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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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75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75화
킬 라시온 (5)
중앙 탑은 철저하게 개인 거래만을 허용한다.
나란히 손을 잡고 중앙 탑에 들어섰다 하더라도 들어오는 순간, 각자 독립된 공간으로 강제 이동 되어 진다.
이는 표식을 지닌 이들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중앙 탑에서 마족과 거래를 할 때에는 미리 모든 준비를 마쳐야만 허투루 포인트를 소모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예외라면 표식이 없는 불법체류자들인데, 그들은 마족들에게 있어 말 그대로 숨만 붙어 있는 고깃덩어리 취급 밖에 받지 못했기에 표식이 있는 이들이 그들을 데리고 온다 하더라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때문에 무혁이 송정민을 안고 중앙 탑으로 들어서면 그저 ‘짐’으로 취급되기에 함께 이동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혁과 방구름은 중앙 탑으로 들어서서 기존에 약속했던 대로 데오른 마을로 이동했다.
흑룡 길드 등이 더 이상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진 않더라도 그들이 보는 앞에서 태연스럽게 다른 목적지를 정하고 있을 순 없었으니 우선은 데오른 마을로 이동해서 편안하게 의견을 나눠야만 했다.
“예? 소도시 식민이요?”
방구름은 무혁의 갑작스런 제안에 상당히 당황스러워했다.
마을이라면 어느 정도 생존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지만, 소도시라면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든 기준을 생존에만 맞춰서 안전하게 살아온 방구름이다.
그런데 갑자기 당장 소도시 식민이 되라는 무혁의 제안은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막말로 무혁이 옆에서 가드를 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무작정 무혁에게 보호자 역할을 해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홀로 설 수 있는 장소에서 당당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기엔 데오른 마을이 현재 방구름의 수준에 딱이었다.
“마정을 구해다 줄게.”
무혁의 말에 방구름은 고개를 저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고유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가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요.”
죄송하다는 듯 방구름이 고개를 숙였다.
피 무지개 숲을 통해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방구름이 타고난 기질은 결코 공격적이지 못했다.
그는 지극히 수비적인 성향이었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기에 타인들과 경쟁을 벌이더라도 이 부분이 상당한 약점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무혁도 방구름의 이러한 성격을 알기에 최소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수준만 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흑룡 길드와 천인회, 무사시 가문까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다.
세력을 이룬 집단이 무서운 점은 쪽수로 밀어붙인다는 점이다.
‘소도시 정도는 가야 그래도 감시의 눈길이 조금은 느슨해 질 텐데.’
헬-라시온 전체에 제아무리 마을이 많아도 세 집단이 힘을 모으면 아스펠 마을과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을 못한다.
더군다나 이젠 마우티 부락에서 사라진 송정민과 2년차 애송이를 잡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길드의 명성에 엄청난 흠집을 낸 놈들을 잡아야만 했다.
이대로 가만히 넘어간다?
세 집단의 명성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고, 그들은 어딜 가더라도 비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그런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진짜배기 실력자들이 나설 것이다.
최상은 자신과 함께 커스틸로 가는 것이지만, 그건 방구름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소도시 정도는 가야 그나마 세 집단의 수색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고 여기는 무혁이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항상 짐만 되는 것 같네요.”
침울해져서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방구름의 모습에 무혁은 아니라는 듯 그를 다독였다.
“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어차피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오히려 네가 위험해졌으니 미안한 마음을 가지더라도 그건 내가 가져야지.”
따지고 보면 방구름은 무혁 때문에 안전했던 삶이 위협을 받고 있는 거였다.
그러니 사과를 하더라도 그건 무혁이 해야 할 일이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 시원하게 다 박살을 냈으면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무혁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음성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2남 2녀가 무혁과 방구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외모의 실비아가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고 있자, 무혁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다.
“너는… 실, 실….”
그런데 이름은 명확하게 기억나질 않았다.
“…내 이름을 잊은 거야?”
어디서도 이런 취급을 당해본 적 없는 실비아로서는 이유 모를 화가 솟구쳤다.
뭔가 자존심에 굉장한 손상을 입은 것만 같기도 했다.
“큭큭큭!”
실비아가 남자에게 이런 푸대접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던 르케임이 곁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이 빡대가리 새끼야, 뭐가 웃겨!”
퍽!
“컥!”
옆구리를 강타하는 실비아의 스트레이트 펀치에 르케임이 숨을 멎고 그대로 꼬꾸라졌다.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괄괄하다 못해 폭력적이면서도 야만적인 성격은 여전했다.
“실. 비. 아.”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는 실비아의 모습에 무혁은 ‘아- 맞다. 그랬었지’라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렇게 볼 것 없어. 널 만나기 위해 아스펠 마을에 갔다가 흑룡 길드 놈들을 화끈하게 때려눕히는 걸 보고 쫓아온 거니까.”
“날 쫓아왔다고?”
중앙탑 포탈을 이용했다.
무혁의 상식으로는 어떻게 자신의 이동 장소를 정확하게 알고 쫓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르케니아는 남들이 갖지 못한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거든.”
실비아가 자신의 곁에 서 있는 아르케니아를 소개했다.
“특별하면서도 굉장히 위험한 능력이네.”
무혁은 아르케니아를 빤히 바라봤다.
아르케니아는 전형적인 새하얀 피부에 주근깨를 가진 백인 소녀의 외모였다. 예쁘다기보다는 상당히 귀여운 인상이었지만, 그런 건 무혁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중앙 탑 포탈을 이용한 이동까지도 추적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이었으니까.
“뭐야? 취향이 이쪽이었던 거야?”
실비아의 말에 무혁이 눈을 찌푸렸다.
“사람을 뭘로 보고… 됐고. 날 찾아온 이유가 뭔데? 설마 영입 제안? 분명히 그때 말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혁의 대꾸에 실비아를 대신해서 무혁을 바라보고만 있던 미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필립이다. 부족하지만 이 녀석들을 이끌고 있는 리더지.”
필립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무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필립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내 이름은 들어서 알 테고, 그쪽이 리더라고 하니 분명히 말하지. 나는 그쪽들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더군다나 남 뒤를 쫓아다니는 취미를 갖고 있다면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하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거든.”
무혁은 한 번은 이해한다며 필립과 잡은 손을 놓았다.
“아스펠 마을에서 봤으니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내가 지금 좀 상황이 복잡해서 말이야. 한가하게 그쪽들하고 대화나 나누고 있을 수가 없어서 이만.”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 무혁이 몸을 돌리려고 하자, 필립이 말했다.
“2년차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적이야. 그런데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지. 더욱이 누굴 지켜야 한다면 그 한계점은 더욱더 낮아질 수밖에 없고.”
“지금 그 말 협박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무혁의 눈에서 적대감이 번들거리자 실비아가 어디서 눈알을 부라리느냐며 소리를 내질렀다.
“실비아.”
개차반 같은 성격인 실비아였지만, 필립의 한 마디에 잠잠해졌다.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얼마나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흑룡 길드와 천지회, 무사시 가문의 진짜 실력자들은 네 실력 못지않아. 일부는 더 강하기도 하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야. 아까 그놈들 상대하는 것만 보고 날 판단하기엔 너무 성급하지 않아?”
비웃음을 띄는 무혁의 태도에도 필립은 여전히 희미하게 미소만 짓고 있었다.
“대충 30퍼센트라고 봤다.”
“뭐?”
“네가 그들을 상대할 때 사용했던 힘. 그걸 난 네가 가진 전력의 30퍼센트라고 봤는데, 아닌가? 한 20퍼센트라고 해둘까? 그래도 내 판단에는 변함이 없군. 10퍼센트 정도라면 그땐 좀 생각을 달리 해보지.”
필립의 말에 무혁은 순간 아무런 대꾸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필립의 판단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무혁이 아스펠 마을에서 보여주었던 힘은 대략 30퍼센트 정도였다.
그걸 한눈에 알아봤다는 게 무혁은 놀라웠지만, 이내 실비아와 르케임에게 어떤 말을 들었으리라고 생각하니 필립이 괜히 똥 폼을 잡는다는 여겨졌다.
“몇 퍼센트를 썼던 중요한 건 붙어봤을 때야.”
무혁은 막말로 세 집단의 대가리들이 달려들어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온갖 능력을 뻥튀기 시켜주는 스킬들을 믿었으니까.
“변수란 항상 존재하니까 내 판단이 틀릴 수 있지. 하지만, 저 친구는 어떨까?”
필립이 방구름을 가리켰다.
“그들에게서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애초부터 나는 네 실력을 의심하진 않았어. 저 친구의 안전을 얘기한 거였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니까 신경 끄지?”
“그렇게 말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허무하게 잃은 자들을 수도 없이 봤다. 내 눈에는 너도 마찬가지야. 지킬 수 있다고? 나랑 내기할까? 분명 이번 연차가 마지막이 될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방구름의 목숨을 가지고 내기를 운운하는 필립의 모습에 무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그를 향해 다가갔다.
“다시 말해 봐. 그런데 생각 잘해. 주둥아리를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까.”
진심으로 화를 내는 무혁의 모습에도 필립은 여유가 넘쳤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2년차라고 했던가? 그럼 3년차에는 저 친구를 볼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자책과 후회의 눈물을 흘리겠지.”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는 필립의 모습에 무혁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분명히 경고했어. 주둥아리 날려버린다고!”
지척 거리에서 휘두르는 무혁의 주먹은 빠르고, 매서웠다.
당장이라도 필립의 얼굴을 뭉개버릴 것만 같았다.
아스펠 마을에서 홍영준 등과 싸울 때보다도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실력으로 내 털끝이라고 건드릴 수 있겠어?”
날아오는 무혁의 주먹을 똑바로 바라보며 필립이 슬쩍- 고개만 뒤로 피해버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허무하게 허공을 때리고 지나간 오른 주먹으로 가슴으로 끌어당기며 무혁은 팔꿈치로 필립의 내리 찍었다.
이건 피할 수가 없다.
몸통을 가격하는 공격이었으니까.
툭.
“……!”
파리가 날아다닌 다는 듯 필립은 가볍게 손바닥을 휘둘러 무혁의 팔꿈치를 걷어냈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려는 걸 무혁은 회전력으로 무마시키며 이번에는 왼쪽 팔꿈치를 휘둘렀다.
탁!
회전력까지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필립은 또다시 손바닥을 휙- 휘두르는 것만으로 무혁의 공격을 막아버렸다.
지금까지 자신의 공격이 이렇게까지 형편없이 막혔던 적이 없었던 무혁으로서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화도 났다.
하지만, 필립의 실력이 자신의 예상을 까마득하게 상회할 정도라는 걸 인정하자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이 새끼는… 진짜다!’
지금껏 무혁이 만나보지 못했던 강자.
소위 헬-라시온에서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하이 랭커임이 분명했다.
“왜? 그만두려고?”
필립이 도발적으로 묻자, 무혁이 그럴 리가 있겠냐는 듯 씨익- 웃었다.
“이제 시작인데 무슨 소리야.”
냉정하게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라 여기니 무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자신이 얼마나 강할까?
모든 고유 능력이 3등급으로 올라서면서 은근히 자신감이 붙었던 무혁으로서는 냉정하게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너무 기쁘기까지 했다.
“어디 한 번 마음껏 덤벼 봐. 네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나도 꽤 궁금했거든.”
손가락을 까딱- 거리는 필립을 향해 무혁이 물었다.
“어디까지 가볼까? 정말 전력으로 한 번 가볼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 그런다고 날 건드릴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무혁은 필립의 거만한 얼굴에 반드시 주먹 한 방을 꽂아버리고 말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