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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164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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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64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64화

얼음 바위 산 (10)

 

-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내 시대가 끝인 건가?

엘사르노 3세는 무혁이 얼음성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번 침입자는 강하다.

자신의 생명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서 저절로 죽음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날 정도였다.

- 얼음 구슬과 동등한 힘을 가진 신물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엘사르노 3세가 자신의 최후를 생각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역시 모래 태양이었다.

얼음 바위 산을 자신의 왕국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얼음 구슬이 있기 때문이다.

최강의 냉기를 품고 있으며,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엘사르노 3세였기에 그녀는 지금까지 얼음성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도 얼음 바위 산의 여섯 봉우리를 모두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많은 이들이 얼음 바위 산을 침범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 얼음성까지 도달한 적은 없었다.

얼음성 코앞까지 다가온 무혁보다 강력한 검술을 구사했던 이들도 있었고, 그보다 화려한 마력 스킬을 날렸던 이들도 있었으며, 휘황찬란한 무구로 온몸을 무장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혼자서 얼음성의 문을 열진 못했다.

끼이이이익-!

얼음성의 정문이 열리는 소리에, 수정구를 통해 얼음성으로 들어서는 무혁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엘사르노 3세가 몸을 돌렸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싸움을 위해 그녀가 움직였다.

우아하면서도 차분한 걸음으로.

엘사르노 3세가 얼음성 중앙 홀에 도착하자, 블랙 본 장검을 들고 서 있던 무혁이 새카만 블랙홀과 같은 실드 3개를 주변에 생성했다.

“진짜 얼음 여왕이네.”

온몸이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엘사르노 3세의 모습에 무혁이 그렇게 첫 인사를 건넸다.

- 본 여왕은 엘사르노 3세다.

“엘사? 추억 돋는 이름이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무혁의 모습에도 엘사르노 3세는 냉정을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무혁은 확실히 성향에 따라서 기질 또한 다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과거 모래 태양을 소유하고 있었던 모래성의 카이모레노 6세는 상당히 쉽게 흥분했었지만, 반대로 엘사르노 3세는 얼음 덩어리라서 그런지 웬만해서는 흥분은커녕 표정조차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처럼 차갑게 보였다.

- 그대가 얼음 구슬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는 신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신물의 힘이 아니었다면 그대처럼 미약한 능력을 가진 자는 결코 내 성에 발조차 들일 수 없었을 거다.

무혁은 미약한 능력이라는 부분이 상당히 거슬렸다.

하지만, 이미 스스로 너무나도 잘 느끼고 있지 않았던가?

모래 태양 없이도 얼음성의 문턱을 넘었을 괴물들을.

그런 괴물들과 자신을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무혁으로서는 한마디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뭐 그건 인정.”

나는 쿨하니까- 라는 뒷말을 삼키며 무혁은 블랙 본 장검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한가롭게 담화나 나누겠다고 찾아온 것이 아니니 서둘러서 끝내자는 제스처였다.

하지만, 엘사르노 3세는 그럴 생각이 없는지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하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 그대 역시 우리 왕국의 신물인 얼음 구슬이 필요한 것이겠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듯 무혁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지.”

무혁의 대답에 엘사르노 3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얼음 구슬과 동등한 힘을 가진 신물을 다룰 수 있다면 얼음 구슬 또한 그대가 다룰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진정한 얼음 구슬의 힘은 우리 왕가의 혈통만이 다룰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겠지?

“진정한 힘까지는 필요 없어.”

어차피 무혁은 자신이 얼음 구슬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모래 태양에 태양의 씨앗이 담겨져 있듯이 얼음 구슬 또한 그런 비슷한 것이 담겨져 있을 건 뻔한 일이다.

그 힘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면?

얼음 구슬 또한 일정 기간이 지나 소멸한다.

‘그러면 또 엘사의 후손인 4세가 얼음 구슬을 사용하겠지.’

정해진 패턴이다.

신물에 깃들어 있는 진정한 힘을 누군가 흡수하지 못하는 이상 신물들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본래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모래성과 얼음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규칙은 헬-라시온 6대 신물 모두에 적용된다.

- 얼음 구슬의 진정한 힘을 무시하는 건가?

처음으로 엘사르노 3세가 노여워했다.

얼음 구슬의 진가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자가 그걸 손에 넣으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분노가 생겨난 것이다.

“무시는 무슨. 어차피 내가 사용할 수 없으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거지.”

애초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는 게 아니다.

괜한 기대심과 허황된 희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도 없었다.

어차피 무혁에게 필요한 건 모래 태양과 얼음 구슬의 힘을 흡수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어쩌면 태양의 씨앗을 흡수할 경우 모래 태양보다도 못 한 결과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무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남에게 빼앗기는 것보다는 낫다 여겼다.

못 먹는 감 먼저 찔러나 보자는 고약한 심보라고 누군가 욕을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미 내 손에 들어온 걸 멍청하게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병신이지.’

그렇게 무혁은 현재 모래 태양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어리석은 자는 아니로구나.

불가능한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엘사르노 3세는 무혁에게 느꼈던 노여움을 풀었다.

- 하지만 그대가 모르는 한 가지가 있다.

“내가 뭘 몰라?”

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어야 하는지 무혁으로서는 슬슬- 짜증이 났다.

- 얼음 구슬과 그대가 가진 신물은 상극인 바, 서로 맞닿을 경우 엄청난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대의 몸이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먼지?”

엘사르노 3세의 무시무시한 발언에 무혁의 표정이 멍- 하니 변했다.

이론적으로 본다면야…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왠지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듯 무혁이 얼굴을 일그러졌다.

혼란스러워하는 무혁에게 엘사르노 3세가 회유를 하듯, 처음으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 하여 그대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얼음 구슬을 얻고 그대가 가진 신물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그대가 가진 신물을 그대로 유지하되 얼음 구슬을 포기할 것인지를.

이건 또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란 말인가?

무혁은 잠시 엘사르노 3세를 바라보다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맹랑한 년일세. 그런 말로 날 속이려고? 내가 그렇게 띄엄띄엄 보여? 폭발이니 먼지니 하는 말을 하면 내가 바짝 쫄아서 포기하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 거냐?”

- 본 여왕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그래, 폭발하라고 해. 어차피 먼지가 되더라도 내가 되는 건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오히려 잘 된 거 아닌가? 철천지원수가 알아서 자폭을 하겠다는데? 안 그래?”

히죽- 웃는 무혁의 모습에 엘사르노 3세가 혀를 찼다.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그대 역시 욕심에 눈이 멀었구나.

더 이상은 충고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듯 엘사르노 3세가 양손을 좌우로 들어 올렸다.

쩌저저저저적!

엘사르노 3세의 주변으로 길이만 2미터가 넘고, 그 두께 역시 1미터는 될법한 얼음 창들이 수십 자루나 만들어졌다.

- 나의 왕국을 더럽히고, 나의 성에 발을 들인 침입자에게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십 자루의 얼음 창들이 무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어차피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할 사이에 대화가 너무 길었어! 그리고 네년이 언제 나한테 자비를 베풀었는데? 생각할수록 웃기는 년이네. 파이어 볼! 워터 볼! 라이트닝 볼! 윈드 스피어!”

무혁 역시 마력 스킬로 응대했다.

쾅! 콰작! 퍼퍽! 쩌저적!

이보다 더 화려할 순 없다는 듯 얼음성 중앙홀이 마력 스킬들의 충돌로 불꽃놀이에 버금가는 이펙트를 만들어냈다.

그런 화려한 눈요기를 뒤로하고 엘사르노 3세는 곧장 얼음 구슬의 힘을 이끌어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공간이 얼어붙고, 얼어붙은 공간 속에서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산산조각을 내버릴 것만 같은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점점 소용돌이처럼 변해갔다.

‘저런 미친년! 성 자체를 날려버리겠다는 거야?’

중앙 홀 전체를 집어 삼킬 정도로 커져가는 소용돌이의 모습에 무혁은 황당하기만 했다.

피해 범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지고 있었기에 무혁은 실드만 믿고 의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남아 있던 얼음 창들마저도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러다가는 얼음성 자체를 통째로 날릴 정도로 소용돌이는 점점 더 그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소용돌이는 당장 무혁의 힘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소용돌이를 잠재울 수 있는 건 오로지 모래 태양 밖에 없었다.

“오픈!”

공간 주머니에서 모래 태양을 꺼내 손에 든 무혁은 곧바로 소용돌이를 향해서 내던졌다.

엘사르노 3세처럼 신물의 능력을 끌어낼 수 없었으니 무혁으로서는 모래 태양을 내던지는 것만이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정말 한심스러운 모래 태양 사용법이었지만, 그 효과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앙!

모래 태양과 충돌한 얼음 소용돌이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동시에 얼음성 전체에 퍼져 있던 차디찬 냉기도 빠르게 사라져 갔다.

- 신물을 그렇게밖에 다루지 못하다니!

엘사르노 3세가 다시 한 번 노여움을 드러냈다.

“그렇게 신물을 잘 다루면 나부터 쓰러트려 보지?”

어차피 모래 태양 앞에서 이렇다 할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엘사르노 3세였기에 무혁은 그녀를 대놓고 무시하며 모래 태양을 다시 손에 쥐었다.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라. 그 잘난 얼음 덩어리를 죄다 녹여 버릴 테니까!”

무혁은 얼음 여왕을 향해서 빠르게 접근했다.

누가 봐도 얼음 여왕의 약점은 뻔해 보였다.

바로 접근 전투에 약하다는 것이다.

방금만 하더라도 멀찍이 서서 얼음 창을 날리거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신물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그 신물의 힘에 의존할 뿐이라는 사실!’

즉, 신물의 힘이 아니라면 정말 별 것 없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물론, 그 신물의 힘이 워낙 막강해서 그걸 극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무혁은 과거 모래성에서도 해골왕을 개 패듯 정말 사정없이 후려 팼던 경험이 있다.

도도하게 제 자리에 서 있는 엘사르노 3세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몇 대 후려치면 온몸이 쩍쩍- 소리를 내며 부서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저 표정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보자고.’

무혁은 벌써부터 엘사르노 3세가 냉정을 깨고 크게 분노를 하든,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살려 달라 사정을 하든 달라질 모습을 기대했다.

그렇게 무혁이 모래 태양을 손에 쥐고 엘사르노 3세와의 거리를 고작 몇 발자국만 남겨 놨을 때였다.

- 이것이 얼음 구슬의 진정한 힘이다!

엘사르노 3세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냉기가 다시 한 번 휘몰아쳤다.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모래 태양에 그렇게 당해놓고도 헛짓거리를 하냐는 듯 비웃어주려고 했지만 무혁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적!

새하얀 연기마냥 냉기들이 모래 태양을 삼중, 사중, 겹겹이 감싸더니 이윽고 아주 단단하고도 차가운 냉기의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덩달아서 무혁의 몸 또한 빠른 속도로 얼어붙었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엘사르노 3세 역시도 어느덧 신체 절반이 얼어붙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 미친년아 도대체 무슨 짓을….”

당황한 무혁이 엘사르노 3세를 바라보며 말을 했지만, 그마저도 입이 얼어붙어서 끝마칠 수가 없었다.

- 그 어떤 것이라도 가둘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얼음 구슬의 진정한 힘이다. 이곳에서 본 여왕과 함께 영원한 잠을 잘 수 있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

무혁은 엘사르노 3세의 말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입을 대신해서 눈만 치켜떴다.

침입자를 죽일 순 없었지만, 함께 냉동 상태가 되어 영원한 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엘사르노 3세의 얼굴엔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어려 있었다.

최소한 얼음 구슬은 지켜냈으니 그걸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미소를 보며 무혁은 완전히 똥 씹은 표정으로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완전히 온몸이 얼어붙은 무혁은 그저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게 얼음 구슬이 진정한 힘을 모두 개방하여 얼음성 전체를 꽁꽁- 얼려버리자, 얼음 바위 산 여섯 봉우리의 추위도 더욱더 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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