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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5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0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59화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 달린 끝에 코펜하겐의 중심부에 있는 한 거리에 도착했다.
“스트뢰에 거리입니다.”
스튜어디스 이수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유럽에서 가장 긴 보행자의 거리이자 코펜하겐의 쇼핑 중심지라고 한다. ‘스트뢰에(Strøget)’라는 말 자체가 덴마크어로 ‘걷다’라는 뜻이라나?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서 옛 모습이 그대로 간직된 거리였다. 19세기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수현을 따라다니며 나는 관광 겸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이수현은 그야말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더니 헤어숍을 찾아가 내 머리부터 깔끔하게 자르고, 브랜드 매장을 끌고 다니며 투 버튼 슈트 한 벌과 셔츠, 구두를 샀다. 평상시에 입을 수 있는 사복도 마구 사재껴서 내 손에 쇼핑백이 한가득 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로밍을 한 스마트폰에 메신저가 도착했다.

[유민정^^*: 오빠! 골랐어요. 비교적 싼 것 중에서 튼튼한 걸 골랐어요. 저 간이 작아서 비싼 건 못 고르겠어요.ㅠㅠ]

민정이 보내준 사진 속 손목시계는 백만 원대의 스위스제 브랜드의 시계였다. 확실히 튼튼한 품질로 유명한 브랜드이긴 했다.
‘의외네.’
나는 피식 웃었다.
신 난다고 값비싼 명품을 권유할 줄 알았는데, 경제적인 개념을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나: ㅇㅋ 지금 사러 간다!]
[유민정^^*: 사고서 사진 찍어 보내줘요]
[나:ㅇㅇ]

쇼핑의 거리라 그런지 그 시계 브랜드의 매장도 근처에 있었다. 물론 시계는 내 돈으로 구입했다.
그나저나 지금껏 사재낀 옷들은 가격이 한두 푼이 아닐 텐데?
“이것들은 다 회장님이 사주시는 건가요?”
“네, 제 카드 아니니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이수현. 민정이만큼은 아니어도 귀여운 여자였다.
고가 브랜드의 슈트는 확실히 착용감부터가 달랐다. 슈트는 불편한 옷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에 맞는 제대로 된 슈트를 입으니 어떤 옷보다도 편안했다.
‘이게 나라니!’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감상하며 나는 감탄했다.
체력보정의 힘인가.
탄탄한 어깨와 군살 없는 복부, 날렵한 허리, 길고 튼튼한 다리가 몸에 잘 맞는 슈트로 인해 강조되어 있었다.
이렇게 멋진 디테일이라니, 지금이 내 평생 가장 멋진 순간이리라.
“정말 확 바뀌셨네요.”
이수현도 함께 보며 감탄을 하는 눈치였다.
“좋은 옷으로 잘 골라주셨네요. 저 때문에 고생하셔서 어떡하죠?”
“아닙니다. 몸이 워낙 좋으셔서 재미있었어요.”
어느덧 해가 지고 저녁 7시가 되었다.
곧 있으면 약속 시간이었기에 이제 가봐야 했다.
스트뢰에 거리에서 나온 우리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호텔 앞에서 체크인을 한 이수현은 키 카드 한 장을 나에게 주었다. 카드에는 NO.2001이라고 쓰여 있었다. 20층에 있는 방이라는 뜻이겠지.
호텔 지하 1층 레스토랑에 나를 데려다 준 이수현은 작별을 고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약속한 분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돌아가시게요?”
“네, 이 호텔에 체크인했거든요. 그럼 이만.”
그렇게 이수현은 나에게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한 뒤에 사라졌다.
‘아…….’
조금 아쉬웠다.
그녀에게 어떤 감정이 생긴 게 아니다. 난 지금 사방에 외국어 쓰는 외국인밖에 없는 곳에 혼자 있는 것이다!
“현호 킴?”
때마침 레스토랑의 남자 종업원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업원은 뭐라고 하며 나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종업원은 레스토랑 가장 안쪽의 룸으로 나를 안내했다.
노크를 하자 안에서 젊은 사내의 음성이 들렸다.
“들어오시오.”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말이 아니었다.
아니,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였다. 그러나 나는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하나뿐이었다.
‘아레나의 언어다!’
숲에서 마을 주민들이 쓰던 그 언어였다. 룸 안의 남자는 나와 같은 시험자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반갑소.”
금발의 미남자였다.
명문가의 귀공자라는 이미지에 이처럼 잘 어울리는 남자는 없으리라 싶었다.
나이는 나보다 약간 더 많을 것 같았다. 물론 서양인은 더 나이 들어 보이니 듣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시험자 김현호입니다.”
“오딘이오.”
오딘?
북유럽 신화의 그 오딘?
“코드명 같은 겁니까?”
“하핫, 그렇소. 아레나에서 쓰는 내 이름이기도 하지.”
“그렇군요. 오딘 씨라 부르겠습니다.”
“그러시오. 그나저나 회장으로부터 사정을 들었소. 이제 겨우 3회차인데 난처한 상황에 처하셨다고.”
“예.”
“당신을 돕는 것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오.”
아리송한 말투를 쓰는군.
저 말투에 말려들고 싶지는 않다.
“쉽다는 건 제가 3회차에 불과해서 시험의 난이도가 오딘 씨의 입장에서는 어려울 게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소. 그럼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 것 같소?”
아기 천사도 그렇고 정말 퀴즈 좋아하는 인간이 많군.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4회차에서 무슨 시험을 받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겠죠.”
“맞소.”
오딘은 마치 기특하다는 얼굴로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낙심은 마시오. 나는 어떻게든 당신을 돕고 싶으니까.”
박진성 회장이 지불하기로 한 대가 때문일까?
글쎄.
대가로 줄 돈이 100억 원이라고 했지.
하지만 어쩐지 오딘이라는 이 남자에게 100억은 그리 큰 돈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도와 말투에서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시험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음에도 전혀 그늘이 없는 모습에서 거물의 분위기가 풍겼다.
“난 18회차 시험자요.”
18회차?
의외였다.
그럼 19회차를 넘긴 유지수 팀보다도 밑이 아닌가.
내 생각처럼 거물이 아니었단 말이야?
“그리고 한 번도 시험에 실패한 적이 없었지.”
“아!”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번도 실패의 패널티를 짊어지지 않았고, 매번 성공해서 보상을 받았다면 엄청난 강자가 됐을 것이다.
“아레나에서 김현호 씨가 계시는 위치는 아마 불귀의 숲과 갈색 산맥의 경계라고 생각되오.”
“불귀의 숲이요? 그 숲이 불귀의 숲입니까?”
“최근에 그런 명칭이 붙었소. 그 숲에 간 사람은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더군. 솜씨 좋은 모험가나 괴물을 사냥하는 용병들도 못 돌아오는 경우가 빈번해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소.”
돌아오지 못한다?
그 순간 나는 실버 씨족이 떠올랐다.
“목장인가…….”
“목장?”
무심코 중얼거린 내 말에 오딘이 궁금해했다.
굳이 숨길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3회차 시험에서 겪을 일을 들려주었다.
오딘의 안색이 굳었다.
“그게 정말 라이칸스로프요?”
“그렇습니다. 은빛 털을 가진 놈들이었지요.”
“그건 절대로 보통 라이칸스로프가 아닌데. 한국 아레나 연구소가 어째서 오판을 했는지 이해되는군.”
나는 이어지는 오딘의 설명을 잠자코 기다렸다.
“라이칸스로프는 인간과 동등한 지능을 지녔고 심지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있소. 이 점만 들어보면 인류에 강대한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소?”
“그렇군요.”
나도 동의했다.
놈들이 인간으로 변신해서 인간의 사회에 스며든다면?
인류 사회의 어둠 속에서 기생하며 번식하고 힘을 기른다면?
그렇게 상상해 본다면 라이칸스로프는 어떤 괴물보다도 인류의 위협이 될 공산이 컸다.
“하지만 라이칸스로프는 생각보다 위협적인 괴물이 아니오. 왜인 줄 아시오?”
나는 실버 씨족의 수장 레온 실버를 떠올렸다.
인간의 무기인 활과 방패를 쓰며 우리를 심리적인 부분부터 공략해 왔다.
레온 실버를 떠올리자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인간의 문물과 생활방식을 배척하고 맹수로서의 본성을 더 추구하는 게 아닐까요? 보통은…….”
“하하핫!”
오딘은 유쾌하게 웃었다.
“틀렸나요?”
“천만에. 완전히 정답이오. 당신은 정말 똑똑하군.”
나는 안도했다.
적어도 도와줄 가치도 없는 무능한 애송이 시험자로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얘기를 들어보니 당신의 다음 시험이 무엇일지 대충 짐작이 되는군.”
“경청하겠습니다.”
“그 라이칸스로프 씨족이 관련된 시험일 가능성이 매우 높소.”
“……?”
이미 불귀의 숲에서는 탈출했는데?
이제 와서 또 그 숲에 들어가 실버 씨족과 싸우라는 시험이 나오겠는가?
“첫 시험이 무엇이었소?”
“레드 에이프를 죽이는 시험이었습니다.”
“2회차 시험은?”
“…레드 에이프 부족으로부터 일주일간 살아남는 시험이었습니다.”
“보통 그런 식이오. 한 번의 시험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시험으로 연계되는 경우가 많지. 마치 인연과도 같소.”
“……?”
“잠깐 만나고 헤어졌다고 그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니잖소. 시험도 비슷하오.”
인연이라……. 동양적인 사상을 잘 알고 있는 백인이군.
“그럼 얘기가 쉬워지는군. 당신의 4회차 시험이 무엇일지는 모르나, 나는 두 가지 도움을 주겠소.”
“말씀하십시오.”
“첫째로 군대를 보내 실버 씨족을 토벌하겠소.”
“…예?”
군대?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오딘은 씨익 웃었다.
“내 소개가 너무 부족했음을 인정하겠소. 나는 한스 오딘 백작이오.”
‘백작이라니!’
나는 경악하여 입을 쩌억 벌렸다.
놀랍게도 오딘은 아레나에서 귀족의 신분을 획득했다. 백작이라는 높은 작위와 다스릴 영지를 소유한 것이다.
그러자 나는 ‘목장’이 떠올랐다.
“실례지만 혹시 그곳에서 높은 세금을 징수한다는 영주가…….”
“오우, 천만에.”
오딘은 손을 흔들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건 이웃 영지의 바스티앙 자작가 얘기요. 난 그런 불명예스러운 짓을 하지 않소.”
“죄송합니다.”
“아니오. 시험자들 중에서 아레나의 사람들을 벌레목숨처럼 여기는 개자식도 많으니까.”
나는 내심 찔렸다.
시험 클리어를 위해 마을 주민 전부를 미끼로 갖다 바친 전적이 있으니까.
“사람을 해치고 몸속에서 마정을 빼가는 쓰레기 살인마들이 있소. 특히 중국의 시험자들이 으레 그러더군. 돈에 미친 새끼들이야.”
“사, 사람에게도 마정이 있습니까?”
나는 기겁하여 물었다.
오딘이 말했다.
“당연하잖소. 사람도 많은 마나를 보유한 생명체의 하나요. 마나가 응집되어서 마정이 갖고 있지.”
오딘은 분개해하며 열변을 토했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차세대 에너지원인 마정 획득에 열을 올리며, 시험자들에게 아레나 사람을 사냥해서 마정을 얻는 것을 권장했다.
“중국 놈들은 실수를 하는 거요. 당장은 그따위 짓으로 마정을 잘 모으고 있지만, 결국은 힘을 가진 시험자들을 기꺼이 살인을 할 수 있는 놈들도 키우고 있는 거요.”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카르마 보상으로 강한 힘을 얻는 시험자가 이득을 얻기 위해 살인을 하는 걸 익숙하게 여기면 어찌 될까?
“이야기가 딴 데 샜군. 아무튼 군대를 보내 실버 씨족을 토벌케 하겠소.”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유용한 아이템을 하나 선물하는 게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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