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27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27화
오전 11시.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김현호 씨 되십니까?
“누구시죠?”
-연구소 직원입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했다. 한국아레나연구소였다.
-김현호 씨와 강천성 씨를 모시기 위해 천안에 도착했습니다만.
“아직 강천성 씨한테 연락이 안 와서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댁에서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연락이 되는대로 전화 주십시오.
“예.”
팀원들에게 따로 차를 보내겠다더니 정말이었다. 게다가 일찍 와서 대기하고 있다니, 정말 지극정성이다.
아레나에 대해 연구하는 국가기관들이 정말로 시험자 스카우트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양이었다.
‘다른 나라 국가기관하고 저울질하며 몸값 흥정을 했으면 더 유리한 조건을 받아냈을 텐데. 뭐,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까 하는 수 없지.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 있는 게 좋고.’
신기했다.
그런 국가기관들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프로 축구팀처럼 시험자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경쟁까지 하고 있었다니.
3회차, 4회차, 5회차…….
계속 시험에서 살아남고 강해진다면 다른 국가기관에서 거액을 주고 스카우트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나를 영입하기 위해 여러 국가가 돈다발을 들고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떠올리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끝내줬다.
물론 살아남았을 때의 일이지만 말이다.
윙, 위잉.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표시제한. 강천성이었다.
“여보세요?”
-천안역이다.
“저희 집 근처로 오세요. 여기가 어디냐면…….”
나는 강천성에게 집주소를 불러줬다.
그 뒤 연구소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온대요.”
-알겠습니다. 그럼 댁 앞에 차 대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예, 지금 나갈게요.”
옷을 입고 나가니 아파트 현관 앞에 에쿠스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오, 생각보다 좋은 차다. 그래도 국가기관이라고 국산차를 쓰는구나.
30대 후반쯤 된 사내가 차에서 나와 인사했다.
“김현호 씨 되십니까?”
“네, 반갑습니다.”
“타시죠.”
그는 직접 뒷문을 열어주었다. 마치 VIP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잠시 후 강천성도 합류하여 옆자리에 탔다.
“출발하겠습니다.”
***
남자는 차를 몰고 가까운 군부대에 들어가더니 부대 내의 헬기장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잠시 후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헬기가 도착했다.
남자는 헬기를 가리켰다.
“타십시오.”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은 강천성과 함께 헬기에 올라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헬기가 날아올랐다.
헬기를 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나는 정신없이 헬기 내부와 아래의 풍경을 구경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서해안의 어느 외딴 섬이었다. 꽤 큰 섬인데 커다란 10여 층짜리 빌딩 두 채가 들어선 모습이었다.
‘섬이라니,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국가기관이라 그런가?’
헬기장에서 착륙한 후에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건물 내부로 움직였다.
“오빠!”
“현호 형!”
대기실 비슷한 방에 도착하니 혜수와 준호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너희도 헬기 타고 왔냐?”
“네.”
“좀 쫄았어요. 갑자기 헬기 타고 가니까 어디로 날 데려가나 싶더라고요.”
하기야. 납치라도 당하는 기분이었겠지.
그래도 난 강천성과 함께해서 덜 무서웠지. 여차하면 강천성이 죄다 때려눕힐 테니까. 아하하.
대기실에서 넷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오셨습니까.”
차지혜가 나타났다.
오늘은 다크그레이 정장에 하얀 니트, 브라운 앵클부츠 차림이었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뚜벅뚜벅 거침없다.
“반갑습니다, 차지혜라고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담당이 될 겁니다.”
“우리가 계약을 한다면 말이죠?”
“그렇습니다.”
내 말에 차지혜는 특유의 옅은 미소를 지었다.
“2회차 시험을 마치신 걸로 아는데, 휴식시간이 며칠이나 남으셨습니까?”
“14일 남았습니다. 시험이 어제 끝났으니까요.”
“시험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에 글을 올리셨습니까?”
“예.”
“역시 현명하십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아 다행입니다.”
아, 정말. 이 여자한테 칭찬받을 때마다 왜 이렇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지?
모태솔로나 다름없는 청춘을 보내서 그런가. 사실 나란 놈은 미인계에 매우 취약한 거 아냐?
“계약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저희 한국아레나연구소는 일단 여러분의 실력이나 성과와 상관없이 생존하실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합니다.”
“다른 베테랑 시험자와 차별 없이 똑같은 수준의 지원을 받는다는 뜻이죠?”
내가 물었다.
차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지원은 한계가 있고, 결국은 시험자분들의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죠.”
“저희는 아직 2회차밖에 안 되신 여러분이 안전하게 다음 시험을 통과하며 성장하시길 원합니다. 즉, 마정 획득보다는 생존에 초점을 맞출 계획입니다.”
“마정을 가져올 경우에는 얼마를 받게 되는 거죠?”
“마정에 대한 대가는 마정의 에너지 밀집 수준에 따라 금액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 점 또한 기존의 다른 시험자와 차별 없이 동일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본 연봉이지요.”
“연봉은 얼마나 받을 수 있죠?”
“연봉은 성과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생계보장을 위해 드리는 금액인데, 아무래도 연봉책정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합니다.”
“스킬레벨과 장비를 확인하고 싶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결국 저희는 계약 전에 모든 정보를 다 공개해야 하네요. 이건 저희가 너무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이 아닌가요? 저희는 다른 국가기관과도 접촉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보통 어느 정도 조건으로 계약이 이루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해요.”
“그런 측면은 저희를 믿어달라고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차피 지속적으로 시험자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절한 대우를 해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타국에게 귀중한 인재를 뺐깁니다.”
“으음…….”
이 여자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미인계에 걸려든 탓인가?
나는 고민 끝에 말했다.
“일단은 1년만 계약할게요.”
“1년 말씀이십니까?”
“예, 일단 1년만 함께해 보고 충분한 신뢰가 생기면 계속 계약을 연장할게요.”
“으음, 좋습니다. 어차피 김현호 씨 팀의 실력에 따라 연봉도 재조정됩니다. 저희는 정부 지원도 받고 있으니 그 점은 섭섭하지 않으실 겁니다.”
나는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다. 이혜수, 이준호, 강천성 셋 다 고개를 끄덕였다.
난 차지혜에게 말했다.
“좋아요.”
차지혜는 브리프케이스에서 종이와 펜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스킬과 아이템, 카르마를 전부 적어서 주십시오. 그것을 토대로 심사하여 연봉을 책정하겠습니다.”
우리는 종이에 서술을 하기 시작했다.
정령술 초급 1레벨, 전장식 마법소총, 탄알집혁대, 900카르마.
내가 쓴 글을 보던 차지혜가 놀라서 물었다.
“정령술?”
“뭐 잘못됐나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정령술을 가진 시험자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특이한가요?”
“예, 웬만큼 실력 좋은 시험자는 이 바닥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데, 정령술을 메인스킬로 가진 시험자는 한 번도 등장한 적 없습니다. 희귀능력을 가지신 만큼 계약조건도 유리해질 겁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그런데 900카르마라고 적혀 있는 건 실수로 잘못 적으신 겁니까?”
“아뇨. 900카르마 맞아요.”
차지혜는 더욱 놀라움에 찬 얼굴이 되었다.
“2회차에서 900카르마를 얻으셨단 말씀이십니까?”
“예, 뭐, 역대 최고점이라고 천사 자식이 그러긴 하던데 정말인가요?”
“무, 물론입니다. 5회차에서도 그만큼 점수 따기가 힘듭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탄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내 주제에 능력자 취급을 받다니, 29년 평생 없었던 경험이다.
이어서 그다지 쓸 게 없는 이준호와 이혜수도 종이를 제출했다. 그걸 받아 읽어보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차지혜였지만, 이어서 강천성의 것을 보고는 또다시 놀랐다.
“강천성 씨, 혹시 허위기재를 하신 것은 아닙니까?”
“아니다.”
“2회차 시험자가 오러 컨트롤 초급 4레벨과 체력보정 중급 1레벨인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만…….”
“그런데?”
강천성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내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분은 원래 엄청난 무술가였어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심사를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차지혜는 우리에게 받은 종이를 브리프케이스에 넣고 나갔다.
“형,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난 돈 같은 건 상관없어. 살아남는 데 도움만 되면 그걸로 족해.”
부잣집 딸다운 혜수의 욕심 없는 소망이었다.
“그러게. 당장은 너무 욕심 차리지 말자. 저쪽도 말했지만, 일단은 살아남는 데 주력해야 해. 이렇게 제대로 된 기관인 걸 보면 큰 도움이 될 거야.”
우리보다도 훨씬 시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차지혜였다. 아레나 전체 지도까지 제작했다니 수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겠지.
심사는 정말 빨랐다.
30분도 되지 않아 되돌아온 차지혜가 계약서 4부를 우리에게 나눠줬다.
“읽어보시고 서명하시면 됩니다. 요약하자면 1년 소속 계약, 연봉은 김현호 씨와 강천성 씨는 6천, 다른 두 분은 3천입니다.”
“6천?”
나는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높은 연봉이었기 때문이다.
놀란 내게 차지혜가 말했다.
“김현호 씨는 정령술이라는 극히 희귀한 스킬을 익히셨고 팀의 리더라는 점에서 높은 연봉을 부여했고, 강천성 씨는 벌써부터 5, 6회차 시험자와 맞먹는 강함을 지녔기에 역시 6천으로 정했습니다.”
“그럼 저희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 있나요?”
“카르마는 반드시 담당 연구원과 상의한 후에 사용하고, 아레나에서 습득한 마정은 반드시 저희에게 판매할 것, 그리고 훈련 시간을 준수해 달라는 것 외엔 없습니다.”
“좋네요.”
계약서를 읽어보니 차지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나를 필두로 모두가 사인을 했다.
그렇게 계약이 채결되었다.
“한국아레나연구소의 소속 시험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의 담당 연구원 차지혜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시 제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우리는 차지혜와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본격적인 시험 준비가 시작되었다.
***
가장 먼저 한 일은 개별면담이었다.
차지혜는 우리를 한 명씩 불러 지난 시험의 경위를 들었다. 1회차와 2회차 시험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최대한 상세한 설명을 그녀는 요구했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성향과 전투스타일을 파악한다는 의도였다.
리더인 내가 가장 먼저 면담에 들어갔다.
나는 박고찬의 죽음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요약하겠습니다. 시험자 김현호는 동료를 겁탈하려 했던 시험자를 처단하고, 레드 에이프 우두머리를 암살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습니다. 시험자 김현호는 제 생각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나십니다. 거기에 강천성 씨 같은 팀원도 있으니 김현호 씨 팀은 장기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박고찬을 죽인 것은…….”
“염려 마십시오. 아레나에서 벌어진 일로 처벌할 법적 근거도 없고, 시험자 김현호는 아주 현명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 동료 때문에 팀워크가 무너져 전멸한 시험자 팀이 많습니다.”
그제야 내 안에서 박고찬에 대한 마음의 짐이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