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6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6화
6화 전운이 감도는 레이놀드 영지(3)
보클란을 통해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았다.
정말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걸 실감한 거다. 생각 같아선 술이나 한잔 하고 싶다.
그러나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다. 아침나절부터 술을 파는 곳이 없기도 하겠지만, 레이놀드 성이 큰 편이 아니라서 성내에 주점이 없다.
성 밖에 주점이 있는 건 알고는 있다. 그러나 병사들은 성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명령이 떨어졌다.
자유 시간인데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무공 수련이다. 애초에 마음먹었던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전을 만들 생각이다.
단전이 만들어지면 육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 쉬워진다. 내공… 그러니까 이곳의 말로는 마나라 부르는 기운.
그것을 담는 그릇이 바로 단전이다.
이곳 세상에서는 마나홀(Mana Hall)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명칭이야 어찌 되었건 단전을 만들어야 내공이건 마나건 쌓을 수 있다.
내공을 쌓으면 신진대사가 빨라지고 육체 능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
지금의 허약한 몸을 개선하려면 우선 단전부터 형성하는 게 급선무다.
원래라면 육체의 단련부터 한 뒤에 단전을 형성해야 맞다. 그러나 지금의 허약한 육체를 정상인의 수준으로 단련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순서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전 세상에서 단전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육체가 부실하더라도 신중하게, 그리고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문제는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뭐, 아니면 말고.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어차피 무림 세상에서도 단전을 형성하는 것만으로도 일 년이나 걸렸다. 만들어 본 경험이 있기야 했지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 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방해하지 못하는 은밀한 장소가 필요했다.
조건을 맞는 곳을 찾느라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는 건 당연한 얘기.
아니, 애초부터 은밀한 장소를 알고 있었으나, 지금의 몸이 워낙 약해서 걸어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성벽 중앙에 설치된 작은 공간이다. 성 밖으로 화살을 쏠 때 사용되는 곳.
이곳의 말로는 배스티언(Bastion)이라는 명칭의 건물이다. 공성전 상황이 아니기에 이곳만큼 짱 박히기 좋은 장소가 없다.
“후우…….”
가부좌를 틀고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된 몸인지 다리를 포개고 앉는 자세로 있는 것조차 괴롭다. 골반이 뻐근하고 다리에 쥐가 나려고 한다.
굳이 이런 자세로 내공을 수련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이전 세상의 사부라는 인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면 누워서도 내공을 수련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몸 상태로 누워서 내공을 수련했다가는 자 버릴 게 뻔하다.
그러고 보면 가부좌를 틀고서 앉게 하는 이유가 잠들지 말라는 의미였던 것인가?
“으윽!”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의 몸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앉아 있는 중이다. 벌써 다리가 저리기 시작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빨리 시작하는 편이 나을 듯 싶다.
진의심공(眞意心功).
이전 세상에서 백 년 내공을 쌓았던 내공심법의 이름이다.
신공(神功)이라 할 만한 내공심법은 아니다. 그랬다면 백 년 내공을 완성하는데 60년이나 꼼짝도 못 하고 수련만 했을 리가 없었겠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한다.
제자를 하나 들이고서 죽었어야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냥 죽은 셈이다.
내공심법의 성능이 구리니까 60년이나 수련해서 겨우 대성했을 정도.
어쩐지 나를 데려왔던 사부가 폭삭 늙어 보인다 했더니, 무공이 후져서라는 게 이제야 이해가 간다.
사부 역시 나처럼 얼떨결에 끌려와 동굴에 갇혀서 무공을 완성하고 부랴부랴 제자를 찾으러 다닌 게 확실하다.
다 늙어서 강호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문파라니…… 진짜 우울한 문파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내가 배운 내공심법은 진의심공밖에 없다.
이 빌어먹을 약해빠진 몸을 바꾸려면 단전의 형성은 필수.
단전의 내공을 바탕으로 생명력을 자극해서 건강체질로 바꿔 주는 게 나의 목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단전의 위치를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느껴야 하는 작업이다. 두 손을 포개어 배꼽 아래에 가져다 댄다.
막연하게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단전으로 짐작되는 부위에 손을 대고서 임의의 위치를 정하는 게 먼저다.
단전이 형성되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느끼게 될 테지만, 지금은 처음 무공에 입문한다는 생각으로 수련에 임할 때다.
강함이 생명과 직결되는 세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진의심공의 구결을 떠올리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의식을 외부와 단절하고 육체를 관조하고 주변에 흐르는 기운을 느끼는 게 진의심공의 요결이다.
“……!”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마나(Mana).
이전 세상에서는 기(氣)라고 부르던 것.
주변에 흐르는 대자연의 기운이 풍부하다. 적어도 대기에 흐르는 기운이 1.5배는 더 짙은 느낌이었다.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의 내게는 오히려 독(毒)이다.
내공의 수련이라고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몸.
그런 상황에서 이전 세상처럼 기운을 받아들였다가는 탈이 날 게 분명하다.
한 공기의 밥이 정량인데 한 공기 반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방법은 한 가지.
밥을 꼭꼭 씹어서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매일같이(내 기억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해왔던 운기행공에 이렇게 긴장해 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호흡을 통해 받아들인 기운을 가슴의 정 중앙선에 위치한 혈을 타고 내려보낸다.
진의심공을 운용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시동을 건 것과 같다고 볼 수 있겠다.
혈과 혈 사이를 잇는 기로(氣路)를 따라 대자연의 기운을 조심스럽게 인도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의식을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다.
단전 부근에 이르러서 대자연의 기운이 쌓이는가 싶더니, 이내 성기와 항문 사이에 존재하는 회음혈로 이동한다.
흘러가듯 기(氣)가 단전을 스치고 지나는 게 허무하다. 그러나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지금 육체의 기혈이 막히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이전 세상에서 내공을 수련할 때는 기혈에 쌓인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던 기억이 나니까.
회음혈을 기점으로 꼬리뼈를 지나쳐 등 쪽으로 기운을 올려보냈다. 약간의 거슬림이 있었으나, 운공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큽!”
하마터면 입을 크게 벌릴 뻔했다.
백회혈을 지나치면서 흐르던 기운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견딜만하다.
현재 내가 운용하는 기운은 초보적인 수준의 것.
조금만 더 대자연의 기운이 강했다면 위험할 뻔했다. 이제껏 내공을 수련하면서 맞닥뜨렸던 위기상황의 경험이 크게 도움된 것도 있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만약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허둥대었다면 기혈이 엉킬뻔한 상황이니까.
“후웁! 후우…….”
호흡이 안정되고 대자연의 기운을 요령껏 받아들였다.
서서히 기운을 늘렸다.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기운을 조절해 가면서 단전으로 유도했다.
어느 순간,
의식이 흐려지면서 몽롱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는 오직 나와 대자연의 기운만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다.
***
레이놀드 성의 영주 집무실.
기다란 테이블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변방의 작은 영지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당히 호화로운 음식.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을 앞에 둔 영지의 주요 관리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영지의 주인인 ‘아스트로 레이놀드’ 남작이 침울한 얼굴로 앉아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머지 관리들도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다.
“죽은 병사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영주님께서 먼저 드셔야 나머지 분들도 드실 수 있습니다.”
레이놀드 영주의 곁에 앉은 여인이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시에트 레이놀드’.
영주인 ‘아스트로 레이놀드’의 여동생으로서 혼인을 거부하고 호위기사를 자처하는 여장부였다.
날렵한 체형에 약간은 왜소해 보이지만, 여느 남자 기사 못지 않은 실력을 지닌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쇼트 스피어를 던지는 실력이 뛰어나, 어지간한 기사는 그녀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 이거 미안합니다. 음식이 식기 전에 드십시다.”
시에트의 음성을 듣고서야 굳은 얼굴을 펴는 레이놀드 영주.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앞에 놓인 큼지막한 고기를 썰었다. 그가 고기를 써는 것을 신호로 관리들이 따라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대승이라고 할 만한 전과를 올렸으나, 병사들의 죽음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레이놀드 영지의 사람은 한정되어 있기에, 건장한 남자를 골라 병사로 만드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병사를 징집하면 그만큼 농작에 지장을 주리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문제다.
그게 영지를 침입한 적을 궤멸시키고서도 웃을 수 없는 이유다.
무거운 분위기는 식사가 끝나고 향기로운 와인이 테이블에 올라올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바레이 서기관, 보고 부탁합니다.”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레이놀드 영주가 무거운 음성으로 했다.
그러자 지목을 받은 ‘바레이 스카터’가 품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냈다.
“영지의 병사 중 사망 7명과 전투력을 상실한 중상자 3명이 발생하였습니다. 경상자 2명은 치료 후 복귀할 예정입니다. 기사단 전력은 경상자 1명으로 손실이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으음…… 그럼 16명의 병사를 더 모집해야 한다는 얘긴데…….”
레이놀드 영주가 말끝을 흐리면서 침음성을 흘렸다.
“그래도 피해가 작은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사 전력이 용병들의 예봉을 꺾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전리품을 확보한다면 이전보다 20명 정도는 더 전력을 확충할 수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
보고서를 든 채로 서기관인 바레이가 눈에 힘을 주었다.
비록 병사가 죽어 나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전투로 인하여 전리품으로 무기가 생겼다.
쓸만한 것들을 추리고 나머지는 활촉으로 재생산한다면 전력이 확충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력을 차출하면 그만큼 영지민이 힘들어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을 완공하고서 영지민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된 지 2년 되었습니다. 다시 병력을 차출한다면 반발할 위험도 있지 않겠습니까.”
레이놀드 영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려 15년에 걸쳐 성을 건설하느라 영지민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눈으로 보았던 그다.
병사를 차출한다면 원성을 들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안쓰럽기도 했고 말이다.
“영주님, 전쟁에 대비하지 않으면 영지민이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커다란 체구의 사내가 묵직하게 말했다.
레이놀드 기사단장인 ‘디올커 체인드’라는 인물이다.
평소에는 싱거운 웃음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자리가 자린인 만큼 지금의 모습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체인드 경. 그러나 영지민이 힘들어하는 걸 보는 게 쉽지 않으니 어쩌겠습니까. 후우…….”
레이놀드 영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와인으로 입술을 축였다.
“영주님께서 마음이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셔야 저희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알겠…… 습니다. 체인드 경.”
레이놀드 영주가 마지못해 대답하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디올커의 말을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이 흔들리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관리들은 물론이거니와 영지민 전체가 불안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호흡을 고른 그는 와인을 단숨에 비웠다.
“바레이 서기관! 제이든 남작에게 이번에 용병들을 보내온 일에 대해 해명하라는 서신을 보내십시오.”
“영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체인드 경은 병사를 모집하고, 기사단을 재정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기사단장이 군례를 취하는 모습을 확인한 레이놀드 영주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스탄!”
“네, 영주님.”
“자네는 영지민을 불러, 병사와 함께 해자를 파도록 하게. 전쟁 전에 해자를 완성할 순 없겠지만, 적을 귀찮게는 할 수 있을 걸세.”
“영주님의 뜻을 받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