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2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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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228화
제2장 철저하게 준비하라 (1)
“저 미친 아들놈이…….”
전대 그레이즈 가문의 가주 파이슨은 그레이즈 영지의 입구에 모여 있는 이들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로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수련을 위해 엘프의 마을에 머물렀던 이레스는 자신을 데리러 온 데미안과 단둘이서 가문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정신 차려라!”
“예? 아……. 예…….”
영지의 성문을 지키던 기사가 병사들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은 깜짝 놀란 듯이 몸을 흠칫 떨며 대답한 이후에도 이레스와 함께 영지를 찾아온 수백 명의 미남 미녀들을 바라보는 순간 다시 입을 벌리며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파이슨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었다고 해도 기강이 해이해지기는 하였구나.”
“죄송합니다.”
파이슨의 옆에 자리하고 있던 부가주 알레인이 인상을 화악 찌푸린 채 용서를 구하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두 사람을 향해 이레스와 한 미중년이 천천히 걸어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푸른 잎사귀 부족의 촌장이자 엘프들의 지도자 하이엘프 알케리스가 정령의 주인의 아버지를 뵙습니다.”
“……정령의 주인?”
무의식적으로 알레인을 돌아보는 파이슨이었지만 자신의 둘째 아들이 모르는 이야기라는 듯이 어깨만 으쓱하자 다시 알케리스를 돌아보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아줬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니 정령의 주인이라는 것은 자신의 세 자식 중 한 명일 것이 분명했다. 허나 알레인은 아니었고 엘리스는 정령사이기는 하지만 엘프와 연관이 없었으니 그가 칭하는 이름의 주인공은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테라인 왕국 그레이즈 가문의 마스터 파이슨이 하이엘프 알케리스를 뵙습니다만……. 정령의 주인이라 하면 혹시…….”
“이레스 님입니다.”
“예. 대충 그럴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피식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 파이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알케리스의 뒤를 따라 걸어오는 그레이즈 가문의 가주이자 자신의 첫째 아들,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왔느냐?”
“예. 다녀왔습니다.”
“…….”
“…….”
“끝이냐?”
“음……. 예.”
“하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이레스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파이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돌리더니 영지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알레인을 바라보았다.
“손님들을 접대하고 가주는 저녁 식사를 마치면 수련장으로 오라고 하여라.”
“예.”
작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였기에 이레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파이슨의 등을 바라보았지만 알레인은 담담한 표정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형이자 가주인 이레스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알케리스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디며 고개를 숙였다.
“테라인 왕국 그레이즈 가문의 부가주 알레인 더 그레이즈라고 합니다.”
“푸른 잎사귀 부족의 하이엘프 알케리스라고 합니다.”
알레인이 작은 미소를 그리며 알케리스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자리가 애매하니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옆으로 한 걸음 이동한 뒤에 영지 안쪽으로 손을 내민 알레인은 알케리스를 선두로 수백의 엘프들이 영지 안으로 들어서자 미소를 그리며 병사들을 바라보는 헬버튼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아버님 말씀 들으셨죠?”
“허허허. 말씀하시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헬버튼의 목소리에 성문을 지키던 기사들이 흠칫하며 몸을 떨었지만 병사들이 여전히 엘프들을 바라보며 정신을 못 차렸고, 모든 엘프들이 영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쉬움의 한숨과 함께 온몸을 곤두서게 하는 살기를 느끼고 말았다.
“…….”
알레인의 명령을 받은 헬버튼이 내뿜은 살기가 아니었다.
성문을 지키던 기사들이 내뿜는 살기였다.
“……헉!”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은 병사들이 뒤로 주춤 물러설 때 남문을 담당하고 있던 기사가 싱긋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전원 집합.”
“…….”
“안 들리나! 전원 집하아압!”
* * *
알레인은 가문의 집사에게 엘프 전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라는 명령을 내린 뒤 알케리스를 포함한 주요 인물들을 가문 회의실로 안내했다.
엘프의 마을에서 수련을 하던 가문의 가주가 도착했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가문의 주요 인물들은 이미 회의실에 모여 있는 상태였고 알레인과 이레스, 그리고 엘프의 주요 인물들이 자리에 앉는 순간 이레스를 대신하여 알레인이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가주에게 들은 이야기가 없어서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것인지?”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
알레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레스에게 돌아갔다.
“……왜?”
“……아닙니다. 무언가를 바란 제 잘못이지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게 중얼거린 알레인이 다시 표정을 정리한 후 알케리스를 바라보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인지?”
“복수입니다.”
“…….”
이번엔 회의실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레스에게 향했지만 그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똑같이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아놔. 또 왜!”
모두의 시선이 이레스에게 고정되고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는 순간 알케리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유실리안 제국과의 전쟁에 엘프족도 참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전쟁 말씀이십니까?”
“예.”
알케리스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인지 잠시 이레스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알레인이 다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테라인 왕국은 유실리안 제국과 전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유실리안 제국과 전쟁을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까?”
“…….”
그건 아니었다.
현재 유실리안 제국이 플레티안 제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어서 그렇지 테라인 왕국과의 악연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제국 간의 전쟁이 종결되는 순간 테라인 왕국은 같은 제국군을 물리치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유실리안 제국군과의 전쟁에 대비를 해야 했다.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알레인의 모습이 자신이 바라는 대답이 되었다고 생각한 알케리스가 작은 미소를 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전쟁이 시작될 시, 엘프가 도울 수 있도록 해주시면 됩니다. 전방에 서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
알레인은 침묵했고 회의실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시선은 이번엔 알케리스에게 고정되었다.
전방에 선다는 것은 전장에 참여한 엘프가 반으로 줄 정도의 거대한 희생을 감수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엘프의 이야기라면 그것은 자신의 의지만 담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납치당해 희생당한 동족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복수를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알케리스의 부탁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는지 알레인이 이레스를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며 작은 미소를 그렸다.
“죄송하지만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예.”
알케리스가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알레인은 회의실 문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레스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살짝 건드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이레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알케리스의 옆에 앉아 있는 카인을 바라보았다.
“저도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이레스가 감사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인 뒤에 알레인을 따라 회의실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후우.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작게 한숨을 내쉬며 창문 쪽으로 걸어간 알레인이 몸을 돌리며 물었고 이레스는 회의실 안을 힐끔 쳐다본 뒤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데미안에게 들었잖아.”
“유실리안 제국이 정령검을 제작하기 위해 엘프들을 납치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증거도, 증인도 없는 그저 추측에 불과하죠.”
“허나, 엘프들은 정령검을 보고 확신했지.”
“…….”
알레인이 자신의 옆에서 걸음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는 이레스를 따라 몸을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엘프의 능력 같은 것입니까?”
“정령수가 뭔지는 알지?”
“예.”
정령수. 일명 세계수라 불리는 정령의 나무이자 엘프의 힘의 근원.
이레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살짝 돌려 회의실 안에 자리하고 있는 알케리스를 쳐다보더니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하이엘프는 정령수의 힘을 이용하여 특정 정령을 소환할 수 있더라.”
“……납치된 엘프의 정령을 소환하려 했군요.”
“그렇지. 문제는 소환이 되었다면 상관없다는 이야기지.”
피식 실소를 흘린 이레스가 묻자 알레인이 그와 똑같이 몸을 돌려 회의실 안에 자리한 알케리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소환되었다면 엘프들이 찾아올 이유가 없죠.”
“찾아오기는 했겠지. 희생당한 엘프들을 위해 복수를 하려 했겠지. 허나.”
“……동족들의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전장의 전방에 선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겠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이레스는 아무 생각 없는 듯이 회의실 안쪽을 빤히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상황은?”
“플레티안 제국이요? 아니면 우리요?”
“둘 다.”
“플레티안 제국과 유실리안 제국은 현재 북방 경계선과 황도 정중앙에 위치한 요새를 중심으로 대치 상태라고 합니다.”
“우리는?”
“회의실 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구름 기사단이 뿔뿔이 흩어져 왕국에 자리한 모든 기사들에게 워터 드레이크 병기술을 가르치러 떠났습니다.”
이레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알레인을 바라보았다.
“찌발릴 대로 찌발렸는데?”
“……그래도 평범한 검술보다는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정령검만 들고 있지 않으면 평범한 아이언 나이트에 불과한 이들이다. 그렇기에 워터 드레이크 병기술은 유실리안 제국과의 전쟁을 대비하는 테라인 왕국의 기사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었다.
이번엔 알레인이 이레스를 힐끔 쳐다본 후에 입을 열었다.
“뭐 한 달간 계시면서 얻은 것이 있으십니까?”
“두 가지나 있지.”
“두 가지……입니까?”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리나.”
퐁.
천천히 열렸던 입이 다시 닫히는 순간 허공으로 작은 물방울이 생성되더니 소녀의 형상을 갖춘 물의 정령, 리나가 소환되었다.
물의 정령 리나는 소환됨과 동시에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이레스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해맑은 미소를 그렸다.
-헤헤헤. 이레스 안녕?
“안녕.”
-헤헤헤.
인사를 받아주자 작은 웃음을 흘린 물의 정령 리나가 이레스 옆에 서 있는 알레인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
알레인이 리나의 인사를 받아주는 대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또입니까?”
“응.”
“…….”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알레인이 리나를 빤히 쳐다보다 나머지 하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나머지 하나는 뭡니까?”
“아버지가 불렀으니 그때 오면 알 수 있을 거야.”
“예?”
“전쟁에 제대로 쓰일 만한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