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2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2화
12화 투철한 군인 정신(1)
검을 쥘 때는 여인을 안을 때와 같아야 한다.
과도한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부드럽게 쥐는 것이 좋다. 그러나 손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게 중요하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굳은 마음이 없다면 검을 멀리하는 게 장수하는 지름길이다.
힘이 필요할 때는 손아귀에 힘을 주고, 공격을 받아 낼 때는 손아귀에 공간을 두어 충격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래서 검을 쥐는 것 하나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상대를 공격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말짱 개소리에 불과한 얘기니까.
검의 고수는 그래서 검을 쥔 손이 쉼 없이 움직인다. 미세한 움직임이라 일반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고수가 검을 쥐는지 눈치채지도 못한다.
무식하게 검 자루를 꽉 쥐고 있다고 해서 강한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쉴 새 없이 검 자루를 잡은 손아귀의 힘이 바뀐다. 심지어 손가락 하나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말도 안 되는 헛짓거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이 오가는 살벌한 싸움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뜻밖의 결과를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검을 쥐는 방법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무림에서는 초식이라는 것으로 검을 쥐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구성해 놓은 것이다.
찌르고 베고 치고 막는 일련의 동작을 반복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파지법(把持法)을 체득하게 된다.
물론,
단순히 검을 쥐는 법을 위해서 초식을 구성했다고 할 순 없겠다.
내공심법이 내공을 쌓고 무공에 맞춰 변화를 주는 거라면, 초식은 실전에서 내공이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기혈의 단련을 겸한다고 보면 맞겠다.
언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육체의 단련도 중요하지만, 무공을 다시 몸에 붙이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으윽! 스슷!
롱소드를 손에 쥐고서 느릿하게 움직였다.
무림 세계에서 배웠던 진의문의 검법인 진룡검(眞龍劍)의 초식에 따라 움직이는 중이다.
수련은 느리고 크게 행하고, 실전에서는 작고 빠르게 사용하라고 배웠다.
전반 5식과 후반 7식으로 나뉘는 진룡검은 초식이 간결하다는 게 장점이다.
다만,
너무 단순해서 깨달음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건 좀 바보 같다.
예를 들어 지금 수련하는 단천(斷天)이라는 초식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베는 단순한 동작이다.
남들이 보면 그저 기본 동작을 수련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초식이라 내공을 배분하고 운용하는 구결을 알아야 한다.
불친절함의 극치를 이루는 초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계승자마다 백발 할아버지가 되어서 동굴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음……
우울한 옛 기억은 떠올리지 말자.
쉬는 시간은 많지 않다.
병사들이 모두 음식을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휴식 시간이 끝날 거다.
우선은 내 손에 쥔 롱소드와 친해지는 게 먼저다.
중원의 검과는 형태와 무게가 달라서 어색한 느낌이다. 최대한 빨리 익숙해져야 실전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남들이 쉰다고 나도 쉬면 언제 고수가 되겠어?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총력을 다해서 단련하고 또 단련하는 것만이 강해지는 지름길이다.
***
빈센트가 빵을 먹으면서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참새 거시기를 봤습니까? 뭘 그렇게 혼자 실실 웃습니까?”
리올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훈련할 때면 항상 살벌한 얼굴을 하던 사람이 웃고 있으니 이상했던 것이다.
“하여간 네 녀석은 그 주둥이 때문에 한 번 크게 데일 날이 올 거야, 인마.”
“거 참 제 주댕이 더러운 거야 뭐 하루 이틀 얘기도 아니잖습니까. 혼자 실실 쪼개는 이유가 뭡니까? 나도 좀 같이 재밌어 봅시다.”
리올트가 엉덩이 걸음으로 앉은 자세에서 움찔움찔 빈센트의 곁으로 다가왔다.
덩치는 산만한 인간이 꼼지락대면서 다가오자, 빈센트가 피식하고 코웃음을 흘렸다.
“저 녀석 때문이다.”
“누구…… 아! 윌슨 녀석 말씀하시는 겁니까? 요즘 군기가 팍팍 잡혀서 쓸 만한 녀석이 되긴 했습니다.”
리올트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롱소드를 휘두르는 윌슨의 모습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며칠 사이에 몸도 좋아지고 있어. 진작 저랬으면 다른 놈들한테 무시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이제 저 녀석 무시할 놈 없을 겁니다. 그레골이 깨지는 거 본 놈이 몇인데 말입니까.”
리올트가 입가에 더욱 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줍은 계집아이처럼 눈치나 보던 녀석이 며칠 사이에 딴사람처럼 변했다.
‘전투가 끝난 다음부터 확 변했어. 역시 병사가 완성되는 건 실전이지.’
든든한 동료가 생겨났다는 것에 기분이 더 좋아지는 리올트였다.
빠악!
뒤통수를 얻어맞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우욱! 어떤 개…….”
“새꺄, 내가 깨진 게 즐겁냐?”
“그레골 이 자식! 내가 없는 말 했어? 왜 나한테 화풀이하고 지랄이야!”
얻어맞은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리올트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친구란 놈이 내가 두들겨 맞은 게 그렇게 고소해?”
“인마! 누가 그렇데? 그냥 저 자식이 잘 컸다는 얘기잖아.”
리올트가 볼멘소리를 했다.
“하긴… 저 녀석, 생각보다 무지하게 비겁해. 아주 마음에 들어.”
그레골이 지난번 윌슨과 싸우던 때를 떠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자신을 방심시키고서 연속으로 공격이 들어오는데,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이없이, 그리고 억울하게 깨진 건 맞다. 하지만 깨진 건 깨진 거다.
처음에 시비 걸 때까지만 해도 윌슨은 얌전한 놈인 줄 알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화도 못 내는 등신인 줄 알았다. 그런 놈이 전투에서 적을 셋이나 해치웠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괴롭혔는데 보기 좋게 당했다. 그것도 자신의 주특기나 다름없는 공격에 무너진 것이다. 상대를 방심하게 해놓고 공격하는 수법 말이다.
“귀여운 자식…….”
그레골이 헛웃음을 흘리면서 리올트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 구실 할 것 같지?”
빈센트가 두 사람이 토닥대는 걸 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네.”
“생각보다 쓸 만한 놈입니다. 아직 비실비실해서 문제지만요.”
리올트의 짧은 대답과 그레골의 진지한 평가를 듣고는 빈센트가 다시 한 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괜찮은 놈이 들어왔어.”
쉴 시간마저도 아껴서 수련에 매진하는 윌슨이 기특해서 빈센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딱히 누군가 대답하리라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빈센트 자네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네.”
“여, 영주님!”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서 고개를 돌리던 빈센트가 기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아, 아! 괜찮네. 예의는 생략하도록 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군례를 올리려는 빈센트 일행에게 손을 내젓는 레이놀드 남작.
“저 친구는 얼마 전에 자네들과 함께 휴일에도 작업하던 친구인가?”
“네, 그렇습니다. 영주님!”
빈센트가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레이놀드 남작이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롱소드를 휘두르는 윌슨을 바라보았다.
‘기본기 수련인가? 제법 자세가 잘 잡혀 있어. 근육이 좀 더 붙으면 봐줄 만하겠군.’
레이놀드 남작은 신중하게 롱소드를 휘두르는 윌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진지하게 수련에 임하는 자세가 훌륭했다. 남들 다 쉬는 시간에 홀로 비지땀을 흘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쩌면 윌슨이라는 어린 병사 덕분에 이번 전쟁에 반드시 이기고 싶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자발적으로 전쟁에 대비하는 병사를 거느리는 건 지휘관으로서도 영주로서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쟁… 반드시 승리했으면 좋겠군.”
“영주님의 뜻대로 되실 것입니다!”
빈센트가 즉각 대답하며 부동자세에서 더욱 힘을 주었다.
마치 ‘군기란 이런 것이다’ 라고 어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수고하게.”
“충!”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는 레이놀드 영주에게 빈센트가 병사들을 대표해 군례를 올렸다.
화답하듯 손을 흔들며 걸어가는 레이놀드 남작.
“영주님께선 자상하기도 하시지. 병사들이 훈련하는 것까지 관심을 두실 줄이야…….”
빈센트가 감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네, 우리 영주님만큼 좋은 분도 드뭅니다.”
“귀족 새끼들치고 개새끼 아닌 놈 몇 명 못 봤습니다. 우리 영주님은 최곱니다.”
그레골과 리올트 또한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영주님께서 관심을 두신 이상, 그런 의미에서 빡세게 굴려야겠어.”
“……어떻게 결론이 그렇게 납니까?”
“거 살살합시다. 오후에 일도 해야 하잖습니까.”
심상치 않게 웃는 빈센트의 모습에 그레골과 리올트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정렬! 정렬하라!”
하지만 기분에 취한 빈센트는 두 사람의 반응을 싹 무시하고 휴식을 취하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
“헉, 헉…….”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확실히 오늘 무리하긴 무리한 모양이다.
오전에 진룡검법을 수련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휴식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훈련 강도가 급격히 강해져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훈련 내내 그냥 죽도록 굴렀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굴렀다.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즉각 반응하도록 만드는 훈련.
원래 투철한 군인 정신은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던가?
생각은 지휘관이 하고 행동은 말단 병사가 하는 게 보통이니까.
말단 병사가 생각이란 걸 해버리면 지휘관이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급한 상황에서 일일이 왜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설명 해주려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법이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삽질하려니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올 지경.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생각 없이 삽질에만 몰두했었다.
“에휴…….”
내가 이렇게 뺑이 치려고 다른 세상에서 깨어났나?
진짜 자괴감 드는 하루가 아닐 수 없다.
막사에 도착해 문을 열려는 순간,
덜컥!
“충!”
신병 두 녀석이 문을 열고 나와 군례를 올린다.
“그, 그래.”
막내 신세였다가 쫄다구의 군례를 받으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다.
하지만 이내 기분이 좋아진다.
녀석들의 손에 들린 물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다.
이제껏 내가 해왔던 물 당번을 녀석들이 하는 거다. 확실히 쫄다구가 생긴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다. 나 대신에 귀찮은 일을 해줄 녀석들이 생겼으니까.
근육을 혹사했으니 조금은 쉬어 주는 게 맞다.
쉬는 것도 수련의 하나다. 혹사당한 근육이 회복되면서 근육이 커진다.
쉬지 않으면 근육을 만들기는커녕 몸이 망가지게 될 터다.
커다란 물통을 든 쫄다구들을 지나치고 막사 안에 들어가서 군례부터 올렸다.
“충!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윌슨 너도 수고가 많았다. 쉬어!”
“네! 빈센트 님!”
역시나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을 보이면 빈센트 최고 선임병은 무지하게 좋아라 한다.
작업 후 깨끗하게 손질한 삽을 선반에 놓고 옷부터 갈아입었다.
이렇게 땀을 많이 흘렸을 땐 샤워가 필수인데 이곳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우물이 하나밖에 없어서 지금쯤 사람들로 복작대고 있을 게 분명하다. 차라리 늦게 가서 여유 있게 씻는 편이 낫다.
나한테 손재주가 있다면 커다란 물통을 만들어서 물을 길어 놓고 필요할 때 쓰면 좋을 텐데……
관두자.
할 수 없는 일에 아쉬워하는 건 괜한 정신력 소비다.
“또 늦게 올거냐?”
“네, 빈센트 님.”
언제나처럼 이제는 나만의 공간이 된 베스티언(Bastion)으로 내공 수련을 하려는데 빈센트가 말을 건다.
이상하게 보이긴 할 거다.
매일같이 저녁 시간에 나가서 한두 시간씩 있다가 돌아오니까.
하지만 지금의 내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혹사당한 근육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내공을 수련하면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는 편이 유리하니까.
“부지런한 자식. 다녀와라.”
“그럼…….”
가볍게 군례를 붙이고서 몸을 돌렸다.
일단 빵부터 받으러 가야겠지?
먹는 게 남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