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3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32화
화면이 또다시 전환되었다.
[라이칸스로프의 특징
1. 늑대인간.
2. 집단행동을 한다.
3. 인간에 필적한 지능을 가졌다.
4.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으며, 변신 중에는 인간의 언어를 구사한다.]
또 집단행동을 하는 괴물이냐.
낯선 숲에서, 그 속에 익숙한 집단에게 쫓기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2회차에서 똑똑히 체험했다.
“라이칸스로프는 레드 에이프보다 훨씬 강하고 늑대와 동일한 후각과 청각을 가진 만큼 2회차 때보다 힘든 상황이 될 겁니다.”
‘끄응.’
늑대와 동일한 후각과 청각. 레드 에이프보다 훨씬 신속 무비한 추적자라는 뜻이다.
“물론 여러분도 강해졌기 때문에 승산은 있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혜수 말이죠?”
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움찔한 혜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난 그런 혜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구박하려고 지적한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의 약점과 보안책을 찾기 위함이다.
“이혜수 씨는 150카르마 중 100카르마로 체력보정 초급 1레벨을 습득해 가장 문제 되는 체력부족을 보강했고, 장검을 다루는 기초 동작 속성 훈련 중입니다.”
차지혜의 말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팀원보다 약한 것은 사실이고, 시험에 기여하지 못하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카르마도 적어져서 실력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무언가 방책이 있나요?”
내가 물었다.
차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호 씨가 가지신 전장식 마법소총을 이혜수 씨에게 양도하실 수 있으십니까?”
“마법소총을 혜수에게? 총으로 싸우게 할 셈인가요?”
“아니요. 마법소총을 카르마로 환불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환불?!
“그게 가능해요?”
“스킬은 불가하지만, 아이템은 절반의 카르마로 환불 받을 수 있습니다. 전장식 마법소총은 100카르마짜리니, 환불 받는다면 50카르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차지혜의 설명은 이러했다.
현재 혜수가 가진 카르마는 50.
그리고 내 전장식 마법소총을 건네받은 뒤에 50카르마를 추가로 환불 받는다.
그렇게 생긴 100카르마로 일행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을 구매해서 기여도를 높인다는 전략이었다.
“꼭 필요한 아이템?”
“아이템백이라는 것입니다.”
차지혜는 리모컨을 조작했다. 프로젝터 화면이 전환됐다.
[아이템백(소형).
사이즈: 32×22×8
재질: 마법처리 된 가죽
기능: 아이템화 하지 않은 물건을 수납하여 시험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
가격: 100카르마]
“여기에 의약품과 김현호 씨가 쓸 탄환을 담아 아레나로 가져갑니다. 이혜수 씨가 의무병 역할을 한다면 충분히 팀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거였구나!
***
3회차 시험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강천성은 새 신분을 발급받았지만, 여전히 연구소에서 지내며 자율적으로 훈련을 했다.
준호는 창술교관에게서 방패와 함께 단창을 쓰는 법을 훈련 받았다.
가장 힘든 훈련을 하는 것은 혜수였다. 검술과 응급처치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검술의 경우 단시일에 써먹기 위해 수직 베기·가로 베기·찌르기 세 동작을 죽어라 반복하며 몸에 익게 했다.
한편으로는 의약품의 사용법과 응급처치를 배우느라 진땀을 흘렸다.
“저러다 시험 당일이 되기도 전에 쓰러지겠어요.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훈련 강도를 조금 낮춰야 하지 않나요?”
“필요 없습니다.”
“예?”
차지혜는 너무도 단호해서 내가 다 당혹할 정도였다.
“컨디션 조절은 필요 없습니다. 몸이 상할 정도의 혹독한 강도가 딱 좋습니다. 어차피 시험의 문을 통과하면 몸이 최상의 상태로 회복됩니다.”
“아!”
그런 점까지 고려해서 훈련 계획을 세웠구나. 역시 괜히 국가기관이 아니었다.
“근데 전 뭐 하죠?”
“…….”
그녀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실프에게 탄을 건네주는 연습이나 할까요?”
“…….”
“아, 실프가 총 쏠 때 옆에서 탄알 세는 연습을 하면 되겠구나. 아니면 탄피 줍는 연습?”
“조, 좋습니다. 그럼 격투기라도 배워보시겠습니까?”
“격투기요?”
“시일이 얼마 안 남은 관계로 배운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스파링으로 격투에 익숙해지면 라이칸스로프와 싸울 때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거 좋네요.”
차지혜는 나를 연구소 지하 4층 훈련장으로 데려갔다.
지하 5층 사격장만큼이나 드넓은 공간에 온갖 헬스기구가 한가득했다. 중앙에는 권투시합용 링이 몇 개나 있었다.
“엄청난 시설이네요.”
“대체로 체력이 월등한 시험자의 단련을 위한 훈련장이라 시설이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네요.”
“…….”
“꼭 한 번 여쭤보고 싶었는데 한국 아레나 연구소는 소속 계약을 한 시험자가 몇이나 됩니까?”
“김현호 씨 팀까지 67명입니다.”
“67명?!”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다.
“적은 편이긴 합니다만 50위권 안에 드는 세계 랭커는 많습니다.”
“세계 랭커? 그게 뭐예요?”
난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세계 랭커라니? 설마 시험자끼리 검투 시합이라도 벌이나? 그럴 리가 있나.
“시험에서 획득한 카르마 총량을 비교하여 순위를 집계한 겁니다. 자기가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고 어떤 스킬을 습득했는지는 밝히고 싶어 하는 시험자는 없지만, 단순히 카르마로 환산한 합계만 공개하는 것은 상관없으니까요.”
“그거 검증이 가능한가요?”
“검증은 불가능합니다. 소속된 기관이 시험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밝힐 리 없습니다.”
“그럼 속여서 랭킹을 올릴 수도 있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해당 시험자의 카르마 총량은 소속 기관이 공개하는데, 자기들이 보유한 시험자의 랭킹을 실제보다 높여봤자 몸값만 높아질 뿐입니다.”
“아…….”
“게다가 랭킹이 높으면 그만큼 다른 기관이 탐을 내서 더 높은 연봉에 데려가려 할 뿐입니다.”
“시험자가 자기 몸값을 높이려고 소속 기관까지 속일 수 있겠네요?”
“속이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스킬 레벨이 어느 정도이고 어떤 아이템을 가졌는지는 관찰하다 보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허풍을 떨어봤자 연구원들이 면밀히 관찰·분석하면 견적이 나온다 이거군.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게 있다.
그럼 반대의 경우라면?
‘실력을 숨길 수도 있잖아?’
예를 들어 내가 시험에서 900카르마를 획득했는데, 700카르마라고 속이고 200카르마를 다른 데 쓴다. 그렇게 남몰래 힘을 더 키운다.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서 진짜 힘을 숨기는 것이다.
…내가 너무 무협지를 많이 읽었나?
유치한 발상이긴 한데,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쁜 생각도 아니었다.
한국 아레나 연구소가 국가기관이라 해도 100% 신뢰할 수는 없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책임자가 바뀌면 어떻게 상황이 달라질지 모른다.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는데 내 모든 걸 보여주는 것은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자, 올라오십시오.”
‘응?’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나 차지혜를 바라보니, 그녀는 링 위에 올라가 있었다. 양손에 UFC에서 쓰는 오픈핑거 글러브를 낀 채로.
“엥?”
“글러브 끼고 올라오십시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스파링입니다.”
“아니, 교관은요?”
“접니다.”
“…….”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저, 괜찮으시겠어요?”
“무슨 뜻이십니까?”
“전 남자이고 체력보정으로 강해졌는데 체급이나 힘이나…….”
“아, 그런 문제였습니까?”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차지혜가 다시 말했다.
“군대 어디 나오셨습니까?”
“…제3탄약창이요.”
“후방 보급부대입니까. 저는 수방사 특공대대에 7년간 있었고, 무에타이는 어릴 때부터 했습니다.”
“…….”
얕봐서 죄송합니다.
나는 오픈핑거 글러브를 끼고 링 위로 올라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 아니, 이렇게 대뜸? 뭐라도 좀 가르쳐 주고서…….”
“가드 올리십시오.”
어, 좋은 거 가르쳐 줘서 고맙다. 그거면 초심자도 복싱을 잘할 수 있겠어.
나는 풋워크를 하며 다가오는 차지혜를 보며 가드를 올렸다.
퍼억!
아, 발차기도 있지. 복싱으로 착각했다.
***
뭐랄까, 밀당 같은 느낌이었다.
로우킥이 다리를 후려쳤을 때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서 놀랐다.
날아오는 레프트 잽을 간단히 피했을 땐 상대가 여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보다는 어쩔 수 없이 느리고 약한 여자.
‘뭐야, 별것 없잖아.’
안심한 나는 다시 레프트 잽이 느리게 날아오자 가볍게 피하고 반격삼아 펀치를 뻗었다.
…그러자 이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득달같이 라이트 훅으로 카운터를 때렸다. 비틀거리는 나에게 레프트, 라이트, 하이킥 콤비네이션!
신 나게 두들겨 맞고 나서야 나는 차지혜가 아주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한 척하면서 방심하게 만들고서는 가차없이 두들겨 패다니!
“라이칸스로프는 저보다 두 배는 빠를 겁니다.”
“끄응!”
나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일어섰다.
“한 대 맞았는데 왜 이렇게 아픈 거죠?”
“그렇게 카운터를 맞으면 아무리 튼튼해도 다운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가차없이 패셨군요. 감사합니다.”
“계속하겠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풋워크로 좌우로 움직이며 나를 공격했다.
확실히 체력보정의 힘일까. 여자인 그녀보다 힘이나 민첩성은 우위에 있었다. 웬만한 공격을 반사 신경으로 적당히 피하거나 막았다.
하지만 갑자기 몰아치는 콤비네이션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잽으로 시선 끌며 로우킥을 날린다든가, 펀치를 뻗을 것처럼 페인트를 주고 하이킥이라든가.
“슬슬 익숙해지셨다면 지금부터는 팔꿈치도 쓰겠습니다.”
“히익?”
지금도 아파 죽겠는데 팔꿈치?
차지혜는 레프트 잽을 날렸다. 나는 이어서 팔꿈치로 때릴 까 봐 양팔로 가드를 올렸다.
그런데 대뜸 그녀는 양손으로 내 목을 잡고 훌쩍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뻐억!
“끄엑!”
내 입에서 품위와 거리가 먼 소리가 튀어나왔다. 니킥에 명치를 직격당하면 누구나 이런 소리가 나온다.
“파, 팔꿈치라면서…….”
“생각보다 너무 둔하십니다. 운동 한 번 안 해본 분처럼.”
“해본 운동이라고는 등산밖에 없어요.”
“태권도 1단 보유하지 않으십니까.”
“그거 군대에서 일주일 정도 시늉만 하니까 주던데요. 무슨 단증을 쿠폰처럼 뿌리던데.”
“…….”
그녀는 글러브를 벗었다.
“안 되겠습니다. 2회차처럼 나무창을 만들어서 쓰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절대 라이칸스로프와 대적하지 마십시오. 나무창으로 견제하고 급할 땐 정령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끄응, 알겠어요.”
한숨이 나왔다.
기껏 체력보정 초급 4레벨로 육체가 강해졌는데 그야말로 돼지 목에 진주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은 총 쏘는 실프 옆에서 총알을 들고 얌전히 있는 것이었다.
***
집으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실프를 시켜서 집안 청소를 말끔하게 마친 뒤, 심심해서 새로 얻은 무기를 소환했다.
“무장.”
그러자 오른손에 들려지는 묵직한 소총 모신나강. 오래된 티가 많이 나지만 빈티지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전장식 마법소총은 탄알집 혁대와 함께 혜수에게 양도했고, 이제부터는 이것이 나의 무기였다.
유효사거리는 무려 548미터.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쓰였을 정도로 오래된 골동품이라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낮의 테스트 사격에서 성능은 충분히 확인했다. 실프가.
세계대전 시절에 유명한 저격수들이 이걸 사용했다고 하니 믿어봐야지.
‘잘 부탁한다.’
나는 모신나강을 쓰다듬으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다음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11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