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43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43화
43화 밉상(2)
리치 녀석을 만나고 밖으로 나온 지 보름이 지났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죽음의 대지’로 통하는 절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
별거 없다.
전에 영주가 한 얘기 때문이다.
‘죽음의 대지’로 통하는 협곡을 봉쇄하라는 얘기 말이다.
현재 협곡을 흙과 돌, 그리고 나무로 채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참 나!
여기나 예전 한국이나 윗대라기가 한마디 툭 내뱉으면, 말단 병사들은 뺑이 까야만 한다.
하긴…
그래도 한국에서처럼 더러운 꼴은 안 당하니까 조금은 나은 건가?
군 생활 당시,
군단장이 한 달 후에 직접 방문한다는 소식에 군부대 인근의 잡풀을 뜯느라 짜증이 돋았다.
군부대까지 오는 도로를 정비하고 인근 야산도로까지 정비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그렇게 지옥 같은 한 달을 보내고 군단장이 방문하던 날.
당시 병사들은 이를 득득 갈았다.
군단장은 헬리콥터를 타고 왔으니까.
아무튼,
지금도 마찬가지다.
협곡을 흙과 바위, 그리고 인근의 나무를 베어 와 봉쇄작업을 하는데…
이건 협곡을 절벽 꼭대기까지 막아 올릴 기세다.
그나마 협곡의 폭이 좁아서 다행이지 넓었다면 이건 답이 안 나오는 일이었을 거다.
리치 녀석이 사람 한 명만 겨우 드나들 수 있게 인위적으로 만든 거라고 했던가?
더 다행인 점은 이제 공사가 끝이 보인다는 점이다.
불만인 것은…
지금 하는 일이 헛짓거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리치 녀석이 사라지는 바람에 그의 정신 통제하에 있던 몬스터들이 제정신을 차렸다.
무시무시한 거대 식물이 있는 방향으로는 접근조차 하지 않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놈들도 제 목숨이 소중한 것을 알 테니 협곡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않을 터다. 이지를 상실했었을 때라면 두려움을 모르고 거대식물을 향해 덤벼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협곡을 빠져나온 놈들이 정신 지배에서 벗어나 마을을 꾸몄으니 아주 뻘짓인 것만은 아니려나?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다. 좋게 생각하자.
“염병…”
그러나 회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허드렛일이나 할 바에야 병사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다.
기분 나쁘다.
영주의 기분에 따라 나의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거, 아주 거지 같잖아?
차라리 독립해?
고민 좀 해봐야겠다.
나 정도의 실력이면 어디 가서도 꿇리지 않을 바에야…
“헉, 허억, 헉…”
흙이 담긴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데 한 녀석이 숨을 씩씩거리면서 옆에 따라붙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티오 녀석이다.
“헥, 헥… 중대장님,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합니까?”
“며칠만 더 고생하면 될 것 같은데?”
비지땀을 흘리는 티오 녀석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주었다.
일하는 내내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녀석은 짐 나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근데, 중대장님은 힘들지 않으십니까? 헉, 헉…….”
“자식… 중대장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았냐?”
웃으면서 대답하고는 조금 더 빨리 걸었다.
크로노스의 갑옷을 얻으면서 내공이 늘어난 탓에 신체 능력까지 좋아졌다.
흙이 담긴 자루 하나쯤 짊어졌다고 해서 힘이 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다.
“에휴! 중대장님! 천천히… 천천히 좀 가십시오. 헉, 헉… 그나저나 말입니다.”
“왜 또?”
“영주님이… 헉, 헉! 허억…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헉헉대면서도 기어이 따라오면서 말을 거는 티오의 말을 받아 주었다.
궁금해서다.
나만 영주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늦췄다.
티오가 영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게 듣고 싶었다.
“저희한테 헉, 헉… 절벽을 막으라고 명령하시던 거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이 녀석도 불만이 있었던 것인가?
이거 얘기 좀 들어봐야겠다.
“휴식! 휴식하라!”
[휴시익!]
움직이던 병사들이 털썩 주저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보름이나 고된 일을 하고 있으니 힘든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보급품이랍시고 영주가 보내온 군량은 여전히 검은 빵과 약간의 채소뿐이다.
제이든 영지의 재산을 흡수하면서 좀 살만해졌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도 의구심을 느끼던 참이다.
평소 영지민과 병사를 생각해주던 영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협곡을 메우는 작업과 같은 고된 일을 시킬 땐 먹을 것 하나만큼은 잘 챙겨 주던 사람 같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듣고 싶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영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하들에게 휴식 명령을 내리고서 나 역시 자리에 앉았다.
“앉아 봐라.”
“에구구구… 후와!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중대장님.”
티오가 흙이 담긴 주머니를 내려놓고 앓는 소리를 냈다.
“영주님이 어떻게 이상하다는 말이냐.”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아니면…….”
녀석이 말끝을 흐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영주의 뒤담화를 까는 거라 꺼림칙하긴 할 거다.
“솔직하게 말해 봐. 나도 좀 이상해서 그런다.”
녀석을 안심시켰다.
근데 또 녀석의 얼굴을 보니… 굳이 안심시킬 필요도 없어 보인다.
뒤담화라는 게 또 까야 맛이긴 하다.
그 대상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라면, 까는 맛이 또 기가 막힌 법이다.
이 녀석의 성격이라면 오히려 희열을 느낄지도 모른다. 티오는 불만을 속에 담아두는 성격이 못 되는 녀석이란 건 진작에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입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믿는 사람 앞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녀석에게 신뢰의 대상이고 말이다.
“저희한테 협곡을 막으라 하실 때 말입니다.”
“그래.”
“영주님이 꼭 다른 사람 같지 않았습니까? 어쩐지 우릴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도 그렇게 느꼈어?”
녀석의 말에 동조해 주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주가 날 향해서 이상한 눈빛을 보낸 것이라는 건 조금 다른 문제긴 하다.
지난번 오크 마을을 습격할 때부터 영주가 좀 이상한 느낌이다.
그러나 영주가 내게 찜찜한 눈빛을 보냈다고 해서, 내가 먼저 행동을 취해야 하나?
하지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지?
아직은 그저 막연하게 독립하고 싶은 정도의 생각일 뿐이라서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영주의 지저분한 눈빛을 보냈다는 것만으로, 내가 행동할 방법을 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거기에 마법사 놈의 수상한 행동도 찜찜하고…
“영지에 돈이 떨어졌나… 그래도 이건 심하지 않습니까? 힘든 노동을 하는데 군량마저도 너무 부실합니다.”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 티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심하게 뒷담화를 깔 줄 알았는데 결국은 약간의 불만뿐이다.
그만큼 영주가 이제껏 보여 준 따뜻함 때문에 고작 이 정도의 불만이 전부인 듯하다.
왠지 찜찜하지만 티오 녀석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제이든 영지의 재산을 몰수해서 재정이 풍부해진 것은 맞다. 그러나 영주는 너무 많은 사업을 벌였다.
심지어 병사들에게 돈을 주어 마음껏 쓰게 하는 과감한 정책까지 펼치기도 했다.
그런 식의 정책을 계속 펼치면 재정이 바닥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티오 녀석의 말처럼 재정에 곤란을 겪으면서 영주의 성격이 이상해지는 것일까?
“그리고 마법사 자식, 정말 재수 없지 않습니까? 음침하게 생겨서 맨날 머리에 후드를 푹 눌러쓰고 다니는 게 영…….”
“재수 없긴 하지.”
영주를 얘기할 때 조심스러웠던 녀석이, 마법사를 욕할 땐 거침없다.
생긴 것 자체가 정 떨어지게 생기긴 했다.
거기에 영주 몰래 금광을…
금광을…
금광?
“아!”
“네? 중대장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별일 아니야.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그래.”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 티오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맞다!
그걸 잊고 있었다.
마법사 녀석이 영주 몰래 금광을 꿀꺽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당시 마을 외곽에서 밀담을 주고받던 분위기로 봐서는 어영부영한 금광은 아닐 것 같았다.
어중간한 거라면 기사직을 때려치울 정도는 안 될 테니까.
게다가 적당히 해먹고 튀겠다고 말했으니…
“문제는 역시 돈이겠지?”
확인하듯 티오에게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것 말고는 영주님께서 힘들어하실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겠지. 맞아, 그럴 거야.”
녀석에게 대답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내게 하는 말이다.
영주가 갑자기 이상해진 건 복합적인 스트레스 때문일 것 같다.
영지민을 위해서 이것저것 고민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져서 날카로워진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마법사 놈을 털어야겠다.
놈이 밀담을 나누던 날부터 벌써 이십여 일이 지났다. 금광을 개발했다면 그래도 얼마간 금을 모았을 터다.
금광을 덮쳐 영주에게 바치면 다시 이전의 푸근한 영주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금광을 빌미로 음흉한 마법사 놈도 처리할 수 있겠지.
티오 녀석 말마따나 재수 없거든 그 인간.
***
에휴휴휴…
군 생활은 저쪽 세상이나 이쪽 세상이나 똑같은 느낌이다.
이번 몬스터 토벌에서도 무기를 들고 싸운 시간보다 삽질한 시간이 더 많았다.
무려 한 달이나 작업하고서야 협곡을 막을 수 있었다.
몬스터가 넘어올 수 없도록 계단 형식으로 쌓아 넘어올 수 없게 작업해 두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이제야 영지로 돌아가는 길이다.
어째 노가다 출장을 다녀온 것만 같은 느낌인 건 기분 탓이겠지?
뿌우우우! 뿌우우!
영지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성에서부터 들려오는 나팔소리.
우릴 발견하고 성에 알리는 것이 분명한 신호다.
“오!”
성에 다가가면서 탄성을 흘렸다.
해자가 완성되어 있었다.
물이 채워져 있으며 진입로 역시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다. 평화로운 시기였기에 도개교는 내려진 상태다.
[추웅!]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이 나와 병사들을 발견하곤 커다란 목소리로 군례를 올린다.
자식들 군기가 바짝 들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꼴통 삼인방이 병사들을 바짝 굴렸던 게 틀림없다.
“어서 들어가자!”
[와아아아! 우리가 돌아왔다!]
뒤를 돌아보면서 소리치자, 따라오던 병사들이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지른다.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다.
한 달을 넘게 험한 곳에서 생활했으니 기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성문을 통과하기 전에 말에서 내렸다.
말을 타고서 성문을 통과할 수 있는 건 기사와 영주만의 특권이니까.
안에 들어서자 병사들이 다가와 약식 군례와 함께 말고삐를 받아 쥐었다.
“집합장에 정렬하라!”
병사들에게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집합장에 서 있는 영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달려가 영주의 앞에 섰다.
병사들이 정렬할 때까지 보고를 올릴 수는 없다. 그래서 난 영주와 멀뚱하게 눈을 맞추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볍게 찡그린 눈.
영주의 눈빛에 묻어나는 감정의 정체는 짜증이었다.
언제나처럼 그의 곁을 지키고 선 호위기사, 그리고 마법사.
호위기사의 얼굴엔 늘 그렇듯 아무런 표정이 없다.
하지만 마법사의 얼굴엔 어딘지 모르게 비웃음이 담겼다. 단순한 기분 탓일 수도 있겠으나, 억지로 웃음을 참으려는 듯한 모습이다.
마법사의 표정에 의아함을 느낄 때쯤 뒤에서 들리던 소란이 가라앉았다.
병사들이 정렬을 마쳤다는 의미.
몸을 돌려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오와 열을 맞추고 선 병사들이 거기 있었다.
“전체 차렷!”
차자작!
구령을 붙이자 병사들이 몸에 힘을 바싹 준다.
단순히 연출일 뿐이지만, 제법 분위기가 그럴싸하다. 원래 군대는 쇼니까.
다시 몸을 돌려 영주를 마주 보고 군례를 올렸다.
“충! 몬스터 토벌대 102명 복귀했습니다.”
“수고했다. 쉬도록!”
메마른 음성으로 말하는 영주.
응?
뭐 이래?
한 달을 넘게 뺑이 치고 온 우리한테 그게 끝?
황당해 하는데 마법사 놈이 야릇한 웃음을 흘리면서 다가온다.
자기 딴에는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한쪽 입술이 실룩거린다.
“윌슨 중대장, 영주님께서 하사하시는 위로금일세.”
“감사… 합니다.”
놈이 내미는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깔보는 듯한 눈빛.
마법사가 주머니를 건네고는 나의 어깨를 툭툭 치고서 영주를 뒤쫓아 걸어간다.
기분이 참 그렇다.
지가 뭔데 하사금을 대신 주는 거지?
저거 진짜 밉상이다.
오늘따라 영주도 더 밉상으로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