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182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182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8권 - 7화
근위병들이 서둘러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자 사하라 황제가 손을 들어 그들의 움직임을 제지했다. 그리고는 사내를 향해 나지막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사내는 사하라 황제의 물음에 만족한다는 듯 빙긋 웃고는 손에 들고 있던 피 묻은 검을 저 멀리 내던졌다. 자신은 어떠한 위해를 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근위병들은 여전히 시퍼렇게 날이 선 검을 들고 그를 빙 둘러 막았다.
“제 이름은 마르틴입니다. 황제 폐하께 전할 말이 있어 이렇게 무례한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마르틴이라 소개한 사내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인사를 하고는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외쳤다.
사하라 황제는 마르틴을 바라보다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이곳까지 어떻게 왔나? 뭐, 중요한 건 아니려나? 어쨌든 그래, 내게 전할 말이 무엇이지?”
느긋하게 묻는 사하라 황제를 향해 마르틴이 대답했다.
“본 바이텐 제국은 카르타 제국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
“……!”
충격!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하라 황제 역시도 이 순간만큼은 너무 놀라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커다랗게 커진 눈과 벌린 입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바, 바이텐 제국?”
사하라 황제의 입에서 어렵게 흘러나온 말. 그리고 대조적으로 너무나 쉽게 마르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그렇습니다. 바이텐 제국!”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사하라 황제가 물었다.
“바이텐 제국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 건가?”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크하하하하하핫!!”
미친 듯이 웃는 사하라 황제의 모습에도 마르틴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 웃음 속에 격렬한 비웃음이 섞여 있음을 알면서도.
한참을 웃고 나서야 사하라 황제가 무섭게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이 대륙을 혼란스럽게 만든 연금술사 따위가 만든 나라, 아니 그러한 곳을 공국이나 왕국도 아닌 제국으로 인정해 달라?”
한 마디면 끝이다.
당장 사하라 황제의 입에서 ‘죽여라!’라는 한 마디면 마르틴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얼굴에 미소까지 띄며 말했다.
“인정하지 않으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협박인지, 권고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협박이라 할 수 있겠지만 또 마르틴의 표정과 눈빛으로 봐서는 권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후회? 내가 후회를 한다고?”
사하라 황제가 비웃듯 묻자 마르틴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한다는 듯 너무나도 자신 있는 고갯짓이었기에 사하라 황제는 불쾌감이 치솟았다.
제국의 황제다. 설령, 후회할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에 선 절대자이다. 그런데 마르틴의 너무나도 자신 있는 대답과 그의 눈빛이 사하라 황제의 가슴 한쪽을 가볍게 찌르고 있었다.
“바이텐 제국을 인정하지 않으면 카르타 제국의 많은 영지가 보스토, 라고스, 카이로와 같은 꼴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콰앙!
“감히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
몸까지 부들부들 떨며 외치는 사하라 황제의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강한 위엄은 과연 제국의 황제이자, 대륙의 절대 권력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협박이라고 하더라도 좋습니다. 어쨌든 사하라 황제 폐하께서는 분명 반드시 후회를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가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으로 그렇게 자신하는 것이냐!”
“이 프라디아 대륙엔 카르타 제국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
상황에 따라서는 키에브 제국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키에브 제국이 아니더라도 다른 왕국들이 있으니 얼마든 자신들과 손을 잡을 나라는 많다는 소리였다.
“이런 혼란을 일으킨 악의 무리들과 손을 잡을 나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커다란 오산이다!”
사하라 황제는 그렇게 말했지만 한쪽 구석은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마르틴은 악마의 유혹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
“인간의 욕망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추한 것입니다.”
“…….”
사하라 황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워진 머릿속을 풀어내기 위해 사하라 황제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마르틴은 서 있기 힘들다는 듯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의 대범한 행동에 근위병들은 얼굴을 붉히며 치욕스러워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순 없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사하라 황제가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마르틴을 바라보곤 피식 웃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걸 알고 있느냐?”
마르틴은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죽음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는 오직 이미 죽은 존재뿐입니다.”
술술 말을 하는 마르틴의 모습에 사하라 황제는 다시 한 번 웃고야 말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저토록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대견스럽게까지 보였다.
“네가 나의 기사였다면 나는 너를 크게 여겼을 것이다.”
“영광입니다. 하지만, 바이텐 제국 내에서도 저는 크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부디, 제게 망명을 부탁하지 마시길 바라겠습니다.”
장난이라도 하듯 받아치는 마르틴의 모습에 사하라 황제는 어떠한 불쾌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 정도로 마르틴은 카르타 제국 내에서도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내가 인정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사하라 황제의 말에 귀족 대신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황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마르틴의 말을 기다렸다.
“한 가지는 확신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이지?”
“키에브 제국을 발아래 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르틴의 말에 사하라 황제가 빙긋 웃었다.
“뛰어난 사냥개라 하더라도 결국은 그 주인에게 먹히고 말지.”
바이텐 제국이 언제든 돌아설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마르틴이 물었다.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사하라 황제가 대답했다.
“나라와 나라가 묶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혈연관계뿐이지.”
“본 제국의 황제 폐하께선 허락하실 것입니다.”
“또 하나. 그들은 이곳에서 머물 것이다. 더불어 바이텐 제국 내에서 중요한 인물들 몇 몇 역시.”
마르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하라 황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몸을 일으킨 마르틴은 자신을 둘러싼 근위병들을 바라보았다.
“물러나라.”
사하라 황제의 한 마디에 근위병들은 물길이 열리듯 좌우로 물러났다. 마르틴은 감사하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잠깐!”
사하라 황제의 말에 걸음을 옮기던 마르틴이 고개만 뒤로 돌렸다.
“마지막으로 이 한 가지를 대답해야만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
마르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무엇입니까?”
“이곳엔 어떻게 들어왔지?”
마르틴은 가만히 생각하다 되물었다.
“사하라 황제 폐하께선 분명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사하라 황제가 대답했다.
“내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저들에게는 중요하지.”
사하라 황제는 근위병들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하하하!”
***
바이텐 제국!
연금술사의 탑이라는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단순히 연금술사의 탑에서 바이텐 제국으로 이름만 바뀌었다고 하기엔 그 의미가 너무나도 컸다. 가장 큰 의미를 들자면, 하나의 단체에서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백 년간 프라디아 대륙을 양분하고 있던 두 제국 사이에 또 하나의 제국이 새롭게 끼어들었다. 무엇보다 바이텐 제국이 몇 년간 프라디아 대륙을 혼란에 이르게 만들었던 소위 악의 무리라 불리던 이들이라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더욱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러한 바이텐 제국을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카르타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였고, 대륙의 분열을 의미했다. 대륙의 분열은 다름 아닌 지금껏 연금술사의 탑과 싸움을 벌이던 프라디아 대륙 연합군의 분열이라는 결과를 말한다.
당장 프라디아 대륙 연합군에 참전했던 모든 카르타 제국의 병력이 본국으로 소환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는 프라디아 대륙 연합군의 존폐를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커다란 타격이 되고야 말았다.
20만에 달하는 카르타 제국군의 이탈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은 제1군과 제2군을 담당하고 있던 총사령관들의 부재였다.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던 제1군의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과 제2군의 맥케이 라인하르트 공작이 사하라 황제의 황명에 따라 모든 군 통솔권을 이렇다 할 적임자도 없는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내던지고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프라디아 대륙 연합군 제1군과 제2군은 총사령관도 없는 상황에서 절반 이상 빠져 나간 병력을 이끌고 황급히 후퇴를 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혼란한 틈을 타 바이텐 제국에서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병력이 키에브 제국의 병사들로 이뤄진 제3군과 페르만 왕국의 병력이 80%에 육박하는 제5군은 제1군이나 제2군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잠시 모든 전쟁을 멈추고 현재의 상황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었다.
제국력 1391년 2월 16일.
키에브 제국 수도 레르모 황성.
대귀족 회의를 위해 황성의 대회의장엔 시시각각으로 키에브 제국의 귀족들이 속속 도착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하지만, 어느 귀족도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곁에 있는 이들과 시끄럽게 웃고 떠들거나, 시간이 없으니 어서 빨리 회의를 시작하자며 재촉하거나, 시끄러우니 잠자코 있으라고 소리치거나, 지금 이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이들까지 모두 제각각 멋대로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이거 원! 도대체 대륙 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일세!”
“이건 보나 마나한 일이네! 그자가 한 통속이 된 것이야!”
“한 통속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런 답답한 사람 같으니! 자네는 지금 대륙에 일어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가?”
“그야…….”
“쯧쯧쯧! 이 사람아! 사하라 황제가 그 악의 무리들과 한통속이 되었다는 말일세!”
“헉! 그 소문이 정말이란 말입니까?”
“허허! 도대체 자네는 뭘 보고 듣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카르타 제국군이 모두 본국으로 귀환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야…….”
“쯧쯧쯧! 그래서야 어디 큰 일을 하겠나! 에잉!”
제법 나이를 먹은 귀족은 40살도 되지 못한 젊은 귀족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