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26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26화
강천성의 강함을 말할 필요도 없고, 나 역시도 마음만 먹으면 실프로 대형 사고를 칠 능력이 있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국가기관이 이 같은 시험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불쑥 신상을 알아내 전화 드린 터라 불인하신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래도 결코 손해 보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안심하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천안역에서 뵙죠.”
통화를 끊고 우리는 인근의 카페로 각각 따로 들어갔다.
창가 쪽 테이블에 앉은 강천성은 창밖을 예의주시했다.
나는 가까운 테이블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차지혜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천안역입니다.]
차지혜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는 카페 위치를 지도어플로 찍어 보냈다.
이윽고 검은 정장 차림의 젊은 여성이 카페에 나타났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숏컷에 하얀 정장이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미인이었다. 하얀 팬츠에 감싸인 다리가 길고 탄력적이어서 사슴을 연상케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곧장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여자답지 않게 힘찬 걸음걸이다. 뚜벅뚜벅, 붉은색 앵클부츠가 규칙적으로 바닥을 때린다.
“반갑습니다, 김현호 씨.”
“예.”
차지혜는 곧장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그녀를 빤히 보다가 물었다.
“군인이세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눈이 동그래지는 차지혜.
인상이 차가운데 놀란 표정이 의외로 귀엽다.
“그야 말투는 다나까고 걸음도 힘차고 헤어스타일까지 짧으시니까 저도 모르게 군인이 연상되던데요.”
이에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직도 군바리 티가…….”
“네?”
“아닙니다. 그보다 저도 주문하고 오겠습니다.”
그녀는 카운터로 성큼성큼 가더니 여직원에게 주문했다.
“캐러멜 마키아또 라지로 하나, 민트 초코 베이글 하나, 딸기 와플 세트 하나.”
순간 난 웃을 뻔했다.
각 잡힌 군인티를 팍팍 내는 주제에 달콤한 것만 잔뜩 고른 게 귀여웠다. 설마 날 웃겨서 방심시키려는 속셈인가?
난 흘깃 강천성을 보았다. 강천성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일행은 없다는 뜻이었다.
주문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가 바로 입을 열었다.
“제 소개를 먼저 하겠습니다. 저는 한국 아레나 연구소의 차지혜입니다. 부대에 있다가 국정원을 거쳐 한국 아레나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보통 여자가 아니로군.
“연구원이라면 어떤 일을 하시는 거죠?”
“제2차원계 아레나와 시험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연구합니다. 저의 경우 전투와 생존 분야를 맡고 있고, 시험자분들을 전담하여 직접적으로 캐어하는 역할도 맡게 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차지혜는 흘깃 옆을 보며 말했다.
“창가 테이블에 계신 분은 같은 팀 시험자입니까?”
“……!”
“카페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제게 다른 일행이 없음은 확인하셨을 테고, 합석해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죠.”
날카로운 안목.
결국 난 강천성을 불러 합석시켰다.
차지혜는 강천성에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말하지 않겠다.”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강천성.
그러자 차지혜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억양은 중국분이시군요.”
“…….”
“키 185 내외, 잘 단련된 체격은 체력보정 스킬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제 느낌상 원래 전문 무술을 익힌 분 같습니다. 그리고 경계심 강한 태도로 보아 경찰 쪽 데이터베이스를 참고하면 하루 안에 신분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틀립니까?”
‘세상에!’
나는 기겁을 했다. 틀리긴 개뿔. 그녀는 거의 다 맞췄다.
강천성이 이를 사납게 드러냈다.
“지금 네 목을 분지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 보군.”
“제가 정말 혼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뭣?”
천하의 강천성도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윽고 강천성의 눈빛이 점점 싸늘해졌고, 두 사람은 매섭게 눈싸움을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주문하신 캐러멜 마키아또, 민트 초코 베이글, 딸기 와플 세트 나왔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차지혜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순간 폭풍전야 같았던 긴장감이 맥없이 풀어졌다.
달콤한 것들을 잔뜩 들고 온 차지혜는 기분 탓인지 아까보다 더 생기발랄해 보였다.
나이프로 와플을 썰기 시작하며 그녀가 말했다.
“참고로 정말로 혼자 왔습니다.”
“…….”
멍한 얼굴이 된 강천성. 아마 내 표정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평범한 여성처럼 행복하게 와플을 먹는데, 강천성이 협박을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여자라니. 군인에 국정원 출신이라더니 정말로 차지혜는 보통이 아니었다.
“이런 기 싸움도 경계 받는 것도 싫습니다. 저희는 정말로 시험자 여러분께서 살아남도록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음, 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
물론 나쁜 목적으로 접근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냥 순수하게 도와주기만 하려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난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기다리면서 인터넷을 확인했는데요. 제가 올렸던 글이 전부 삭제되었더라고요.”
“예, 기본적으로 사회적 혼란 방지를 위해 시험과 아레나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무슨 뜻입니까?”
“반나절도 안 되어서 제 신분을 알아내고, 글을 모조리 지우고, 곧장 이렇게 찾아온다. 대한민국 공무원치곤 너무 신속하잖아요.”
“…….”
“제 생각인데요.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그런 국가기관이 있는 거죠?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그들은 시험자를 찾아내 포섭하려 하고 있고요. 아마 시험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되는데, 제 망상인가요?”
“아니, 정말 훌륭합니다.”
차지혜의 차가운 얼굴 위로 감탄이 살짝 떠오른다.
“모든 나라 국가기관이 시험자를 스카우트하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신속하게 움직인 겁니다. 혹시 김현호 씨는 팀의 리더이십니까?”
“예.”
“역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상하신 것처럼 시험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시험자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서포트하고, 대신 시험자가 가져다주는 이익을 취합니다. 물론 서포트 중에는 금전적인 보상 또한 있습니다.”
“그 이익이 뭔가요?”
“마정이라고 합니다.”
“마정?”
“아레나의 모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몸속에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응집된 일종의 내단 같은 것인데, 그것이 아주 고효율의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미국에서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 뒤로 경쟁적으로 시험자를…….”
“그렇습니다.”
“시험자의 생존을 돕기 위해 어떤 서포트를 하고 있나요?”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차지혜는 갑자기 자신의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러자 그 안에 잠수복처럼 생긴 차콜색의 의상이 드러났다.
“연구소가 개발한 배틀 슈트입니다. 웬만한 힘이 아니면 도검으로 뚫을 수 없고, 보온효과도 뛰어나 야영 시 유리합니다. 옷은 입고 시험에 임할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옷과 신발의 성능 개량에 노력합니다.”
“아…….”
“뿐만 아니라, 아레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연구합니다. 아레나 전체 지도를 완성했고, 각 지역에 어떤 동식물과 괴물이 서식하는지 알아냈습니다.”
“서포트를 한다는 게 그냥 빈말이 아니었네요.”
“물론입니다. 최우선은 시험자의 생존입니다. 그리고 동료분?”
“강천성이다.”
“강천성 씨, 어지간히 질 나쁜 흉악범이 아니면 한국 시민권을 가진 새 신분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미 그렇게 새 인생을 사는 시험자 몇 분이 계십니다.”
“으음.”
달콤한 제안인지라 강천성도 갈등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시험에서 얻은 마정으로 수익을 올리실 수 있고, 그것과 별개로 실력에 따라 기본 연봉을 보장합니다. 어떻습니까? 저희가 아직도 무언가 음모를 꾸미는 수상한 기관으로 보이십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자선사업 하듯이 무조건 우릴 돕겠다고만 했으면 의심했겠지만요.”
“다른 나라로부터도 이 같은 제의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만, 마정은 소중한 예비 전략물자이고, 조국의 국가기관과 함께하면서 얻을 수 있는 편의도 많습니다. 부디 저희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 다른 동료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겠습니다.”
“그러십시오. 그런데 실례지만 몇 회차이십니까?”
회차?
아마 몇 번째 시험이냐고 묻는 거겠지.
난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건 비밀입니다.”
차지혜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꼭 함께했으면 합니다. 받아들이신다면 제가 여러분 팀의 담당자가 될 겁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죠.”
우리를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했다. 그런데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단 주문한 건 다 먹고 일어서고 싶습니다만…….”
“그, 그러세요.”
차지혜는 와플과 베이글을 열심히 먹었다.
먼저 일어선 쪽은 강천성이었다.
“먼저 가지. 저녁에 연락하마.”
“그러세요.”
강천성이 떠나고 나와 차지혜는 단둘이 되었다.
민트 초코 베이글을 몹시 맛있게 먹으면서 차지혜가 말했다.
“제가 여러분을 보고 알아낸 게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러세요.”
“다른 시험자를 만나보지 못하신 걸로 보아 5회차 이내. 아직 두 분 사이가 어색한 걸로 보아 3회차 이내. 그리고 강천성 씨는 범죄자지만 김현호 씨의 신뢰를 받고 있는 걸로 보아 질 나쁜 분은 아닌 듯합니다.”
‘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나를 흘깃 보며 계속 말했다.
“체격은 평범하신데 팀의 리더인 것으로 보아, 김현호 씨는 마법 계열의 메인스킬을 익히셨을 겁니다.”
“그, 그렇다고 해두죠.”
“그렇습니까? 전투 계열은 확실히 아니지만, 마법 계열이 아닌 좀 더 특수한 쪽이시군요.”
“그, 그만해 주세요.”
“훗, 알겠습니다.”
차지혜는 나직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 누나처럼 차가운 인상인데, 가끔씩 살짝 보이는 미소가 대단히 귀여운 여자였다.
딸기 와플 세트까지 전부 먹어치운 뒤에야 차지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늦게라도 상관없으니 오늘 내로 팀원과 상의해서 결론짓고 연락 주십시오.”
“너무 서두르시네요?”
“이제 2회차이시니 휴식시간이 보름밖에 안 되잖습니까. 최대한 빨리 결정하고 다음 시험에 대비해야 합니다. 혹시 카르마는 전부 쓰셨습니까?”
“아뇨, 아직 안 쓰고 있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나는 아차 싶었다. 차지혜는 또다시 살포시 미소 지었다.
“역시 2회차셨습니까.”
‘또 당했다!’
난 이제 이 여자가 무서워진다.
“아무튼 잘됐습니다. 카르마도 저희와 상의하여 전략적으로 보상 받으면 그만큼 다음 시험에서 유리합니다.”
“끄응, 알겠습니다. 오늘 내로 연락을 드릴게요.”
“만일 승낙하신다면 내일 계약을 하고 곧바로 다음 시험 준비에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좋은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카페를 나와 헤어졌다.
곧바로 준호와 지혜에게 전화해 오늘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우와, 정말이에요 형? 저야 당연히 땡큐죠! 시험에서 살아남도록 지원해 주고 돈까지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게 준호의 반응.
“현호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빠가 찬성이면 저도 무조건 찬성이에요.”
이게 혜수의 반응.
저녁에 연락이 온 강천성 또한 찬성이었다. 다른 것보다 한국 시민으로 새 신분을 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차지혜에게 문자를 보냈고, 곧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팀원들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세요. 저희가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