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22화 | 판타지 소설 | 무료소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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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이계사냥기 22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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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22화

 


으슥한 곳으로 빠져나온 이혜수는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한밤에 홀로 어둠 속에 있으니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이혜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레드 에이프는 숨어 있다가 덮치기를 좋아한다. 첫 시험 때도 그랬고, 두 번째 시험의 첫날에도 야습을 해왔었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뚝-
나뭇가지가 밟혀 부러지는 소리. 작지만 똑똑히 들렸다.
“누, 누구야!”
덜컥 겁이 난 이혜수는 나무창을 꼬옥 쥐었다. 김현호가 만들어준 조악한 나무창은 과연 그녀의 손에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소리가 난 곳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무창으로 그쪽을 겨누고 이혜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오라고!”
“죽고 싶은 년치고는 바짝 쫄았네.”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고찬!’
레드 에이프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이혜수는 오히려 더욱 두려워졌다.
박고찬이 걸어 나왔다.
오른손에 장검을 들고 있었다.
어둠 속이라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비열하게 웃고 있을 터였다.
“뭐, 뭐야?”
“뭐긴 씨발 년아. 뒈져서 천국 가고 싶다며? 그래서 천국에 보내주려고.”
낄낄거리는 박고찬.
“저리 꺼져!”
“어른한데 존댓말 써라. 그러다가 죽어서 지옥 갈라.”
“지옥은 너나 가겠지!”
“안 죽으면 돼.”
박고찬이 장검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어차피 이제 와서 내가 못된 짓 골라 하며 살아온 놈인 건 돌이킬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아, 그냥 안 죽으면 되겠구나, 하고 말이야.”
“……!”
“이 좆같은 시험 전부 다 해치우고 끝까지 살아남으면 된다 이 말이야. 내가 얼마나 개 같은 새끼든 시험만 하면 되잖아. 그래서 날 불러다가 시험자로 만든 것 아니겠어? 앙?!”
“그, 그래서?”
“넌 이 씨발 년아, 눈치껏 고분고분 기었으면 이렇게 험한 꼴은 안 봤을 것 아니야? 김현호 그 자식이 너 계속 지켜줄 줄 알았어? 원래 세상은 말이지, 그렇게 잰 척하는 새끼가 제일 빨리 죽어!”
박고찬이 불시에 달려들었다.
“꺄악!”
이혜수는 비명을 지르며 나무창을 찔렀다.
스컥!
휘둘러진 장검에 나무창이 형편없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박고찬의 주먹이 이혜수를 후려쳤다.
“아악!”
이혜수는 맥없이 쓰러졌다.
체력보정 초급 3레벨인 박고찬의 주먹은 그녀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쓰러진 그녀의 위로 박고찬이 깔고 앉았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그녀의 양손을 붙잡으며 박고찬이 소리쳤다.
“기분 엿 같겠지만 말이야, 끝까지 살아남는 놈은 나 같은 새끼다 이거야! 알겠냐? 이 씨발 년아!”
퍼억! 퍽!
“아악!”
사정없는 주먹질에 이혜수의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
박고찬은 그녀의 셔츠를 벗기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이혜수였지만, 거친 손길이 셔츠를 우악스럽게 찢어버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멈춰-!”
박고찬의 손길이 움찔 멎었다.
‘뭐야?’
익숙한 목소리. 다시는 들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목소리였다.

***

일행의 발자국을 쫓으며 걸은 지 두어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정찰을 하고 돌아온 실프가 일행이 900미터 거리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다들 별일은 없었나 보네. 혜수 씨는 괜찮아 보였고?”
그런데 내 물음에 실프를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뭐? 무슨 일인데?”
그렇게 물었지만 실프가 말을 못하는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디 다쳤어?”
도리도리.
“그럼 습격이라도 당한 거야?”
그제야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달렸다.
“레드 에이프야?”
나는 달리면서 물었다. 고개를 젓는 실프. 그렇다면…….
학교 운동장도 아니고 숲 속에서 달리려니까 힘들어서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계속 달렸다.
“시, 실프, 허억! 지금 박고찬이, 헉! 혜수 씨를 공격했어?”
헐떡거리며 간신히 물으니 실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억, 헉, 몇 미터 남았지?”
실프는 숫자 642를 그렸다. 제기랄! 이대로는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가만?
그런데 실프가 내게서 떨어질 수 있는 거리 제한이 900미터였지? 그럼 900미터 안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인데?
난 잠시 달리는 것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실프에게 물었다.
“여기서 박고찬을 공격할 수 있니?”
-냐앙.
실프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정령은 소환자에게서 멀어질수록 힘이 약해진다고 했다. 공격을 한다고 해도 박고찬에게 어떤 타격을 입힐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방법은 없나?
잠시 맹렬히 머리를 굴리다가 나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실프, 그럼 내 목소리를 거기까지 전달할 수 있니?”
-냥!
끄덕거리는 실프.
‘되는구나!’
나는 혹시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그럼 저쪽의 말을 나한테 전달해 줄 수도 있고?”
-냥.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럴 수가!’
실프의 유용성에 나는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바람의 정령은 아주 훌륭한 원거리 통신수단이었던 것이다!
“실프, 그럼 박고찬과 혜수 씨한테 내 말을 전달해 줄래?”
-냥.
이윽고 나는 큰 소리로 ‘멈춰!’라고 고함을 쳤다.
실프가 내 말을 전달하고 다시 돌아오자 나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허튼짓하면 쏜다! 지금 네 머리를 겨누고 있어!”
그렇게 소리치고는 박고찬의 대답을 내게 전달해 달라고 실프에게 부탁했다.
물론 뻥이다.
내 전장식 마법소총의 유효사거리는 고작 60미터니까. 하지만 내 허풍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어디야?!”
실프가 박고찬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었다. 당황한 박고찬의 음성이 바로 옆에서 들은 것처럼 생생했다. 정말 신기하군.
“방아쇠 당기면 댁 머리를 맞출 수 있는 곳!”
“나, 나와!”
“싫은데?”
“날 쏘겠다고? 쏠 수 있겠냐?”
“응, 쏠 수 있어.”
“크흐흐, 지랄하네. 사람 죽여 봤냐? 네가 날 쏘겠다고?”
“사람 비슷한 건 실컷 죽여 봤지. 쏘면 머리 터지는 건 레드 에이프나 당신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
협박이 먹혔는지 박고찬은 두려움에 잠시 대꾸를 못했다.
내가 아직 5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 리 없었다.
“실프, 녀석이 무기를 들고 있니?”
-냥.
“오케이.”
나는 박고찬에게 다시 소리쳤다.
“무기를 혜수 씨에게 넘겨. 허튼짓하면 그어버리라고 실프에게 말해뒀어.”
“어이, 이러지 말고 우리 협상하는 건 어때?”
“……?”
“너도 이년한테 관심 많았잖아. 다 안다고. 그럼 대체 뭘 망설이는 거야? 그렇게 호구처럼 도움만 주면 이년이 고맙다고 한 번 대줄 것 같아? 새끼야, 이용당하지 말고 좋은 쪽을 택하란 말이야. 어때?”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러워서 말도 섞기 싫었다. 생각 같아선 그냥 쏴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계속 대화를 나눠야 했다.
“흥미로운 제안이네.”
“크하하, 그렇지?”
“무기를 혜수 씨에게 넘기고 물러나.”
“이런 병신 새끼가!”
“병신은 당신이고. 생사가 걸린 이 판국에 이딴 짓을 하냐?”
“…….”
나는 실프에게 물었다.
“혜수 씨만 들을 수 있게 귓속말을 할 수 있을까?”
-냥.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정말 편리하군.
나는 이혜수에게 말을 전달했다.
“혜수 씨, 그놈한테서 떨어지세요. 어서 이쪽으로 와요. 실프가 방향을 가리켜 줄 거예요.”
잠시 후 실프는 그녀가 이쪽으로 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좋았어. 박고찬에게서 떨어뜨리는데 성공했다.
“자, 이제 됐냐?”
박고찬이 물었다.
“되긴 뭐가 돼? 이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줄 알았어?”
“그럼 어쩔 건데 새끼야?”
“어쩔 것 같은데?”
“지, 지금 날 죽이려고? 같은 시험자인데? 페널티가 두렵지도 않아?”
‘페널티?’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러고 보니 첫 시험 끝나고 카르마를 받았을 때 +500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지. 그럼 마이너스(-)도 있다는 뜻인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나는 박고찬을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이제 거리가 200미터로 줄어들었을 때였다.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이혜수가 보였다.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쪽이에요.”
“현호 씨!”
달려온 이혜수는 그대로 내 품에 안겼다. 그리고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장검을 들고 있었는데, 박고찬이 내 요구대로 그녀에게 무기를 넘긴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무장해제하면 사라질 텐데, 내가 생각을 잘못했군.
나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한 손으로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제 괜찮아요.”
“으흐흐흑!”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이혜수를 진정시키며, 나는 박고찬에게 말했다.
“이곳을 떠나!”
“뭐라고?”
“이곳을 떠나라고.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랑 별도로 행동하는 거야.”
“혼자 행동하라고? 나더러 죽으라는 뜻이잖아!”
“그럼 내가 댁을 위해 불 피워주고 밥 챙겨주고 할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는 못해. 그러니까 꺼져 버려. 죽든 말든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어이, 그러지 말고 우리 화해하자고. 내가 잘못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알잖아? 패닉에 빠지면 정신 나간 행동 하는 거.”
“댁은 일평생 패닉에 빠져 살았나봐?”
“야, 이 개새끼야! 그럼 날더러 어쩌라고? 혼자 떨어져 나가면 죽으라는 것밖에 안 되잖아!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이번 시험 끝나고 다음 시험에는 또 얼굴 안 볼 것 같아?”
박고찬은 뻔뻔하게 악다구니를 썼다.
거리가 점점 좁혀져 100미터 이내로 접어들었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유효사거리 이내였다.
“인마, 내가 잘못했다고 하잖아. 나 새 사람 될 테니까 다시 한 번 잘 해보자고. 너희나 나나 똑같이 이미 한 번 죽었던 사람들이잖아. 우리끼리 다시 죽이네 사네 하지 말자고.”
“…….”
어찌해야 하지?
놈은 내가 살인까지는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강간까지 하려 했던 놈이 뻔뻔스럽게도 일행에 붙어 있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놈을 쫓아내야 한다. 하지만 놈이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죽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정말 죽여야 하나?
그런데 그때였다.
꼬옥.
이혜수가 내 손을 붙잡았다.
“해주세요.”
“…무엇을요?”
“죽여주세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한마디.
내 손을 잡은 그녀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괴로워서 죽고 싶어요. 다시는 저 인간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너무 무서워요. 차라리 제가 죽고 싶어요. 제발 부탁해요. 저를 구해주세요.”
“…….”
“제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박고찬이 내 눈에 보였다. 어림잡아 4, 50미터.
마법소총을 꺼냈다. 납구슬탄을 장전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고, 조준선은 박고찬의 머리를 향해 일치시킨다.
다행히 어둠 속이라 박고찬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였더라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으리라.
이혜수는 내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구해줄 유일한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박고찬을 죽이는 대신 이혜수를 살리는 거다. 둘 중 하나를 살려야 한다면 이혜수니까.
투웅-
“컥!”
그거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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