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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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8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89화
마르케디악 (7)
도전권 쟁탈전은 마족들에게 있어서는 정통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일반 마족이 마왕이 되는 가장 정직한 길.
소위 정통의 길이라고 불렸다.
여기에 모든 마족들의 환호를 받으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매년 벌어지는 도전권 쟁탈전은 당연히 그 열기가 굉장히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마족이라는 존재는 본래 투쟁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약육강식이라는 논리가 가장 잘 맞는 종족이며, 그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며 산다.
그러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강함을 증명할 수 있는 도전권 쟁탈전은 호승심이 높고, 투지가 뜨거운 마족일수록 제 목숨마저 버려가며 참가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그 치열한 투쟁의 현장 속으로 무혁은 조심스럽게 제 한 몸을 들이밀어 넣은 상태였다.
“죽여라! 죽여!”
“바르톤! 너희 힘을 보여줘! 네가 진정한 도전자임을 모두에게 증명해라!”
“살라! 절대 지지 마라! 이번 도전권 쟁탈전의 최후 도전자는 너잖아!”
“바르톤! 바르톤! 바르톤!”
“살라! 살라! 살라!”
거대한 원형 경기장, 흡사 고대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웅장하면서도 커다란 경기장에서는 수만 명이 넘는 마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명의 마족이 최선을 다해서 상대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도전권 쟁탈전의 룰은 단 하나였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상대를 일대일로 쓰러트리거나, 항복을 받아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하루에 수십 명이 무작위로 짝을 지어 싸우고, 하루, 하루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승자는 계속해서 다음 전투에 나가고, 끝내 더 이상의 상대가 없을 때 마왕 도전권을 획득하게 되는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다.
사방에서 뿜어대는 살기와 마기 속에서 무혁은 후드 속에 가려진 눈으로 경기장 중앙을 바라보고 있었다.
흡사 몬스터라고 해도 믿을 법한 짐승의 모습을 한 마족, 바르톤과 깡마른 체형의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남성형 마족, 살라는 각자 최선을 다해서 상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바르톤은 외형만큼이나 강한 힘과 속도를 이용해서 한 마리의 야수처럼 살라를 몰아붙였고, 반대로 살라는 민첩하게 이리저리 도망가는 듯한 전투 스타일을 보이면서도 이따금씩 허를 찌르는 강력한 반격을 통해 바르톤의 숨통을 조여 갔다.
하지만,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무혁의 감상평은 이랬다.
“지루하네.”
바르톤과 살라 모두 무혁이 보기엔 그리 강한 마족들이 아니었다.
단순 비교를 한다 하더라도 케트라의 수준에는 한참이나 못 미치는 실력으로 도전권 쟁탈전에 참가를 한 전형적으로 가진 바 능력에 비해 욕심만 많은 마족들이었다.
실제로 도전권 쟁탈전에는 제 실력보다 의욕만 앞서 출전하는 마족들도 적지 않았다.
“하아아암.”
작게 하품을 하자 무혁의 곁에 앉아 있던 마족 한 명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저런 놈들이 무슨 마왕 도전권을 노린다고. 안 그래?”
무혁은 힐끔- 고개만 돌려 말을 건 마족을 바라봤다.
평범하게 생긴 외모로 이 자리에서 헤어지면 다시는 생각이 나지 않을 듯한 마족이었다.
“뭐…….”
무혁은 짧게 말을 끊어버렸다.
방구름이 만든 ‘마족마족’ 포션으로 인간의 체취를 감추고 마족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경계와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기에 길게 이야기를 꺼내서 괜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말을 건넨 마족은 오랜만에 대화 상대를 찾았다는 듯 술술- 말을 건네 왔다.
“나는 말이야, 저런 실력 없는 놈들은 처음부터 다 걸러내야 한다고 생각해. 저런 놈들까지 다 쟁탈전에 참가를 하는 바람에 괜히 시간만 낭비하잖아. 안 그래?”
“모두 좋아하니까.”
무혁의 말에 마족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무혁의 말처럼 마왕에게 도전을 하기엔 형편없는 실력들이었지만, 분명 경기장을 찾은 마족들은 바르톤과 살라의 싸움을 무척이나 열광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긴, 마족들이라고 싸움 구경을 싫어할 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투쟁의 삶을 살아가는 마족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싸움은 언제나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고수들의 싸움보다도 하수들의 개싸움이 더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무혁의 이러한 말뜻을 알아들었기에 마족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누굴 응원하고 있지?”
화제를 전환하며 마족이 물어왔다.
“강한 놈.”
무혁의 간단한 대꾸에 마족이 잠시 두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크하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간단해서 좋군! 강한 놈이라… 그렇다면 역시 앙할카스 아니면, 쿠다스지. 안 그래?”
무혁은 마족이 말끝마다 ‘안 그래?’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거슬렸다.
‘귀찮으니까 꺼지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하던 무혁은 이내 생각을 바꿨다.
상대는 마족, 더욱이 뭔가 수다스러운 느낌이 잔뜩- 풍기고 있었기에 무혁은 그에게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뽑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 둘이라면 뭐… 하지만, 그래도 난 케트라가 더 낫다고 생각 드는 군.”
“케트라? 니니스 님의 충실한 종? 흐음… 확실히 케트라도 도전권 쟁탈전에 나왔다면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인 건 사실이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케트라는 마왕 도전권 따위에는 관심이 없잖아, 안 그래?”
처음 마르케디악에 왔을 때, 들었던 것과 똑같았다.
마왕 도전권의 우승 후보로 꼽힐 정도로 케트라는 강한 마족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니 무혁은 괜히 어깨가 으쓱거렸다.
정당한 방법으로 케트라를 쓰러트린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신이 그를 꺾었으니 무혁으로서는 괜히 인정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케트라도 참 특이한 마족이야. 욕심을 부려본다면 마왕의 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는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니니스 님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말이야. 하긴, 니니스 님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마족들이 케트라뿐만이 아니니까. 안 그래?”
‘니니스가 여성형 마족이었군.’
무혁은 떠벌이 마족 덕분에 마왕 니니스의 성별을 알 수 있었다.
“케트라는 여전히 마수의 대지에 있는 건가?”
무혁은 혹시나 싶어서 케트라에 대한 소문을 떠봤다.
기대했던 것처럼 떠벌이 마족은 신이 나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었다.
“당연하지. 니니스 님의 명령이라면 다른 마왕에게라도 칼을 들이댈 놈이잖아? 아마도 마수의 대지의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걸?”
“듣기로는 케트라라 하더라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그래도 케트라니까 믿고 기다리는 거지. 니니스 님도 케트라가 반드시 일을 해결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니니스와 케트라의 관계에 무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최소한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있겠지?’
니니스가 변덕을 부린다면 모를까, 어쨌든 당장으로서는 걱정거리가 조금은 덜해진 기분을 느끼는 무혁이었다.
“지루했던 싸움이 이제야 끝났군.”
마족의 말처럼 경기장 한 가운데 피투성이가 된 살라가 겨우 숨만 헐떡이고 있는 바르톤의 머리를 짓밟고 서서 검을 치켜들고 서 있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지켜보고 있는 마족들의 열광적인 외침에 살라가 경기장 가득 포효하듯 소리를 내지르고는 자신의 발아래 짓밟혀 있는 바르톤의 심장에 자비 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바르톤의 죽음에 마족들은 마치 광신도라도 된 듯 환호성을 내질렀고, 살라의 이름이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어댔다.
“살라! 살라! 살라! 살라!”
재밌는 건 지루했던 싸움이라며 시큰둥한 모습을 보였던 떠벌이 마족 역시도 살라가 바르톤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자 광분한 듯 살라의 이름을 연호했다.
‘무서운 놈들이야.’
무혁은 마족들의 모습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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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무혁은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무혁의 곁에는 마치 자석처럼 떠벌이 마족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봐, 지크. 자네는 말이 참 짧아?”
“그래서 싫은가? 그럼 말 걸지 마.”
무혁은 떠벌이 마족, 콜로시에게 그렇게 대꾸해버렸다.
“아니야, 아니야! 난 지크, 자네와 같은 친구가 얼마나 좋다고!”
두 번째 만났을 때, 통성명을 하자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에 무혁도 대충 생각나는 대로 ‘지크’라는 이름을 지어냈다.
그만큼 콜로시는 무혁을 같은 동족인 마족, 지크로 완벽하게 받아들인 것이었다.
“오늘은 드디어 내가 응원하는 쿠다스가 출전을 하는 날이군! 지크, 자네가 보기엔 어때? 아무리 노브스키가 복병이라 하더라도 쿠다스가 무난하게 이길 것 같지? 안 그래?”
“두고 보면 알겠지.”
무혁의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콜로시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제 할 말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그런 콜로시를 무혁은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너무 떠들어서 조금은 시끄럽고 귀찮은 구석이 없잖아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무혁이 득을 보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콜로시의 존재로 인해 무혁은 더 이상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날 것에 대한 경계심과 긴장감을 한결 낮출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콜로시를 상대하느라 항상 조심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주변의 눈초리를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기에 완벽하게 마족들 사이에 동화될 수가 있었다.
또 하나 콜로시로 인해서 무혁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있었다.
이를 테면, 마왕들의 서열부터 시작해서 각 마왕들의 성격과 외모 등 콜로시는 무혁이 한 마디만 툭- 던지면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주절주절- 한없이 말을 꺼내놓아서 구태여 알 필요도 없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알게 되었다.
하나를 예로 들자면, 서열 36위의 마왕 니첼라는 남성형 마족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빨간 여자 속옷을 입는 변태라는 정보까지 무혁은 콜로시에게 들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무혁은 마왕들 간의 알력 다툼이라든지, 헬-라시온의 여러 정보까지도 마족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상당부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무혁이 가장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라미엘 외에도 타락하고 있을 천사들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사실을 콜로시를 통해서 확인을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 천사들이 어디에 있는지, 몇몇에 대한 정보까지도 콜로시는 별 대단한 비밀도 아니라는 듯 무혁에게 술술- 말해주었다.
“오오오! 쿠다스가 나오는군!”
자신이 응원하는 마족이라서 그런지 콜로시가 잔뜩- 흥분한 음성으로 그렇게 외쳤다.
무혁도 도전권 쟁탈전이 시작되고 3일 만에야 우승 후보 중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심 어린 눈길로 경기장을 바라봤다.
쿠다스는 새카만 피부의 보통 체격이지만, 상당히 탄력 넘치는 근육을 가진 인간 남자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꼭 운동선수 같네.’
탄력 넘치는 흑인 운동선수 느낌이라고 할까?
무혁이 본 쿠다스의 첫 인상은 그랬다.
반면, 쿠다스와 싸울 노브스키라는 마족은 노릿한 피부에 2미터가 훌쩍- 넘어갈 정도의 장신을 자랑하는 마족이었다.
상대적으로 쿠다스보다는 아래라고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의외로 노브스키가 이번 도전권 쟁탈권에서 가장 강력한 복병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다는 마족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기에 이번 매치는 상당한 관심거리 중 하나로 진즉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쿠다스와 노브스키가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경기장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쿠다스! 노브스키 따위 순식간에 박살을 내버리라고!”
휘파람까지 불어대며 쿠다스를 열렬하게 응원하는 콜로시였다.
실력만큼이나 인기가 높기 때문인지, 실력이 좋아서 그만큼 인기가 있는 것인지 전체적으로 대다수의 마족들은 쿠다스를 응원하고 있었다.
‘노브스키 입장에서는 원정 경기라도 온 것 같겠네.’
무혁은 응원해주는 마족들이 소수에 불과한 노브스키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봐, 지크! 우리 이번 경기에 내기를 거는 건 어때?”
“내기?”
무혁은 콜로시가 당연히 쿠다스에게 돈을 걸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나한테 준 정보들이 얼마인데 그깟 돈 좀 잃어주는 건 싸게 먹히는 거지.’
그리고 마족의 돈이라면 어차피 무혁에게는 충분할 정도로 있었다.
“좋아! 그럼 나는… 쿠다스에게 걸지. 괜찮겠지?”
“마음대로.”
“큭큭큭! 역시 지크, 자네는 내 마음에 드는 친구라니까! 내기 금액은 1만 마르크!”
뻔히 보이는 결과로 1만 마르크를 꿀꺽- 하시겠다?
무혁은 콜로시의 날강도 같은 심보에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딴 소리 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좋았어!”
벌써 내기에서 승리한 것 마냥 함박웃음까지 지어보이는 콜로시였다.
퍼- 엉!
경기장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고 쿠다스와 노브스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