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43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43화
“지금이야말로 라이칸스로프들의 흉악한 지배로부터 벗어날 때다!”
촌장은 마을 주민을 모두 불러모아놓고 그야말로 열변을 토했다.
“가축을 키우듯이 우리를 식량으로 삼아온 놈들에게 언제까지 고개를 조아리며 살아갈 텐가!”
앞장서서 고개를 조아린 댁이 할 말은 아니지.
마을 주민들은 갑자기 투사로 돌변한 촌장의 태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촌장님.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도 좋아서 놈들에게 굴복하며 살아온 건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무슨 수로 놈들과 싸워 이겨요?”
사내들이 당연한 의문을 제기했다.
촌장은 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모두의 이목이 우리에게 쏠렸다.
혜수는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준호도 양심에 찔리는 눈치였다.
나의 진정한 계획을 들은 후로 두 사람은 내내 저런 눈치였다.
마을 주민들을 봉기시켜서 라이칸스로프와 싸우게 만들고, 우리는 함께 싸우는 척하다가 달아난다. 마을 주민 전부를 시간 벌기용 재물로 바치는 잔인한 계획이었다.
나도 안다.
촌장이 그동안 해온 짓보다 더 나쁜 짓이라는 것을.
촌장은 그래도 마을의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명분이라도 있지 않은가.
반면 나는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서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기로 했다. 우리 네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어차피 마을 사람들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아.’
그동안 무력하게 지배만 받아온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과 힘을 합쳐 봐야 백 마리가 넘는 라이칸스로프를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실버 씨족의 수장이라는 그 우두머리 라이칸스로프는 굉장히 똑똑하고 강력한 리더 아닌가.
‘그럴 바에는……!’
그럴 바에는 이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우리가 이득을 취하는 게 낫다.
어차피 이런 마을은 사라져야 한다.
마을을 방문한 사람을 식량으로 바치고, 때로는 마을 주민들까지도 놈들에게 잡혀 먹히면서 희망 없이 살아가느니, 그냥 죽는 편이 낫다.
…라고 나는 애써 자위했다.
뭐, 어때?
이 마을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 마을 주민들은 아무 죄 없는 약자들이 아니다. 자기들 살자고 같은 사람을 괴물에게 바친 자들이다. 약함과 선함은 동의어가 아니다.
그러니 거꾸로 우리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도 정당방위란 말이다!
“이 여행자분들께서 놈들을 물리쳐주신다고 하셨다. 그 괴물 같은 실버 씨족의 수장도 문제없다고 하셨다! 나는 보았다. 마을에 나타난 라이칸스로프 4마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처치한 믿기 어려운 위용을!”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촌장은 강렬한 어조로 마을 주민들을 설득했다.
말도 안 된다, 우리가 어떻게 싸우느냐는 태도였던 마을 주민들이 촌장의 설득에 차츰 넘어갔다.
그들은 점차 기대를 품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해방과 자유를 가져다주리라고 믿는 눈빛들이었다.
주민들 중 한 사내가 문득 우리에게 물었다.
“정말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겁니까?”
그 질문에 혜수와 준호가 움찔한다.
내가 나섰다.
“여러분을 위해 싸워준다? 그건 표현이 조금 이상하네요.”
“예?”
“마치 우리가 여러분 대신 싸워주고 공짜로 해방을 얻어다줄 것처럼 말씀하시잖습니까. 싸워주는 게 아니라, 함께 싸우는 겁니다.”
싸운다는 말에 주민들은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겁이 나는 것이다.
“여러분이 무기를 들고 라이칸스로프와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린 그냥 떠날 겁니다. 아마 여러분은 죽은 라이칸스로프에 대한 보복을 당할 테지요. 놈들은 이미 여러분이 우리와 손잡고 적대하기로 했다고 믿고 있을 테니까요.”
“라이칸스로프들을 죽인 건 우리가 아니요!”
“당신들이 죽였잖아! 일이 이렇게 된 건 모두 당신들 책임이야!”
“맞아, 우린 죄가 없어!”
책임을 전가하려는 그들의 태도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방금 죄가 없다고 하셨습니까? 우리의 음식에 수면제를 탄 건 죄가 아니고? 우리를 늑대 먹이로 바치려 한 작자들이 여기에 모두 모여 있는데도? 마음 같아서는 그 보복으로 당신들을 전부 죽여 버리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협박을 섞어서 강하게 말하니 주민들이 움찔했다.
공포로 길들여진 자들을 다루는 방법은 이런 방식뿐이다.
“싸울 건지 말건지 선택하십시오. 싸우기 싫다면 우리는 그냥 이대로 떠날 테니까.”
주민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싸워야지! 이분들이 우리와 함께 싸워준다고 하지 않은가.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아!”
촌장들이 닦달한다.
여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데, 사내들이 하나둘 찬동하기 시작했다.
“싸, 싸우겠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요.”
“어차피 이렇게 계속 산다 해도 얼마 못 가 놈들의 먹이가 될 뿐이니까.”
“먹이로 죽나, 자살을 하나, 싸우다 죽나 매한가지지.”
촌장은 반색하며 나에게 말했다.
“보셨습니까? 우리는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럼 싸울 준비를 해야죠. 시간이 얼마 없어요. 다들 무기는 있습니까?”
“사냥용으로 쓰는 활이 조금 있고, 땔감 하는데 쓰는 도끼도 몇 자루 있긴 합니다. 그 외의 무기는 전부 압수당해서…….”
‘그렇겠지.’
노예들이 무기를 갖고 있는 걸 허용할 리 없으니까.
“활과 화살을 최대한 많이 준비하고, 인원수에 맞춰서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서 창을 만드세요.”
“알겠습니다. 다들 들었는가?”
“예!”
사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촌장에게 몇 가지 당부를 덧붙였다.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을 네 개 조로 나눠서 교대로 목책 곳곳을 지키게 하세요. 놈들이 나타나면 소리를 질러서 알리게 하고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우리는 일단 이 인근을 순찰하고 오겠습니다. 이 시체들도 처리하고요.”
나는 죽은 라이칸스로프의 시체 세 구를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촌장은 아무 의심 없이 내 말을 믿었다.
나는 팀원들에게 손짓했다.
“가자. 준호랑 강천성은 시체를 하나씩 드세요.”
“예, 형.”
“알겠다.”
나와 준호, 강천성은 라이칸스로프의 시체를 한 구씩 어깨에 짊어졌다. 혜수도 뒤따르면서, 우리는 함께 마을 밖으로 나섰다.
“형, 시체는 왜 갖고 나온 거예요?”
“일단은 마정을 채취해야지.”
“아…….”
“또 시체는 따로 쓸데가 있으니까 일단은 마정부터 채취하자.”
나는 실프를 시켜서 라이칸스로프의 시체 속에서 마정을 꺼내게 했다. 마정 세 개는 혜수가 아이템백에 넣어두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넝쿨을 몇 줄기 잘라왔다.
넝쿨로 올가미를 만들어서 라이칸스로프의 목에 걸고 나무에 매달았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라이칸스로프 시체 세 구.
실버 씨족 놈들을 도발하기에 충분한 장치였다.
“형, 이건…….”
“도발이야. 이걸 보면 크게 분노할 거야. 그리고서 마을 주민들이 무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갖춰놓은 걸 보면 어떨 것 같아?”
“…공격하겠죠?”
“그래, 대화의 여지를 없애야 해. 양측이 무조건 싸우게 만들어야 돼.”
라이칸스로프들에게 이 마을은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었다. 마을 주민을 전부 죽이면 놈들 입장에서도 큰 손해였다.
놈들은 일단은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려 할 것이다. 말로써 협박을 하며 회유하려 들지도 몰랐다. 물론 그 협박은 마을 주민들에게 아주 잘 통할 테고 말이다.
하지만 나무에 목 매달린 자신들의 동족을 본다면 어떨까?
대화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곧장 공격을 할 테고, 마을 주민들도 공격을 받으면 저항하겠지.
그렇게 서로 싸우는 사이에 우리는 최대한 멀리 도망친다.
‘그러면 된 거야.’
시험을 클리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으니까.
“이제 가자. 시간이 없어.”
“네…….”
혜수는 유독 대답이 약했다. 죄책감을 느끼는 그녀를 보니 나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하지만 난 내가 옳다고 확신했다. 이것만이 시험을 클리어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서쪽으로 이동했다.
***
“그래서 너만 살아 돌아왔다?”
“예, 아버님! 그 촌장 늙은이가 우리를 속였습니다!”
마을로 보낸 형제들이 모두 죽고 한 명만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왔다.
마을의 인간들이 감히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실버 씨족은 분노했다.
“놈들을 전부 죽여 버려야 합니다!”
“감히 형제들을 죽이다니! 인간 놈들이 단체로 미친 거야!”
“아주 끔찍하게 죽여야 해!”
라이칸스로프들이 으르렁거리며 성토했다. 살육을 즐기는 라이칸스로프의 야성이 자극 받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더니, 살아 돌아온 아들에게 묻는다.
“넌 살았군?”
“예, 다행히 다리를 맞아서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 인간 놈들의 무기는 어떻더냐?”
“헬기의 말대로 타앙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와 몸에 들어박혔습니다. 소리와 동시에 형제들이 죽었습니다.”
“넌 용케 살았군?”
“운이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냉정하게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아닌 것 같은데?”
“예?”
“내가 보기에는 놈들이 널 그냥 살려 보낸 거야.”
“……?”
영문을 몰라 하는 아들을 무시하고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덕에 모인 모든 라이칸스로프에게 말했다.
“모두 싸울 준비를 해라. 날이 밝기 전에 이 싸움을 끝낼 것이다.”
라이칸스로프들은 희열과 흥분을 느꼈다. 싸움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그들의 피를 들끓게 했다.
“아우우우―!”
“우우우―!!”
깊은 밤, 언덕 위에서 라이칸스로프들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에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아버지는 헬기에게 손짓했다.
헬기가 신속하게 다가왔다.
“예, 아버님.”
“네가 모두를 데리고 마을을 공격해라.”
“제가요? 그럼 아버님은…….”
“난 따로 확인할 일이 있다.”
그렇게만 말하며 빙글거리며 웃는 아버지였다.
***
마을의 사내들은 나무로 깎아 만든 창을 들고 싸울 차비를 마쳤다.
모두들 비장한 각오였다.
살인적인 세금에 시달리다 못해 도망쳐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영주의 폭정을 피해 숲에 숨어들고 나니, 더 무서운 지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들은 돈이나 곡식이 아닌 사람 목숨을 징수했다.
모두가 언젠간 자신도 늑대 밥이 될 운명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차라리 영주의 폭정이 그리울 정도로 비참한 삶이었다.
견디다 못해 이 숲에서 탈출하려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결국은 다음 날 잘린 머리만 마을에 전시되곤 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삶도 오늘로서 끝이었다.
일단 싸우기로 결심하자 공포에 지배당했던 마을 주민들의 울분이 폭발했다. 이전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든 살든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였다.
그때였다.
우우우우―!!
크오오오오!
라이칸스로프들의 포효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마을 주민들은 혼비백산했다.
“노, 놈들이야!”
“벌써 여기까지 왔어!”
“모두 집합해! 싸워야 돼!”
주민들은 오랫동안 라이칸스로프를 보며 살아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저 포효가 엄청난 분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야?”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했다.
사내들은 서로를 둘러보며 의아해하다가 촌장을 바라보았다.
“그, 그 사람들은 순찰을 하겠다면서 떠났는데…….”
촌장의 얼굴에도 당혹이 어렸다.
순찰을 간 자들이 왜 지척에 라이칸스로프들이 나타났는데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