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88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88화
88화 트럼벌 요새(2)
***
에이원즈 백작은 초조하게 척후병을 기다렸다.
슬런더 요새를 지나쳐 트럼벌 요새로 이동하는 프레하 제국군의 움직임을 파악해야만 하는 상황.
“놈들이 네르바 영지에서 멈출지 의문입니다. 사령관 각하.”
하이든 자작이 엘튼 제국의 지도를 펼쳐 놓고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네르바 영지는 규모가 제법 큰 곳일세. 일부러 노숙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아늑한 곳을 찾겠지. 그게 인간의 본능 아니겠나.”
에이원즈 백작은 지도에 표시된 네르바 영지를 내려다보면서 대답했다.
확신하듯 얘기하고는 있지만, 그 역시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프레하 제국의 사령관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한순간에도 수차례나 바뀌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에이원즈 백작이 확신하듯 얘기한 것은, 네르바 영지에 적이 주둔하길 바라는 일종의 주문과도 같은 거였다.
“병사들의 사기는 어떤가?”
에이원즈 백작은 야산에 이곳저곳 흩어진 병사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슬런더 요새를 지키면서 병력 손실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무려 18,000에 이르는 병력을 이끌고 후퇴했다.
반데라스 자작에게 3,000명의 병력을 나눠 주고도 15,000이 넘는 병력이다.
자신이 뒤쫓는 프레하 제국군에는 미치지 않지만 대단한 군세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많은 숫자의 기사와 병사들이 야산에 몸을 숨기고 있으니, 불만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오히려 언제 싸울 수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녀석들이 상당수입니다.”
하이든 자작이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원즈 백작이 초조해 한다는 것을 눈치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얼굴을 굳히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사령관 각하께서는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진지함이 묻어나는 하이든 자작의 음성.
그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공격다운 공격조차 해보지 못하고 슬런더 요새에서 철수한 탓이다.
적은 아무런 피해도 없는데 아군은 장벽을 지킨답시고 적의 투석기 공격에 몸을 숨기기 바빴던 기억.
싸웠다는 기분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몸을 숨기고 적의 공격이 언제 끝날지 가슴 졸이던 것 외에는 한 게 없었으니까.
“힘닿는 데까지 해 보는 수밖에 없겠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인간이지만, 결과마저 인간에 의해서 결정되지는 않는다네. 그러니 나는 그저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야.”
“엘튼 제국이 승리하기가 어렵다고 보시는군요.”
“…자넨 너무 직설적인 게 흠일세.”
에이원즈 백작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고 하이든 자작을 타박했다.
둘러 말하는 법 없이 직관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그가 오늘따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도 이번에 벌어진 제국 전쟁이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엘튼 제국이 지고 들어가는 전쟁이라고 생각이 기우는 중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무섭게 베링 요새가 함락되어, 슬런더 요새는 물론 뱅크스 요새까지 모두 철수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너무나 빨리 베링 요새가 무너져, 병력을 트럼벌 요새로 이동시킬 시간마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프레하 제국군의 뒤를 치는 치졸한 작전이나 벌이는 중이었으니…
‘큰일이군, 큰일이야!’
에이원즈 백작이 속으로 탄식했다.
이번 전쟁에 승패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걸 하이든 자작이 눈치챌 정도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부하들도 자신의 생각을 눈치챌 수 있다는 의미다.
부하들이 이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챌 수 없게 표정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에이원즈 백작이었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다시금 지도를 내려다보는데,
“사령관 각하! 사령관 각하!”
다급한 음성으로 소리치며 뛰어 오는 인물이 있었다.
통신을 담당하는 디에고 야크톰 남작이었다.
“야크톰 남작! 정숙을 유지하라 하지 않았는가!”
에이원즈 백작이 혀를 끌끌 차며 꾸짖었다.
“헙! 죄, 죄송합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찔끔하는 야크톰 남작의 반응을 본 에이원즈 백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물었다.
“존슨 자작의 병력이 뱅크스 요새를 통과해 반으로 나누어 진격하던 프레하 제국군을 궤멸시켰다 하옵니다.”
“궤멸? 지금 궤멸이라고 했나?”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은 에이원즈 백작이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사령관 각하!”
야크톰 남작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군!”
뱅크스 요새의 병력이 또 한 번 대형 사고를 터트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에이원즈 백작이다.
적당히 후방교란만 하라고 지원병력을 얹어 준 것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군량과 군수물자 때문에 병력을 분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턱하고 새로운 전공을 올렸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잠깐! 존슨 자작의 병력이라고 했는가? 반데라스 자작은 어쩌고?”
“이번 전투에서 전사하여 존슨 자작이 사령관의 자리에 앉았다 하옵니다. 그래서 사령관 각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명령을 기다린다는 말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에이원즈 백작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껄끄러웠던 반데라스 자작이 전사하고, 자신의 파벌인 존슨 자작이 사령관이 되었다는 것은 더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현재 프레하 제국의 사령관을 포함해서 기사전력을 모두 처치했으니, 프레하 제국의 보병 전력을 공격하고 싶다고 합니다.”
“뭣이? 그럼 선발대를 처리한 것이 아니라 본대를 궤멸시켰다는 것인가?”
에이원즈 백작은 찢어지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그러합니다.”
“누가 적 사령관을 처치한 것인가!”
“윌슨 단장이 해치웠다고 존슨 자작이 알려왔습니다.”
“허, 허허! 허허허! 대단하군. 그 친구 진짜 물건이 아닌가 말일세! 공격을 허락하겠다 전하게! 그리고 공격이 성공한 뒤에 다시 연락하라 이르고.”
“네,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헛웃음을 흘리면서 말하는 에이원즈 백작에게 야크톰 남작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에이원즈 백작은 곧바로 지도에 시선을 던졌다.
뱅크스 요새를 넘어오는 프레하 제국의 병사는 추산하기로 대략 17,000명.
어쩌면 전쟁의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지도 모를 숫자다.
적의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엘튼 제국의 전력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령관 각하! 이러면 우리가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까?”
보고를 같이 듣고만 있던 하이든 자작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에이원즈 백작의 눈이 생기에 가득 찬 것을 발견한 까닭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는데 말이다.
“물론이지! 단, 우리가 확실하게 놈들의 후방을 괴롭힐 수 있다면 말이야.”
에이원즈 백작이 지도에서 네르바 영지로 이어지는 길을 눈으로 훑으면서 씨익 웃었다.
***
<매복이다! 매복이다!>
당황한 것이 분명한 음성이 언덕 너머에서 들려온다.
슈슈슈슉!
날카로운 파공성이 어지럽게 들려오고,
<으아악!>
<방패를 들어! 방패를 들란 말이다!>
<또 화살이 날아오고 있어!>
<여기! 여기! 나 좀 도와줘! 커헉!>
.
.
.
비명이 연달아 튀어나온다.
언덕 너머로 다시금 하늘을 새카맣게 수놓으면서 화살이 포물선을 재차 그려냈다.
그리고 또 비명과 악에 받친 음성이 다시금 이어진다.
기다린다.
언덕 너머에서 나팔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심장이 제멋대로 두방망이질 친다.
전투 도끼를 쥔 손에 슬그머니 힘이 들어간다.
이제껏 저놈들 때문에 뱅크스 요새에 갇혀서 답답한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함께 지내던 부하들을 잃어야 했으며, 반데라스 자작의 더러운 짓거리에 휘둘려야만 했다.
짜증이 확 밀려온다.
하지만 참는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짜증을 참지 못하고 돌격했다가는 아군의 화살에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나의 옆에는 브린크스 남작이 말을 타고 대기 중이다. 존슨 자작은 사령관의 자격으로 매복지에서 병사들을 지휘 중이다. 물론 그의 기사단 8명은 호위를 위해서 빠졌다.
대부분의 귀족이 전사한 까닭에 기사들을 하나로 통합해 뱅크스 기사단이라 이름 지었다.
시에트 기사단의 숫자가 많기에 브린크스 남작은 부단장의 자격으로 내 옆에 서 있는 것이다.
숫자상으로는 휴스턴 기사단과 반데라스 기사단이 가장 많았으나 지휘관이 전사했다.
그래서 기사단장의 자리에 앉을 만한 인물은 나밖에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면서 전방위로 활약한 탓에 기사들은 순순히 나를 인정했다.
곁에 있는 브린크스 남작마저도 그랬다.
지난 기습작전에서 존슨 자작까지 나한테 잠시 지휘를 양보했을 정도다. 부단장에 앉으라는 존슨 자작의 명령에 브린크스 남작은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의 귀에 드디어 출진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진격하라!”
[진격하라!]
팔십여 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나의 명령을 복명복창하면서 전투마에 박차를 가했다.
두구둑! 두구둑! 두두두두두!
기사들을 태운 전투마들이 속도를 높이면서 언덕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갔다.
언덕에 올라서기가 무섭게 전장 상황부터 살폈다.
프레하 제국군의 잔당이 막 언덕을 올라오려는 상황에서 기습이 시작된 모양이다.
놈들은 먼저 출발한 본진을 믿고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틀림없다.
땅바닥에는 화살이 잔디처럼 꽂혔고, 아군 병력이 양쪽 숲에서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전투마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칼립! 보조 맞춰!”
“푸륵! 푸를륵!”
마음 놓고 달리려는 칼립에게 한마디 하고는 전투 도끼의 자루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기사단이 힘을 발휘하려면 일정 간격을 유지한 채 밀집 대형으로 적진을 꿰뚫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칼립에게 잔소리했다.
흥분해서 미쳐 날뛰면 뒤따르는 다른 기사들이 보조를 맞출 수 없을 터다.
“기, 기사단이다! 엘튼 제국의 기사단이 오고 있어!”
선두에서 우왕좌왕하던 프레하 제국의 병사 하나가 우리를 발견하곤 비명처럼 경고성을 발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방패병들이 벽을 쌓는 모습을 보인다. 제법 훈련이 잘된 놈들이라는 것은 빠른 반응 속도만 봐도 알겠다.
츠즈증!
전투 도끼에 내공을 밀어 넣었다.
자루의 1/3을 차지하는 전투 도끼의 타원형 날이 푸른빛으로 물들어간다.
프레하 제국의 방패병들이 밀집한 곳을 노려보면서 전투 도끼의 날이 있는 방향으로 상체를 비틀었다.
왼쪽 어깨 근육이 조여지는 듯한 감각을 유지하면서 타이밍을 쟀다.
“죽여라!”
명령인지 기합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고, 뒤틀렸던 상체를 풀면서 두 손과 팔에 힘을 주었다.
땅바닥을 스칠 듯이 지나치면서 푸른빛에 물든 전투 도끼의 날이 방패병을 휩쓸었다.
바우웅!
콰과광!
“컥!”
“아아아악!”
방패가 대번에 두 동강 나면서 방패병 또한 조각났다.
칼립의 몸이 조금 떠오른다 싶더니 전투 도끼에 닿지 않았던 방패병을 짓이기면서 나아간다.
콰과과광!
연달에 충돌음이 일어난다.
뒤를 따르던 뱅크스 기사단이 방패병들과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소음이었다.
치켜든 전투 도끼를 고쳐 쥐고서 단창을 들고 막아서는 프레하 제국군에게 휘둘렀다.
스아악!
전투마를 타고 달리는 가속도와 맞물려 병사들의 몸통이 두부 썰리듯 너무나 쉽게 썰려 나간다.
후두둑 밀려오는 핏물에 슬쩍 고개를 돌리고 다시금 전투 도끼를 고쳐 쥐었다.
창을 꼬나 쥔 일단의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몸을 던져서라도 돌진을 저지하겠다는 각오가 느껴지는 얼굴이다.
놈들이 절박한 만큼 나 역시 절박하다.
칼립을 노리고 쏘아지는 대여섯 자루의 창에 내공으로 강화된 전투 도끼를 내려쳤다.
서서서석!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을 게 분명한 창자루가 대번에 썰려 나갔다.
당황한 프레하 제국병을, 칼립이 그대로 들이받으면서 지나친다.
퍼버벅!
“아악!”
“우억!”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프레하 제국의 병사들.
지나쳐가는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름 끼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진다.
그러나 이를 꽉 물었다.
익숙해져야 하는 전장의 소음들이다.
감정 따윈 잠시 버려두어야 한다.
나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을 배제하는 것만이, 참혹한 전장에서 살아남는 데 유리하니까!
“우리가 바로 뱅크스 기사단이다! 모조리 죽여라!”
잠시 흔들린 마음을 떨쳐 내면서 있는 힘껏 소리쳤다.
[죽여라!]
뒤따르는 뱅크스 기사단의 호응에 피가 끓어오른다.
“이야압!”
덤벼드는 프레하 제국의 병사들을 향해 기합성과 함께 전투 도끼를 횡으로 그었다.
이 전쟁…
내가!
그리고 뱅크스 기사단이 지배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