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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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03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03화
커스틸 도시 (11)
“어서오세… 어?”
엘로우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매장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를 확인하고는 인사를 하다 말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억하고 있네요?”
남자의 물음에 엘로우나가 놀랐던 모습을 화사한 미소로 바꾸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매장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이라면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눈앞에 나타난 남자는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지?’
대략 3달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짧으면 한 달, 길어야 5달을 넘지 못했으니 3달이면 나름 버틴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착용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는 건가?’
엘로우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딱히 크게 이상해 보이는 곳은 없었지만, 얼굴 표정이 상당히 핼쑥해져 있었다.
물으나마나 부작용으로 인한 벌어진 증상이라고 판단해버리는 엘로우나였다.
“부작용이 심하셨나요? 얼굴이 상당히 안 좋아 보이십니다.”
안쓰럽다는 듯 말을 하는 엘로우나의 모습에 남자, 무혁은 피식- 웃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뻔히 보였으니까.
“부작용이라…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무혁은 그렇게 대꾸하며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통통이와 융합하고 난 직후의 후유증이 생각보다 크다.’
현재 무혁의 얼굴이 핏기가 없이 파리한 이유는 통통이와 처음으로 융합을 하면서 생긴 후유증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분 전.
“꺼져라.”
참을 수 없는 도발에도 불구하고 5분 정도 말없이 무혁을 죽일 듯 노려보던 커웨인이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역시 우리 인간들과 다르게 현명하네.”
빈정거리듯 말을 하는 무혁의 모습에 커웨인의 눈동자가 더욱더 짙은 살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끝내 커웨인은 무혁과의 괜한 싸움을 고집하지 않았다.
무혁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운이 만만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커웨인이 무혁과 싸울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째서 라시온 님께서…….’
커웨인은 자신을 앞에 두고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무혁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지만, 화를 꾹꾹- 눌러 담아야만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신 라시온의 명령이었으니까.
“이왕이면 앞으로는 얼굴 붉히지 말고 좋게 지내자고.”
무혁의 말에 커웨인은 주먹을 움켜쥐며 강제로 그를 중앙탑 밖으로 쫓아내버렸다.
그렇게 중앙탑 밖으로 쫓겨난 무혁이 다음 목적지로 삼은 곳이 바로 커스틸 무구 백화점, 24층의 세이크 메이커 매장이었다.
그 전에 통통이와의 융합을 해제했다.
융합을 해제하자 생각 외로 부작용이 컸다.
마치,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간 것마냥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였기에 어디론가 이동을 하기는커녕,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서 제자리에 주저앉아 꼼짝없이 30분 정도를 휴식해야 할 정도였다.
상상할 수도 없는 힘을 끌어다 쓴 만큼 그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통통이와 융합을 한 30분 이내에 적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그대로 끝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무혁으로서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사용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작용은 무혁만의 일이 아니었다.
통통이 또한 마찬가지로 상당한 후유증을 겪는 듯 파리해진 안색으로 허공에서 공간의 틈을 만들어 내더니 그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스스로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의 틈을 만들 수 있을 줄이야… 그것보다도 다시 돌아오겠지?’
무혁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공간의 틈으로 들어가 버린 통통이의 모습에 상당한 걱정이 들었지만, 우선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손님? 손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버린 무혁의 모습에 엘로우나가 그를 연거푸 불렀다.
“…아! 죄송해요. 잠시 딴 생각을 해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엘로우나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그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부작용을 겪은 이들이 보여주었던 여러 증상들을 떠올리면 무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헛것이 보인다면서 귀신 붙은 물건을 팔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온갖 진상이란 진상짓은 다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꼴불견들을 봐온 엘로우나였기에 무혁처럼 혼자 멍하니 망상에 빠지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제가 미리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용이 불가능한 물건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
엘로우나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가며 인사를 했다.
미리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억지로 구매를 한 건 무혁이었지만, 엘로우나는 그런 사소한 책임을 손님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 여겼다.
무엇보다도 각서 내용대로 철저하게 이행할 경우 손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다시 물건만 되돌려 받을 수 있었으니 이 정도의 사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한다면 두 번, 세 번이라도 해줄 의향이 있는 엘로우나였다.
“그쪽이 사과할 건 아니죠. 그것보다도 오늘은 다른 볼일이 있어서 왔어요.”
“예? 다른 볼일이요? 환불… 아니 반품을 하려고 오신 것 아닙니까?”
“할 수도 있기는 한데… 어쨌든 오늘은 아니고. 혹시 비룡 에탄의 망토처럼 1등급 무구인데 판매할 수 없는 무구들이 또 있나요?”
“예?”
엘로우나는 무혁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이왕지사 이렇게 됐으니 혹시 모르죠. 다른 부작용이 큰 무구들로 인해서 그 효과가 조금이라도 상쇄될지.”
“…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엘로우나였지만, 무혁은 더 이상의 설명은 의미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웃기만 했다.
그로부터 30분 후.
무혁은 자신의 눈앞에 전시된 3개의 물품을 바라봤다.
흉갑 하나, 팔찌 하나, 구두 한 켤레.
“여기 있는 물건들 모두 정식으로 판매 중지가 된 것들입니다. 이 흉갑은 ‘마수 오리올의 흉갑(M)’이라고 마수 오리올의 갈비뼈를 가공하는 데에만 자그마치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메이커 님께서 아주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을 한 흉갑입니다.”
“그런데 꼭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야만 했을까요?”
무혁이 눈을 찌푸리며 그렇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네킹에 착용되어 있는 갈비뼈 형태의 흉갑은 그 모양만으로도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어구인만큼 방어력이 최고라지만, 어느 누가 갈비뼈 형태의 흉물스러운 갑옷을 착용하려고 하겠는가?
솔직히 무혁으로서도 제아무리 1등급 방어구라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오리올의 갈비뼈를 그대로 가공하다보니 이런 모양 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성능 하나는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엘로우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무혁은 어디 한 번 보자는 듯 정보를 확인해봤다.
|마수 오리올의 흉갑(M) - 1등급 방어구|
· 마수 오리올의 갈비뼈로 만든 메이커의 명작이며 괴작이다.
· 물리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 마력 스킬에 대한 저항력 또한 높은 수준이다.
· 높은 등급의 기압, 중력, 부식, 출혈에 대한 내성을 갖추고 있다.
· 마수 오리올의 체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상대적 위압감을 선사한다.
· 내구력이 높아 쉽게 파손되지 않는다.
“음…….”
뭔가 미묘했다.
물리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며, 마력 스킬에 대한 저항력 역시도 명확하지 않았다.
물론, 1등급 방어구로 분류가 되었으니 어지간한 방어구들보다 수준이 높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무혁이 느끼기에 비룡 에탄의 망토보다는 조금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냄새가 좀 심하네.”
마수 오리올의 체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더니 그 냄새가 거의 악취 수준이었다.
코를 부여잡을 정도로 무혁이 인상을 찌푸리자 엘로우나가 이해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실, 부작용보다도 이 악취 때문에 도저히 착용을 할 수 없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럴 만하다는 듯 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부작용은 뭐죠?”
“마기 중독 현상입니다.”
무혁은 내심 짐작하고 있었던 부작용이었기에 딱히 놀라워하지 않았다.
“이건 얼마입니까?”
코를 막고 묻는 무혁의 모습에 엘로우나는 왜 살 생각도 없는 물건의 가격을 묻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속으로 불만을 품었지만 겉으로는 예의 친절하고도 상냥한 표정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본래 골드 보석 300개였습니다만, 최종적으로 판매가 되었을 때는 골드 보석 30개였습니다.”
“골드 보석 30개.”
무혁은 알겠다는 듯 그렇게 한 차례 가격을 되뇌고는 두 번째 물건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번째 물건은 팔찌로 이렇다 할 장식이나 문양도 없는 그저 밋밋한 검붉은 색의 링이었는데, 얼핏 보면 마치 녹이 쓴 것마냥 지저분하게 보이기도 했다.
“보시는 물건은 ‘타락의 팔찌’라고 합니다. 이 팔찌로 말씀드리자면… 우선 정보부터 한 번 확인을 해보시면 더 쉽게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타락의 팔찌|
·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강력한 원한이 서린 팔찌다.
· 정신과 독에 대한 내성이 완벽하다.
·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항상 냉정을 유지하게 만든다.
· 부서지지 않는다.
· 스킬, ‘타락의 환상’을 사용할 수 있다.
“이건 직접 만든 팔찌가 아닌 것 같네요?”
“예, 맞습니다. 타락의 팔찌는 메이커 님의 소장 물품 중 하나였습니다. 정보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정신과 독에 대한 완벽한 내성을 갖춘 특별한 팔찌입니다. 헬-라시온 그 어디에서도 완벽한 내성 옵션을 갖춘 장신구는 찾아볼 수가 없으실 겁니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완벽’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정도의 내성 옵션을 갖춘 장신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테니까.
여기에 항상 냉정을 유지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상당한 옵션이라 할 만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표출이 된다.
특히, 전투 중에 흥분을 하면 그만큼 커다란 손해를 입을 확률이 높았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한다는 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뛰어난 효과라 부를 수 있었다.
여기에 ‘타락의 환상’이라는 스킬도 뭔가 위력이 대단할 것 같았다.
헬-라시온 3대 장인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메이커가 직접 소장했을 정도라면 그 가치는 더 이상 따져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왜 소장품을 판매하려고 했으며, 이제는 판매 중지를 시킨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타락의 팔찌는 착용자에게 끊임없는 환상과 중독 증상을 겪게 합니다.”
“그게 무슨?”
“메이커 님께서는 팔찌를 착용할 수 있는 자격시험이라고 하셨지만…….”
엘로우나는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듯 보였다.
“자격시험이라… 한 마디로 팔찌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는 건가?”
무혁은 재밌다는 듯 타락의 팔찌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엘로우나가 뭐라고 말리기도 전에 그것을 자신의 왼쪽 손목에 착용했다.
헐렁했던 팔찌가 순식간에 무혁의 손목 크기에 딱! 맞게 조여졌다.
이어서 타락의 팔찌에서 검붉은 아지랑이가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엘로우나가 고운 얼굴을 찌푸리더니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차단, 스킬이 내부 저항을 시작합니다.]
[차단,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알림에 무혁은 차단 스킬을 확인해봤다.
“…이것 봐라?”
무혁의 차단 스킬은 무려 2등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의 팔찌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아지랑이로 인해 스킬 숙련도가 더디게나마 올라가고 있었다.
중요한 건 차단 스킬의 숙련도는 올라가는데 무혁은 그 어떠한 고통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착용만 하고 있으면 차단 스킬 등급이 1등급으로 올라가는 건 일도 아니겠네.”
무혁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헛웃음을 짓고 있을 때, 어디론가 달려갔던 엘로우나가 다시 돌아와 손에 든 1등급 해독제를 내밀었다.
“어서 해독제부터 복용하셔야 합니다.”
해독제가 필요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무혁은 괜한 일을 만들기 싫었기에 약을 받아 복용했다.
“앞으로 10일 동안은 끊임없는 환상과 중독 증상에 시달리실 겁니다. 최소 6시간마다 1등급 해독제를 복용하셔야만 합니다.”
말을 하는 엘로우나는 왜 함부로 팔찌를 착용해서 일을 크게 만들었냐는 듯 질책성 어린 눈빛으로 무혁을 바라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제가 그냥 팔찌를 구입하죠. 얼마죠?”
“괜찮습니다. 어차피 10일 뒤에 다시 반납을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손님께서 실수를 하신만큼 해독제는 직접 구입하셔야 합니다. 1등급 해독제를 복용하셔야 하기에 상당한 비용이 소모되실 겁니다.”
“나중에 다시 반납을 하더라도 우선은 제가 구입하죠.”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알겠습니다. 골드 보석 10개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반납하실 때 다시 환불해드리겠습니다.”
무혁은 곧바로 골드 보석 10개를 엘로우나에게 건네주고 마지막 남은 물건을 바라봤다.
구두.
그것도 아주 하얀 구두, 먼지 하나 달라붙지 않은 순백의 구두였다.
‘느낌만 본다면 이게 가장 기대가 된단 말이지.’
새하얀 구두를 바라보는 무혁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