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8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8화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니 여동생 현지가 집에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어머, 오빠 살 많이 빠졌네.”
“공부하느라 고생해서 그래.”
“푸히히, 웃기네. 만날 알바 하던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랑 삼각 김밥만 먹어서 그렇지.”
“쳇, 잘 아는군.”
“근데 청소랑 설거지랑 오빠가 다 했어?”
“오냐.”
“올, 웬일이야?”
“너도 취업준비로 바쁠 때잖아. 난 당분간 할 일도 없으니까 이런 건 내가 해줄게.”
내 말에 현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윽고 매우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넌 누구냐?”
“네 오빠다.”
“거짓말. 내 오빠는 그렇게 착하지 않아!”
“너 좀 맞자.”
내가 꿀밤을 때리려 들자 현지는 꺅꺅거리며 달아났다. 티격태격하다가 현지가 말했다.
“저녁 먹어야지? 엄마랑 언니는 늦는댔어.”
“그래? 뭐 시켜먹을까?”
“시키긴 뭘 시켜. 엄마가 보쌈 해놨어. 먹고 싶었다며? 내가 상 차려줄게.”
이번에는 내가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현지를 볼 차례였다.
“넌 누구냐? 내 여동생은 그렇게 고분고분 상 차려줄 아이가 아니야!”
현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도 양심 있다 뭐. 청소랑 설거지 다 해줬는데 밥은 차려줘야지.”
“그래? 하긴. 네가 4학년 됐다고 안 하던 공부를 갑자기 열심히 할 애도 아니고…….”
“이씨! 나도 열심히 취업준비 중이거든?”
“지난번에 클럽에서 놀다 온 거 엄마한테 들켰다며?”
내 지적에 현지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냥 기분 전환이었어. 내가 뭐 남자 만나서 놀다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친구랑 춤만 춘 건데.”
“쯧쯧, 넌 참 노는 거 좋아해서 큰일이다.”
“시끄러, 상 차리는 동안 씻기나 해. 땀 냄새 대박 나니까.”
“예이, 예이.”
현지가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보쌈, 김치, 현미밥과 갖가지 반찬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미역국까지 있어서 놀랬다. 누구 생일도 아닌데 엄마가 나 돌아온다고 어지간히도 들떴던 모양이었다.
“어서 먹어. 식는다.”
“알았다.”
우리는 사이좋게 식탁에 앉아 TV 보며 식사를 했다.
“정말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 보네.”
“뭐가?”
“옛날에는 너랑 나랑 서로 집안일 떠넘기려고 아웅다웅했잖아.”
“그건 그래.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빠 오면 집안일 떠넘길 생각으로 가득했거든? 근데 오빠가 설거지랑 청소랑 전부 해놓은 거 보니까 양심이 찔리더라.”
“이년, 죄 나한테 떠넘길 생각으로 아주 신바람이 났었구나.”
“푸히히. 앞으로 오빠가 다 해준다고 했으니까 밥이랑 빨래는 내가 할게.”
“그렇게 하자. 여자 속옷이 한두 개도 아니니까 빨래는 나도 불편하다.”
“풋, 여자 속옷 정도에 쫄다니, 오빠 아직 동정?”
이년이 근데?
“엄마랑 누나는 상관없는데 네 속옷은 되게 천박할 것 같아서 오빠로서 겁나는구나.”
“뭐야! 날 뭐로 보고!”
“클럽 죽순이.”
“흥, 백수보단 낫지.”
“흐흐흐, 너도 곧 졸업이지?”
“그, 그런데?”
“훗, 내년이 기다려지는구나.”
“아주 악담을 해라! 취직할 거거든?”
“그래, 나도 졸업할 땐 다 잘될 줄 알았지…….”
“아련한 표정으로 회상하지 마! 난 절대 오빠처럼 백수 안 될 거니까.”
“얘가 근데 누구더러 자꾸 백수래? 나 백수 아니거든?”
“그럼 뭔데?”
“닭강정계의 샛별이다.”
현지는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정말 세월이 무상하다. 여섯 살이나 어린 여동생과 취업과 장래를 논할 날이 오다니.
“요즘 말이야, 언니가 시집가고 싶다고 엄마한테 혼담 건수 물어오라고 조르더라.”
“진짜? 하긴, 벌써 서른셋이니까 그럴 때가 됐지.”
“정말 이상하지 않아? 울 언니 어디가 빠진다고 남자가 없지? 예쁘고 몸매 괜찮고 변호사인데. 나 같았으면 어장에 남자 백 명쯤 담아놨겠다.”
“누나가 너냐?”
“아무튼 이상해. 결혼하고 싶어 하는 거 보면 독신주의나 레즈비언도 아닌데.”
“누나는 너무 잘났잖아. 말수는 적은데 성격은 세고. 웬만한 남자는 그 차가운 눈빛 한 방에 그냥 떡실신이지.”
현지는 깔깔거렸다.
“하긴 언니 인상이 좀 무섭긴 해. 나도 오빠한테는 맞먹어도 언니한테는 꼼짝도 못하잖아. 클럽에서 놀다 걸렸을 때도 언니한테 혼날까 봐 더 무서웠어.”
“나한테도 기어오르지 마.”
“흥이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에휴, 내가 지금 남 얘기 할 때냐? 누나는 돈 잘 벌고 잘나가기라도 하지.”
내가 해본 연애라고는 갓 대학 입학했을 때, 신입생 환영회에서 눈 맞은 여자애랑 반년 정도 사귄 게 전부였다.
그 뒤로는 아버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수선해지고, 학교 다니면서 알바 두 개 뛰고, 군대에 공무원 시험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는 진짜 제대로 사랑해 보지 못하고 인생 마감하게 생겼다. 나야말로 진짜 지랄 맞게 불쌍한 놈이라고.
한숨을 푹푹 쉬는 나를, 현지가 측은지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본다.
“내가 친구 하나 소개시켜 줘?”
아, 솔깃해라.
죽기 전에 여자나 만날까 하는 충동이 불쑥 들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죽는다는 생각 따위 할까 보냐.
중요한 건 내 의지다. 시험을 끝까지 클리어하고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강한 각오다.
결심을 한 이상, 귀중한 11일을 고작 여자 만나는 데 쓰지 않을 것이다.
“이궁, 불쌍한 우리 오빠. 엄마 따라 닭 장사 하면서 때를 기다려봐. 30대 되면 울 언니처럼 애매한 나이대의 여자들이 급매물로 쏟아져 나오니까.”
“급매물?”
나는 현지와 함께 낄낄거렸다.
현지가 워낙 활발하고 말이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내가 말했다.
“내가 상 치울게, 넌 들어가 공부해.”
“오, 오빠가 갑자기 잘해주니까 이상해.”
“얘야, 이 오라버니의 친절에 적응을 못하네.”
“히히, 아무튼 땡큐. 내가 꼭 친구 중에 예쁘고 착한 애로 골라서 소개시켜 줄게.”
“그려.”
나도 그럴 날이 왔으면 좋겠다.
현지는 공부하러 들어갔고, 나는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후딱 한 뒤에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근육 운동이었다.
팔굽혀펴기를 50회 하니 팔이 후들거렸다. 등산까지 한 탓에 다리도 후들거리고, 아주 만신창이다.
등산 한 방에 이 꼴이 되다니 스스로가 한심해진다. 이렇게 11일간 매일 반복할 수 있을까?
‘그래도 참고 해야지.’
게다가 오늘 한 등산이나 팔굽혀펴기는 그냥 단순한 운동일 뿐이었다. 전장식 마법소총과 정령술을 싸움에 써먹기 위한 훈련도 해야 한다.
‘일단 힘드니까 좀 쉬고, 사람 없는 새벽에 나가서 훈련을 해야지.’
총 쏘고 정령 소환하는 훈련을 남들 보는 앞에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난 아직 유튜브 스타가 되고 싶지 않거든.
나는 소파에 드러누워 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