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11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11화
두 번째 시험까지 남겨진 시간이 줄어들수록 심장을 옥죄는 듯한 초조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첫날보다는 다소 마음이 든든해졌다. 훈련의 성과 덕분이다.
사격과 정령술 훈련을 시도한 첫날에 나는 실프를 사격에 이용하는 최고의 요령을 터득했다.
조준을 실프에게 맡기는 것!
바람의 정령인 실프는 어떻게 발사되어야 총알이 목표물에 명중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실프로 하여금 총구를 움직여 정밀한 조준을 맡겼다.
백발백중!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실프의 도움이 있는 한 나는 특수부대의 베테랑 스나이퍼보다도 사격을 잘할 수 있다. 아무렇게나 쏴도 정밀 조준 사격을 한 것처럼 적중되니 말이다.
‘정령술을 메인스킬로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
현명했던 내 결정에 안도감이 들었다.
메인스킬은 딱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고, 다시는 바꿀 수 없다고 한다. 한 번 택한 메인스킬이 앞으로의 모든 시험에 있어 내 싸움 방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셈이었다.
일단은 첫 단추를 잘 꿰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소총을 주 무기로 선택한 내 방식은 근접전에 매우 취약하다.
코앞에서 레드 에이프 같은 놈이 주먹도끼를 들고 덤비는데 총구에 총알을 넣어 장전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가장 좋은 것은 근접전을 아예 안 하는 거야.’
은밀하게 행동하며 적에게 내 존재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첫 시험 때를 생각해 보자.
장소는 숲. 적은 거기서 서식하는 레드 에이프였다. 숲에 아주 익숙한 야생동물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었다.
그런 놈의 이목을 피해 은밀하게 다니기란 불가능하다. 첫 번째 시험처럼 상대가 먼저 날 발견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기습하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군대를 해병대나 특전사로 가는 건데. 이 꼴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어?’
후방 보급부대에서 2년간 익힌 분리수거 스킬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다른 방법은 없어. 실프를 잘 이용해야 해.’
나는 실프를 소환해서 물어보았다.
“실프, 잘 들어봐.”
-냥?
실프는 고개를 바짝 내밀며 내 말에 집중하는 시늉을 했다. 아, 요 귀여운 녀석!
“네가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자.”
-냥.
실프는 정말로 내 오른쪽 어깨 위에 사뿐히 올라왔다.
슬렁슬렁 목을 휘감았다 풀었다 하는 부드러운 꼬리 감촉을 느끼며, 내가 말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날 해치려 하는 못된 놈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거야. 그놈이 날 해치지 전에 미리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너는 알아차릴 수 있니?”
-냥!
고개를 끄덕이는 실프.
“어느 정도까지 접근해야 알 수 있어?”
실프는 어깨 위에서 점프해 내 눈앞에서 전광석화처럼 빙글빙글 비행했다. 실프의 잔상(殘像)이 숫자 200을 그렸다.
“200미터? 그 거리 이내에 접근하는 적은 전부 알아차릴 수 있다고?”
-냥.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실프가 첫 시험 때 있었으면 레드 에이프는 곧바로 발각됐을 거 아냐?
“좋아, 그럼 이건 어때? 우리가 아주 위험한 지역에 들어서서, 나는 주변에 무엇이 있나 살피기 위해 네게 정찰을 시켰어. 넌 어느 정도 거리까지 정찰을 할 수 있니?”
실프는 이번에는 900을 그렸다.
“900미터? 나랑 떨어질 수 있는 거리가 900미터야?”
-냐앙.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서 900미터 이상 떨어질 수는 없다는 거지?”
-냥.
“알았어. 그럼 혹시 내 정령술 레벨이 오른다면 이 거리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니?”
-냐앙.
끄덕끄덕.
그 후로 실프와 소통하고 이것저것 실험하면서 정령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첫째, 실프에게 정찰을 시켜도 소환 시간이 줄지는 않았다. 정찰에는 별도의 힘의 소모가 없는 것이다.
둘째, 하지만 내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실프의 힘은 약해졌다. 반대로 나와 가까이 있을수록 강해졌다.
셋째, 소진한 소환 시간은 10시간 후에 완전히 회복된다.
실프의 소환 시간은 2시간.
이게 무슨 뜻이냐면, 5분마다 1분씩 소환 시간이 회복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실험해 봤다. 소환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서, 5분 뒤에 실프를 다시 불렀다. 실프는 1분간 소환되어 있다가 다시 사라졌다.
‘좋아.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됐다.’
감시도 정찰도 사격도 실프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심지어 동서남북의 방위도 실프가 알려준다.
그런 나에게 2시간밖에 안 되는 소환 시간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는데, 보완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실프를 필요할 때만 소환하면 된다.
싸울 땐 어쩔 수 없지만, 평상시에는 5분마다 한 번씩 소환하면 된다. 60초 후에 돌아가게 하고, 다시 5분이 지나면 소환한다.
실프와 함께해야 습격을 받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실프를 소환하지 않고 있는 그 5분 사이에 습격을 받으면 곤란하지만, 그럴 확률은 높지 않다. 소환한 60초 동안 주변 정찰도 시킬 거니까.
그렇게 나는 여러 가지 구상을 하면서 두 번째 시험을 준비했다.
매일 아침 등산을 다녀오고, 팔굽혀펴기를 했다. 이런 운동도 닷새가 지나니까 첫날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짧은 시간이어도 확실히 꾸준히 하니 효과가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토록 순조로웠던 나의 준비는 큼직한 암초를 만나버렸다.
그 암초는 바로…….
“아들~!”
엄마가 불쑥 내 방에 들어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시험에 대해 이것저것 메모하던 노트를 닫았다.
“어, 엄마?”
“어머, 아들. 뭘 급히 덮어?”
“아, 아무것도 아냐.”
그러자 엄마는 다 안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아들, 아들이 사춘기도 아니고 이제 곧 서른인데…….”
“무슨 오해를!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시추에이션이……!”
“알아, 알아.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 미안해, 아들.”
“크윽, 내가 말을 말지……. 그보다 아직 가게 안 나가고 웬일이셔?”
“아들도 가게 같이 나가야지.”
“내가 가게에 왜 가? 벌써 치매?”
“어머 아들, 말버릇 참 예뻐라.”
뻔뻔스럽게 시치미를 뗐지만, 나는 올 것이 왔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로 세월 보내다가 서른이 다 되어서야 포기하고 돌아온 아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 있다.
엄마로서는 하루빨리 나를 닭강정의 세계로 끌고 가고 싶을 터였다.
하지만 내 남은 휴식 기간은 이제 겨우 5일. 내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닷새를 닭강정 볶다가 끝내고 싶지는 않다!
“엄마도 아들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한동안은 쉬게 해주고 싶은데, 하필이면 예림 아줌마가 오늘은 아파서 못 나온다지 뭐니?”
크윽.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고 있다!
생각해라.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그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엄마. 같이 일하는 아줌마는 올해부터 주 4일만 일하고, 다른 날은 알바 고용한 것 아니었어? 아줌마가 올해 예순이라 일을 줄이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어, 어머, 그걸 또 기억해 아들?”
당황하는 엄마.
“기억하고말고. 가게에 고용한 알바 시급이 6천 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보다 낫구나 하고 신세한탄을 했었으니까!”
“그런 기억력을 공부에 좀 쓰지.”
내 말이요.
번데기 천사 녀석 말대로 위기 순간이 되어서야 내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구나.
“아무튼 다음 달부터 나도 가게 나가서 일할 테니까 지금은 좀 봐줘. 그래도 집에 있으면서 청소랑 빨래도 하잖아.”
“하긴 아들 오고서 집 안이 깨끗해졌지. 화장실 배수구에 머리카락도 안 보이고.”
“거봐. 내가(실프가) 얼마나 열심히 청소한다고.”
“알았어. 봐줬다. 근데 다음 달부터는 일 안 하면 용돈도 없어 아들?”
“알겠소이다.”
엄마가 출근하고서 나는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이쪽은 시험 준비로 할 일이 많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