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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239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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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3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39화

변화의 시작 (4)

 

새벽, 헬-라시온의 세계에도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여명이 존재했고, 그 희미한 빛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으응……?”

잠결에 팔을 뻗었던 여자는 손끝에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자 눈을 번쩍- 뜨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상체를 일으킨 여자는 나신이었다.

커튼 사이로 날아든 희미한 빛 아래 매끈하고도 새하얀 피부, 풍만하면서도 균형 잡혀 있는 봉긋한 가슴은 남자라면, 아니 여자라 하더라도 탐이 날만큼 아름다웠다.

여자는 넓은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이윽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너무하네.”

살짝- 눈물이 나올 정도로 여자는 야속함을 느껴야만 했다.

애초부터 작정한 일이기도 했지만, 술기운으로 더욱더 과감해졌기에 반드시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딱히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충분히 승산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상대는 철벽이었다.

“그, 그러고 보니까…….”

 

‘이 자식아! 넌 고자냐! 왜 못해! 하고 싶으면 마음껏 하란 말이야! 받아 준다고! 뭐든 해보라니까!’

 

옷을 다 벗고 달려드는 자신을 밀어내는 그에게 내뱉었던 술주정이 떠오른 여자, 미첼은 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이 미친년아! 아무리 취했어도 그게 할 말이냐? 나가 죽어라! 나가 죽어!”

제 머리카락이 다 뽑힐 정도로 쥐어뜯던 미첼은 이불이 얼굴을 묻고 후회의 발버둥을 쳤다.

“그렇게까지 말을 했으니 나한테 질려버렸겠지? 조금만 더 참는 거였는데…….”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미첼이었지만, 이미 시간은 저 멀리 지나가버린 뒤였다.

그 시각, 무혁은 1층 식당에서 대충 식사를 마치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뭐야? 벌써 가는 거야?”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실비아와 레오, 방적삼이 무혁을 발견하고는 곁으로 다가왔다.

“아침이라도 든든하게… 벌써 먹었네.”

“무혁 동생, 열심인건 좋지만 그래도 사람인데 쉴 때는 확실하게 쉬어야지. 그러다가 정말 병이라도… 그럴 리는 없겠군.”

자신을 걱정해주는 동료들의 모습에 무혁은 고마움을 드러냈다.

“어제는 화끈한 밤을 보냈어?”

레오가 짓궂게 묻자 무혁은 대답 대신 썩은 미소만 지었다.

“뭐야? 설마…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무혁의 태도에 레오가 혀를 차며 그렇게 되물었고, 방적삼 또한 어지간하면 미첼의 마음을 좀 받아주는 게 어떻겠냐는 듯 훈수를 뒀다.

“너 설마 미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거야?”

실비아는 취기가 오른 얼굴로 제법 사납게 물어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럼? 설마 실비아의 과거를 문제 삼는 거야? 너 그렇게 속이 좁은 놈이었어?”

무혁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실비아가 그렇게 따졌다.

“과거 따윌 누가 신경 쓴다는 거야?”

얼굴을 찌푸리며 무혁이 실비아를 바라봤다.

“그럼 뭔데!”

“나를 통제하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그런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레오와 방적삼도 무혁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지금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라도 하면 그 사람에게 빠져서 내 자신을 통제하기 힘들까봐 그런 거라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어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위험해지거나, 다른 중요한 일보다 그 사람에게 매달리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거리를 두려는 것뿐이야. X발, 내가 어저께 미첼한테 무슨 소리까지 들은 줄 알아? 됐다! 됐어!”

차마 자신의 입으로 ‘고자’라는 소리까지 할 순 없었기에 무혁은 순간 치솟은 화를 삭이기 위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야만 했다.

차라리 미첼이 킬 라시온 멤버가 아니었다면 무혁은 어젯밤 오랜 시간 참아왔던 자신의 욕구를 모조리 쏟아냈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쌍코피를 흘리더라도 원 없이, 후회 없이 마음껏 욕망을 분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미첼이라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미첼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하룻밤 상대로 그녀를 욕보일 순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왜 날 잡아서는!’

무혁이 레오와 방적삼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적당히 술이 올랐고, 미첼이 자꾸만 치근덕거려서 무혁도 참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슬쩍- 뒤로 빠져서 하룻밤 상대를 찾으려고 했었다.

유흥의 도시인만큼 라카오에는 하룻밤 상대를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더욱이 그 상대가 헬-라시온을 아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무혁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입고 있던 옷가지를 벗어 던지며 달려들 여자들이 수두룩 할 것이다.

그렇게 치근대던 미첼을 겨우겨우 떼어놓고 자리에서 빠져 나가려던 무혁을 레오와 방적삼이 붙잡았던 것이다.

이들 두 사람만 아니었다면 무혁은 분명 헬-라시온에 끌려오고 나서 처음으로 쾌락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레오와 방적삼 덕분에 무혁은 꼼짝없이 미첼과 한 방에 갇혀서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야만 했다.

‘저 웬수들!’

무혁이 자신들을 노려보자 레오와 방적삼은 왜 그러냐는 듯 멀뚱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말해서 뭐하리, 무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몸매는 정말 끝내줬는데… 살결도 예술이었고… 가슴도…….’

옷을 벗고 나신으로 덤벼들었던 미첼의 눈부셨던 모습을 떠올리니 무혁은 또 다시 피가 끓었다.

‘진짜 줘도 못 먹는… 상등신이 될 줄이야.’

그래도 후회가 들지는 않았다.

미첼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다면 앞으로 상당히 힘들다는 걸 무혁 스스로 잘 알기에.

“불알 달린 새끼가 뭘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고 재는 거야? 계집처럼!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실비아는 무혁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신경질을 냈다.

밤새 술을 퍼마셨는지 술기운이 가득한 실비아였기에 무혁은 술 취한 사람하고 싸워봐야 손해 보는 건 자기라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래, 그래. 내가 등신이다. 어쨌든 난 가요.”

무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필립과 송정민 등에게는 아침 일찍 떠나겠다는 말을 미리 해두었기에 구태여 자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고, 한 달 조금 넘게 나갔다가 돌아올 것이니 거창하게 작별 인사를 한다는 것도 우스웠다.

레오와 방적삼 등도 무혁이 금방 돌아올 것을 알기에 몸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손만 흔들어 주고는 어느새 한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또 다시 부어라, 마셔라 술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질렸다는 듯 무혁이 몸을 돌려 식당을 막 나가려고 하자 실비아가 다가왔다.

“야! 빡대가리!”

왜 부르냐며 무혁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쪽-!

기습적으로 실비아의 입술이 무혁의 입술과 맞닿았다.

“무, 무슨 짓이야!”

무혁이 깜짝 놀라서 한 발 뒤로 물러나자 실비아가 도리어 화를 냈다.

“이 새끼야! 왜 주둥이를 내밀고 지랄이야! 그냥 볼에 가볍게 뽀뽀만 해주려고 했는데! 너 이 새끼 일부러 그랬지?”

“누가 일부러 그랬다는 거야! 그러기에 뽀뽀를 왜 해!”

“서양식 인사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을 하는 실비아의 모습에 무혁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 서양식 인사를 왜 이제와 하는 건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알 것 같았다.

술에 취한 실비아의 모습이 그 답이었다.

“아후- 술 냄새! 적당히 좀 마셔라! 그러다 길바닥에 널브러지면 좋아할 놈들 천지다!”

물론, 과연 어느 용기 있는 놈이 실비아를 건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혁은 그렇게 말하며 식당을 나가버렸다.

“저 새끼가…….”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는 실비아의 얼굴은 붉다. 그것이 술기운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

 

조각 난 신의 힘은 모두 여섯 개.

모래 태양, 얼음 구슬, 바람 깃털, 물 수정, 뿌리 대지, 자갈 벼락.

그 중 모래 태양과 얼음 구슬은 이미 무혁이 흡수를 했기에 남은 것은 네 개였다.

남아 있는 네 조각 중 무혁이 먼저 선택한 것은 물 수정이었다.

이유는 별 것 없었다.

“가깝잖아.”

“어차피 포탈을 이용해서 가잖아요?”

“…도시에서 가장 가까워.”

“정말이죠?”

따지듯 묻는 통통이의 시선을 무혁은 무시해버렸다.

“그리고 아버지.”

“왜?”

“인간적으로 이름 좀 개명해 주세요.”

“넌 인간이 아니잖아?”

“…이름으로 말장난 할 기분 아니에요.”

고작 6세의 외모로 진지한 얼굴이라니!

무혁은 애 늙은이를 앞에 두고 있는 심정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름은…….”

말을 하던 무혁이 무언가를 떠올리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제였다.

킬 라시온 멤버들이 모두 거나하게 취해가던 시점에 아르케니아가 갑작스럽게 버럭! 소리를 내지르면서부터 시작된 통통이 이름에 대한 집단 반발.

값비싼 양주와 맥주를 섞어서 빨대로 쪽쪽- 빨아 먹던 아르케니아는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었는데, 갑작스럽게 벌떡! 일어나서는 무혁에게 통통이라는 이름이 뭐냐는 무차별적인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분명 토빗의 이름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다가 술기운에 그 감정을 표출한 거겠지!’

가만히 보면 킬 라시온 멤버들 중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은 아르케니아였다.

겉으로는 별 말도 없고, 아주 순수한 소녀스러움을 갖추고 있었지만, 속은 전혀 달랐으니까.

실제로 그녀가 상대했던 하이 랭커 다니엘의 처참했던 시신만 보더라도 아르케니아의 성격은 보통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아르케니아를 시발점으로 갑작스럽게 통통이 이름에 대한 집단 토론회까지 벌어졌었다.

무혁으로서는 별 의미도 없는 그런 토론회였지만, 술 기운 때문인지 킬 라시온 멤버들은 굉장히 열띤 토론을 벌였고, 장장 2시간에 가까운 토론 끝에 무혁은 세 가지의 이름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까지 놓였었다.

“르케임이 말했던 바레스? 아니면, 엘리엇 누님이 말했던 로딘? 이것도 아냐? 설마 적삼 아저씨가 말했던 차칸?”

무혁의 말에 통통이는 전부다 유치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런 이름들이 지금 이름하고 뭐가 달라요? 저한테는 다 유치하고 성의 없어요.”

이 이야기를 멤버들이 들었어야 했는데- 라며 무혁이 아쉬워했다.

자신에게 그렇게 네이밍 센스가 없다고 꾸짖던 멤버들이 한 순간에 동급으로 되었으니 무혁으로서는 마음이 후련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설마… 그동안 이름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해오고 있었던 거야?”

통통이는 정말 이름에 대한 생각을 꾸준하게 해왔던 것인지 무혁의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요 녀석 봐라?’

무혁은 재밌다는 듯 통통이를 바라보다 말했다.

“좋아, 통통이 네가 생각하고 있는 이름을 한 번 말해봐.”

기다렸다는 듯 통통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바토스 이포리우스 아스네우 로드 사브르 크로람 안드리안 차 2세.”

“…….”

무혁은 통통이가 부르는 길고도 헷갈리는 해괴망측한 이름에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이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아요. 솔직히 약간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딜 가더라도 이름을 밝힐 때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나라면 정말 부끄러울 것 같은데?”

무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통통이에게 말했다.

“너무 길어! 그런 긴 이름을 누가 외울 수 있겠어? 짧게! 아주 짧게 해!”

“쳇!”

통통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연신 되뇌었다.

한참만에야 통통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도저히 불가능해요. 단 한 글자도 뺄 수가 없어요. 이것도 제가 정말 참고 참아서 짧게 만든 이름이란 말이에요.”

“그렇다고 이름을 바… 뭐라고?”

“바토스 이포리우스 아스네우 로드…….”

자부심 넘치게 자신의 이름을 줄줄- 말하는 통통이의 모습에 무혁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통통아, 정말 그 이름을 해야만 하겠어? 나는 통통이라는 이름이 정말 좋은데. 솔직하게 말해서 이름으로 인해 떠오르는 이미지라는 게 있잖아? 통통이 네 어린 시절을 생각해봐. 나는 네가 이름을 바꾸면 추억이 많았던 그 시절들이 모두 잊힐 것만 같아서 두렵다. 추억이라는 건 정말 소중한 거잖아.”

무혁은 진심으로 통통이라는 이름에 담긴 추억을 잃을까 우려스러웠다.

그런 무혁의 마음을 느꼈는지 통통이도 잠시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무혁의 사탕발림과 같은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정신을 차리고는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버지 말씀도 맞지만, 그래도 통통이라는 이름은 정말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요. 이제와 이름을 바꾼다고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전 반드시 개명을 하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도저히 꺾이지 않을 것만 같은 통통이의 강한 고집에 무혁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그렇게 원하는데 어쩌겠냐? 너 원하는 대로 해. 바토스 이포… 어쩌고로 바꿔.”

“바토스 이포리우스 아스…….”

“됐고! 나는 간단하게 부를 테니까 그렇게 알아. 어디 보자… 그래! 로드! 이름 중간에 로드가 들어가 있었지? 앞으로는 로드라고 부를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애칭이라고 생각해. 만약, 내게 풀 네임을 부르라고 한다면 난 절대 못해!”

무혁의 말에 통통… 아니 로드도 알겠다고 대답했다.

“어쨌든 이제 가자. 한 달 동안 조각 난 신의 힘을 하나라도 구해야 하니까.”

무혁의 말에 로드도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는 듯 의지를 드러냈다.

그렇게 무혁과 로드는 ‘물 수정’이 잠들어 있는 ‘시체의 호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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