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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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04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04화
마계 (1)
차원의 문은 별 것 없었다.
악마의 형상으로 조각이 된 둥그런 원통 형태의 문, 정확하게는 문틀일 뿐이었다.
이용하는 방법도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저 그 문틀을 통과하기만 하면 끝이었으니까.
‘이게 차원의 문이라 이거지? 겉으로 보기엔 특별할 것도 없네.’
무혁이 차원의 문 앞에서 멀뚱히 서 있기만 하자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콜로시가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갈까?”
콜로시의 말에 무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의 구역에서 술을 먹을 생각에 콜로시는 잔뜩- 들뜬 얼굴로 서두르듯이 차원의 문을 통과했다.
차원의 문 너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콜로시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굉장히 간편하네.”
무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곧바로 차원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발을 내딛었다.
놀랍게도 차원의 문을 통과하는 것과 동시에 무혁의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모든 것이 급변했다.
온 몸을 짓누르듯이 압박해오는 밀도 높은 마기에 잠시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첫 순간에만 그랬다. 곧바로 무혁의 몸은 마기에 적응을 했다. 자연스럽게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바짝- 곤두섰던 몸의 긴장감도 느슨하게 풀어졌다.
‘여기가 마계?’
무혁은 잠시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리 두 눈을 씻고 쳐다봐도 생각보다 새로울 것이 없었다.
‘헬-라시온하고 별 차이가 없잖아?’
전체적으로는 그랬다.
마계라면 당연히 어둡고, 음침하며 자욱한 검은 안개 따위가 사방으로 짙게 깔려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무혁이었지만, 실제로 마계는 지난 4년 동안 지내왔던 헬-라시온하고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마계의 환경을 그대로 헬-라시온으로 옮긴 거였군.’
무혁은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지크, 뭘 그렇게 서 있는 거야?”
콜로시의 목소리에 무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에게 다가갔다.
“왕의 구역으로 바로 갈 생각인가?”
마계에 오기가 무섭게 콜로시는 술 생각뿐인 듯 그렇게 물어왔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오로지 본인의 욕구부터 충족을 시키려는 콜로시의 모습에 무혁은 그저 웃음만 나왔다.
‘하긴, 이것저것 귀찮게 따져 묻는 것보다는 낫지.’
콜로시의 이러한 이기적인 모습이 무혁에게는 오히려 더욱 좋기만 했다.
“그러지 뭐.”
무혁이 대답에 콜로시가 굉장히 흡족한 표정으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길잡이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콜로시의 모습에 무혁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위치 기억.”
콜로시가 없더라도 홀로 헬-라시온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무혁은 차원의 문에 위치 기억 스킬을 사용해뒀다.
마계 어디에서든 위치 기억 스킬을 통해서 차원의 문을 찾아올 수 있었기에 최소한 마계에 갇혀서 다시 헬-라시온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크! 뭐하고 있는 거야?”
무혁이 위치 기억 스킬을 사용하는 동안 빠른 걸음으로 멀찌감치 앞장서서 걷던 콜로시가 그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혹시라도 무혁이 다른 길로 빠져버릴 것을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기어이 무혁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콜로시가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내가 왕의 구역에서 술을 먹게 될 줄이야! 큭큭큭!”
도대체 왕의 구역이 얼마나 비싸기에 저러는 건가 싶었지만, 돈이라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것도 많았고, 이번에 욜리스와 마족들에게까지 모두 강탈을 해놨기에 넘치도록 있는 무혁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 그깟 술값 정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무혁은 콜로시의 뒤를 조용히 따라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욜리스의 말에 따르면 헬-라시온과 연결이 되어 있는 차원의 문은 라시온의 절대적인 영역이라고 했다. 때문에 그를 따르는 마족이 아닌 이상 쉽사리 다른 마신의 마족들이 접근을 할 수가 없다고 했으니 분명 라시온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일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을 수도 없고…….’
무혁은 최소한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고 싶었지만, 그런 의심스러운 물음을 건넬 수는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얼마든지 우회해서 물을 수도 있었지만, 자바하를 잡아야 하는 무혁이었기에 아주 작은 사소한 행위라도 신중해야 한다고 여겼다.
‘어차피 술만 먹이면 쉽게 풀릴 의문이니까.’
“지크, 자네는 왕의 구역에서 술을 먹어봤나?”
“이번이 나도 처음이야. 솔직히 왕의 구역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어. 그 동안 기회가 없었거든.”
“그래? 하긴, 왕의 구역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지. 나도 딱 두 번 가봤을 뿐이야. 하지만, 걱정할 건 없어. 왕의 구역이라면 제법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자네 돈은 충분한 거겠지? 미리 경고를 해두지만, 왕의 구역에서 돈 없이 술을 마셨다가 치안대에 끌려갈 수도 있어.”
“돈은 충분해. 그런데 치안대에 끌려가면 어떻게 되는 건데?”
이 정도의 질문은 상관이 없다 여겼고, 콜로시 역시 전혀 모르는 듯한 무혁의 모습에 별다른 의심 없이 재빨리 대답을 해주었다.
“어떻게 되긴 초죽음이 될 때까지 당하는 거지. 왕의 구역 치안대는 지독하기로 유명해. 라시온 님만을 따르는 마족들로 그놈들은 설령, 상대가 케케마탄이라 하더라도 절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케케마탄이라면 서열 1위의 마왕이다. 그 말인 즉, 사실상 마신 라시온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자신보다 위에 있다 인정하지 않는 2인자란 뜻이다.
그런 마왕 앞에서도 당당하게 고개를 쳐든다고 하니 무혁은 왕의 구역 치안대가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알만 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건 없어. 왕의 구역 치안대가 보통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름 정당함을 내세우고 있어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놈들에게 끌려갈 일은 없을 테니까.”
네가 정말 술값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았기에 무혁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후로도 콜로시는 종알종알- 떠들어댔다.
다른 때였다면 귀가 따가울 정도였기에 짜증이 났겠지만, 대부분 마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었기에 무혁으로서는 콜로시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허투루 들어 넘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콜로시가 걸음을 멈추고는 정면을 빤히 바라봤다.
“왕의 구역이다. 큭큭!”
열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콜로시가 그렇게 말했다.
무혁 또한 콜로시가 바라보는 곳에 시선을 주었다.
성.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하나의 거대한 성이었다.
좌우로 그 끝이 보이지도 않을 어마어마한 크기의 성벽이 하나의 거대한 산맥처럼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 압도적인 위용이 무혁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엄청나군.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자신의 시야로도 그 길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성벽을 바라보며 무혁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 어마어마한 성벽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마계에 서 있음을 실감하는 무혁이었다.
툭.
“들어가자고.”
콜로시가 무혁의 어깨를 친근하게 치며 왕의 구역을 향해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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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긴 비쌌다.
콜로시가 왜 그렇게까지 거듭해서 강조하고 강조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였다.
‘무슨 놈의 술값이…….’
마르케디악에서는 100마르크면 술 한 잔을 먹을 수 있다. 물론, 어떤 술을 먹느냐에 따라서 술값이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100마르크가 술 한 잔 값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왕의 구역은 같은 술을 1만 마르크에 마실 수 있었다. 자그마치 100배나 비싼 것이었다.
“크하! 기분 좋군! 역시 비싼 곳에서 마시는 술은 그 맛부터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다르단 말이야! 지크, 자네 덕분에 내가 왕의 구역에서 술도 마시고 정말 고마워!”
얼큰하게 취한 콜로시의 옆에는 한 병에 20만 마르크나 하는 술병이 여덟 병이나 빈병이 되어 일렬로 줄 세워져 있었다. 한 병, 한 병 술병을 가지런하게 줄 세우며 묘한 성취감을 드러내던 콜로시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지크, 자네가 마계에서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했잖아?”
이제야 그걸 생각한 건가?
제 욕구를 충분히 채우고 나서야 무혁의 일에 관심을 주는 콜로시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개인적인 일이라서.”
“그래? 내가 도울 일은 없고?”
뻔히 보이는 진심 아닌 물음에 무혁은 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나 다를까, 콜로시는 더 이상 묻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다시 술병이 두 병 더 줄을 서자 콜로시의 눈동자가 흐리멍텅하게 풀렸고, 혀도 꼬인 발음이 새어나왔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무혁이 가볍게 툭- 질문을 던졌다.
“마왕의 탑이 여기서 먼가?”
“마왕의 탑? 당연히 멀지. 마왕의 탑은 말이야…….”
콜로시는 제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를 주절주절- 쏟아냈다.
발음이 뭉개지고, 앞뒤가 맞지 않는 단어를 구사하거나, 갑자기 엉뚱한 쪽으로 이야기가 새는 바람에 꽤나 집중해서 콜로시의 말을 들어야 했지만, 그런 것 따위는 무혁에게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마왕의 탑에 대한 정보를 꽤나 많이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으니까.
왕의 구역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마왕들의 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성.
“아니지, 이건 성이 아니라 그냥 거대한 나라라고 해야 하나?”
서열 1위부터 49위의 마왕들이 각자 고유의 영역을 따로 가지고 있었으며, 서열에 따라서 그 영역의 크기도 달랐기에 왕의 구역은 말 그대로 하나의 나라를 통째로 성벽으로 둘러치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왕의 구역에서 마왕들이 가지고 있는 영역이 그들의 통치 지역일까?
일단은 맞다.
하지만, 왕의 구역 내의 영역은 일부분일 뿐이고, 실제로 마왕들에게 주어지는 독립된 통치 지역은 왕의 구역 외곽으로 거대한 대지였다.
실질적인 마왕들의 고유 영역이며, 대다수의 마왕들을 따르는 마족들이 머무는 지역이기도 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마신 라시온의 개인 영역이 가장 중심에 있고, 그곳을 감싸듯이 왕의 구역이 존재하고, 또 다시 왕의 구역을 중심으로 49명의 마왕들이 통치하는 지배지가 넓게 퍼져 있는 곳까지가 바로 마계에서 마신 라시온이 구축하고 있는 영역인 것이었다.
“마계에서 마신들끼리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진짜 볼 만 하겠네.”
1차 방어지인 49명의 마왕들의 지배지를 격파하고, 2차 방어벽인 왕의 구역을 깨부숴야만 겨우 마신 라시온의 개인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었으니까.
“욜리스의 말이 틀린 건 아니네.”
헬-라시온과 이어져 있는 차원의 문은 외부의 세력들이 쉽게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49명의 마왕들이 통치하는 지배지 안쪽, 왕의 구역과 가장 인접한 곳에 차원의 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니 무혁이 생각하기에도 굳이 관리자를 둘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이마저도 뚫고자 한다면 못할 건 없었지만, 반대로 이 정도의 관문을 뚫을 적이라면 관리자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어쨌든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별 어려움 없이 왕의 구역까지 들어왔다.
설마하니 마신 라시온조차도 헬-라시온의 인간 따위가 차원의 문을 넘어 마계로 들어올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바하의 서열이 49위… 아니, 48위니까 두 번째 탑이겠군.”
49위의 마왕 자리가 현재는 공석이었으니 마왕의 탑 역시도 비어 있을 것이다.
무혁은 멀리 보이는 거대한 탑을 향해 걸었다.
하늘을 뚫을 것처럼 높게 치솟아 있는 뾰족한 삼각형 형태의 탑이 바로 마왕의 탑이다.
마왕의 탑은 모두 같은 형태였지만, 가장 서열이 낮은 마왕의 탑부터 차례로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회오리 형태로 세워져 있었기에 자바하가 머물고 있을 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경계가 심하다고 하더니…….”
마왕의 탑은 각기 다른 마왕의 독립된 구역이었기에 마왕들의 성향에 따라서 그 경계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첫 번째 탑이었던 서열 49위 마왕의 탑은 거주인이 빠져나간 폐가마냥 텅- 비어 있었지만, 서열 48위인 자바하가 머물고 있는 마왕의 탑은 그 초입부터 눈에 힘이 팍- 들어가 있는 마족들이 촘촘하게 거리를 두고 서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여기서 마족을 건드리면 외부 침입자가 생겼다는 걸 알리는 꼴이 된다.
때문에 무혁은 단 한 명의 마족도 건드리지 말고 탑 내부로 들어서야만 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무혁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이유는.
“자바하 님은 어디에 계신 거냐!”
무혁은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마족을 향해 달려가며 그렇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