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5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5화
5화 전운이 감도는 레이놀드 영지(2)
아스트로 레이놀드 남작.
바로 내가 소속된 레이놀드 영지의 주인이라고 한다.
기사 20명에 병사가 100명 정도인 에튼 제국의 가장 변방에 위치한 작은 영지다.
인구라고 해 봐야 고작 9,600여 명이나 될까 말까 한다는 곳.
어제의 전투로 2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해 현재 전력은 경상자를 포함해서 80명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기사 전력은 손실이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한다. 레이놀드 영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제이든 남작이 용병을 보내 싸움을 걸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가 직접 들은 소문은 아니다.
몸 주인의 기억을 통해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이 그렇다는 얘기다.
“……주신의 이름으로 이들의 영혼을 인도하옵길 바랍니다.”
경건하고도 나직한 음성이 귀에 파고든다.
성직자로 짐작되는 늙은 사내가 기도문을 외우고, 나무를 쌓은 제단에 어제의 전투로 죽은 동료의 시신 위로 물을 뿌린다.
그레골과 싸우느라 생겨났던 흥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쩌면 저들의 죽음으로 그레골의 신경이 예민해졌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무거운 얼굴로 죽은 동료의 시신을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딱히 슬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윌슨의 기억 속에서도 그다지 좋았던 동료는 아니었고, 나 또한 그들에 대한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무거운 분위기가 싫어서 머리로는 딴 생각하기 바빴다.
가령,
오늘 아침에 먹었던 음식 같은 거 말이다.
진짜 열악한 아침 식사였다.
근사하진 않더라도 스테이크와 같은 고기를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중세 배경의 영화를 보면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서 고기를 석석 썰어 먹는 장면을 꽤 많이 보았으니까.
60년을 풀과 약재가 듬뿍 들어간 벽곡단을 먹으면서 버텨온 나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아침이라고 나온 음식은 상상을 초월했다. 멀건 수프에 검은색이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은 딱딱한 빵 한 덩이.
혓바닥이 갈려 버릴 것 같은 끔찍한 식감에 하마터면 바닥에 빵을 집어 던질 뻔했다. 때마침 배에서 흘러나온 ‘꼬르륵’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젠장 맞을 레이놀드 영지.
이왕에 다른 세상에서 깨어날 거라면 좀 더 근사한 영지면 좀 좋아?
내가 귀족의 몸에서 깨어나길 바란 것도 아니잖아.
하필 약해빠진 영지의… 그것도 툭 건드리면 쓰러질 비리비리한 병사의 몸에서 깨어나다니…….
“후우…….”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이런 몸을 단련하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
“……!”
잠시 내가 또 배부른 생각을 해버렸다.
그래,
고자 신세를 면한 게 어디냐.
좋게 생각하자.
우선은 단전부터 만드는 게 관건이다.
상당히 고된 작업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무림 세계에서도 처음 단전을 만들 때 무척이나 고생했던 걸로 기억한다.
깨알만한 단전을 생성하는데 무려 1년 가까이 걸렸던가?
동굴 벽만 바라보면서 초식 수련과 내공 수련에만 몰두했던 60년.
무공이라는 것에 재능이 있었더라면 백발이 성성해지도록 무공 수련을 하지는 않았을 터다.
생각해보니 한국과 무림의 삶에서 좋았던 기억이 없다. 한국에서의 삶은 공사장을 오가면서 일만 한 기억밖에 없고, 무림에서의 삶은 동굴 벽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망할!
‘나 정말 무미건조하게 살았구나.’
전생을 기억한다는 게 좋은 점도 있지만, 지금의 내게는 처참한 생각만 들게 한다.
다음번에도 이번처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
그나마 이번 생은 동굴에 갇히지 않은 게 어디야?
전시 상황이라는 건 조금 불안하긴 해도 바깥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불안한 전시 상황은 내가 강해지면 생존율을 대폭 높일 수 있는 문제다.
화르륵!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면서 생각에 빠진 사이, 동료의 시신을 올려 둔 장작더미에 불이 붙는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이 말이다.
절대로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이전 세상까지 하면 거의 90년을 넘게 살았다.
그 긴 삶 중에서 12년은 의무교육을 받았고, 대학 4년 동안엔 학비 마련하느라 놀지도 못했다.
2년 가까운 시간을 군 생활로 보냈고, 공사 현장을 다니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무림 세계 60년의 삶은, 살아도 산 게 아닌 그런 생활을 했다.
염병…
90년의 삶 중에서 그나마 자유를 누려 본 건 제대 후 몇 년이 고작이었다는 얘기다.
억울해서라도 죽을 순 없을 것 같다.
기름을 끼얹은 장작불 속에서 타들어 가는 동료의 시신을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간 동료에 대하여! 군례!”
귀를 파고드는 빈센트의 묵직한 음성.
명령을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오른 주먹을 왼쪽 가슴에 대었다.
두두둥!
군례를 취면서 동료들이 가슴을 치는 소리가 북소리처럼 들려온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린다.
심장의 박동이 오른손에 전해지면서 호흡을 거칠게 만든다. 동료라는 이름으로 함께 싸웠던 이들의 죽음.
그래!
저들이 있었기에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저들이 생명을 다해 적군의 발목을 붙잡았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수월하게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차자작!
빈센트의 명령에 병사들이 가슴에 대었던 손을 오른쪽 허벅지에 붙였다.
“점심 전까지 자유다. 오후에 무기술 수련이 있으니, 부상자를 제외하곤 빠지는 인원이 없도록 한다. 알겠나!”
[예!]
어둡게 굳어진 얼굴로 대답하는 나를 비롯한 80여 명의 병사.
“전리품은 무기고로 가서 돈으로 바꾸도록! 해산!”
[해산!]
빈센트의 명령에 81명의 병사가 일제히 대답했다.
나 역시 크게 소리 지르고 막사를 향해 뛰었다. 이곳의 호칭으로 ‘그린(Green troop)’이라고 부르는 신병 딱지를 떼는 순간이다.
전투 경험을 한 데다가 첫 전투에서 세 명이나 죽이고 전리품을 챙겼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이미 신병이라 부르긴 어렵게 된 셈이긴 하다.
통나무로 대충 바람만 막는 수준으로 지어진 막사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끼익!
막사 안에 들어서자 먼저 들어온 다른 병사들이 손을 들어 보인다.
윌슨의 기억에선 없었던 행동들.
이들에게 확실하게 동료로 받아들여진 게 틀림없다. 나한테 두들겨 맞아 얼굴이 퉁퉁 부은 그레골도 손을 들어 주고 있으니 말 다했다.
빙그레 웃으면서 군례를 올리고서 내 자리에 곱게 놓인 두 자루의 검을 챙겼다.
롱소드는 내가 쓸 생각이다.
그나마 무림의 검과 생김새가 비슷해서 선택한 것이다. 무게는 무림의 것보다 조금 더 무거웠지만 말이다.
“이봐! 윌슨!”
“네!”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일단 대답부터 하고 보았다.
여기 1중대의 막사에서 난 가장 막내다. 이름만 불러도 무조건 크게 대답부터 해야 하는 신세라는 거다.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아침에 나 때문에 돈을 잃었다면서 투덜거리던 리올트라는 사람이다.
“무기고에 갈 거지?”
“네, 그렇습니다.”
대답은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다.
그래야 군기가 들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나랑 같이 가지.”
“네!”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니, 거절할 수 있는 짬밥이 아니다. 어차피 가는 길에 같이 가는 것뿐이다.
그나저나 저 인간 무식하다.
대체 몇 놈이나 죽인 거지?
검과 도끼와 같은 무기를 여섯 자루나 밧줄로 묶어서 어깨에 걸쳐 매고 있다.
아침에 그레골이 아니라 이 인간하고 붙었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어지간한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주먹.
저런 주먹에 얻어맞았다가는 지금의 허약한 몸뚱이는 단박에 부서질 터다.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다.
이런 인간과 싸우지 않게 되어서 말이다.
조금이라도 무공을 회복한다면 얘기는 또 달라지겠지만,
“가자.”
“네, 리올트 님!”
“자식, 딱딱하게 리올트 님이 뭐냐? 형이라고 불러.”
“알겠습니다. 리올트 님!”
일부러 더 크게 ‘리올트 님’이라고 대답했다.
형이라고 부르란다고 진짜 ‘형’이라고 불렀다간 엿 되는 거다.
“자식! 군기가 바짝 들었는데? 진작 이런 모습 보였으면 좋았잖냐.”
팡팡!
리올트가 잇몸을 드러내면서 나의 등을 소리가 나도록 두들겼다.
“쿨럭!”
솥뚜껑 같은 손으로 등을 맞으니 절로 기침이 나왔다.
“와하하하! 이 약골 녀석! 앞으로 많이 먹어야겠다.”
“커헉! 네! 알겠습니다.”
곰 같은 인간이 나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웃어 대는데 숨이 턱 막혀 온다.
“자식 마음에 들었다. 조만간 같이 외출이나 나가자. 내가 근사한 곳을 알거든.”
어울리지 않게 윙크를 하면서 미소 짓는 리올트.
솔직히 순간적으로 오바이트 할 뻔했다. 흉악하게 생긴 수컷이 내게 윙크하는 건 비위 상하는 일이다.
여자가 윙크해 주는 거라면 몰라도……
그러거나 말거나 리올트는 나의 목을 팔에 두르고 막사를 벗어났다.
어째 같이 간다기보다는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랄까?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인 몸으로 만들고 무공을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더 느껴진다.
즐거워하는 리올트의 장난스러운 터치에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판이니까 말이다.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을 참아가면서 그렇게 무기고를 향해 걸었다.
다행히 무기고는 멀지 않았다.
벌써 부지런한 병사 몇몇이 전리품으로 얻은 무기를 들고 줄을 서고 있었다.
<이 자식아! 어디서 싸구려 검 한 자루 들고 와서 꼴갑을 떨어? 8실론만 받아가!>
<어딜 봐서 이게 싸구려라는 거야? 보클란! 자꾸 후려칠 거야?>
노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어색한 감이 있는 통통한 체구의 사내가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 보였다.
툴툴거리던 병사가 손에 쥔 평범한 검을 마지못해 내밀자, 무기고의 관리자면서 대장장이인 보클란이 허리춤에서 동전을 꺼내 내민다.
이곳 세상에서 ‘실론’이라고 부르는 동전이다.
‘실론’이라는 화폐는 한국을 예로 들면 대략 50원짜리 크기의 은과 구리가 섞인 동전이다. 대략 1만 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 화폐단위.
“쳇! 지독하다니까!”
“시끄러워! 다음 놈!”
동전을 받은 병사가 기어이 한마디 했지만, 보클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다음 병사의 전리품을 감정했다.
“워어어! 여전하네, 보클란 아재!”
리올트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제야 나는 어깨가 가벼워질 수 있었다. 대체 뭘 먹으면 이렇게 덩치가 커질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크하하핫! 또 네놈이냐? 역시나 잔뜩 들고 왔구나!”
볼품없어 보이는 전투 도끼를 감정하던 보클란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병사에게 내미는 모습이, 한국의 악덕 고물상 아저씨를 보는 느낌이다.
“에게? 이건 너무 하잖습니까!”
“잡철이 많이 섞였어. 그나마 무게가 많이 나가서 이거라도 주는 거야. 싫으면 관두고.”
“에이 씨…….”
“싫어?”
“누가 싫다고 했습니까?”
전투 도끼를 감정 받았던 병사는 빼앗길까 두려웠는지 동전을 쥔 손을 꽉 쥐고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또 한 명의 병사가 기대하는 얼굴로 보클란에게 다가갔다.
“네 놈 건 볼 필요도 없어. 6실론!”
“…네.”
한 자루의 평범한 창을 가져온 병사가 풀 죽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리올트가 밧줄로 묶어 온 무기 다발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이놈아! 살살 다뤄!”
보클란이 기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어차피 똥값 줄 거면서 살살은 무슨…….”
리올트가 피식 웃으면서 말하는 폼을 보니 그동안 전리품을 어지간히 후려친 모양이다.
“괜찮은 걸 가져왔으니, 특별히 7실버를 주지. 어때? 마음에 들지?”
“허이구, 많이도 쳐주십니다.”
“그래서, 싫어?”
“누가 싫다고 했습니까?”
리올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하고는 순순히 동전을 받았다.
세상에……
저런 걸 7실버?
한국의 돈으로 계산하면 대략 70만 원쯤 되려나?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얻었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 짠데?
물론 가치가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동일시 할 수 없겠다. 다만 너무 싸게 후려치는 건 아닌가 하는 거지.
“다음!”
보클란이 기분 좋은 얼굴로 소리쳤다.
“윌슨, 네 차례다. 처음 와보는 거지? 너무 기대하진 마라, 저 아저씨 더럽게 짠돌이거든.”
“네, 리올트 님!”
“점심 먹을 때 보자.”
“네!”
웃으면서 나의 어깨를 두들겨 주는 리올트에게 크게 대답했다.
“네 녀석은 윌슨이구나. 어디 보자…….”
보클란이 지금껏 다른 사람을 상대하던 것과 다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셨어요?”
나 역시 빙그레 웃으면서 인사했다.
다른 병사들에겐 어떤지 몰라도 이 몸의 주인인 윌슨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병사가 되기 전엔 윌슨이 그의 옆집에 살았었다.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윌슨의 부모가 죽기 전까지는 나름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인물.
“코 흘리던 꼬마 녀석이 병사가 되다니 세월 참… 그래, 제법 쓸 만한 걸 가져왔구나.”
전리품을 감정하면서 보클란이 인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서 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액수를 확인하니 2실버다.
브로드 소드만 해도 대략 1.5실버에 톱니처럼 생긴 날을 가진 검도 대략 4실버는 될 거다.
윌슨의 기억에 의하면 무기의 가격이 대략 그렇다. 중고라도 30%의 할인율을 넘지 않는 걸로 안다.
그런데 달랑 2실버라니……
“싫어?”
“아, 아니요!”
급하게 대답했다.
레이놀드 영지에선 보클란이 아니면 전리품을 사줄 사람이 없으니까.
친근한 척하기에 다른 사람보다 후하게 쳐줄 줄 알았는데……
이 인간 얄짤없다.
무서운 인간 같으니……
그래, 인생 실전이라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