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89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89화
89화 트럼벌 요새(3)
***
이번 매복 기습은 정신적으로 괴로운 전투였다.
상대의 기사전력은 전무(全無)한 상태.
뱅크스 기사단은 프레하 제국군을 수차례나 관통하면서 엄청난 전과를 세웠다.
적병이 보이는 족족 학살했다는 의미다.
마갑을 두른 전투마를 탄 채로 빈약한 무장의 적병을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뱅크스 기사단의 손실도 발생했다. 프레하 제국의 병사들이라고 넋 놓고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아아악!”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비명.
죽은 척… 혹은 기절해 있다가 칼에 맞아 죽는 프레하 제국군의 비명이다.
치열한 전투를 끝내고서 아군은 프레하 제국군에 대해서 확인 사살을 진행하는 중이다.
포로?
그런 거 없다.
포로를 관리할 여력도 없을뿐더러, 헛되이 군량을 낭비할 수 없다는 존슨 자작의 명령이다.
애초에 제국 간 협정 따위도 존재치 않는 까닭에 생존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어제도 이런 식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뱅크스 요새에서 처음으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에는 항복 권유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항복하더라도 죽인다.
전쟁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눈살을 찌푸렸다.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꺼림칙하다.
하지만,
이런 광경을 봄으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패배하면 죽음만이 날 기다린다는 사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적을 대하는데 프레하 제국군이라고 다를 게 없을 거다.
내가…
정말 살벌한 세상에 떨어졌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확인 사살을 하는 아군 병사에게서 씁쓸한 얼굴로 눈을 떼는데, 부하 녀석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 온다.
이름이 ‘저스트’라고 했던가?
뱅크스 요새에 파견 나가기 전에 병사로 받아들였던 녀석이다.
“윌슨 단장님!”
“저스트, 무슨 일인데 그렇게 숨을 헐떡거리면서 뛰어 와?”
“사령관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그래, 수고했어.”
저스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나무에서 등을 떼고 존슨 자작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째 또 바빠질 것 같은 예감이다.
***
“쫓아라! 놈들의 목을 쳐라!”
프레하 제국의 브리엔 자작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마나를 담은 탓에 그의 악에 받친 명령은 모든 병사의 귀에 파고들었다.
“브리엔 자작님! 추격 명령을 거두셔야 합니다!”
명령을 내리는 브리엔 자작의 곁으로 말을 몰고 온 사내가 투구의 덮개를 열고 말했다.
코밑에서부터 턱과 볼살을 뒤덮는 수염을 기른 사내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렐 남작! 놈들이 도주하는 게 보이지 않으시오?”
브리엔 자작이 꽁지가 빠지라 후퇴하는 엘튼 제국의 병사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잔뜩 흥분한 탓에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중이다.
“놈들이 후퇴하는 방식이 너무나 질서 정연합니다. 언뜻 쫓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엘튼 제국의 기사단이 퇴로를 봉쇄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가렐 남작은 브리엔 자작이 가리킨 곳보다 조금 더 앞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엘튼 제국의 기사들이 아군 병사를 막아서서 추격을 방해하고 있었다.
“우리도 기사단을 내보내 놈들을 해치우면 될 일이 아니요!”
“기사단을 보내면 놈들은 즉시 후퇴하여 역습을 가할 것입니다. 적합한 명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놈들이 후퇴하여 맞서 싸운다면 차라리 잘 된 것 아니오!”
“아군이 쫓아가는 것을 보십시오. 산발적으로 뒤를 쫓고 있습니다. 저런 식이라면 아군의 피해만 늘어날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추격을 멈추고 전열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가렐 남작이 앓는 듯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군의 기사단이 수적으로 불리하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병사들로 하여금 엘튼 제국군의 뒤를 쫓게 하는 것인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놈들은 약을 올리듯 근거리에서 알짱댄다.
그러면서도 덤벼들면 도주하기 바쁘니, 이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뭔가 노림수가 있다는 의미다.
뒤를 쫓으라 명령을 내린 브리엔 자작을 만류하고 나선 게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아르쿠르 사령관 각하께서 반드시 놈들을 궤멸하라 명령하시었소!”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질 만큼 흥분한 브리엔 자작은 맹수가 포효하듯 그렇게 으르렁거렸다.
“사령관 각하께서 병력을 보존하라는 명령도 함께 내리셨습니다.”
“큭…….”
눈을 피하지 않으면서 따지는 가렐 남작의 말을 무시하기에는 찜찜하기만 한 브리엔 자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엘튼 제국군의 뒤를 쫓으면서 상당수의 사상자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미치겠군. 사령관 각하는 어쩌자고 브리엔 자작에게 추격을 명하신 건지…….’
가렐 남작은 속으로 사령관인 ‘메데릭 드 아르쿠르’ 백작을 원망했다.
다혈질에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성향이 짙은 브리엔 자작을 보좌하라는 명령을 받을 때부터 불안하긴 했다.
이런 식으로 무작정 돌진하는 브리엔 자작을 말리다가 기운이 쪽 빠질 걸 예상했으니까.
“…….”
가렐 남작은 전방에서 아군 병사들을 막아선 엘튼 제국의 기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튼 제국 놈들의 전투 방식이 달라졌어.’
엘튼 제국의 기사들 때문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다.
성질 같아선 전력을 다해 추격을 개시하고 싶다.
하지만 계속 놈들을 추격하는 건 무리가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병력을 잃었다가는 위험하다.
아무런 소득 없이 병력만 소모하는 셈이니까 말이다.
한편으로는 사령관이 브리엔 자작을 추격대장의 자리에 앉힌 것도 이해가 간다.
저돌적이면서 용감무쌍한 브리엔 자작이라면 어떻게든 임무를 완성하려 할 거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을 거다.
하지만,
엘튼 제국 놈들이 약을 살살 올리면서 도주하기를 반복하니,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브리엔 자작을 추격대장으로 삼은 게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이 뭔가 꿍꿍이를 숨기고 도발해 오는데도 계속 추격을 이어 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알겠소! 그러나 이번 회군은 그대 가렐 남작의 강력한 주장에 의한 것임을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거요.”
“…알겠습니다.”
‘여우 같은 인간!’
브리엔 자작의 말에 대답하면서 가렐 남작은 속으로 그를 욕했다.
생긴 건 미련한 곰탱이처럼 생겨서는 이렇게 불리한 상황이 되면 꼭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후퇴하라! 후퇴의 뿔나팔을 불어라!”
마음을 정한 브리엔 자작이 마나를 담아 크게 소리쳤다.
뿌우우우! 뿌우! 뿌우우우!
퇴각을 알리는 구슬픈 음색의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엘튼 제국의 뒤를 쫓던 프레하 제국의 병사들이 등을 돌려 후퇴했다.
순간,
슈슈슈슛!
슈슈슉! 슈슈슈슉!
“이, 이런!”
가렐 남작이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뜨면서 경악했다.
숲에서부터 난데없이 화살이 솟구치면서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저 정도의 화살이라면 최소 이천 명가량의 궁수가 한꺼번에 화살을 날려야 가능한 숫자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도주하던 엘튼 제국의 병사가 일제히 멈춰 서더니 활에 화살을 걸었다.
“이럴 수가!”
가렐 남작은 기가 막혀서 입을 떡 벌렸다.
이쯤에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적들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매복을 준비해 두었다.
“방패를 들어라!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숨겨라!”
목청이 터지라 브리엔 자작이 고함을 질렀다.
병사는 물론 기사들이 서둘러 방패를 머리 위로 들었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반응이 늦어 버린 병사들은 방패를 든 다른 병사에게 들러붙었다.
한 차례 화살 공격이 지나갔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일렀다.
도주하던 엘튼 제국군이 화살을 날려왔기 때문이었다.
“으윽!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
방패를 들어 머리를 가리면서 브리엔 자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후퇴한다면 더욱 피해가 커질 수도 있어!’
역시나 방패로 머리를 가린 가렐 남작이 날아드는 화살을 막으면서 인상을 굳혔다.
현재 상태에서 후퇴했다가는 제대로 된 퇴각을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랬다가는 등을 돌려 달아나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 병사가 속출할 터.
“전속력으로 놈들과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그리하면 놈들이 화살을 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렐 남작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원래부터 뒤를 쫓던 엘튼 제국의 놈들과 거리를 좁히면, 숲에서 쏘아대는 화살 공격이 멈추리라 판단한 거였다.
“돌격하라! 북을 울려라! 놈들을 추격해 죽여라!”
브리엔 자작이 마나를 아낌없이 퍼부으면서 크게 소리쳤다.
둥, 두둥! 두두둥! 둥!
그의 명령을 받아 북소리가 빠른 박자로 전장에 울려 퍼졌다.
[와아! 돌격! 돌겨억!]
병사들이 방패로 머리를 가린 채로 미친 듯이 달렸다. 도주하던 엘튼 제국군을 향해서다.
“먼저 가겠소! 가렐 남작!”
브리엔 자작이 크게 말하고는 말고삐를 흔들었다.
기사들이 대열을 갖추고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가렐 남작이 멀어져 가는 브리엔 자작의 등에 대고서 소리쳤다.
“진짜 빌어먹을이네.”
가렐 남작은 날아오는 화살을 방패로 튕겨 내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브리엔 자작은 신이 나서 기사들의 앞에 섰다.
“돌격 앞으로!”
[돌격 앞으로오!]
앞에 선 그가 호탕하게 소리치자, 기사단원들이 복명복창하면서 전투마에 박차를 가했다.
투더덕! 투걱! 두두두두!
점차 속도를 내면서 돌진하는 브리엔 자작과 그의 기사단.
방패로 전면을 가린 채 돌진하는 기사들의 모습은, 그 무엇도 단박에 돌파해 낼 것만 같은 박력이 있었다.
“놈들이 도망친다! 전속력으로!”
브리엔 자작은 화살을 날리던 엘튼 제국군이 다시금 이동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더욱 전투마를 재촉해 속도를 높였다.
“이런!”
하지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길이 막히고 만 것이다.
“브리엔 기사단이 돌진한다! 길을 터라!”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면서 앞쪽에서 싸우는 아군 병사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아앗! 피해! 길을 비켜!”
머리 위로 방패를 들고서 달려가던 병사들이, 뒤에서 들리는 브리엔 자작의 고함을 듣고서 분분히 길을 텄다.
그러나 브리엔 자작이 만족할 정도로 병사들의 반응이 빠르지는 않았다.
비명과 악에 받친 함성, 그리고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이 병사들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리엔 기사단이 왔다! 길을 터라! 길을 트란 말이다!”
브리엔 자작이 마나를 담아 더욱 소리를 지르면서 속도를 늦췄다.
병사들은 어지러운 와중에도 그의 성난 음성을 듣고서 중앙을 벌리고 달렸다.
“돌격!”
병사들이 길을 열어 주는 것을 확인한 브리엔 자작이 피를 토하는 듯한 음성으로 재차 명령을 내렸다.
[돌격!]
기사들의 함성을 들으면서 브리엔 자작이 전방을 노려보았다.
“이런 망할!”
전방에 시선을 던진 그가 잔뜩 흥분해 소리쳤다.
아군 병사들을 유린하던 엘튼 제국의 기사단이 말머리를 돌려 후퇴하는 모습을 본 까닭이다.
“멈춰라! 멈춰서 당당히 맞서란 말이다! 겁쟁이 자식들아!”
울분을 담아 소리치는 브리엔 자작.
그러나 엘튼 제국의 기사들은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질주했다.
“기사들이여! 전력을 다해 뒤를 쫓는다! 끼랴아!”
[예!]
기사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전투마를 재촉했다.
자신들이 모시는 브리엔 자작이 잔뜩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두두두두두!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쳐 엘튼 제국의 기사들을 뒤쫓았다.
“빌어먹을 놈들! 잡히면 곱게 죽이지 않겠다!”
이를 득득 갈면서 브리엔 자작이 전투마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엘튼 제국의 병사들이 멀리 보이는 언덕의 중간 부분까지 도주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거리를 두고서 밉살스러운 엘튼 제국의 기사단이 말을 몰아 달리는 중이다.
“서라! 서란 말이다! 엘튼 제국의 기사들은 수치도 모르는 놈들인가!”
브리엔 자작은 마나를 잔뜩 담아서 고함을 지르면서 전투마를 몰았다.
“!”
소리를 지르던 그의 눈이 커졌다.
놀랍게도 도주하던 엘튼 제국의 기사단이 점차 속도를 줄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이제야 싸울 마음이 생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