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39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39화
“놈들의 냄새가 난다.”
형제들 중 한 명이 킁킁거리며 말했다.
제이슨 역시 후각에 집중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역한 풀냄새가 함께 섞여 있지만 희미하게 인간의 냄새가 나는군.”
제이슨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가자. 전부 죽여 버리겠어.”
“그래도 조심해야 해.”
“놈들의 이상한 무기가 있으니까.”
“알고 있어!”
제이슨 형제는 인간들이 머물러 있는 곳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숨을 죽이고 소리 없이 접근했다.
가까워질수록 인간들의 체취가 강하게 풍겨왔다.
마침내 인간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한 인간 남자가 보였다.
불침번을 서고 있는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머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누워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형제들은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깨어 있는 건 한 놈뿐이군.’
깨어 있는 인간 남자는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저 정도면 충분히 싸워볼 만했다. 아니, 압승이었다.
헬기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도망쳐야 했던 인간들을 전부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이 기회를 놓칠 제이슨이 아니었다.
‘감히 날 속였겠다! 인간 따위가.’
제이슨은 발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형제들도 따라서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싸움을 앞두자 야성적인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르릉!”
마침내 제이슨이 덤벼들었다.
가장 먼저 노린 것은 당연히 깨어서 불침번을 보는 인간 남자였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손톱을 휘둘렀다. 인간 남자 하나 따위 목을 날리는 것쯤은 순식간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간 남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오히려 땅을 구르며 피하는 와중에도 제이슨의 다리를 후려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퍼억!
“큭!”
예상치 못한 반격에 방심했던 제이슨은 휘청거렸다.
함께 뛰쳐나온 형제들이 공격했으나 인간 남자는 무섭도록 침착했다.
‘뭔가 잘못됐다!’
불길한 예감이 제이슨의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타앙!
***
“쏴!”
내 명령이 떨어지자 실프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모신나강에서 불꽃이 뿜어짐과 동시에 ‘깨앵!’ 하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컥!
실프는 볼트를 잡아당겨 왕복시키며 탄피를 제거했다. 이어서 다시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이 신속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타아앙― 퍼억!
총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라이칸스로프가 쓰러졌다.
철컥, 타앙!
“커헝!”
철컥, 타앙.
“깨앵!”
실프는 기계처럼 반복동작으로 연속사격을 펼쳤다. 내가 총을 잡았더라면 저것처럼 신속하지 못했을 터였다.
어두운 밤이라 실루엣만 어렴풋이 보였지만, 라이칸스로프들이 무척 당황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도망쳐라!”
처음으로 들은 라이칸스로프의 육성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로 사람처럼 말을 하는구나!’
짐승의 얼굴로 말을 한 것도 놀랐고, 그 말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에 또 놀랐다.
생전 처음 듣는 언어로 소리치는데,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형, 놈들이 도망쳐요!”
준호의 외침에 비로소 나는 정신을 차렸다.
순식간에 총에 맞아 죽어서 세 마리밖에 남지 않은 라이칸스로프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라이칸스로프들에게 둘러싸인 채 방어만 하고 있던 강천성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강천성은 날렵하게 한 마리에게 하단차기를 날려 쓰러뜨렸다.
“크르릉!”
쓰러진 라이칸스로프가 고함을 지르며 손톱을 마구 휘둘러 저항했다.
강천성은 그 맹공을 모조리 피해내며, 빈틈으로 정확하게 손바닥을 내질렀다.
퍼억!
“크헝!”
가슴팍에 일장을 얻어맞은 라이칸스로프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했다. 고통에 깜짝 놀란 라이칸스로프는 정말로 짐승 같은 비명을 토하며 마구잡이로 손톱을 휘둘렀다. 금방이라도 강천성을 걸레로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강천성은 냉정했다.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부드럽게 두 팔을 휘저어서 라이칸스로프의 저항을 모조리 무위로 돌려 버렸다.
그러면서 파고들어서 가슴팍에 다시 일장!
뻐어억!
“크허어엉!”
거침없이 계속해서 두들긴다.
비명과 함께 라이칸스로프가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남은 건 두 마리!’
나는 5발들이 탄 클립 하나를 실프에게 건네주며 명령했다.
“실프, 쫓아가서 모두 쏴 죽여.”
-냥!
실프는 모신나강을 들고 바람처럼 날아갔다.
***
제이슨은 공포에 질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타앙, 하는 쩌렁쩌렁한 소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형제들의 머리통이 터져 버렸다.
실버 씨족의 어엿한 라이칸스로프 전사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는 것을 제이슨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이었어! 이래서 헬기가 도망칠 수밖에 없던 거였어!’
자신 또한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공포에 엄습했다.
제이슨은 도망쳤다.
살아남은 형제는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탕―
또다시 울려 퍼지는 소름 끼치는 소음.
제이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 그렇게 헐레벌떡 달리다 보니, 문득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도망친 동생이 없었다.
살아 있는 것은 제이슨 혼자뿐이었다.
‘사, 살고 싶어! 난 살아야 해!’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살면서 바라고 추구했던 욕망들이 모두 부질없어졌다.
가장 달콤한 욕망은 바로 생존을 향한 소망이라는 것을 제이슨은 깨달았다.
만용을 부린 것을 후회했다.
헬기 형제의 낭패를 보고 위험성을 깨달았어야 했다. 상대가 먹이에 불과한 인간들이라고 방심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얕은 속임수에 넘어가 골탕을 먹은 바람에 분노하여 성급하게 접근했던 것이 실수였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타아앙!
머리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과 함께 제이슨의 시야가 칠흑 같은 암흑으로 물들었다.
***
빠지직!
강천성은 라이칸스로프의 머리에 마지막 일격을 선사했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라이칸스로프는 실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거꾸러졌다.
때맞춰 실프도 돌아왔다. 앙증맞은 두 앞발로 자기 몸길이보다 훨씬 큰 모신나강을 든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본다. 잘했냐는 표정이었다.
“잘했어, 실프.”
나는 실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실프는 내 손바닥에 뺨을 부비며 좋아한다.
그렇게 싸움이 종료되자 나는 일단 라이칸스로프의 시체를 한 곳에 모으기로 했다.
달아나다가 실프에게 저격당해 죽은 라이칸스로프 두 마리의 시체까지 모두 한 곳에 모았다.
“마정을 찾아보자.”
내 말에 준호와 혜수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그, 그거 시체 몸속을 뒤져야 하는 거죠?”
준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으으…….”
준호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시험자가 되고서 험한 일에 적응이 되었다지만, 시체를 뒤적거릴 정도로 비위가 좋아진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혜수가 나서서 말했다.
“오빠, 제가 할게요.”
“네가?”
“예, 저한테 맡겨주세요.”
혜수는 장검을 소환했다.
그리고 라이칸스로프들의 시체에 다가갔다.
총에 맞아 머리가 터져 죽은 꼴이 너무나도 그로테스크했다. 하지만 혜수는 용기를 가지고 장검으로 라이칸스로프의 몸을 찔렀다.
푸욱!
보고 있던 준호가 움찔한다.
혜수는 떨리는 손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라이칸스로프의 복부를 절개했다. 그리고는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절개된 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것을 보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혜수가 얼마나 강해지려고 노력하는지를 말이다. 굳은 일을 자청하고 나서는 것이 그 증거였다.
“형, 저도 할게요. 무장!”
준호 또한 단창을 소환하더니 다른 시체를 찔러서 해부하기 시작했다.
“오빠, 찾았어요!”
먼저 찾아낸 혜수가 피에 젖어 있는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노란 색깔의 동그란 구슬.
그것이 바로 아레나의 모든 생명체가 몸에 품고 있다는 마정이었다.
연구소에서 차지혜가 마정의 샘플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 샘플보다는 조금 작았지만 확실했다.
“나도 찾았어요, 형! 배꼽 근처에 있었어요.”
준호도 찾아낸 마정을 보여주었다.
“오케이, 이제 나한테 맡겨.”
나는 실프를 시켰다.
실프는 바람의 칼날로 간단하게 마정을 추출했다.
그렇게 모인 마정 일곱 개는 혜수의 아이템백에 넣어두기로 했다.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이템백에서 총알을 꺼내 내 옷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형, 이걸 연구소에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모르지. 그건 됐고, 이제 움직이자. 서둘러야 해. 다른 라이칸스로프들도 총성을 들었을 테니까.”
“네.”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서울 강남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빌딩이 있었다.
진성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새겨진 이 고층빌딩은 바로 진성그룹의 본사였다.
그 최고층에는 70대 초반의 나이 든 노인이 앉아서 창밖의 도시 정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난감처럼 작게 보이는 도시의 건물들을 내려다보는 노인의 눈길에는 알 수 없는 쓸쓸한 회한이 어려 있었다.
“회장님.”
뒤에서 노인을 부르는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성그룹의 회장, 빈농의 아들도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부귀영화를 거머쥔 박진성 회장은 뒤를 돌아보았다.
박진성 회장이 물었다.
“알아봤느냐?”
“예, 연구소 내부의 인맥을 통해 알아냈습니다.”
“보여다오.”
“예, 보시지요.”
마르고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사내는 탁상에 사진 여러 장을 늘어놓았다.
배경은 군부대의 헬기장.
네 명의 젊은 남녀가 헬기에 오르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었다.
이 군부대 소속의 간부가 조악한 스마트폰 카메라로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네 남녀의 얼굴이 자세히 포커스된 사진들도 있었다.
중년 사내는 이어서 그들의 신상내역이 적힌 서류도 보여주며 말했다.
“요번에 연구소에 새로 영입된 시험자들로, 통칭 김현호 팀입니다.”
“김현호가 누구냐?”
“이 청년입니다.”
중년 사내는 김현호의 사진을 박진성 회장에게 더 가까이 밀어주었다.
“이 친구가 리더로군?”
“예.”
“어떤 친구더냐?”
“침착하고 판단력이 좋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메인스킬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모르겠습니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강천성이라는 이 시험자가 주목할 만합니다.”
강천성의 사진을 들이밀며 설명을 계속한다.
“스킬 등은 평범한데, 매우 실력이 출중한 중국 출신의 무술가입니다. 이제 3회차인데 웬만한 6회차 시험자를 능가하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허, 그렇게나?”
“예, 과장 같지가 않았습니다.”
“흐음…….”
박진성 회장은 강천성의 사진을 슥 보다가, 다시 김현호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김현호 이 친구는 본래 뭐 하던 친구던가?”
“나이는 29세. 대학 졸업 후 특별한 취직활동을 하지 않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돌연 모두 접고서 가족들이 사는 천안으로 돌아갔습니다.”
“쯧쯧, 어쩌다가 제대로 삶도 못 펼쳐보고 죽어서 이 고생을 할꼬.”
박진성 회장은 측은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사진을 바라본다.
평범하지만 정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첫째 아들놈의 젊은 시절 같기도 했다.
‘특이한 메인스킬을 가졌다고?’
박진성 회장은 묘한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었다.
‘이 친구라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