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3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34화
“5레벨?”
차진혁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구라 아냐?”
유지수다운 직설.
“상식적으로 2회차 시험자가 메인스킬을 초급 5레벨까지 올릴 만큼의 카르마를 얻었다는 것은 성립이 안 되는데…….”
성격 좋은 이지용도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강천성은 코웃음만 칠 뿐 오해를 받든 말든 어떤 해명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결국 내가 나서서 설명해야 했다.
“그 정도로 뛰어난 무술가셨다?”
차진혁의 눈빛이 도발적으로 변했다.
“한번 실력이 보고 싶어지는데. 어때, 무술가 양반? 시험 전에 가볍게 워밍업, 콜?”
“얼마든지.”
강천성은 기꺼이 응했다. 19회차의 베테랑 시험자를 상대로도 전혀 겁먹는 눈치가 아니었다.
“괜찮을까요?”
혜수가 걱정이 들어서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만 않으면 문제없잖아. 시험의 문을 통과할 때 전부 완치되니까. 배틀 슈트나 이런 옷들도 처음 입어보니까 말 그대로 한번 워밍업을 해봐도 괜찮겠지.”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의 빈 공간으로 나왔다.
자세를 취하는 강천성에 맞서 차진혁도 두 주먹을 쥐고 복싱 포즈를 취한다. 저 사람도 무기를 안 쓰는 건가?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뭐냐?”
“중국무술이라면 그 기를 모은다며 덩실덩실 춤추는 그런 거 맞지? 그게 실전에서 도움이 돼?”
차진혁의 도발일까. 강천성의 눈매가 꿈틀했다.
“보여주지.”
강천성은 발만 움직여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발꿈치와 발가락 끝을 축으로 삼아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며 공격거리를 잡는 방식이었다.
펀치 거리에 이르자 차진혁이 가볍게 잽을 뻗었다. 그런데,
파앗!
“……!”
그 잽의 카운터 타이밍으로 강천성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강천성이 펀치를 폭풍처럼 쏟아냈다.
파파파파팍!
차진혁의 가드 위로 펀치의 폭풍이 불어 닥쳤다.
엄청난 속도였다. 펀치세례에 가드를 굳건히 하고 막기만 하던 차진혁은 이윽고 니킥으로 반격했다. 그 순간,
파앗!
강천성은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몸만 빙글 360도 회전하며 오금을 후려쳤다. 저건 팔괘장의 동작인가? 아무튼 절묘했다.
퍼억!
“큭!”
니킥을 한 순간 축을 이루는 다리를 당하자 차진혁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린다. 강천성은 다시 한 번 다리를 걷어차 쓰러뜨렸다.
“아, 젠장! 세잖아, 중국무술!”
벌떡 일어난 차진혁이 투덜거렸다.
“계속할 테냐?”
“뭔 소릴 씨부렁거려? 이제 시작이거든?”
차진혁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한 번 제대로 공격조차 해보지 못하고 또다시 수세에 몰렸다.
가볍게 잽을 하며 공격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그 잽의 카운터로 또다시 강천성이 놀라운 타이밍으로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퍼억!
“큭!”
펀치에 맞고 차진혁의 턱이 옆으로 돌아갔다.
연이어 강천성은 두 팔을 풍차처럼 크게 휘둘렀다. 왼팔은 가슴을 밀고, 오른팔은 다리를 잡아채며 그대로 차진혁을 거꾸러뜨렸다.
쿠당!
“윽!”
또다시 발랑 뒤로 넘어져 버린 차진혁.
강천성은 더는 공격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만하지. 의미가 없군.”
“뭐야?”
발끈한 차진혁.
“꺄하하! 존나 개발렸어!”
“닥쳐!”
유지수의 천박한 웃음소리에 차진혁이 화를 냈다.
강천성이 말했다.
“여기까지다.”
“뭐야, 더 싸워도 이긴다 이거야?”
차진혁의 물음에 강천성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몇 번이고 내가 이긴다. 네놈이 검을 꺼내지 않는 한.”
차진혁은 물론 유지수와 이지용의 얼굴도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렇구나. 어쩐지 19회차 베테랑치고는 너무 약하다 싶었어.’
아무리 강천성이 강하다지만, 19회차 베테랑이면 그만큼 많은 카르마로 스킬을 습득했을 터였다. 그런 것치고는 지금의 차진혁은 너무 약했다.
자신의 무기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헐, 점쟁이다.”
유지수가 감탄했다.
“들켰나?”
차진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풋내기 주제에 내 머리 위에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하하, 풋내기는 너무한걸. 별수 없잖아. 난 댁처럼 평생 무술 한 사람이 아냐.”
“자동차 정비공이었대요~”
“시끄러.”
유지수의 깨알 같은 고자질에 또다시 발끈하는 차진혁이었다.
“내가 검을 쓴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거리감. 잽이 닿는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유지하더군. 그리고…….”
강천성이 이어서 말했다.
“기(氣)란 맹자가 정신적인 의미로 논한 개념으로, 무술에서는 자신의 심신을 통틀어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지 어떤 초자연적인 에너지가 아니다.”
“…….”
“덩실덩실 춤춘다는 말은 태극권이라도 보고 한 소리 같은데, 그것도 마찬가지다. 호흡과 함께 이루어지는 몸의 순환과 운동을 체득하는 수련이다. 그것을 게을리하면 네놈처럼 팔다리가 따로 놀고 공격과 방어가 따로 놀고 몸과 오러가 따로 놀게 되지.”
“아, 주옥같은 가르침이다. 들었니? 적어놓고 배워라.”
유지수가 깐죽거린다.
“시끄러, 이년아. 어이, 뭐라고 했어? 호흡과 함께 이루어지는 몸의 순환과 운동을 체득한다고?”
차진혁은 강천성에게 물었다.
“그렇다.”
“그럼 단전호흡 같은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고 봐야지.”
“댁도 그걸로 오러 컨트롤의 레벨을 빨리 올린 거란 말이지?”
“평생 해왔다. 거기에 오러를 기의 개념에 적용시켜 복습했다고 봐야지.”
“기라는 게 뭐랬더라? 다시 설명해 봐.”
차진혁은 관심이 생겼는지 강천성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고, 강천성은 그때마다 퉁명스럽지만 분명하게 대답해 주었다. 대결에서 강의로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한참 후에야 차진혁의 얼굴에 만족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흐음, 좋아. 참고하도록 하지.”
“마음대로.”
“좋은 걸 배웠으니 보답을 해야지. 소환, 아이템백.”
그러자 차진혁의 손에 작은 크로스백이 나타났다.
크로스백에서 차진혁은 붉은색 액체가 담긴 물병 하나를 꺼냈다.
“자, 이거 받아.”
강천성은 붉은색 액체가 담긴 물병을 건네받았다.
“힐링포션이다. 상처 치료에 직방이야. 귀한 거니까 위급할 때만 쓰라고. 질병이나 체력 저하에는 효과가 없으니까 상처에만 쓰고.”
강천성은 힐링포션을 유심히 보더니, 혜수에게 내밀었다.
“챙겨둬라.”
“네…….”
혜수도 아이템백을 소환해서 그 안에 힐링포션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혜수의 아이템백에는 이미 내 모신나강에 들어갈 총알과 응급용품으로 가득 차 있어서 잘 들어가지가 않았다.
“에이그, 줘봐.”
보다 못한 유지수가 나서서 도와줬다. 그녀는 아이템백이 터져라 힐링포션을 쑤셔 넣었다. 찢어지면 어쩌나 싶어서 조마조마했는데, 놀랍게도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이템백 되게 튼튼해. 막 쑤셔도 안 터지니까 걱정 마.”
“가, 감사합니다.”
유지수 팀은 선배로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팁을 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시험 시작까지 3시간이 채 안 남았을 때, 차지혜가 나타났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예.”
“그럼 각자 방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만에 하나라도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옷을 벗어두거나 하는 일이 없으셔야 합니다. 어떤 분은 신발을 벗어둔 채 시험에 임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의할게요.”
우리는 각자 방으로 향했다. 유지수 팀도 침실로 들어가며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내일 또 뵙죠. 우리한텐 내일이 아니지만요.”
“살아서 또 보자.”
침실에 들어온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이제 세 번째 시험이었다. 이번에는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아주 체계적으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임박할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2, 3회차 징크스’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며 나를 불길하게 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죽어서는 안 되는데.’
박고찬을 죽인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죽여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좋은 동료들뿐이다. 준호도, 혜수도, 강천성도, 아무도 죽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마침내 시간이 임박했다.
석판을 소환해 놓고 시간을 확인하던 나는 남은 시간 1초를 앞두고 의식을 잃었다.
***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는 팀원부터 확인했다. 준호, 혜수, 강천성 모두 곁에 있었다.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우리에게 번데기를 덜렁거리는 지긋지긋한 아기 천사 자식이 파닥파닥 날아왔다.
“어서 오세요. 제 얼굴 보니 반갑죠?”
“…….”
“이야, 복장을 보니까 이번에는 만반의 태세를 다 갖추신 것 같네요.”
“우리만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어서 말이지.”
세계 각국마다 시험자를 고용하고 지원하는 기관이 있고, 카르마 획득 총량으로 시험자들의 랭킹까지 정하고 있는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시험자들이 아레나에서 가져온 마정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다고 모으고 있지 않은가.
‘무언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하세요?”
“헉, 깜짝이야!”
대뜸 천사 자식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묻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얌마! 놀랐잖아!”
“시험자 김현호가 또 뭔가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기에요.”
“이상한 게 당연하잖아!”
내가 말했다.
“지구와 아레나는 서로 다른 세상이잖아. 물리적으로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완전히 별개의 세계지, 내 말 맞아?”
“맞는데요.”
“그런데 지구의 전 세계가 아레나에 대해 잘 알고 깊이 관여하고 있잖아. 심지어는 아레나에서 가져온 마정이 고효율 에너지원으로 쓰인다며 모으고 있고, 이래도 되는 거야?”
“안 될 건 또 뭐예요.”
이 번데기 자식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성의 없이 답했다.
“세상의 질서나 뭐 그런 게 어그러지는 문제가 없는 거야?”
“없어요, 없어.”
아기 천사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시험자는 죽은 사람 중에서 선별했다.
아레나에서 일주일을 보내도 지구에서는 자고 일어난 시간밖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은 나름대로 지구가 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배려한 셈이었다.
그런데 정작 시험자들에게 비밀엄수를 하도록 제약을 걸지는 않았다. 전 세계가 아레나와 시험에 대해 알고 비밀기관까지 만들어서 연구하고 있다.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유도한 건가? 혹시 그것 또한 시험의 목적 중 하나가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였다.
“자자, 거기까지.”
아기 천사가 내 머리를 툭툭 쳤다.
“뭐야?”
“시험자 김현호는 역시 생각이 깊네요.”
“내 추측이 옳은 거야?”
“응? 옳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요? 그냥 생각이 깊다고요. 칭찬 아니에요.”
뭐냐, 그 애매한 대답은.
아기 천사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시험의 문이 나타났다.
“자자, 빨리들 시작하세요. 아니면 저랑 더 오래 있고 싶은가요?”
우리는 두말없이 시험의 문으로 한 사람씩 들어섰다. 나는 마지막으로 시험의 문을 통과했다.
밝은 빛에 휩싸일 때에 문득 뒤에서 아기 천사의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틀렸다고 한 적도 없지만 말이지요. 히히히.”
뭐야, 저 자식이! 맞다 틀리다 확실하게 말해줄 수는 없는 거냐!
이윽고 강렬한 빛에 나는 의식을 잃었다. 그렇게 세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다.
***
이젠 지긋지긋한 숲.
우리가 도착한 곳은 2회차 때 시험이 끝날 때까지 머물렀던 협곡이었다.
모닥불을 피운 흔적과 그 주변에 널린 생선과 토끼의 뼛조각까지, 우리가 머물렀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