓰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민정아…….’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어쨌거나 모른 척하고 식사를 했다. 완자탕은 맛있었다. 역시 훌륭한 솜씨였다.
그런데 문득 민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죄송해요 오빠.”
민정은 내 곁에 바짝 다가와서 말했다.
“뭐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간밤에 잠결에 실수로 오빠 폰 봤어요. 저한테 온 문자인 줄 알고요.”
“휴우.”
비로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민정을 와락 끌어안아주었다.
“오, 오빠?”
“말해줘서 고마워.”
“오빠…….”
그제야 민정도 상황을 알아차린 듯 울먹거렸다.
“오빠 폰 봐서 죄송해요.”
“아냐, 잠결에 실수했을 뿐인데.”
“죄송해요, 히잉. 그 뒤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많이 신경 쓰였지?”
“네.”
민정은 내게 바짝 붙으며 속삭였다.
“오빠, 저 미운 거 아니죠?”
“에이, 아니야.”
나는 민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박진성 회장에게서 온 문자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해명했다.
“박진성 회장하고는 사업관계야. 내가 친구들이랑 간단히 창업을 했는데, 우리 아이디어가 우연히 박진성 회장의 관심을 받아서…….”
물론 이번에도 엉뚱한 스토리를 펼치기 시작한 나였다.
현지에게 말했던 창업설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이야기니 변명하기 좋다고 여겼다.
“그럼 오빠 사업 성공해서 부자 되는 거예요?”
“그럼. 이미 부자지.”
“그래서 어제 그런 비싼 선물을 사온 거네요?”
“음, 그건 내가 호구라서 그렇지 뭐.”
“히히히, 아니에요. 능력 있는 남자는 호구 아니에요.”
“이미 늦었어. 난 호구야.”
“아이, 오빠아아.”
민정은 식사 내내 내 옆에서 아양을 떨었다.
***
오전 수업이 있다는 민정을 학교로 데려다 주고, 바로 산장으로 출근했다.
언제나처럼 박진성 회장에게 생명의 불꽃을 주었다.
“말씀대로 스위스 좀 다녀오려고요.”
“다녀와.”
“2박 3일로 다녀올게요.”
“계좌 하나 개설하는데 무슨 2박 3일이야? 이번엔 난 못 따라가.”
“관광도 하고 덴마크도 다니 다녀오려고요.”
“아, 촌놈, 그놈의 관광…….”
“외국 많이 다녀봐서 좋으시겠네요. 아무튼 그냥 하루 이틀은 불꽃 굶으세요.”
“에잉, 언제 갈 건데?”
“글쎄요. 일단 오딘에게 전화해 보고요.”
“마음대로 해. 하루 이틀 정도는 걸러도 되니까.”
“웬일이세요?”
“어제 검진 받아봤는데, 암세포가 확실하게 줄었더라. 의사 말이 이런 추세로 암세포가 줄면 20일 이내에 완쾌될지도 모르겠대.”
“잘됐네요.”
“완쾌되면 다시 한 번 크게 사례할 테니까 그 점은 염려 마.”
“염려 안 해요. 대한민국 최고 갑부인데 어련히 잘 챙겨주시겠어요.”
“흐흐, 녀석. 넌 인마 돈 벌 길이 널리고 널렸어.”
나는 무슨 뜻이냐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박진성 회장이 말했다.
“미래자동차 한만영 회장도 요즘 건강이 안 좋대. 우리 나이 되면 다들 그렇게 고장 나는 거지 뭐.”
“아!”
정말로 돈 많은 부자 중에서 나이 들어 병든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였다.
‘이러다 진짜 엄청난 부자가 되겠네.’
수백억대가 아니라 수천, 아니, 수조 원의 재산을 축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제 능력에 대해서는 그냥 비밀로 해주세요.”
“왜?”
“돈 많아서 뭐해요? 괜히 귀찮게 될 것 같아요.”
“하기야 그도 그렇지. 여기저기서 노인네들이 귀찮게 찾아와서 시험 준비에 방해될지도 모르고.”
“그렇죠.”
“알겠어. 내 함구하지.”
“감사합니다.”
“뭘, 살려줘서 내가 고맙지.”
그날은 순간이동과 투과 두 스킬을 테스트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무 앞에서 순간이동을 하니, 정말로 나무를 통과하였다.
처음에는 조금 현기증이 느껴졌는데, 쿨타임 1시간이 지날 때마다 계속 시도해 보니 익숙해졌다.
투과의 경우, 돌멩이를 위로 던진 후에 스킬을 펼쳐서 테스트했다. 돌멩이가 내 몸을 통과하여 땅에 떨어졌다.
‘이건 조심히 써야겠다.’
투과의 지속시간은 3초.
3초 동안 모든 것이 내 몸을 그냥 통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3초가 끝났을 때, 뭔가가 내 몸을 다 통과하지 못했다면?
그럼 내 몸 안에 그 뭔가가 들어 있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정말 웬만하면 쓰지 말자.’
아주 심각한 위기 상황이거나,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 사용해야겠다.
아니면 스킬 레벨이 높아져서 효과 지속 시간이 늘어나던가. 지속시간이 길면 안심하고 펼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수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내 기다렸던 전화가 왔다.
-김현호 씨?
“예, 오딘 씨.”
노르딕 시험단의 오딘이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전화하는 거요. 무사해서 다행이군.
“지금 끝나신 거예요?”
-그렇소. 약 40일간 아레나에 있었소. 그런데 시험은 클리어했소?
“예.”
-휴우, 정말 다행이군!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응? 몰랐소? 토벌은 실패했소.
“실패요?”
-이상하군. 이번 4회차 시험이 라이칸스로프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소?
“관련이 아주 없지는 않았죠. 하지만 라이칸스로프와 싸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패라니, 오딘 씨가 보낸 군대를 격퇴할 정도로 실버 씨족이 강했던가요?”
-실버 씨족이 아니오. 충성심이나 실력이나 믿을 만한 봉신기사에게 병사 3백을 주어 토벌 보냈소. 그깟 라이칸스로프는 문제도 아니었소.
“그럼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바스티앙 자작가를 기억하시오?
“예, 폭정으로 영지의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그놈들에게 당했소.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봉신기사에게 들으니, 불귀의 숲에 진입했는데 뜬금없이 바스티앙 자작가의 군대가 나타나서 기습했다더군.
“……!”
나는 실버 씨족과 바스티앙 자작가를 연계 지어 생각해 보았다.
아레나의 상황에 대하여 전보다 훨씬 많은 것이 설명되기 시작했다.
-일단 만나서 얘기하는 게 어떻소?
“그러죠, 제가 언제 찾아뵈면 되겠습니까?”
-아무 때나 상관없소. 아차, 아니지. 나도 준비 시간이 따로 필요하겠군.
“준비 시간이요?”
-약속을 못 지켰잖소. 다른 걸로 그 보상을 하고 싶은데, 혹시 필요한 아이템이 있소?
“예?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박진성 회장에게 받은 돈도 있고, 무엇보다 약속을 어겼으니 내 명예 문제요.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당신이 죽을 수도 있었잖소?
아니, 죽을 일은 없었겠지.
말은 안 했지만, 엘프 마을에서 한가롭게 보냈거든.
-1,000카르마 이내에서 뭐든 들어줄 테니 말만 하시오.
“처, 천 카르마? 그렇게나?!”
-적지는 않으나, 나에게는 그리 큰 부담도 아니오.
“그럴 리가요. 시험자에게 카르마는 아무리 적은 양도 소중하잖습니까.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어차피 오딘 씨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중에 또 올 겁니다.”
-그냥 한번 말해보시오. 혹시라도 내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아레나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면 굳이 카르마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 그럼…….”
나는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소총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소총?
“예, 제가 모신나강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아서요.”
-모신나강이라. 상당한 구식 소총이군. 불편할 만도 하오.
“역시 소총은 카르마를 써서 아이템화하지 않고서는 구하기 어렵겠죠?”
말해놓고도 나는 부끄러워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딘은 웃으며 답했다.
-아니, 그거라면 마침 아레나에서 구할 방법이 있소. 카르마를 쓰지 않아도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