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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최강 군바리 92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92화

92화 어째서?(1)

 

 

 

정말 정신없이 도망친 것 같다.

꽁지가 빠지게 도망친다는 게 어떤 건지 확실하게 체감한 퇴각이었다.

거의 반나절은 미친 듯이 도망쳤으니까.

프레하 제국군에 공격하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두 차례의 대형 투석기 공격과 수많은 화살을 발사했다. 그럼에도 워낙 적군의 숫자가 많아 공격당한 티도 안 났다.

적진에서 비명마저 들리지 않았더라면 공격하는 것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너무 적병이 많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화살을 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다시 떠올리니 더 끔찍한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는 트럼벌 요새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서 야산에 몸을 숨긴 상태다.

휴식과 함께 재정비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벌써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참 정신없는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뜨거운 뙤약볕을 맞아가면서 달리느라 나 역시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아무런 마법적 처리도 되어 있지 않은 프레하 제국 기사의 갑옷을 입었으니까 말이다.

 

“후와! 이렇게 시원한걸!”

 

갑옷을 벗어 던지니 살 것 같다.

새삼 리치 녀석에게 받은(?) 갑옷이 얼마나 명품인지 실감하게 된다.

 

“단장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는 중에 티오가 지친 얼굴로 다가왔다.

 

“티오, 무슨 일이야?”

 

“사령관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네가 고생이 많다.”

 

“고생은요. 무슨…….”

 

그냥 하는 소리였지만, 녀석은 기분이 좋았는지 민망해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지친 몸이지만,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티오가 어째서 기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니,

티오뿐만 아니라 다른 부하 기사들과 병사들도 사기가 높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부터인가 사령관이 나를 찾아댈 정도로 입지가 높아진 까닭이다.

물론 반데라스 자작이 살아 있을 때에도 나를 불러 대긴 했지만, 언제나 고되면서 영양가 없는 임무만 맡겨 대었다.

결정적으로 반데라스 자작이 날 대하는 태도는 그다지 살갑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사령관인 에이원즈 백작은 다르다.

남작의 작위를 약속했으며 뒤를 밀어주겠다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닌다.

조금 지나치다 싶은 때도 있지만, 뭔가 지저분한 계산이 깔리지 않았다는 건 느낄 수 있다.

나를 자신의 진영에 끌어들이고 싶어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호의를 보여 주니 나도 그렇고 부하들도 요즘엔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고작 140명 남짓한 병력을 거느린 시골 영지 출신의 기사단장이 이만하면 출세한 거 아니겠어?

이번 전쟁만 잘 마무리하면 영지를 갖는 게 한낱 망상으로 끝날 일만은 아니다.

지쳤을망정 어깨를 펴고 에이원즈 백작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 윌슨 단장! 어서 오게!”

 

다른 귀족들과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던 에이원즈 백작이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는다.

 

“충!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가볍게 군례를 하고서 다가갔다.

트럼벌 요새 인근의 지형이 그려진 지도를 펼치고서 한참 회의 중이었던 것 같다.

아직 전시(戰時) 상황.

더군다나 프레하 제국군은 아직도 10만 대군이 훌쩍 넘는 군세를 유지한 채 트럼벌 요새 앞에 대기 중이다.

놈들이 물러나지 않는 이상 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아직은 달콤한 미래나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에 자네가 제안한 작전은 훌륭했다네. 프레하 제국의 오를레앙 대공이 식겁했을 거야.”

 

“하하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령관 각하!”

 

“자이론 후작 각하의 파이어 필드(Fire Field) 마법에 의한 피해도 상당했을 거로 예상됩니다.”

 

에이원즈 백작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자, 존슨 자작과 하이든 자작이 잇몸을 드러내면서 맞장구를 쳤다.

성만 다를 뿐 존슨 자작과 하이든 자작의 이름이 같다. 그래서인지 하는 행동도 어쩌면 저렇게나 비슷한 건지…

어쨌든 두 사람의 너스레에 에이원즈 백작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자! 자! 윌슨 단장도 왔으니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보기로 하지.”

 

웃음을 거둔 에이원즈 백작이 손으로 지도를 짚었다.

그러자 한자리에 모였던 귀족들의 얼굴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나도 지도에 시선을 던지려다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회의에 모인 지휘관급 인물 중에 귀족이 아닌 사람은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응? 자네, 왜 그런 표정인가?”

 

“아! 다른 기사단장들이 보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의아한 듯 물어오는 에이원즈 백작의 말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난 또… 이번 회의는 중요하지.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지휘관보다는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네.”

 

“…….”

 

뭔가 좀 대답하기가 어렵다.

뭔가 대우받는 기분이긴 한데…

 

“사람 참… 간단히 얘기하지. 귀족 회의쯤 된다고 보면 이해가 되겠는가?”

 

“저는 귀족이 아닙니다.”

 

“아니, 자네는 이미 남작일세. 내가 보증하지 않았는가.”

 

“…….”

 

할 말을 잃었다.

내 손에 목숨을 잃은 반데라스 자작과는 확실히 그릇 자체가 다른 사람이다.

그 인간은 남작의 작위를 주겠다고만 했지, 나를 잡병 취급했었다. 하지만 에이원즈 백작은 아직 작위도 받지 않았음에도 귀족 대우를 해준다.

이건 기분부터가 다르다.

 

“감사합니다.”

 

가슴에 주먹을 대고서 고개를 꾸벅 숙이는 어정쩡한 인사를 건넸다.

솔직히 감동했다.

 

“허허허! 그리 좋아할 일만은 아닐 걸세. 책임이 생긴다는 의미인 것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에이원즈 백작에게 한 차례 더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지도에 가까이 다가갔다.

어쩐지 오늘따라 대충 아무렇게나 그린 지도마저도 새롭게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

 

잠이 오지 않는다.

무려 귀족들만의 전술 회의에 참석한 탓에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저 지도 한 장 내려놓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에 불과한 행위였다.

기사단장이었던 때에도 늘 해 왔던 회의일 뿐인데,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설레게 될 줄이야…

귀족이 된다는 것.

행동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것.

이제껏 그래 왔는데 귀족 취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내게 새롭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역시나 잠이 오지 않는다. 육체의 피로 정도는 하루 한두 시간만 자도 문제없는 상태라 크게 상관없다.

다만 시간이 무지하게 안 간다는 거…

이왕에 잠도 오지 않는 데 내공 수련이나 하는 게 낫겠다. 전투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약식으로만 운기했더니 찜찜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몰입해서 운기 할 생각도 없긴 하다. 운기하는 도중에 누군가 와서 건드리면 몸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되도록 편안한 자세에서 오감을 최대로 예민하게 열어 놓고 대자연의 기운을 끌어들였다.

주변의 기운이 내 주위에 맴돌면서 내공의 흐름에 따라 백회혈에 빨려 들어온다.

임맥(任脈)을 타고 내려와 단전에 도착한 대자연의 기운을 가공해서 단전에 쌓고, 나머지 불순한 기운은 체외로 배출했다.

크로노스 갑옷 덕분에 내공이 급증하면서 기운을 정제하고 배출하는 과정이 짧아졌다.

급증한 내공 덕분에 조금은 불안정했던 단전은, 어느새 만족할 정도의 수준까지 단단해진 느낌이다.

딱딱하다는 게 아니라, 질기고 내구력이 좋아졌다는 의미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단전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뱀이 허물을 벗으면서 몸집을 키우는 것과 같은 원리다. 현재의 단전에 만족한다면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설 수 없는 법.

하지만 일단은 보류.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고된 작업이다. 무림 세계에서도 지금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화할 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것도 무아(無我)의 상태로 말이다.

사실은 반쯤 정신 줄을 놓은 상태로 단전이 확장되었다는 건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전쟁이 한창인 지금과 같은 시기에선 위험천만한 짓이 될 터다. 그래서 운기하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기감을 넓힌 상태로 육체의 내부를 관조하면서 정제된 기운을 쌓아가는 그때,

 

“……!”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을 지닌 존재가 이동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동하는 기운은 셋.

운기하느라 전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 개의 기운 중의 하나는 어쩌면 나와 동급?

혹은 그 이상?

이건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혹시라도 프레하 제국에서 주변을 정찰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나보다 뛰어난 상대라면?

 

“에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런 일에 목숨을 거는 건 좀 허무하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일어나, 에이원즈 백작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귀족들이 모여서 잠을 청하고 있으니, 찾아가는 건 일도 아니다.

간간이 불침번을 서는 병사들이 있을 뿐, 나머지 병사들과 기사들은 잠에 곯아떨어진 상태다.

10만이 넘는 프레하 제국군을 공격하고서 쉬지도 못하고 도주해 왔으니 피곤한 것도 당연한 일.

천막조차 설치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귀족들도 마찬가지.

에이원즈 백작과 다른 귀족들도 달랑 모포 한 장을 덮고 누웠을 뿐이다.

다른 곳과 다른 점이라면, 작전 회의를 위해 작은 테이블이 하나 있다는 것과 몇 명의 기사가 지키고 섰다는 것뿐이다.

 

“멈추시오!”

 

나직하지만 위협적인 기사의 음성이 나의 접근을 차단한다.

그에 반응해 다른 곳을 주시하고 서 있던 나머지 기사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롱소드의 검자루에 손을 얹는다.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손바닥을 펼쳐 어깨높이까지 들고 입을 열었다.

 

“윌슨 단장입니다. 사령관 각하를 뵈러 왔습니다.”

 

“이 시간에 말입니까?”

 

경계를 선 기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낮은 음성으로 묻는다.

 

“누군가 우리를 찾아 헤매는 듯합니다. 프레하 제국의 정찰대일 수도 있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기사단을 깨워서 수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경계를 서는 기사가 나의 말을 듣고는 잠시 고심하다가 그렇게 말했다.

안 될 말이다.

그야말로 ‘급’이 다른 존재가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상황.

이곳 세상의 기사들은 나처럼 기운을 다스릴 줄 모른다. 그럼에도 어지간한 하급 소드 익스퍼트 수준의 기운을 흘리는 존재다.

필요한 만큼의 기운만 사용하면서도 위협적인 기운을 흘린다는 건 느껴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

 

“실력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에이원즈 기사단을 무시하는 것입니까.”

 

고개를 흔들고 말하자 경계를 서는 기사의 눈이 얇아졌다.

나직한 것은 여전했지만, 한기가 묻어나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깨어났으니 그만하게, 쉬리엔 경.”

 

난처한 상황에 말끝을 흐리는 데, 에이원즈 백작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경계를 서던 기사의 이름이 쉬리엔이었던 모양이다.

응?

이름이 아니라 성이겠지?

아무튼, 쉬리엔 경이 쓰게 웃는다.

 

“들어 가십… 시오.”

 

에이원즈 백작의 음성에 쉬리엔 경이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한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무슨 일인가?”

 

“저쪽에서 상당한 실력을 지닌 인물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릴 찾는 듯합니다. 제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자네가 버거울 정도라는 것인가?”

 

놀라워 하는 에이원즈 백작.

이거 기분 좋다.

나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안 되겠군. 기사단장들과 귀족들을 전부 깨워야겠어.”

 

“…….”

 

몸을 일으키면서 말하는 에이원즈 백작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쉬리엔 경! 기사단장들을 깨워서 집합시키게 당장!”

 

“충! 명을 따르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쉬리엔 경이 나직하고도 절도가 느껴지는 음성으로 말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어째 일을 키우는 느낌이다.

이랬는데 별 볼 일 없는 놈들이면?

엿 되는 거다.

 

***

 

스스슷!

스슥!

 

갑옷조차 입지 않고 이동 중이다.

생각 외로 일이 커졌다.

에이원즈 백작을 비롯해 실력 있는 귀족과 기사단장이 모두 동원되었으니까.

이왕 판이 커진 김에, 놈들을 생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같이 갑옷조차 걸치지 않았다. 자칫 갑옷을 입고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소음에 적이 눈치 챌 수도 있으니 말이다.

 

“…….”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수신호에 따라, 에이원즈 백작을 비롯한 실력자들이 기척을 숨기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이동하던 기척이 어느 순간 멈추더니, 우리가 있는 곳으로 접근한다.

그것도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전투 준비! 놈들이 옵니다!”

 

다급하게 소리쳤다.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놈들의 기운이 순식간에 급증한다.

기껏해야 나와 비등한 정도의 수준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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