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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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78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78화
킬 라시온 (8)
“미첼, 그 친구야?”
미첼의 안내를 받아서 킬 라시온의 본부로 들어서자 인상 좋게 생긴 아시아계 중년인이 무혁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저쪽은 우리 킬 라시온의 평균 연령을 대폭 올려주고 있는 방적삼 아저씨예요, 오빠.”
무혁이 나이가 몇이냐는 물음을 하기도 전에 미첼이 말을 이었다.
“나이가 40살로 우리 킬 라시온에서 최고령이거든요.”
자세히 바라보니 확실히 나이가 들어 보이긴 했다.
약간 벗겨지기 시작한 앞머리를 보고 있으니, 역시 중앙 탑에서도 탈모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노화 현상인가 싶어 무혁은 방적삼에게 씁쓸한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다.
“반갑구만. 아쉽게도 미첼의 말처럼 킬 라시온 최고령인 방적삼이네. 동시에 킬 라시온의 유일한 아시아인이지. 자네가 온다면 나와는 통하는 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네. 핫핫핫!”
아직 킬 라시온에 입단한 것도 아닌데 마치 입단한 길드원처럼 무혁르 대해주는 방적삼이었다.
“차무혁입니다.”
“꼭 나 젊었을 때를 보는 것만 같군! 핫핫핫!”
“미쳤어요? 우리 오빠가 어딜 아저씨랑 같다는 거예요? 완전 하늘과 땅 차이인데!”
미첼이 발끈하는 모습에 방적삼은 원래 아시아인들은 거기서 거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며 웃었다.
“그쪽이 이번에 새로 들어온다는 신입?”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깡마른 사내가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다.
푸석푸석한 금발은 까치집을 짓고 있었고, 볼은 얼마나 홀쭉한지 누가 보면 죽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전체적으로 얼마나 말랐는지, 180센티미터 정도의 키가 볼품없어 보일 정도였다.
“레오예요. 우리 킬 라시온의 음지를 담당하고 있죠.”
“음지?”
“나는 양지, 저쪽은 음지.”
웃는 얼굴로 말을 하는 미첼의 모습에 무혁은 대충 뭘 말하는지 알겠다는 듯 픽- 웃었다.
“레오다. 듣기로는 어리다고 하던데 미첼이 오빠… 컥!”
벼락처럼 복부를 강타하는 미첼의 펀치에 레오가 그대로 꼬꾸라져버렸다.
“오, 올라가요!”
미첼은 황급히 무혁을 계단으로 끌고 올라가버렸다.
“미첼이 작정하고 작업을 하는 중인데 대충 눈치 챘어야지. 쯧쯧!”
방적삼은 웅크린 상태로 고통스러워하는 레오의 등을 툭툭- 치며 그렇게 말했다.
“망할 계집….”
레오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2층으로 올라온 무혁은 저택을 구경할 틈도 없이 다급하게 자신을 3층으로 안내하는 미첼의 손에 이끌려 어떤 방 앞에 서 있었다.
똑똑똑-!
“필립 오빠! 우리 오빠 왔어요!”
들어가 보라는 말을 남기고 미첼은 뒤가 급한 사람처럼 부리나케 사라져버렸다.
철컥-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필립이 환하게 웃으며 무혁을 맞이했다.
“이렇게 다시 보니 정말 반가워.”
“예.”
무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제법 큼지막한 서재를 연상시키는 방은 필립의 집무실처럼 보였다.
커다란 책상 위에 탑처럼 쌓여 있는 서류들과 방금까지도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책상 한 가운데 펼쳐져 있는 문서들은 무혁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이었다.
“거기 앉아. 커피 줄까?”
방 한 켠에 비치되어 있는 푹신한 소파에 앉은 무혁은 공간 주머니에서 커피를 꺼내 주는 필립에게 물었다.
“저것들은 다 뭔가요?”
“공문.”
“공문이요?”
무혁의 얼굴에 드러난 의아함에 필립은 대충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
“이건 레오스틴 길드에서 보내온 협조문이네. 어디 보자… 감시자의 숲에서 메오라의 힘줄을 구해야 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군. 그리고 이거는 스티언 가문에서 보낸 수배령이고, 이거는 흑사회에서 보낸 항의서고….”
필립은 빠르게 서류들을 훑어보며 그렇게 말했다.
길드와 가문 혹은 소규모의 패밀리 등에서 보내온 각종 공문들이었다.
“왜 이상해?”
“이상하다기 보다는… 낯설어서요.”
필립은 그 심정 이해한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에만 매달려도 부족할 판에 이런 종이 쪼가리를 주고받으면서 온갖 요구를 해대는 모양새가 낯설기도 하겠지. 그런데 무혁아, 여기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야. 왜 그런 말 있잖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는 곳이 달라졌다고 인간의 근본이 달라질까? 절대 그렇지 않아.”
처음에 헬-라시온에 끌려오면 누구나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과제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존에 안정을 느끼기 시작하면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들이다.
특히 길드와 가문이 생기며 개인이 집단을 이루기 시작하면, 그들은 스스로의 권리와 이익이라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체계적 장치를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 나름대로의 명분을 세워줄 수 있는 ‘법’ 혹은 ‘룰’이 되는 것이다.
힘을 가진 자들, 혹은 권력을 가진 이들은 ‘이건 하면 안 되는 짓이야!’라든가 ‘여기까지는 용납하겠어!’의 등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잣대를 들이대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서로 간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그것을 전체가 지켜야 할 ‘룰’ 혹은 ‘법’으로 규정해 버린다.
“위에서 이렇게 먼저 선점을 해버리면 아래는 그냥 따르는 수밖에 없지.”
필립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웠다.
“배부른 돼지들은 어딜 가든 제 뱃속을 채우는 것에만 급급하군요.”
헬-라시온에서도 이런 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 무혁은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심하지. 모두 협력해서 여길 떠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현실에 안주하며 그 현실 속에서도 제 이익만을 챙기려는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추악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금의 상황들이 안타깝기만 한 필립이었다.
“그래, 이런 골치 아픈 것들은 이제 그만 두고. 결정은 한 거야?”
필립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대충 책상 위에 던져놓고 무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결정을 하려고 온 거죠.”
무혁의 대답을 듣고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쉽게 결정을 내리도록 해줘야겠네.”
“어떻게요?”
“우선, 그전에 내가 지금부터 묻는 세 가지에 답을 해 봐.”
필립은 그렇게 말하고는 남은 커피를 시원스럽게 마셨다.
“첫 번째,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적 있어? 여기에서 무고한 사람이라는 건 너와 관계도 없는 마치 길 가던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죽인 것을 말하는 거야.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 사냥꾼들이 하는 짓이라고 보면 되겠네.”
“없죠.”
“두 번째, 네 이익을 위해 네게 등을 맡긴 사람을 죽일 수 있어? 널 믿고 의지한 사람이지만, 그를 죽이면 네가 막대한 이익을 볼 수도 있어. 그때, 넌 그를 죽이고 이익을 얻을 거야?”
“아뇨.”
“세 번째, 네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넌 그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어? 당연히 이때는 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위험이 뒤따를 수도 있어. 그래도 그를 위해 나설 수 있겠어?”
“물론이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무혁의 대답에 필립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됐어. 이걸로 끝.”
“뭐가 끝이라는 거죠?”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무혁이 눈을 찌푸리자 필립이 진지하게 말했다.
“무혁이 네가 걱정하는 것들 모두 내가 안고 가겠다는 거야. 네가 망설이는 이유가 뭘까? 혹시라도 네가 킬 라시온에 들어오면 너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입을 것을 걱정하는 것 아냐? 그런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가 이렇게 보여도 웬만해선 도시 길드에서도 쉽게 건드릴 수 없으니까.”
필립의 자신감 넘치는 말을 무혁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송정민에게 필립이 어떤 사람인지를 미리 들었기에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이전에 내가 먼저 킬 라시온이 믿을 만한 곳이라는 걸 확인하는 게 순서 아닌가?”
“…어?”
무혁의 말에 필립이 한방 제대로 맞았다는 듯 처음으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큭큭큭!”
그 모습을 보니 무혁은 괜히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 그렇네! 무혁이 네게 믿음을 먼저 줘야 하는 게 순서구나!”
필립도 뒤늦게 자신이 성급했다는 걸 깨닫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필립을 바라보며 무혁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 사람은 정말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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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길게 하는 걸까?”
미첼은 몇 번이나 필립의 집무실로 올라가려는 걸 억지로 참고 있었다.
벌써 4시간이 넘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도대체 무혁과 필립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리더와 입단 협상을 했던 최장 기록이 누구였더라?”
르케임의 물음에 얌전하게 앉아서 오렌지 주스를 홀짝- 거리던 아르케니아가 대답했다.
“실비아 5시간.”
“실비아 네 성질에 5시간 동안 필립 형님이랑 가만히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르케임의 표정에 실비아가 입 꼬리를 슬쩍- 올렸다.
“대화만 했을 것 같아?”
“실비아 너는 못 믿지만, 필립 형님은 믿지.”
르케임의 진지한 대꾸에 이번에는 실비아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이 빡대가리 새끼가 날 모욕해?”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널 모욕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걸.”
르케임의 말에 주변의 킬 라시온 멤버들이 헛기침을 하며 하나, 둘 실비아의 시선을 피했다.
“…빌어먹을 것들.”
실비아가 그렇게 욕설을 내뱉고는 르케임을 진하게 노려봤다.
한 번만 걸리면 그때 작살을 내주겠다는 흉흉한 그녀의 시선에 르케임은 얼른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럼 최단 시간은 누구야?”
이번에도 대답은 아르케니아였다.
“아저씨. 5분.”
킬 라시온 공식 명칭인 ‘아저씨’로 불리는 방적삼은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릴 수 있냐는 주변의 시선에 빙긋- 웃었다.
“연륜이지! 핫핫핫!”
“아! 기억났다! 그때 아저씨가 마적단에게 쫓기고 있어서 당장 필립 형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목이 간당간당 했었지!”
르케임의 말에 레오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아직도 생생하네. 그때 아저씨가 외부 현관에서부터 ‘입단하려고 왔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었지. 그러고 보면 5분도 아니고 1초네. 어쨌든 그때 저택 앞을 막아서고 있던 마적단 50명을 때려눕혔던 게 나라는 건 모두 다 알지? 훗훗!”
레오의 말에 방적삼이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그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했지만, 그랬다가는 일이 더 커질 것 같아서 참았던 거야.”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소리에 방적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때 아저씨 진짜 개허접이었지. 솔직히 그때 리더가 왜 저런 쓸모없는 인간을 받아줬나 처음으로 심각하게 반항까지 고민했었는데.”
“그, 그렇게까지 쓸모없지는 않았어.”
방적삼이 최후의 변론인양 반박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진 않았다.
“…나쁜 놈의 새끼들.”
이제야 실비아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지만.
“뭐야? 그 눈빛은? 아저씨, 그런 기분 나쁜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나랑 아저씨는 다르니까.”
자신과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실비아의 말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은 방적삼은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방적삼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감정 표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킬 라시온 멤버들은 새롭게 입단을 할지도 모르는 무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입이 정말 그렇게 강해?”
레오의 물음에 르케임이 단언하듯 대답했다.
“마크 형님하고 엘리엇 누님을 제외하면 상대가 없을 듯.”
“그렇단 말이지?”
레오의 눈빛이 호승심으로 번들거렸다.
“괜히 덤볐다가 쳐 맞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다.”
실비아가 진지하게 레오에게 충고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실비아, 너는 내 진정한 힘을 몰라서 그래. 내가 진짜 숨겨둔 힘을 꺼내면… 훗훗!”
“뭐래.”
기분 나쁘게 웃는 레오의 모습에 실비아는 더 이상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후로도 한참이나 무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미첼이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필립의 집무실로 뛰어가려던 찰나.
무혁과 필립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1층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킬 라시온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필립이 말했다.
“일부가 빠지긴 했지만, 우선은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지금 이 시간부터 여기 있는 무혁이도 우리 킬 라시온의 새로운 멤버다. 모두 환영해주도록.”
필립의 발표에 가장 먼저 미첼이 두 팔을 번쩍- 들며 기뻐했다.
“꺄아아-!”
“결국은 이렇게 될 걸 왜 튕기고 지랄이야.”
툴툴- 거리면서도 실비아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환영한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르케임 역시 무혁을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훗훗!”
레오는 호심승 가득한 눈으로 무혁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르케니아는 그저 손에 든 오렌지 주스만 마셨으며,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방적삼은 자신 외에 아시아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기뻐했다.
“인사 정도는 해야지.”
필립의 말에 무혁은 자신을 환영해주는 이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지내요.”
이런 인사를 한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무혁 역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