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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최강 군바리 9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9화

9화 생존을 위한 방법(1)

 

 

 

 

 

심장이 두근거린다.

내게 이런 날이 찾아올 줄이야!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고 보니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얀 거품.

유리잔이 아닌 게 아쉽긴 하지만, 내 앞에 놓인 나무잔에 든 것은 분명 맥주다.

그래, 내가 널 만나려고 60년이나 동굴 속에서 면벽 수련을 해 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와하하하! 윌슨! 왜? 술 처음 마셔보냐?”

 

“아닙니다!”

 

왁자지껄한 주점에서도 앞에 앉은 리올트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다른 사람들의 음성을 모조리 집어삼키고 울릴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다.

영주 성에서 근무하는 병사라는 건 복장만으로도 티가 팍팍 난다. 외부 순찰 임무가 아니라 외출을 나온 거라서 무기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어도 말이다.

하긴,

무기를 지닌 채 외박을 내보낸다면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질 터다.

막사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기에 눈이 돌아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일.

더군다나 얼마 전에 격렬한 전투까지 벌인 상황이고 보면, 무기를 놓고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겠다.

 

“자! 마셔!”

 

“네! 리올트 님!”

 

크게 대답하고서 맥주잔을 입에 대었다.

 

꿀럭! 꿀럭!

 

커다란 맥주잔을 단번에 비워 냈다.

 

“크아!”

 

죽인다!

시원하지 않다는 것과 탄산의 톡 쏘는 느낌이 적다는 건 좀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맛이 좋다.

그래, 한국에서는 수제 맥주가 훨씬 더 비싸게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거야말로 정통 수제 맥주.

 

“제법 잘 마시는데? 한잔 더?”

 

“감사합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얼마나 마시고 싶었던 맥주란 말인가!

그가 점원을 부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잇몸이 드러나도록 웃었다. 잠깐 사이에 다시금 테이블에 맥주잔이 놓였다.

잔에 맥주 거품이 찰랑거리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 버린다.

게다가 고기!

매일같이 시커먼 빵으로 배를 채워야만 했던 나다.

안주 겸 식사로 놓인 커다란 스테이크는 식욕을 팍팍 돋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역시나 제대로 된 소스가 없다는 정도?

바랄 걸 바라자.

지금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때다.

칼로 대충 썰어서 입에 넣었다.

육즙이 주르륵 흘러 입안에 확 퍼진다. 약간 질긴 감이 있으나 상관없다.

바닥까지 내려간 체력이 단숨에 회복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복잡한 생각이 훅 날아가 버리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앞자리에 앉은 리올트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겨난다. 단순히 술을 사주는 것 때문이 아니다.

군화를 고르고 육포를 사러 같이 다녀주었다. 곁에서 흥정해주는 바람에 제법 괜찮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육포의 원재료가 되는 고기가 어떤 짐승의 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치 아주 오래전 한국에서의 신병 생활을 하는 기분이다. 처음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고참이 이것저것 챙겨 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감사합니다. 리올트 님.”

 

“뭐가?”

 

“제게 잘 해주셔서 말입니다.”

 

“자식이, 내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어쨌든 축하한다.”

 

“뭘 축하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리올트가 내미는 맥주잔에 나도 따라서 잔을 내밀고 물었다.

뜬금없이 축하한다니 뭘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축하받을 일이 있기나 한 건가?

 

“내일 신병이 들어올 거다. 이제 막내 생활 끝이라는 거지.”

 

“아! 그런 겁니까?”

 

난 또 무슨 얘긴가 했다.

막내 생활이 조금 힘들기는 하다. 항상 군기 든 척해야 하고 선임병들의 잡심부름이 너무 많다.

그런 와중에도 육체 단련과 내공 수련을 병행할 수 있었던 나의 부지런함이 대견하다, 대견해.

앞으로 잡심부름 따윈 신병들의 몫이 되는 건가?

이거 기분 째진다.

잡심부름을 처리해 줄 신병이 생긴다는 건 좋은 일이다. 조금 더 시간이 많아진다는 거니까. 육체 단련과 내공 수련에 조금 더 투자할 수 있다는 의미.

반길만한 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좋은 소식을 들었으니까, 나쁜 소식도 하나 알려 주지.”

 

“어떤…….”

 

“제이든 영지와 조만간 크게 한판 할 모양이다. 그쪽에 친구 녀석이 하나 살거든. 전쟁 준비한다고 난리라고 하더라.”

 

“…….”

 

젠장! 술맛 떨어지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전쟁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게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아직 몸이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지난번과 같은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

어차피 탈영할 수 없다면 몸을 좀 더 만들고 싸우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 어째서입니까?”

 

“전쟁이 어린애들 장난인 줄 알아? 거리가 가깝다고 해도 공성전까지 고려해야 할 테니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다.”

 

“다행…….”

 

“장담할 순 없지만.”

 

“…….”

 

맞장구치려다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장난하나…

 

“두렵나?”

 

리올트가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거 묘하게 기분 더럽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상이 험악했을망정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던 리올트였는데 말이다.

훗!

울컥하려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건 일종의 시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세 배경의 영화에서 배우들이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믿을 수 없는 동료에겐 등을 맡기지 않는다고 했던가?

가장 무서운 적은 겁을 집어먹고 도주하는 아군이라는 얘기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새삼 상기하게 된다.

이곳은 ‘컷!’이라고 외쳐줄 영화감독이 없는 세상이다. 실제로 병기를 들고 상대의 목숨을 끊는 그런……

도망칠 마음 따윈 버려야 할 때다.

독하게 마음먹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두렵지 않습니다.”

 

맥주잔을 들었다.

두렵지 않다는 의지를 리올트에게 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에게 스스로 다짐하는 거다.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피하려고 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피하려고만 들 것이 분명하다.

도망치려고 그 오랜 시간을 갇혀 지내 온 것이 아니다.

대화할 상대조차 없는 곳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해왔다.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과 고기를 먹고 싶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그렇게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을 나 스스로 던지면서 해왔던 고민.

무림을 거쳐 지금 세계에 와보니 얼마나 부질없는 고민인지 깨닫게 된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나만의 세상이 없다는 얘기다. 죽은 뒤엔 내가 존재했던 세상을 볼 수 없으니까.

지금의 내가 무림이라는 세상과 한국의 세상을 볼 수 없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멋지게 살고 싶다.

세상에서 내가 사라져도 살아남은 누군가가 날 기억해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두려움 따윈, 지금의 내겐 필요 없는 감정.

내가 강해지지 못할까 봐.

아무 의미 없이 죽을까 봐.

오직 그게 두려울 뿐이다.

리올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잔을 내미는 게 고작이다.

 

퉁!

 

나무잔이 부닥치면서 둔한 소리를 낸다.

앞에 앉은 리올트의 비틀렸던 입술이 좌우로 벌어진다.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단숨에 비워라.”

 

“예! 리올트 님!”

 

그의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정은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기분 좋게 술잔을 들어 끝까지 마셨다. 원래부터 마시고 싶었던 맥주였기에 술술 잘도 들어간다.

 

탁! 탁!

 

나무잔을 내려놓으면서 리올트와 눈을 맞췄다.

그러자 나와 눈을 맞추면서 이를 드러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환한 미소다.

 

“그래, 남자라면 한 번에 마시는 거다. 어이! 여기 두 잔… 아니 석 잔 가져와!”

 

“네?”

 

“저 녀석도 오기로 했거든.”

 

의문스러워하는 내게 리올트가 턱짓으로 출입구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잔뜩 무게를 잡으면서 걸어오는 그레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그레골 님!”

 

“됐어, 앉아 인마.”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그레골이 파리를 쫓듯 손을 내저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세 개의 맥주잔이 테이블에 놓였다.

 

“리올트, 이 녀석 어때?”

 

앉자마자 대뜸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뭐가 어떻다는 건지……

 

“쓸만하다. 최소한 발목 잡진 않겠어.”

 

“그래? 마셔!”

 

나름 진지한 얼굴로 말을 주고받은 그레골이 술잔을 내밀었다.

 

“네!”

 

“단숨에!”

 

“…네.”

 

연달아 석 잔을 완샷하려니까 은근히 부담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거부할 권리 따윈 없었다.

근데 생각과 달리, 세 번째 잔도 완샷에 성공했다.

 

“리올트가 인정했으니, 나도 인정하겠다.”

 

“자식아, 신 나게 얻어터진 주제에 무게 잡지 마.”

 

“이 새끼가…….”

 

“내가 틀린 말했냐?”

 

리올트가 키득거리면서 그레골을 약 올렸다.

어째 분위기가 불안 불안하다.

싸운 뒤로 그레골이 딱히 나한테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술자리에서 할 만한 얘기는 아닌데 말이다.

 

“뭐 깨진 건 깨진 거니까. 그리고 너 인마!”

 

“네! 그레골 님. 죄송합니다.”

 

곧바로 사과부터 했다.

앞으로도 계속 볼 사이니까.

 

“죄송하긴 뭘 죄송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 리올트! 술이나 시켜.”

 

“자식 화끈하구나! 이래서 내가 그레골을 좋아하지. 어이! 여기 석 잔 더!”

 

리올트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점원을 불렀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그레골이 합류하면서 점점 길어졌다.

 

***

 

“으으으…….”

 

머리가 빠개지는 느낌이다.

대체 몇 잔이나 마신 거지?

여덟 잔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뜨기가 싫어질 만큼 몸이 노곤하다.

노가다하면서 조금은 육체가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술 좀 마셨다고 골골대다니……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육체 단련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허무하다.

오랜만에 누리는 자유였는데, 기억을 잃어버릴 정도로 술만 마시다 끝났다는 게 말이다.

등이 푹신한 걸 보니 침대에서 잠을 잔 모양이다.

의식이 깨어난 걸 보면 슬슬 일어날 시간인 듯싶다. 겨우 며칠밖에 안 된 군 생활이었지만, 깨어날 시간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물컹!

 

“……!”

 

응?

몸을 일으키려는데 뭔가 이상하다.

 

“으응… 또요? 밤새도록 하셨잖아요. 저 힘들어요. 진짜 못하겠어요.”

 

작게 웅얼거리는 간드러진 음성이 귀에 스며들었다.

설마!

 

“아…….”

 

눈을 번쩍 뜬 순간 탄성을 발했다.

옆에는 순백의 피부를 가진 여자가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나의 손은 그녀의 가슴에 얹어진 채였다.

이 상황은?

 

“으음…….”

 

조금씩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리올트가 술이 잔뜩 취한 날 여관에 처박아 놓았던 기억 말이다.

아련하게 코맹맹이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방금 옆에 누운 여자의 음성과 똑같은 코맹맹이 소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깐!

내가 밤새도록 했다고?

뭘?

 

“기억이 안 나…….”

 

이름도 알 수 없는 여인의 가슴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너무해요. 저 진짜로 죽는 줄 알았어요. 어쩜 그렇게 짐승같이… 최고였어요.”

 

배시시 웃으면서 나른한 음성으로 말하는 여자의 말에 후끈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꿀꺽!

 

그래!

기억이 나지 않으면 어때?

다시 기억이 날 때까지 해보면……

 

쾅, 쾅, 쾅!

 

<윌슨! 어서 일어나라! 복귀할 시간이다!>

 

문을 두들기는 리올트의 거친 음성.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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