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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5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3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55화

 

박진성 회장과 근로계약서 2통을 작성했다.
하나는 시험자와 스폰서로서 맺은 진짜 계약. 주급 7억의 초대형 계약으로, 저 어마어마한 주급을 매주 월요일에 지급받기로 했다. 물론 성과에 따라 추가금을 지불한다는 옵션이 붙어 있었다.
또 하나는 가짜 계약서였다.
이건 순전히 내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근로계약서였다. 내가 진성그룹에 취직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엄마와 누나에게 보여주려는 계약서로, 내가 회장의 경호원으로 연봉 5,400만 원으로 설정되었다.
이 가짜 계약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 그제야 엄마와 누나의 의심이 사라졌다. 그리고 현지의 애교는 더 심해졌다.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어째 엄마는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들한테 가게 물려주고 은퇴하고 싶었는데…….”
“엄마, 미안해. 이 아들의 운명은 닭강정이 아니었나 봐.”
“어휴, 그럼 가게는 현지에게 물려줘야겠다.”
나에게 커피를 가져다주며 애교를 떨던 현지가 화들짝 놀랐다.
“나?”
“그래, 우리 아들은 버젓한 직장에 취직했으니까 이제 우리 집에 남은 백수는 너뿐이잖니.”
“백수 아니야! 나 취직할 거야!”
“현지야, 네 학벌로 보나 토익점수(400점)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취직은 글렀잖니.”
“할 수 있어! 아니, 그리고 학벌이랑 토익은 그렇다 쳐도 내 성품이 어때서?”
“힘든 일 하기 싫어서 잔꾀 부리잖니.”
“이씨! 나 취직할 거야! 취직할 수 있단 말이야!”
“잘 생각해 보렴. 네가 설령 취직한다 해도 변변찮은 중소기업에서 연봉 2천을 받는 정도겠지? 그럴 바에는 그냥 엄마 가게 물려받는 게 어떠니?”
“다, 닭 장사는 싫어. 난 커리어우먼 될 거야.”
현지의 입에서 ‘커리어우먼’이란 말이 나오자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누나 역시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엄마는 현지의 옆에 가까이 앉아서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지야, 잘 생각해 보련? 너 명품 좋아하지?”
끄덕.
“좋은 차 몰고 다니면서 돈 펑펑 쓰며 놀고 싶지?”
끄덕끄덕.
“그럼 네가 선택해야 할 진로는 불경기에 언제 망할지 모르는 중소기업의 경리일까, 아니면 불티나는 닭강정 가게일까?”
“그, 그게…….”
현지의 얼굴이 당혹이 어렸다.
“일 좀 힘들면 어떠니? 닭 장사면 어때? 그렇게 번 돈으로 좋은 옷 입고 좋은 가방 매고 해외여행도 다닐 수 있는데.”
“하, 하지만 난…….”
“잘 생각해 보렴. 어떤 일을 택해야 10년 뒤에 후회하지 않을까?”
“그래, 넌 머리가 나빠서 그냥 속편하게 몸을 쓰는 일이 어울려.”
누나가 냉혹하게 동의한다.
하여간 엄마나 누나나, 조금은 현지를 생각해 줘야지.
내가 말했다.
“그래, 현지야. 닭장사의 세계는 네게 맡길게. 낮에는 닭강정 볶는 여자, 밤에는 잘나가는 클럽녀로 변신! 얼마나 좋아?”
난 누구보다도 현지를 생각하는 오빠다.
“흐아아앙! 공부할 거야! 공부해서 좋은 데 취직할 거야!”
현지는 울면서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웃으며 데굴데굴 굴렀다.
가여운 것, 그래도 다 뿌린 대로 거둔 법이란다. 좀 열심히 살지 그랬니?
“조금만 더 설득하면 될 것 같은데.”
엄마가 독사처럼 눈을 빛냈다.
“대학 졸업하면 용돈 끊을게. 돈 필요하면 엄마 가게에서 알바 하라고 해. 그렇게 천천히 가게 일에 익숙해지게 만들면 결국은…….”
청출어람. 누나는 그보다 더 독사처럼 치밀한 음모까지 제시했다.
“어머, 좋은 생각이다 얘. 돈 맛을 한번 보고나면 쥐꼬리 같은 월급 받고 살 생각은 못하지.”
유전자가 99.9% 일치하는 모녀를 보며 나는 부르르 떨었다. 저 두 사람의 표적이 내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닭강정을 볶는 현지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

주말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산장으로 출근했다. 생명의 불꽃을 박진성 회장에게 줘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 퇴근은 내 자유이니 아무 불만 없었다. 무엇보다 주급이 7억이거든. 불만 같은 게 있을 리가 있나.
그 밖에도 박진성 회장은 내가 부탁하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모신나강의 7.62㎜ 탄이 더 필요하다고 하자 곧바로 한국 아레나 연구소에 연락해서 탄 몇 박스를 가져오게 했다.
격투기를 배우고 싶다고 하자 자신을 수행하는 경호원들 중 한 명을 붙여주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린 28세였는데, 전국체전 고교복싱 동메달 출신에 지역구의 무에타이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는 인재였다.
“기초운동은 필요 없으시겠네요.”
인간의 한계까지 강화된 내 몸을 본 경호원 최혁은 살짝 질린 얼굴로 말했다. 이해한다. 작게 쪼개진 잔근육들을 보면 나 스스로도 놀란다.
“기본자세부터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최혁은 내가 흉내만 내던 잽 동작을 교정해 주었다.
운동신경의 효과로 나는 올바른 잽 동작을 체득하였다.
잽에 이어 스트레이트와 기본적인 풋워크도 배웠다. 그것을 날이 어두워지도록 반복하며 연습했다. 밤에도 태조산에 올라가서 새벽까지 반복하며 연습했다.
다음 날, 내가 풋워크를 하며 잽과 스트레이트를 하는 걸 본 최혁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자, 잘하십니다.”
“그래요?”
“그래도 싸울 때 반사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매일 꾸준히 반복하셔야 합니다.”
“네.”
그날은 최혁이 특별히 가져와 설치한 샌드백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치며 연습했다. 보통 그렇게 심하게 하면 주먹이 상하지만, 내 주먹은 체력보정 덕분에 멀쩡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생명의 불꽃을 주면서 나는 박진성 회장에게 물었다.
“최혁이라는 경호원 말이에요. 제가 시험자라는 걸 알아도 되는 거예요?”
“알고 있으니까 상관없어.”
최혁은 그냥 경호원이 아니고 제3비서실 소속이라고 한다.
제3비서실은 외부에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최혁 같은 무예인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날 찾아왔던 이정식이라는 사람 직책이 제3비서과 실장이었지.’
그제야 수긍한 나는 안심하고 최혁에게 배웠다.
그날은 글러브와 헬멧을 끼고 간단하게 스파링을 했는데, 나는 배운 풋워크와 잽, 스트레이트만으로 최혁을 밀어붙였다.
기술면에서는 확실히 밀려서 제대로 맞은 횟수는 내가 더 많았다. 하지만 체력보정 초급 5레벨로 맷집은 물론이고 순발력이나 반사 신경도 압도적이었기에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끝내 무승부로 만든 최혁이 대단한 것이었다.
내가 밀어붙이긴 했어도, 복싱시합이었다면 최혁이 더 많은 포인트를 땄겠지.
“디펜스만 제대로 배우셔도 제가 도저히 이길 수 없게 되겠군요. 그래도 아직 배우실 게 많으니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그 후로는 블로킹을 배워서 최혁의 일방적인 공격을 막는 연습을 했다. 블로킹의 종류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저녁이 되자 내 애마가 된 포르쉐 카이엔을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월요일은 주급이 입금되는 날이었지?’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뱅킹에 접속했다. 그리고 잔고를 확인해 보니…….
‘허억!’
아드레날린이 극도로 분비되는 기분이 바로 이러할까? 잔고 액수를 보며 나는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10억.
박진성 회장을 만나 생명의 불꽃을 준 지 5일째였는데 입금된 돈은 2배인 10억이었다.
나는 기겁해서 박진성 회장에게 전화했다.
박진성 회장 같은 거물이 내가 전화한다고 과연 받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곧바로 받았다.
-어, 무슨 일이야?
“불쑥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통화 가능하십니까?”
-괜찮아. 자네 통화는 언제든지 받아야지. 오늘 돈 받은 것 때문에 전화한 게야?
“예, 너무 많아서…….”
-오늘 검진 받았어.
그 한마디에 약속보다 많은 금액을 받은 이유가 설명되었다.
박진성 회장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암세포 전이가 멈췄다는군. 멈춘 것뿐만이 아니고 약간이지만 줄어들었다는군. 좀 더 지켜봐야 확실해지지만, 아무튼 낫고 있는 건 확실해.
“축하드립니다.”
-내가 아주 기분이 좋아서 더 준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대신 주급을 계속 2배로 주겠다는 뜻은 아니야. 노르딕 시험단의 일도 있고 나도 자네 때문에 지출이 꽤 되거든. 이해하지?
“무, 물론입니다.”
연구소에서 날 빼낸 일도 있고, 노르딕 시험단의 도움을 받기로 약조한 것도 있다. 이 기세라면 나로 인해 들어가는 액수가 연간 5백억이 족히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섭섭할 필요 없어. 내가 확실히 낫기만 하면 자넨 내 은인이야. 이 진성그룹 박진성의 은인.
“전혀 섭섭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충분합니다.”
-그래그래. 아무튼 수요일은 덴마크 가기로 했으니까 준비 잘 하고.
“예, 염려 마세요.”
-그럼 내일 보지.
그렇게 통화가 종료되었다.
나는 스마트폰의 모바일 뱅킹 화면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쉽나?’
남들은 평생 모으기 힘든 돈이 닷새 만에 생겼다. 이게 현실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분명히 눈앞의 화면에 찍힌 액수는…….
“10억?!”
“으악, 깜짝이야!”
뒤에서 울려 퍼진 경악한 외침에 나도 덩달아 화들짝 놀랐다.
‘뭐야?!’
나는 급히 뒤돌아보았다.
…현지였다.
양손에는 내 간식거리라고 커피와 단팥빵이 가지런히 담긴 쟁반을 든 채였다. 이 토익 400점짜리 여동생, 정말 지극정성이구나.
“너, 너 뭐야?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어?”
“나 방금…….”
현지는 넋이 나간 얼굴로 대답한다.
“아, 진짜, 컴퓨터가 있는 혈기왕성한 남자의 방은 함부로 들어오는 게 아니란다. 일단 노크를 한 다음에 눈을 질끈 감고 들어와야지!”
“근데 방금 10억…….”
“10억은 무슨 놈의 10억?”
“그거 오빠 스마트폰에 10억…….”
“이거? 에이, 하하하. 이거 게임머니야. 이 오빠가 공무원 시험 준비 하는 동안 공무원 대신 맞고의 달인이 되었거든.”
“시민은행이라고 찍혀 있는데…….”
“잘못 봤겠지. 자자, 간식 땡큐. 이거 주고 얼른 나가렴. 훠이, 훠이.”
그러자 안드로메다로 떠나 있던 현지의 넋이 되돌아왔다.
요것은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고 말했다.
“누굴 모바일 뱅킹 화면도 못 알아보는 바보로 알아?”
“…….”
“보여줘 봐. 그거 10억 맞지?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현지는 날렵하게 내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최혁의 잽보다 빠른 손놀림이었다.
“세상에… 세상에……! 진짜 10억이야. 진짜 10억!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10억이야! 어떡해, 어떡해!”
“뭘 어떡해? 얘야, 넌 어떻게 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오빠!”
“왜, 왜?”
“이 돈 어디서 난 거야?”
“…오빠 친구들이랑 사업하고 있어.”
“뭐? 정말?”
“그, 그래. 그동안 알바 하면서 모은 돈으로 친구들이랑 쇼핑몰 창업했거든. 사업하다 돈 날린다고 걱정할까 봐 엄마랑 누나한테는 비밀로 했지.”
또 내 입에서 이상한 스토리가 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 진성그룹에 취직한 거랑 포르쉐는…….”
“아냐, 그건 진짜야. 진성그룹에 취직했어. 근로계약서도 봤잖아.”
“오빠…….”
“응?”
현지는 황홀경에 빠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사랑해 오빠…….”
“…….”
뭐래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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