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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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16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16화
하이 랭커 (5)
“의뢰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선금은?”
“필요 없다고 합니다. 일을 마무리 짓고 나면 그때 한꺼번에 받겠다고 합니다.”
“하긴, 돈이 궁할 놈은 아니지. 놈에게 중요한 건 제 살을 찌울 수 있는 양분의 뼈와 살일 테니까.”
고민석은 뱀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웃고 있는 고민석과 다르게 그에게 보고를 하는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스러움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조심스러운 남자의 물음에 고민석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간단하게 대꾸했다.
“걱정할 것 없어. 어차피 그 양반이 바라는 건 놈의 죽음이니까.”
“하지만, 길드장님께서는 흑룡의 이름으로 자존심을 회복하길 바라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남자의 물음에 고민석이 혀를 차며 웃었다.
“쯧! 아직도 그 양반을 모르는 구나. 물론, 모양새로만 본다면 그쪽이 가장 깔끔하고 좋겠지. 하지만, 이미 그럴 수 있는 상황은 물 건너갔어. 필립이야. 필립. 그 새끼가 제 식구가 당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 같아? 애초부터 놈의 실력을 다 알기에 혼자 설치도록 내버려 둔 것일지도 몰라. 그런데 놈의 실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상대가 나타난다면? 그때도 필립이 가만히 두고만 볼 것 같아?”
고민석의 물음에 남자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제 식구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보호하려고 하는 유별난 인간이 바로 필립이다.
더불어 한 번 건들면 절대 쉽게 물러나지 않는 독종 중의 독종이기도 했다. 거기에 하이 랭커였기에 난다 긴다 하는 도시 길드의 길드장들조차도 어지간해서는 충돌하길 꺼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흑룡 길드의 고민석뿐만 아니라, 천인회와 무사시 가문까지도 제대로 된 실력자들을 선별해서 무혁이라는 놈을 확실하게 짓밟으려고 준비 중이다.
남자가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려고 해도 필립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필립이 개입하면 그때부터는 정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고, 그건 더욱더 지저분한 싸움이 될 공산이 컸다.
염태수가 그런 상황을 원한다?
‘그럴 리가 없지.’
남자는 확신하듯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의문이 생겼다.
“혹시… 길드장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까?”
남자의 물음에 고민석이 비릿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고민석도 그 부분까지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염태수가 직접 움직이면서까지 자신을 찾아와선 해결을 종용했다.
정말 자신이 움직이면 필립과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어째서 염태수가 그런 부담을 짊어지면서까지 자신에게 직접 일을 해결하라고 했을까?
“보기엔 그렇지 않은데 역시 그 양반 잔머리 하나는 진짜 대단해. 옛날부터 그랬어. 아마 진즉부터 도혜미 그 년을 통해서 내가 누굴 만나고 다녔는지 다 뒷조사 끝나 있을 거고, 날 직접 찾아온 목적도 과연 내가 어떻게 일을 해결할지 두고 보겠다는 속셈이었겠지.”
흑룡 길드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으면 가차 없이 형, 아우 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망설임 없이 내버릴 사람이 염태수다.
물론, 그렇다고 신뢰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최측근마저도 쳐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냉정한 사람이었고, 아쉽게도 고민석은 지금쯤 염태수가 언제든 내버릴 수 있는 경계선을 넘은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자에게 의뢰를 하지 않았다면 길드장님께서는…….”
“나를 필립의 화살받이로 기꺼이 사용하려고 했겠지. 큭큭!”
고민석은 웃고 있지만, 눈은 여전히 사납게 번들거렸다.
선후를 떠나 어쨌든 몸담고 있었던 조직의 넘버 원으로부터 언제든 버림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는 건 고민석에게도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길드장님은 무서운 분이시군요.”
“무섭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흑룡 길드를 세운 사람 아니냐? 물렁해서야 안 되지.”
“천인회와 무사시 가문은 길드장님과 이미 생각을 맞췄다는 것입니까?”
고민석이 살인 청부 의뢰를 넣자고 했을 때, 기꺼이 응했던 두 곳이다.
그들 역시 이번 일을 야기 시킨 장본인이 고민석임을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염태수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남자로서는 의심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참에 놈도 죽이고, 필립도 잡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까. 어차피 필립만 잡으면 킬 라시온도 별거 아니니까. 두 번 자존심을 구긴 것 치고는 꽤나 쏠쏠한 전리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냉정하게 이득만 취한다.
하긴, 이미 고민석이 전면에서 모든 것을 계획했으니 천인회든 무사시 가문이든 일이 틀어졌다 하더라도 모르는 일이라 한 발 뒤로 물러서버리면 그만이었다.
애초부터 사이좋게 웃으며 같은 길을 가는 영원한 동반자도 아니니 비겁하다느니, 야비하다느니 욕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을 했는지 남자가 한층 더 걱정스럽게 말했다.
“필립도 문제지만, 마크와 엘리엇의 실력도 보통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대처도 필요합니다.”
“그 정도 실력자가 천인회와 무사시 가문에 없을 것 같아?”
“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듯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고민석은 남자의 짧은 생각에 쯧- 하고 못 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건 그거고 이서준은?”
“로만 가문과 접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로만 가문? 거기는 왜?”
“송정민의 행방을 쫓던 중 현재로서는 가장 많은 단서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적이리라는 걸 확인했다고 합니다.”
김은우, 적이리를 떠올린 고민석이 큭큭- 거리며 웃었다.
“김은우 그 새끼 찾으라는 놈들은 찾지도 못하고 엉뚱하게 왜 엑소더스 길드를 건드려서는 쯧-! 하여간 그 새끼도 제 명을 살긴 글렀어. 그런데 로만 가문에서는 왜 김은우를 받아준 거야? 엑소더스 길드와 충돌이 뻔히 보이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중요한 건 적이리가 로만 가문에서 홀대를 받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남자의 말에 고민석이 턱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좁혔다.
“뭔가 있기는 있다는 거군. 김은우 이 새끼… 뭘 알고 있는 거지? 하여간 잔대가리 굴리는 것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다니까. 어쨌든 이번 일부터 끝내놓고 김은우 새끼 일은 다시 한 번 알아보자.”
“예.”
할 말이 끝나자 고민석이 손뼉을 짝- 소리가 나도록 치면서 마지막 말을 건넸다.
“우리 길드장이 보채기 전에 서둘러야겠군. 어차피 주연들이야 정해져 있으니까… 조연들이 먼저 판을 시작해보자고. 천인회랑 무사시 가문에 전달해. 이틀 뒤에 예르마에서 보자고.”
“알겠습니다.”
남자가 깊숙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하고는 고민석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고민석은 의자에 몸을 깊게 묻으며 여전히 교활한 뱀처럼 두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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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과 방구름의 비밀이 알려졌지만, 킬 라시온의 분위기는 여전히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제 사냥 전까지는 어쨌든 푹- 쉬자는 분위기였다.
더불어 흑룡 길드와 천인회, 무사시 가문이 언제 다시 도발을 해올지 알 수 없었기에 어느 누구도 본부를 떠나지 않았다.
다만 필립만큼은 다른 멤버들과는 조금 다르게 바쁜 듯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중앙탑을 통해 어딘가를 다녀왔다.
킬 라시온의 일이라면 필립 다음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마크와 엘리엇이 무슨 일이냐 물었음에도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별 일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필립 형님이 저런 적이 별로 없었는데…….”
르케임은 또 다시 바쁜 걸음으로 본부를 빠져나가는 필립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상의를 했을 테니까 걱정 마.”
마크의 말에 엘리엇 또한 필립을 믿고 기다리라며 혹시라도 불안해할 멤버들을 안정시켰다.
“그나저나 그놈들도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되지 않았나?”
실비아가 말하는 ‘그놈들’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를 멤버가 없었다.
“강제 사냥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으니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해보겠다고 발악을 해볼 때가 됐는데… 이상하네.”
르케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란한 외침이 본부 밖에서 들려왔다.
“캬- 우리 르케임 완전 노스트라다무스가 따로 없네? 말만 하면 딱딱- 나타나니까 이제는 소름끼친다.”
레오의 말에 그렇지 않아도 얼굴을 굳히고 있던 르케임의 표정이 더욱더 썩어 들어갔다.
며칠 전부터 말만 하면 그 대상이 귀신 같이 나타났으니 누구보다 소름 끼치는 것은 르케임 그 자신이었다.
“입으로 성공한 자, 입으로 망한다는 속담이 있었지? 입 조심해.”
미첼이 그렇게 말하며 깔깔- 웃자, 그렇지 않아도 영 기분이 까칠했던 르케임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사이 다른 멤버들은 이미 본부 밖으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누구보다 무혁이 가장 앞에서 걸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킬 라시온 본부 앞에는 수십 명의 남자들이 흉흉하게 눈빛을 번뜩이며 부채꼴로 퍼지듯 서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무사시 가문, 흑룡 길드, 천인회였다.
“네가 무혁이냐?”
수십 명의 남자들 중 가장 센터에 서 있던 흑룡 길드의 인물이 무혁을 정확하게 꼬집어 물었다. 그의 곁에서 허리를 굽히고 서서 귓속말을 하는 이가 있는 걸로 봐선 이번 책임자는 그임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무혁의 대꾸에 남자가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굉장히 야비해 보이면서도 독사처럼 서늘해 보이는 묘한 비웃음이었다.
“이제 보니 실력보다 입담이 더 좋은 놈이었군. 피차 길게 대화를 나눌 이유는 없으니 간단하게 말하지.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저번처럼 도시 밖에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내는 게 어떻겠냐? 뭐, 두렵다면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도 좋고.”
은근하게 사람 신경을 건드리는 어투였다.
하지만, 그건 실력에 자신이 없거나 상대와의 승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호각을 다툴 때에나 통할 도발이었다.
자신을 찾아온 이들 모두를 까마득하게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는 무혁으로서는 남자의 도발이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들어서 알겠지만, 내가 시간 낭비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 저번에 왔던 놈들은 어디 보자… 한 5초 걸렸나? 천인회에서 온 놈은 손바닥으로 퍽- 치니까 머리통이 깨졌고, 무사시 가문에서 온 놈은 내가 휘두른 검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몸이 반으로 쪼개졌고, 그쪽 흑룡 길드에서 온 놈은… 어떻게 됐었더라?”
“지가 공격해놓고 지가 죽었었잖아.”
르케임이 재빨리 무혁의 말을 받으며 낄낄- 웃었다.
자신이 펼친 실드에 하필이면 확률성 반사를 당해서 황당하게 목숨을 잃었었던 흑룡 길드의 인물을 떠올리자 무혁은 또 한 번 웃음이 나왔다.
대결 시작하고 5초.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짧게 느껴질 정도로 순식간에 끝이 났던 허무했던 대결이었다.
무혁의 말에 흑룡 길드의 대표자, 고민석이 처음으로 눈가를 일그러트렸다.
‘이 새끼 봐라?’
나이도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놈이 보통이 아니다.
도발을 걸었더니 도리어 코웃음을 치며 자신을 도발하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킬 라시온, 그리고 필립이라는 그림자에만 기생할 정도로 나약한 놈은 아니라는 것이 무혁을 대면한 고민석의 첫 판단이었다.
‘그래 봐야 세상 물정 모르고 까불다가 죽을 놈이겠지만.’
고민석은 일그러트렸던 눈가를 풀며 잠시 시선을 좌우로 돌렸다.
예상했던 것처럼 천인회와 무사시 가문에서 온 대표자들이 당장이라도 무혁을 달려들 것처럼 살기를 보란 듯이 풀풀- 풍기고 있었다.
무혁의 도발이 아주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고민석은 어쩌면 자신이 나서기도 전에 일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다니 확인을 해봐야겠지. 나갈까?”
“얼마든지.”
무혁은 고민석의 제안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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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아작!
“이쪽으로 온다고?”
대충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사내가 핏기가 마르지 않은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뼈째로 씹어 넘기며 물었다.
“이 근처에서 기다리면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백인 남자의 대답에 사내는 알겠다는 듯 손에 든 몬스터 고깃덩어리를 먹어 치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백인 남자는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그렇게 사내를 향해 물었다.
“왜? 내가 필립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아, 아니 그것보다도…….”
너무 정곡을 찔렸는지 백인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사내는 큭큭- 거리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두고 봐. 아주 재밌는 싸움이 될 거니까. 제대로 된 하이 랭커의 고기라… 모처럼 흥분되는군.”
사내의 광기에 물든 붉은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섬뜩하게 번들거렸다.
그 눈빛을 마주 대하는 것조차 거북스럽다는 듯 백인 남자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고, 때를 맞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왔습니다.”
백인 남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내 역시 그곳을 정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작! 아작!
손에 들린 고깃덩어리를 빠르게 씹어 삼킨 사내가 기지개를 켜듯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오랜 만에 하이 랭커 사냥을 시작을 해볼까? 큭큭!”
사내에게 하이 랭커의 고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