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2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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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232화
제4장 회담 (1)
테라인 왕국의 성도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이름 모를 산속으로 들어선 갈색 로브의 두 사내는 단 한 번의 휴식도 취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산을 올랐고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오두막을 발견했을 때 오두막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끼이익.
나무 끌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갈색 로브 사람들의 시야로 원형 테이블을 둘러싼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다섯 사내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로브로 몸을 감춘 두 사람 중 비교적 키가 작은 사람이 테이블 앞으로 먼저 걸음을 옮기더니 후드를 벗으며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자리하고 있던 네 명의 사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내, 테라인 왕국의 국왕이 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딱 맞춰서 왔소. 헥토스 국왕.”
“…….”
유실리안 제국의 계략으로 인해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왕위에 오른 데우스 왕자, 즉 헥토스 국왕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테라인 국왕과 같은 작은 미소를 그렸다.
“아무리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하여도 연배로 따지면 제 아버지나 마찬가지이십니다. 데우스라고 불러주십시오.”
“허허.”
자신을 낮추는 듯한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같은 위치라는 말을 내뱉음으로써 나이의 차이를 통해 상대방에게 갖춰야 하는 당연한 예의에 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테라인 국왕이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헥토스 왕국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맞추어 입가에 그린 미소를 유지한 채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는 나머지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보던 헥토스 국왕이 검은 머리의 청년, 이레스의 옆에 앉아 있는 엘프를 발견하고는 잠시 몸을 흠칫 떨었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테라인 국왕의 옆에 앉아 있는 레이온 왕자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헥토스 전하.”
레이온 왕자가 똑같이 미소를 그리며 인사를 받아주었고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넨 헥토스 국왕은 멕케인 공작을 대신하여 회담에 참가한 크리스를 향해 인사를 건넨 뒤에 그레이즈 가문의 가주이자 헥토스 왕국의 은인인 이레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고 계셨습니까?”
“…….”
이레스가 바로 대답을 하는 대신 헥토스 국왕을 빤히 바라보다 싱긋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유실리안 제국만 없었으면 정말 잘 지냈다고 볼 수 있겠죠?”
“후후.”
3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레스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헥토스 국왕이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엘프, 카인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테라인 왕국의 동맹국인 헥토스 왕국의 국왕, 헥토스 더 데우스라고 합니다.”
“푸른 잎사귀 부족의 전사 카인입니다.”
헥토스 국왕은 자신을 따라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네는 카인의 모습에 레이온 왕자에게 인사를 건넸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뒤에 다시 테라인 국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허허. 그렇소?”
“예. 허나…….”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뜸을 들이듯이 말을 흐린 헥토스 국왕이 오두막 안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을 한 번씩 살펴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동맹국의 지원이라고 하여도 대륙을 적으로 돌리는 일을 지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흐음.”
“…….”
헥토스 국왕은 이미 자신을 은밀하게 찾아온 테라인 왕국의 사신을 통하여 자신을 초청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유실리안 제국과의 전쟁을 위해 자신들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직접 부른 것이었다. 하지만 유실리안 제국이 현재 전쟁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나라를 침략할 경우 그것은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백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는 명분을 만들어주어 다른 나라가 침략한 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준다.
반역에서 입은 피해를 3년이라는 시간 만에 빠른 속도로 복구하고 있는 헥토스 왕국이었지만 아직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나라의 침략을 제대로 막아낼 힘까지 기르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왕국을 구원해준 동맹국의 요청이어도 아직 피해 복구가 끝나지 않은 자신의 나라가 다른 나라에 공격당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 역시 대충 들었구려.”
“예?”
테라인 국왕이 되묻는 헥토스 국왕을 빤히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그레이즈 공작.”
“예. 전하.”
“이제 시작하시게.”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헥토스 국왕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이미 유실리안 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지만 레이온 왕자와 헥토스 국왕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자 이레스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이미 헥토스 전하처럼 대충 파악하고 계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테라인 왕국은 지금 유실리안 제국과의 전쟁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 전쟁은 그레이즈 가문, 정확하게 말하면 저의 요청에 의해 진행된 것입니다.”
“……질문이 있다.”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을 바라보는 헥토스 국왕과는 다르게 레이온 왕자가 손을 들며 말하자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십시오.”
“헥토스 전하와 마찬가지로 대충 들어서 알고 있지만 유실리안 제국과 플레티안 제국의 전쟁이 종결되는 순간 전쟁을 일으킨다고 알고 있다. 맞는가?”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가 전쟁에 의한 피해를 복구하기 전에 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대륙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나?”
“그래도 한 가문의 가주인데 모르겠습니까?”
“…….”
레이온 왕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빤히 바라보았지만 이레스는 오히려 그런 그의 시선에 작은 미소를 그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레이온 저하의 말씀대로 전쟁에 의해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도 전에 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대륙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 중 하나죠. 아무리 명분이 있다고 하여도 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허용되는 이야기입니다.”
“…….”
헥토스 국왕과 레이온 왕자가 이레스의 이야기에서 인간이라는 단어에 집중을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인간이 아닌 인물, 엘프 전사 카인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카인에게 옮겨진 것을 확인한 이레스가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진하게 만들었다.
“엘프들은 유실리안 제국에게 침략 당하였습니다. 그 도중 납치된 엘프들은 수백을 넘어섰고 그들은 분명 정령검이라는 위험한 무기를 제작하는 데 희생당하였을 확률이 높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엘프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군.”
“…….”
이레스의 시선이 처음으로 입을 뗀 사내, 헥토스 국왕의 뒤에 서 있는 로브의 사내를 향했다.
“그렇습니다. 헨들릭스 공작님.”
헥토스 국왕을 호위하기 위해 움직인 인물, 이제는 헥토스 왕국의 유일한 마스터가 되어버린 헨들릭스 공작이었다.
“…….”
“…….”
헨들릭스 공작은 물론이고 헥토스 국왕과 레이온 왕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는 가만히 앉아 있는 카인을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엘프라는 인간이 아닌 이들을 이용하여 유실리안 제국을 공격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레스가 레이온 왕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질문했다.
“우리 테라인 왕국이 유실리안 제국과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실리안 제국이 이미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지.”
물끄러미 카인을 바라보던 레이온 왕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자 이레스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그 전에 테라인 왕국이 유실리안 제국을 공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명분이 없기 때문이지.”
“그럼 다른 질문입니다.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도 전쟁을 치렀던 나라를 공격하지 못한 이유는?”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이라고 하여도 전쟁과 관련 없는 백성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것은 명분을 앞서는 이야기죠. 맞습니까?”
“…….”
레이온 왕자가 입을 열어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이레스는 아직도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헥토스 국왕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헥토스 전하.”
“……예.”
“명분이란 무엇입니까?”
“……전쟁을 하면서 다른 나라가 침략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명분에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허나, 그 명분이란 인간에게만 허용되는 이야기죠. 인간들은 대륙에서 유일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생명이니까요. 하지만 엘프들은 다릅니다. 미의 종족, 숲의 종족이라 불리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진실의 종족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 자체가 증거가 된다…….”
헥토스 국왕이 자신의 이야기를 요약하듯이 작게 중얼거리자 이레스가 작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엘프들은 유실리안 제국을 공격할 이유를 알고 있다면 증거나 증인이 없어도 전쟁을 할 수 있군요. 그럼 그들은 명분을 가지고 있으니 다음 문제는 전쟁이 종결된 나라는 10년간 침략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레스가 말을 흐리듯이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크리스 님.”
“예.”
“10년간 침략할 수 없다는 것은 법으로 정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
“……!”
이레스와 똑같이 미소를 그리며 대답하는 크리스의 모습에 레이온 왕자와 헥토스 국왕이 몸을 흠칫 떨었다.
크리스의 말대로 10년간 전쟁을 치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대륙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인정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럼 혹시 다른 예가 있습니까? 10년간 침략할 수 없다는 법이 없음에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힌 그것을 무시하고 공격한 예가.”
“예.”
“무엇입니까?”
“…….”
크리스가 입을 다문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레이온 왕자와 헥토스 국왕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대륙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파든 왕국은 겔리언 왕국이 인신매매와 같은 대륙이 정한 최악의 범죄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증거를 찾았을 때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겔리언 왕국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치른 지 1년도 채 안 되어서.”
“…….”
이레스가 작은 미소를 그리며 크리스의 시선을 따라 레이온 왕자와 헥토스 국왕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카인을 불렀다.
“카인 님.”
“예.”
“유실리안 제국이 엘프의 마을을 습격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십니까?”
“예.”
“그럼 유실리안 제국이 엘프들을 납치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으십니까?”
“예.”
“그럼 끝났군요.”
작게 중얼거린 이레스가 천천히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헥토스 국왕과 레이온 왕자를 향해 싱긋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유실리안 제국을 침략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