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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4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42화

 

나는 정말 촌장에게 모진 짓을 할 각오였다.
사람을 괴물 먹이로 갖다 바쳐 온 악질이니 못 죽일 것도 없다. 박고찬보다 백배는 더 악질적인 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각오는 불필요했다.
“하, 하겠습니다. 뭐든 협조하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촌장의 대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마을을 방문한 외지인은 물론, 필요하면 같은 마을 주민까지 라이칸스로프들의 먹이로 갖다 바친 작자다.
이를테면 라이칸스로프들의 앞잡이인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희생정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라이칸스로프들은 언제 이 마을에 오지?”
“오늘 밤입니다. 아마 곧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마리나 오지?”
“보통은 두세 명씩 옵니다.”
“마을 정문으로 들어오나?”
“예.”
“라이칸스로프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봐.”
내 말에 촌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이 일대를 지배하는 라이칸스로프는 은빛 털을 가진 실버 씨족인데, 숫자가 지금은 백 마리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 마리?!”
나는 경악했다.
한국아레나연구소에서 말하길, 라이칸스로프 무리는 많아봐야 수십 마리라고 했다.
그런데 백 마리라니?
“처음부터 그렇게 숫자가 많은 건 아니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20여 마리에 불과했지요.”
연구소에서 제공해 준 자료에 따르면 라이칸스로프는 가족 단위로 모여 산다.
아버지가 우두머리가 되고 아내와 자식들이 모여서 집단이 된다. 아버지의 능력에 따라 아내는 여러 명이 되고 자식도 많아진다.
차지하고 있는 영역의 넓이에 따라 무리의 규모가 결정된다.
사냥으로 식량이 얼마나 모이냐에 따라 키울 수 있는 자식의 숫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가족 단위로 집단을 이루고 수렵으로 생존하기 때문에 무리의 규모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버 씨족이라는 이 라이칸스로프들은 새로운 생존 방법으로 집단의 규모를 크게 번영시키는 데 성공했다.
‘엄청난 혁명이다!’
나는 실버 씨족의 수장이 대단한 놈임을 깨달았다.
선사시대의 인류가 농업혁명으로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에 비유할 수 있었다.
놈들은 수렵에서 ‘목축’으로 식량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목축.
끔찍한 표현이었다.
영역 내에 우연히 인간들이 흘러들어오자 실버 씨족의 수장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인간들이 마을을 형성하게 놔두고, 이 마을을 목장처럼 운영하며 정기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았다.
안정적으로 다량의 식량을 얻게 되자, 대폭 번식해서 백 마리나 되는 씨족 규모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20년 만에 집단 규모를 5배나 늘렸다는 것은 실버 씨족의 수장에게 큰 야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야심을 이루기 위하여 씨족의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연구소의 판단이 잘못됐어. 차라리 트롤의 영역을 통과해야 했다고!’
일반 라이칸스로프 무리가 상대였다면 충분히 싸워 이길 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혁신을 일으켰을 정도로 똑똑한 우두머리가 지배하는 백 마리 라이칸스로프 집단!
차라리 트롤의 영역을 통과하는 편이 나았다.
아무리 트롤이 강해도 집단행동은 하지 않으니 어떻게든 피해 다니며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마을을 이용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번 시험을 클리어할 수 없어!’
나는 어쩌면 좀 더 극단적인, 촌장이 해왔던 짓거리 못잖게 잔인한 판단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그날 밤, 나는 촌장을 시켜서 마을 주민들이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조치했다.
그리고 팀원들과 함께 마을 거리로 나와 잠복했다. 라이칸스로프들이 마을에 오면 단숨에 처치해 버릴 생각이었다.
-냐앙!
잠시 후, 순찰을 다녀온 실프가 숫자 4를 그렸다.
라이칸스로프 4마리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강천성에게 말했다.
“신호를 하면 먼저 나서서 놈들의 시선을 잠깐만 끄세요. 그 틈에 저격할 테니까요. 그리고 한 마리는 살려 보내야 해요.”
“알았다.”
마침내 마을에 라이칸스로프들이 나타났다. 놈들은 아무렇지 않게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왔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자, 어서 가.”
나는 촌장의 어깨를 쳤다.
“으으으……!”
촌장은 두려움에 질려 선뜻 나서지 못했다. 나는 촌장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허튼수작 부리면 실프가 목을 잘라 버릴 거야.”
“아, 알겠습니다.”
“어서 가.”
촌장은 울상이 된 채 나에게 떠밀려 나섰다.
촌장이 마을에 나타난 라이칸스로프들에게 다가갔다. 겁에 질렸던 촌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놈들을 맞이한다.
“아이고, 어서들 오십시오.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맞이하는 정도가 아니고 아주 영접을 하는군.
“그놈들은 어디에 있냐?”
라이칸스로프 중 한 놈이 묻는다. 촌장은 우리의 숙소를 가리켰다.
“늘 그랬듯 수면제를 먹여 재워놓았습니다요. 그 녀석들,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곯아떨어지던뎁쇼.”
“안내해라.”
“예, 예. 따라오시죠.”
촌장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놀라운 연기력이었다. 저 연기력의 비결은 바로 뻔뻔함이리라. 지금껏 저런 식으로 같은 사람을 괴물들 먹이로 갖다 바쳐 왔다니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에요.”
내 말에 강천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윽고 달려나갔다.
동시에 나 또한 전투를 개시했다.
“무장.”
소총 모신나강이 내 오른손에 나타났다. 나는 소총을 실프에게 건네주었다.
“엇?”
“뭐지?”
라이칸스로프들은 갑자기 달려드는 강천성을 보며 의아해했다. 식량저장고와 같은 이 마을에서 식량(인간)이 자신들에게 덤벼드니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당황에 휩싸였다.
타앙!
긴 총성과 함께 한 마리의 머리통이 터진 것이다.
“허억!”
“아, 아니?!”
함께 온 동료 한 명이 영문도 모르고 즉사하자 당황한 라이칸스로프들.
“으히익! 사, 살려……!”
촌장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천성이 과감하게 날아들어 공중돌려차기를 달렸다.
파앗!
하지만 동작이 너무 큰 공격인 탓일까. 라이칸스로프들은 민첩하게 흩어져 피했다.
착지한 강천성은 곧바로 오른쪽에 있는 라이칸스로프에게 뛰어들었다.
“인간 따위가!”
화가 난 라이칸스로프가 흉악하게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강천성은 왼팔을 휘저어 그 공격을 차단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오금을 낚아채 잡아당겼다. 그 절묘한 동작에 라이칸스로프는 균형을 잃고 벌렁 쓰러졌다.
상위 포지션을 점유한 강천성은 속사포처럼 두 주먹을 퍼부었다.
퍼퍼퍼퍼퍼퍼퍽―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의 연타로 라이칸스로프를 떡으로 만드는 강천성.
그 사이에 실프는 볼트를 잡아당겨 탄피를 제거한 뒤 다시 사격을 했다.
타앙―
“커헝!”
이번에는 한 라이칸스로프가 심장을 적중당했다. 구멍 난 가슴을 부여잡은 채 멍한 얼굴로 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2마리뿐이었다. 아니,
우드득!
강천성의 주먹이 라이칸스로프의 목뼈를 부숴놓았다. 이제 한 마리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우리를 속였구나!”
홀로 남은 라이칸스로프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촌장을 노려보며 분노를 터뜨렸다. 촌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들바들 떨었다.
“두고 보자! 네놈들을 모두 응징할 것이다!”
라이칸스로프는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냥 멀쩡히 돌려보내도 이상하지. 실프, 왼쪽 다리를 쏴버려.”
-냥.
내 말에 실프는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깨앵!”
구슬픈 소리가 들리더니 절뚝거리며 달리는 라이칸스로프의 실루엣이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뭐, 라이칸스로프 4마리쯤은 낙승이었다. 더구나 정면승부도 아니고 우리의 일방적인 기습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이 승리에 크게 일조한 촌장은 잔뜩 울상이 된 얼굴이었다.
“이, 이제 우리 마을은 어찌해야…….”
어쩌긴.
라이칸스로프들에게 찍힌 거지.
기습공격에 일조한 촌장은 라이칸스로프가 남김없이 죽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가 협조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한 마리를 살려 보냈다. 이제 실버 씨족은 촌장이 우리와 협조해서 함정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이 마을은 실버 씨족의 적이 된 것이다.
난 촌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놈들은 오늘 사건을 이 마을이 우리와 함께 실버 씨족에 대항하기로 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거다.”
“…….”
“이제 당신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어. 우리와 함께 힘을 합쳐서 놈들과 싸워야 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방금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나? 우리가 얼마나 손쉽게 놈들을 물리치는지를 말이야.”
“그, 그렇다고는 해도 실버 씨족은 백 마리가 넘습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가 모두 힘을 모아 저항한데도 승산이 없단 말이오!”
“그래서? 이제 와서 놈들에게 다시 꼬리를 내리겠다고? 전부 오해고, 우리에게 협박을 당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해명이라도 해보게?”
촌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차갑게 웃었다.
“물론 그렇게 빌면 마을은 계속 존속될지도 모르지만, 과연 촌장 당신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
“협박을 당했다고는 해도 동족을 죽이는데 일조한 당신을 놈들이 살려주겠느냔 말이야. 내 생각엔 본보기 삼아 아주 끔찍하게 죽일 것 같은데?”
“그, 그럼 난 이제 어떡해야 한단 말입니까?”
“말했잖아. 우리와 함께 싸우자고. 당신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라이칸스로프에게 대항하자고 마을 주민들을 필사적으로 설득해야 할걸?”
오랫동안 라이칸스로프의 지배를 받아온 마을 주민들은 이제 와서 무기를 들고 대항할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겁을 먹고 싸우지 않겠다고 하면 촌장은 죽은 목숨이다. 우리에게 협력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촌장은 자기 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싸우자고 주민들을 선동해야 한다.
“실버 씨족의 수장은 굉장한 괴물입니다. 저, 정말로 이길 자신이 있는 겁니까?”
“내가 가진 무기를 보았지? 그거면 아무리 강한 놈도 한 방에 즉사야.”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촌장은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서 싸우게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좋게 생각하자고. 가축처럼 놈들의 식량공급원으로 살던 비참한 삶에서 해방될 좋은 기회잖아?”
“…….”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촌장은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형, 대단해요!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어요?”
준호가 달려와 호들갑을 떨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이 이기적인 인간이라 이용하기 쉬웠어.”
아마 저런 성품 탓에 라이칸스로프들도 촌장을 앞잡이로 삼았을 테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싸우면 라이칸스로프에게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을 거예요.”
혜수도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네?”
“잊었어? 제한시간이 며칠 안 남았어. 우리의 시험은 라이칸스로프를 처치하는 게 아니라 숲에서 탈출하는 거야.”
“아! 그럼 어쩌시려고요?”
그 물음에 나는 냉정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 마을과 라이칸스로프를 싸움 붙이고, 그 틈에 우리는 달아나야지.”
이것이 바로 나의 진정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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