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이계사냥기 4화
무료소설 아레나, 이계사냥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레나, 이계사냥기 4화
“에이, 지랄.”
역시 꿈이 아니다.
내가 잠들어 있었어야 할 지하 단칸방 대신 울창한 숲이 날 반겼다.
울창하다 못해 징그러운 숲이었다.
끔찍하게 큰 활엽수가 한가득해 하늘이 안 보일 지경이고, 내 팔뚝보다 굵은 넝쿨들이 이리저리 얽혔다.
야생의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걸을 때마다 사박사박 풀 밟는 감촉이 생생하게 발바닥에 전해진다.
오랜만이다. 맨발로 걷는 것도.
“…응?”
맨발?
“헉! 이런 지랄이 있나!”
그제야 내가 무슨 꼴을 하고 있는지 눈에 들어왔다.
난 검정색 드로즈 팬티만 입은 알몸이었다. 잠든 차림 그대로 이곳에 끌려온 것이다.
울창한 숲에서 팬티만 입고, 이런 젠장. 내가 무슨 타잔이야? 최소한 옷이랑 신발은 줘야 할 거 아냐!
“하아…….”
불평해 봐야 소용없지. 지금은 시험을 클리어하는 데 집중하자.
이 숲은 산을 끼고 있는지 경사가 있었다. 일단은 지형 파악을 위해 높은 곳으로 향해 무작정 걸었다.
5분쯤 걸어서 야트막한 언덕에 도착한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야!”
난 경악하고 말았다.
숲은 너무 광활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석판 소환!”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1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레드 에이프를 처치하라.(미달성)
-제한시간(Time limit): 24분 43초
처음 주어진 시간은 30분. 이제 24분밖에 안 남았다.
레드 에이프가 뭔지 숲을 뒤지다 보면 알겠지 싶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숲은 터무니없이 컸다.
이런 숲을 어떻게 30분 만에 다 뒤져?
레프 에이프가 뭔지 알고?
“말도 안 돼. 애당초 불가능한 시험이잖아!”
레드 에이프.
동물일 수도 있고, 식물일 수도 있다. 사람일 수도 있고, 난생처음 본 괴물일 수도 있다. 저기 날아가는 새 이름이 레드 에이프일 수도 있는 거다.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번데기 자식은 그냥 무작정 날 아레나에 보내 버렸다.
그래놓고는 제한시간 30분?
이것들이 미쳤냐!
분통이 터진다.
어떻게든 살고 싶어 하는 놈 데리고 장난쳐? 조롱하는 거냐?
그때, 문득 아기 천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건 스스로 알아내셔야 해요.’
레드 에이프가 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별다른 당부도 없었다.
마치 동식물이 득시글거리는 이 숲에서 레드 에이프가 뭔지 알아내는 게 가능하다는 태도였다.
‘그래,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나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제한시간은 고작 30분.
둘째, 레드 에이프가 뭔지 알려주지 않았다.
셋째, 불가능한 시험을 시켰을 리는 없다.
세 가지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레드 에이프가 뭔지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
…있다!
어떤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레드 에이프가 뭔지 알 수 있는 방법. 찾아내는 데 30분도 안 걸리는 방법!
바로 레드 에이프가 먼저 날 습격하는 것이다!
공격당하게 되면 알고 싶지 않아도 그놈이 레드 에이프라는 걸 알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 제한시간이 30분밖에 안 되는 이유도 설명된다.
처음부터 가까운 곳에 레드 에이프가 있었다면 제한시간을 많이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거야.’
수학 문제를 푼 것처럼 강한 확신이 들었다.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제 보니 처음부터 힌트가 충분히 주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자.
첫째, 레드 에이프는 처음부터 가까운 곳에 있었다.
둘째, 이 시험은 내가 레드 에이프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셋째, 5분쯤 돌아다녔는데 아직 레드 에이프를 발견하지 못했다.
정답은 하나.
날 발견한 레드 에이프가 내 뒤를 밟으며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내 뒤를 미행하고 있는데 발견할 수 있을 턱이 없지.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서 날 보고 있을 거야.’
오싹.
그렇게 생각하니 머리털이 곤두설 것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지금 여기 어딘가에서 놈이 날 지켜보고 있다.
날 공격하기 위해.
죽이기 위해.
‘그렇다면…….’
모종의 결심 끝에 나는 근처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털썩 주저앉았다.
“아, 피곤해 죽겠다.”
들으라는 듯이 혼자 떠들었다.
혹시나 레드 에이프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일 수도 있고.
눈을 감고 낮잠 자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도 오른손은 땅을 더듬다가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집었다.
‘자, 네가 원하던 찬스다. 나와, 덤벼 보라고.’
사자, 호랑이, 표범처럼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맹수는 아닐 거다.
너무 신중하거든.
그런 맹수였으면 뭘 망설였겠어? 진즉에 날 덮쳐서 잡아먹었겠지.
아직 나타나지 않고 날 조심스럽게 미행한 이유는 하나다.
가진 힘이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약한 놈이기 때문이지. 내가 충분히 싸워 이길 만한 놈일 거야.
‘어서 덤벼라. 어떤 새낀지 생긴 것 좀 봐야겠다.’
그렇게 나는 약 3분간 낮잠 자는 시늉을 했다.
물론 속으로는 바짝 귀를 기울여 소리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부스럭.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왔다!’
긴장감에 목이 바짝 탔다.
부스럭부스럭.
수풀 소리가 더 들린다. 이건 좀 부자연스러운데.
난 내심 킥 웃었다.
‘약아빠진 새끼가.’
지금 일부러 소리 낸 거다. 내가 확실히 잠들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난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고르게 숨을 쉬며 자는 체했다.
이윽고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미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매우 날렵하고 조심스럽지만, 풀 밟는 특유의 소리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사박, 사박.
점점 가까워진다. 내가 잠들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돌멩이를 쥔 오른손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돌을 던지고 싶었다.
‘아직 아니야.’
참고 버텼다.
사박거리는 발소리가 마침내 충분히 가까워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지금!’
나는 벌떡 일어나 돌멩이를 던졌다.
퍼억!
날아간 돌멩이가 이마에 적중되어 피가 터졌다.
“끼룩!”
괴이한 비명 소리.
녀석은 피 나는 이마를 부여잡고 허우적거렸다.
놈을 때려눕힐 절호의 찬스였지만, 나는 너무도 놀라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녀석, 레드 에이프의 정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