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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45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9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45화

 

정령을 소환해제하고 시간이 지나면 소환시간이 회복된다.
회복속도는 5분에 1분씩.
때문에 나는 보통 5분마다 한 번씩 실프를 소환해서 1분간 정찰을 시키고 돌려보내곤 한다.
5분마다 소환했다가 다시 돌려보내기를 반복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전투 시를 대비해서 소환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실버 씨족의 수장이 언제 접근해서 우리의 뒤통수에 화살을 꽂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실프 없이 5분이나 있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소환 주기를 5분에서 25초로 바꾸었다.
25초마다 실프를 소환해서 질문한다.
“놈은 어디에 있니?”
그러면 실프는 놈이 몇 미터 거리에 있는지 숫자를 적어준다.
나는 5초가 되기 전에 실프를 재빨리 돌려보내고, 25초 후에 다시 실프를 소환해서 같은 질문을 한다.
실버 수장은 때로는 100미터 바깥에 있다가도 다시 확인하면 60미터까지 접근하는 등 수시로 거리를 좁혔다 벌렸다 하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계속 초를 세며 도망쳐야 하는 피 말리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1초, 2초, 3초, 4초…….
끊임없이 시간의 흐름을 헤아려야 하는 이 상황에 나는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소환시간을 아끼지 않으면 당하고 만다.
‘이러다 내가 먼저 지치고 만다.’
계속 쉴 새 없이 25초를 헤아리며 도주해야 하는 입장은 정말 괴롭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체력이었다.
‘반나절을 훌쩍 넘기는 장기전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반나절 간 쉬지 않고 달아날 수가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뒤에 추적자를 달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시로 거리를 좁혔다 떨어뜨렸다 반복하며 우리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간혹 화살도 날려서 동요를 일으킨다. 달아나는 먹잇감과의 심리전에 도가 튼 놈이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나도 문제였지만 혜수가 더 힘들어했다. 약한 체력과 준호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맞물려서 쉽게 지쳐 버렸다.
‘안 되겠다.’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겠다.
놈이 아무리 똑똑하고 강한들, 머리에 총 맞으면 죽는 건 매한가지다.
나는 실프에게 지시했다.
“실프, 총을 가지고 놈의 뒤로 돌아가서 저격해.”
-냥!
소환자인 나에게서 떨어질수록 발휘하는 힘도 약해지지만, 소총 방아쇠 당길 힘쯤은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실프는 모신나강을 들고 움직였다. 잠시 후,
타앙― 까앙!
총성과 금속성이 동시에 거의 울려 퍼졌다.
실패였다.
놈이 방패로 막았다.
타앙― 탕― 탕―
계속해서 총성이 울려 퍼졌지만 방패에 가로막힌 소음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잠시 후, 다섯 발을 전부 쏜 실프가 돌아왔다.
‘어떻게 어느 방향에서 총을 쏘는지 안 거지?’
초음속으로 날아드는 총알을 알아차리고 막는 건 불가능했다. 쏘기 전에 눈치 챘다는 뜻이었다.
혹시 정령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초감각이라도 있는 걸까?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있어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 뒤로도 나는 몇 차례나 더 저격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소환시간만 소모했을 뿐이었다.
어느덧 동이 터 오르기 시작했다.
“오빠…….”
혜수가 지친 얼굴로 나를 불렀다. 그녀는 나에게 아이템백을 내밀었다.
“이거 오빠가 가지세요.”
“뭐?”
놀란 나에게 혜수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만약을 대비해서예요.”
만약…….
혜수는 아마 우리 셋 중에 자신이 가장 먼저 죽을 거라고 예감한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 하지 마.”
“어서 받으세요.”
“혜수야…….”
“팔 아파요.”
결국 난 혜수에게서 아이템백을 건네받았다.
“시험 끝나고 돌려줄게.”
“네, 시험 끝나면요.”
그렇게 아이템백을 건네받은 나는 ‘해제’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템백이 사라졌다. 아이템백이 내 소유가 된 것이었다.
혜수는 빠르게 지쳐갔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쉬지 않고 걷는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 가혹했던 것이다. 나도 힘들어 죽겠으니 혜수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심장을 옥죄는 압박감…….
혜수까지 죽게 할 수는 없다는 의무감이 나를 더욱 조급하게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실프를 소환했다.
“실프, 다시 한 번 놈을 저격해. 이번엔 오른쪽에서.”
-냥!
실프는 소총을 들고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성공해라!
하지만 이번에도 저격은 실패였다.
타앙― 까앙!
총알이 방패를 때리는 소리가 절망스럽게 울려 퍼졌다. 다섯 발이 연거푸 놈의 방패에 가로막혔다.
그런데 그 직후였다.
-냐아앙!
빠르게 되돌아온 실프가 앙칼지게 소리쳐 경고했다.
‘설마?!’
그 설마였다.
쉬익―
화살이 날아들었다. 놈이 가까이 접근해서 반격에 나선 것이었다.
다행히 화살은 실프의 바람의 칼날에 막혔다. 화살이 날아오면 막으라고 미리 지시해 둔 명령을 이행한 것이었다.
화살은 연거푸 날아들었다.
그때마다 바람의 칼날로 화살을 잘라 버렸다.
하지만 바람의 칼날은 힘의 소모가 컸다. 쓰면 쓸수록 소환시간이 줄어든다!
“실프, 어서 재장전해!”
나는 총알 5발이 꼽힌 탄 클립을 건네주며 소리쳤다.
실프는 계속해서 바람의 칼날로 화살을 쳐내면서 총알을 재장전 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화살 공격이 중단되었다.
실프는 꼬리로 땅에 숫자 43을 적었다. 58, 75……. 놈은 물러났다.
‘이럴 수가.’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방금 화살 세례를 막느라 실프의 소환시간을 대폭 소모하고 만 것이었다.
실버 씨족의 수장은 굉장히 똑똑했다. 너무나 똑똑해서 오싹할 지경이었다.
“5발을 쏠 때마다 재장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그래서 5발을 막자마자 과감하게 반격해 온 거예요.”
내 말에 강천성은 나직이 신음했다.
소총에 대한 개념도 모르는 라이칸스로프가 이 약점을 알아차렸다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다친 사람은 없죠?”
내 물음에 강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혜수는 상태가 안 좋았다. 다친 곳은 없었지만 양손으로 장검을 꼭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젠 싫어… 흐흐흑!”
혜수는 장검을 놓치고 울음을 터뜨렸다. 공포와 피로에 질려 패닉에 빠진 것이었다.
“혜수야. 힘들어도 견뎌내야 돼.”
혜수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해요, 오빠. 전 이제 안 되겠어요. 힘들어서 걷기가 힘들어요.”
“조금만 더 참자, 혜수야.”
“그냥 저를 두고 가세요. 전 안 되겠어요. 이제 지쳤어요!”
“자꾸 그딴 소리 할래!”
나는 버럭 화를 냈다.
“미안해요, 오빠…….”
울음을 터뜨리는 혜수.
보고 있던 강천성이 말했다.
“쉬었다 가지. 너무 지쳤어.”
“…네. 그게 좋겠어요.”
우리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우리는 단 1분도 쉴 수가 없었다.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지쳤나 보군?”
“……?!”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우리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정령술의 힘도 거의 소진했겠지?”
“시험해 보시지?”
정확한 지적이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지지 않고 대꾸했다.
하지만 놈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못 속여. 무리하게 자꾸 승부를 걸어오는 것을 보고 이미 눈치챘으니까.”
“그러니까 시험해 보라고.”
“흐흐흐. 재미있는 인간이야. 내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정신력이 강해.”
“…….”
“마을의 인간들을 전부 미끼로 던져놓고 도주할 생각을 하다니, 훌륭해. 혹시나 해서 살펴봤더니 정말로 짐작대로더군. 오랜만에 재미있는 사냥이 되겠다 싶었어.”
사냥…….
놈이게는 이게 재미있는 사냥놀이에 불과한 거였다.
나는 으드득 갈았다.
“마을에서 간혹 도망치는 인간이 있지.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사냥을 하지.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화살을 쏴서 겁을 주면서 천천히 피를 말리는 거야. 두려움과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질 때까지 말이야.”
놈은 나직이 웃었다.
“상상이 가나? 내가 모습을 드러내니까 도리어 안심하더군. 어서 죽여 달라고, 이만 끝내달라고 애걸하는 듯한 얼굴이었어. 공포가 살고 싶은 욕망을 넘어선 순간의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성취감을 느끼지.”
정말 악랄한 놈이다.
똑똑한데다가 사악한 악의마저 겸비했다. 인간의 심리를 가지고 노는 유희를 자주 즐겨온 놈이다.
그런 놈이기에 인간을 가축처럼 목축할 발상을 했겠지.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지금껏 이 게임을 즐겼지만, 그중에서 너희처럼 오래 버틴 인간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더 즐기고 싶지만, 이만 끝내주지. 결말을 내주겠다.”
나는 실프에게서 총을 건네받았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총보다 바람의 칼날이 더 효과적이었다.
정면의 수풀이 부스럭거리면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처음으로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놈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장신의 키에 빛나는 은발을 가진 미남자였다. 저것이 인간으로 변신한 모습인 듯했다.
한 손에는 방패를, 다른 손에는 활을 들고 있었다.
“소개하지, 실버 씨족의 수장 레온 실버라고 한다.”
레온 실버의 모습이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온몸에 털이 돋아나고 체격이 커졌다. 손톱이 길쭉하게 돋아난다. 그리고 마침내 은빛으로 뒤덮인 사람도 짐승도 아닌 생명체가 되었다.
누구보다도 큰 라이칸스로프였다.
한동안 거기에 압도당했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실프에게 소리쳤다.
“공격해!”
-냥!
실프가 바람의 칼날을 쏘았다.
그와 동시에 레온 실버도 움직였다.
촤ㅤㅊㅘㄱ―
놈은 좌우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며 바람의 칼날을 피해냈다.
강천성이 달려들어 발차기를 날렸으나, 납작 엎드려 피한 레온 실버.
놈은 그대로 네 발로 기어서 빠르게 나에게 접근했다. 나는 모신나강을 서서 쏴 자세로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파악!
나무가 총탄에 맞았다.
놈은 그대로 나에게 손톱을 휘둘렀다.
“크윽!”
나는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구사일생으로 손톱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냐앙!
실프가 소리 지르며 바람의 칼날을 재차 날렸다.
놈은 귀신같이 훌쩍 도약하며 피해냈다.
사뿐히 착지한 레온 실버는 이번에는 혜수에게 덤벼들었다.
“혜수야!”
나는 재차 방아쇠를 당겼지만 나의 불확실한 사격은 빠르게 움직이는 놈을 맞출 수 없었다.
혜수는 이를 악물고 장검을 꽉 쥐고 있었다. 레온 실버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편하게 해주지, 아가씨.”
“아아아아!”
혜수는 고함을 지르며 장검을 휘둘렀다. 애처로운 저항이었다.
푸욱!
그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멈춘 시간 속에서 나는 멍하니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꿈을 꿨다.
네 갈래의 길쭉한 손톱이 혜수의 몸을 꿰뚫고 나온 끔찍한 악몽이었다.
“커흑!”
혜수는 신음을 토하며 풀썩 쓰러졌다. 땅에 풀썩 몸을 뉘이면서, 혜수는 마지막 순간에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며 슬픈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미안해요, 오빠.
먼저 갈게요.
혜수는 마침내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
“혜, 혜수야!”
나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레온 실버는 그런 나를 본다. 놈의 눈빛은 웃고 있었다. 마치 절망에 젖은 내 표정을 보고 싶었다는 듯이.
“으아아아!”
나는 놈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울려 퍼졌지만 놈은 간단하게 옆으로 물러나 피했다. 총구의 방향을 보고 쏘기 전에 피한 것이었다.
볼트를 잡아당겨 탄피를 제거하고 다시 쏘았다.
발사되지 않았다. 5발을 모두 쏜 탓이었다.
“이익! 썅!”
나는 주머니에서 총알을 꺼내 재장전을 했다.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후들후들 떨려서 제대로 총알을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놈은 그런 나를 보며 킬킬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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